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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기(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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彭祈
241년 ~ 289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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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 는 자호(子互)이며 양주 농서군 양무현 사람.

2. 생애

255년에 조서 전투에 참전했고 왕경이 적도성에 포위당하자 기책을 내어 포위를 돌파했으며(적도 전투), 농서군에서 요직을 역임하다가 별가종사를 지냈다.

270년 독발수기능이 군사를 일으키고 호열, 견홍 등이 살해당하자 양주호군장군이 되어 하서로 가서 양주를 수복했으며( 독발수기능의 난), 서군 태수로 옮겼다가 272년에 영호풍이 반란을 일으키자 양흔이 팽기의 무공이 뛰어난 것과 지역의 인접을 고려해서 팽기를 주천 태수로 보낼 것을 주청했다.

주천태수로 부임하자 여러 이민족들이 귀부했고 백산, 정령에서도 사신을 보내 조공해 신복할 것을 표시했으며, 275년에 영호풍이 죽고 영호굉이 대신했지만, 276년에 양흔의 명령으로 군사들을 지휘하자 돈황에서는 팽기의 명성을 듣고서는 싸우지 않고 항복했다.

277년에 동생이 사망하자 모친이 늙어 모실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났는데, 진무제가 효성을 생각해 농서와 가까운 악양태수로 임지를 바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사망하자 관직을 떠나 상을 치렀다.

280년에는 도독양주제군사 양주 자사가 되었다가 282년 사지절 영호강교위에 임명되었으며, 289년 3월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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