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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산26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면적 | 354,732㎡ | |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 |
제작시기 | 삼국시대~ 조선 시대 | |
위치 |
|
<colbgcolor=#344c3c> 행주산성 안내도 |
[clearfix]
1. 개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산성. 삼국시대 때에 처음 지어져서 조선 시대에 대규모 개축이 이루어지고 임진왜란 이후 보수해서 내려오고 있다. 행주산성은 1963년 사적 제56호로 지정되었다.2. 내용
2.1. 역사
삼국시대 때의 토기가 발굴되었고, 7세기에 지어졌으며 유물 자체는 삼국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한성백제기의 유물까지 출토된다. 고려 시대의 기와조각 등도 발견이 됨에 따라 삼국시대에 건설된 후 고려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좁은 산성이 조선 시대 임진왜란 때의 행주 대첩으로 유명하다.2.2. 상세
덕양산에 있으며, 면적은 354,732 m²이다. 산성의 둘레는 약 1km이며, 2013년 기준으로 산성은 동북쪽과 서남쪽의 극히 일부 성벽만 보전되어 내려오고 있다.2017년에 석성 일부가 발견되었고 2019년 조사결과 산 정상부에 450m 길이의 석성이 축성되어 있었음이 밝혀졌다. #
산성 내부에는 정자와 사당 등 여러 건물들이 있는데 현판이 한글인 것에서 알 수 있듯 모두 현대(1970~80년)에 지어진 것이다. 그리고 덕양산 정상에는 높이 15m에 달하는 거대한 행주대첩비가 있는데 1963년에 지역민들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가 1970년에 새롭게 보수되었다. 행주대첩비라는 글씨는 박정희의 것.
그리고 바로 아래에 있는 보호각에도 비석이 있는데 이쪽은 권율이 사망한 후인 1603년에 그의 부하 장수들이 행주산성에서의 승전을 기념하고자 세운 행주대첩비(초건비)이다. 산성 내부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이며 유일한 문화재로, 경기도 유형문화제 제74호에 지정되어 있다.
3. 관광
3.1. 행주산성 가는 길
이 전투가 있었던 행주산성은 지금의 행정구역 상으로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을 대중교통을 이용해 방문하려면 아래와 같은 경로를 이용하면 된다.- 수도권 전철 3호선( 일산선) 화정역 하차 → 화정역 3번 출구 → 011번 버스 이용 → 행주산성 하차
- 수도권 전철 경의선, 수도권 전철 서해선 능곡역 하차[1] → 011번 버스 이용 → 행주산성 하차
- 영등포역, 영등포시장역, 당산역 → 1082번, 9707번 버스 이용 → 행주산성입구.행주내동 하차
- 공덕역, 대흥역, 신촌역, 홍대입구역, 합정역 → 921번 버스 이용 → 행주산성입구.행주내동 하차
3.2. 입장료
입장료는 무료이다. 주차요금은 일반 승용차의 경우 2000원이며 카드결제만 가능하다고 한다.4.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고양 행주산성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행주산성
- 문화원형백과: 행주산성
- 문화원형백과: 행주산성
- 답사여행의 길잡이 9 - 경기북부와 북한강: 행주산성
- 답사여행의 길잡이 9 - 경기북부와 북한강: 행주산성
- 대한민국 구석구석: 행주산성
-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행주산성
- 두산백과: 행주산성
5. 사적 제56호
임진왜란(1592) 때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흙을 이용하여 쌓은 토축산성이다.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험한 절벽을 이용하면서 펼쳐지는 넓은 평야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삼국시대 전기의 산성 형식과 같다.
성은 동서로 약간 긴 형태로 1㎞ 가량의 테뫼식[2] 산성이다.
산꼭대기를 둘러싼 작은 규모의 내성과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의 2중구조를 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산성을 에워싸고 돌아, 자연적으로 성을 방어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의 땅이었으며, 서해안과 연결된 수로의 거점지역으로 남북 교통의 요충지대이다.
성 안에서는 삼국시대의 토기조각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많이 나오고, 물고기뼈무늬를 새긴 기와조각도 발견되고 있어서 고려시대까지도 사용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선조 26년(1593)에 왜병과의 전투에서 성 안의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해 줌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부녀자들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행주라는 지명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하였다고도 한다.[3]
이 산성은 한강 유역에 있는 다른 산성들과 함께 삼국시대 이후 중요한 방어요새의 역할을 한 곳으로, 1603년에 세운 ‘행주대첩비’가 있으며, 권율 장군을 모시는 충장사가 있다.
※(행주산성 → 고양 행주산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성은 동서로 약간 긴 형태로 1㎞ 가량의 테뫼식[2] 산성이다.
산꼭대기를 둘러싼 작은 규모의 내성과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의 2중구조를 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산성을 에워싸고 돌아, 자연적으로 성을 방어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의 땅이었으며, 서해안과 연결된 수로의 거점지역으로 남북 교통의 요충지대이다.
성 안에서는 삼국시대의 토기조각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많이 나오고, 물고기뼈무늬를 새긴 기와조각도 발견되고 있어서 고려시대까지도 사용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선조 26년(1593)에 왜병과의 전투에서 성 안의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해 줌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부녀자들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행주라는 지명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하였다고도 한다.[3]
이 산성은 한강 유역에 있는 다른 산성들과 함께 삼국시대 이후 중요한 방어요새의 역할을 한 곳으로, 1603년에 세운 ‘행주대첩비’가 있으며, 권율 장군을 모시는 충장사가 있다.
※(행주산성 → 고양 행주산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