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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적 제251호 | ||
여주 파사성 驪州 婆娑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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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 산8-10번지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면적 | 64\,619㎡ | |
지정연도 | 1977년 7월 21일 | |
제작시기 | 삼국시대 | |
위치 |
|
<colbgcolor=#344c3c> 2017년 파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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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파사산 위에 있는 산성이다. 1977년 사적 제251호로 지정되었다.산성에서 남한강이 한눈에 보인다. 밑에서 800미터 정도의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성의 남문이 나온다. 남문은 무너져있었는데, 다시 복원되었다. 안개가 낀날이 많아서 멋진 전망이 안보일 때가 있다. 안개 낀날엔 정말로 아무것도 안보인다.
2017년경에 성벽을 크게 복원하고 보수했다. 도로변에 파사성 표지판이 있다. 그곳에 주차할 수 있으며, 산길을 따라 800m정도 오르면 도착한다. 경사가 굉장히 가파라서 꽤 힘들다.
2. 역사
신라 5대왕인 파사왕 때 건설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임진왜란 때 성을 중건했다.3.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여주 파사성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여주파사성
- 문화원형백과: 파사성
- 문화원형백과: 파사성
- 답사여행의 길잡이 7 - 경기남부와 남한강: 파사성
- 대한민국 구석구석: 여주 파사성
- 두산백과: 여주 파사성
4. 사적 제251호
파사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약 1800m이며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신라 파사왕(재위 80∼112) 때 만든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승려 의암이 승군을 모아 성을 늘려 쌓았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남한산성에 대한 비중이 증가하여 파사성에 대한 중요성이 감소하였다. 현재는 동문이 있던 자리와 남문이 있던 터가 남아있다.
이 성은 성의 일부가 한강변에 나와있어 강 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를 제압하기 매우 좋은 요새이다.
※(파사성 → 여주 파사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신라 파사왕(재위 80∼112) 때 만든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승려 의암이 승군을 모아 성을 늘려 쌓았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남한산성에 대한 비중이 증가하여 파사성에 대한 중요성이 감소하였다. 현재는 동문이 있던 자리와 남문이 있던 터가 남아있다.
이 성은 성의 일부가 한강변에 나와있어 강 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를 제압하기 매우 좋은 요새이다.
※(파사성 → 여주 파사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