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1:31:48

라다멜 팔카오

팔카오에서 넘어옴
라다멜 팔카오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마리오 예페스
(2011~2014)
라다멜 팔카오
(2014~2019)
다비드 오스피나
(2019~2024)

AS 모나코 주장
제레미 툴랄랑
(2014~2016)
라다멜 팔카오
(2016~2019)
카밀 글리크
(201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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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멜 팔카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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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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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 ·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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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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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다멜 팔카오
2012 FIFA 푸스카스상
수상
미로슬라프 스토흐
2위
라다멜 팔카오
3위
네이마르 주니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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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멜 팔카오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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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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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0>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다비드 오스피나 128회 2007.2.7 2023.12.16
2 후안 콰드라도 116회 2010.9.3 2023.9.7
3 하메스 로드리게스 112회 2011.10.11 2024.11.20
4 카를로스 발데라마 111회 1985.10.27 1998.6.26
5 라다멜 팔카오 105회 2007.2.7 2023.3.28
6 마리오 예페스 102회 1999.2.9 2014.7.4
7 레오넬 알바레스 101회 1985.2.14 1997.9.7
}}}}}}}}}}}}}}} ||
파일:1000097186.jpg
<colbgcolor=#ffffff><colcolor=#00528B> 미요나리오스 FC No. 9
라다멜 팔카오
Radamel Falcao
본명 라다멜 팔카오 가르시아 사라테[1]
Radamel Falcao García Zárate
출생 1986년 2월 10일 ([age(1986-02-10)]세)
콜롬비아 산타마르타
국적
[[콜롬비아|]][[틀:국기|]][[틀:국기|]]

[[베네수엘라|]][[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 체중 72kg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발 오른발 (양발)
소속 <colbgcolor=#ffffff><colcolor=#00528B> 유스 란세로스 보야카 (1999~2001)
CA 리버 플레이트 (2001~2005)
선수 CA 리버 플레이트 (2005~2009)
FC 포르투 (2009~201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1~2013)
AS 모나코 FC (2013~201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4~2015 / 임대)
첼시 FC (2015~2016 / 임대)
갈라타사라이 SK (2019~2021)
라요 바예카노 (2021~2024)
미요나리오스 FC (2024~ )
국가대표 105경기 36골[2] ( 콜롬비아 / 2007~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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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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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colcolor=#00528B> 에이전트 조르제 멘데스
종교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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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출전 기록
6. 팔카오에 대한 말, 말, 말7. 여담8.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콜롬비아 국적의 미요나리오스 FC 소속 축구 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2.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라다멜 팔카오/클럽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국가대표 경력

U-17, U-20 청소년 대표를 거친 팔카오는 2005년 콜롬비아 U-20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남미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2005년 FIFA U-20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후 2007년 성인 국가대표팀에 첫 발탁되어 6월 23일 몬테네그로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데뷔골을 넣었다.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하여 볼리비아와의 조별 리그에서 2골을 넣어 콜롬비아의 8강을 이끌었는데 팔카오는 이 경기에서 처음으로 멀티 골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8강 페루전에서는 후반 페널티킥을 실축하여 팀의 패배를 지켜보게 되었다.

이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팔카오는 맹활약하면서 득점을 기록 중이며, 총 9골을 기록하여 아르헨티나에 이여 2위로 월드컵 본선 티켓을 획득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오랜만에 찾아온 콜롬비아 축구의 전성기에서, 팔카오는 그 가운데 있었고 많은 이들이 월드컵에서 팔카오의 활약을 기대했다. 그러나...

파일:external/www.euronews.com/2014-01-25T200817Z_1_CBREA0O1JXW00_RTROPTP_2_OUKSP-UK-SOCCER-WORLD-FALCAO.jpg
[3] 2014년 1월 소속팀에서 당한 무릎 십자인대 부상으로 팔카오의 사상 첫 월드컵 출전의 꿈이 산산조각날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나 수술 이후 본인의 월드컵 출전 의지가 강하며, 수술을 집도한 의사도 월드컵에 맞춰 복귀할 확률이 적지만은 않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어 또 모르는 상황이다.

참고로 지지난 월드컵인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프란체스코 토티와의 상황과 묘하게 비슷한 처지다. 토티 역시 그 해 미친 활약으로 날뛰었으나, 2006년 2월 리그전에서 왼쪽 종아리뼈 골절로 인해, 2006 독일 월드컵 출전이 불가능하다고 진단받았다. 하지만 철심을 박고서 기적적으로 복귀해 팀의 우승을 이끈 사례로 봐서, 팔카오가 2006년 프란체스코 토티 같은 모습을 보일지, 반대로 2010년 카카[4] 페르난도 토레스[5]같은 상황이 될지는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본인의 악착같은 재활에도 불구하고 2014 브라질 월드컵 23인 최종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공백이 무색하게 콜롬비아는 8강에 진출하며 역대 월드컵에서 최고의 성적을 남기게 되었다. 특히 공격에서는 하메스가 하드캐리 한데다 득점왕까지 등극했으니 팔카오로서는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콜롬비아는 하메스를 비롯한 2선 자원들에 비해 최전방 공격수들은 생각보다 힘을 쓰지 못 했고[6] 특히나 8강전에서 네이마르가 이탈한 브라질을 상대로 빈공에 시달리다가 결국 패했을 때 이 아쉬움은 더욱 컸다.

한편 팔카오에게 태클을 가한 선수는 콜롬비아 마피아들한테 살해 위협을 받는 상태라고 한다. 콜롬비아에서 벌어졌던 참사를 생각해본다면 절대로 웃어넘길수 있는 일은 아닌 듯 하다.[7]

이후 부상에서 복귀한 팔카오는 2015년 코파 아메리카 대회에 출전하였다. 대표팀 주장으로서 콜롬비아의 공격 최전선에서 뛰었지만, 부상 이후 급격하게 떨어진 신체 능력으로 과거의 날카로운 움직임과 골 결정력이 사라져 버렸다. 소속팀에서의 부진한 모습이 대표팀에서도 이어지면서 조별리그 3경기 무득점에 그쳤고 8강 아르헨티나전은 잭슨 마르티네스에게 밀려 벤치로 밀려났다. 그리고 콜롬비아는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여 8강에서 탈락했다.

그 이후로는 오랜 기간 부진으로 인해 대표팀와는 한동안 멀어졌으나, 2016년 11월 4일, 2018 러시아 월드컵 지역예선 칠레,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를 앞두고 오랜만에 콜롬비아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면서 2015년 10월 13일 우루과이와의 경기 이후 388일 만에 대표팀으로 복귀했다.

2017년 6월 7일,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26골을 기록하며 콜롬비아 대표팀 A매치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갱신하였다.

그리고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 명단에 포함되면서 브라질 월드컵에 불참한 아쉬움을 털어내고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을 기회를 얻게 되었고 콜롬비아 대표팀의 주장으로 출전했다.

G조 2차전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후안 킨테로의 패스를 받아 팀의 두번째 골을 성공시켜 3-0 승리에 일조했다.

2019년 3월 26일 서울에서 열린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교체 출전했다. 경기를 빨리 진행하라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다가 기어이 대한민국 측의 물가방을 던지다가 옐로 카드를 받았다. 처음에는 의료가방으로 알려졌으나 확인결과 물가방이었다고. 물론 의료가방이든 물가방이든 남의 집기를 던진거는 잘못이다. 거기에 한국 측 선수들에게 손으로 밀치고 발로 걷어차는 등 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더 거칠게 플레이해서 이미지를 깎아먹기도 했다.

2022년 9월 25일 과테말라와의 A매치에 출전하면서 100경기 출장을 달성,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2023년 3월 24일 울산에서 열린 한국과의 A매치에서 후반 83분경 투입되었다. 울산에 있는 콜롬비아 팬들은 말 그대로 열광했다. 하지만 3월 A매치를 끝으로 더 이상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은퇴라고 봐도 무방하다.

4. 플레이 스타일

전반적인 공격 능력에 있어서는 리그를 넘어서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으로 좋은 편이다.[8] 양발을 가리지 않는 슈팅의 스킬과 파워 모두 훌륭하고,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 헤더도 잘 갖추고 있다.[9] 특히, 전성기 시절의 슈팅은 유럽 최정상급으로 평가받았을 만큼 매우 뛰어나며 팔카오의 대표적인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공격수로서 득점을 하기 위한 움직임과 위치 선정도 매우 좋고, 활동량과 활동범위 및 수비 가담이 탁월하며 공격수에게 필요한 옵션들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거기다 전술 이해 능력도 뛰어나 포지션 소화 능력이나 스위칭 능력도 좋은데 이게 넓은 활동량과 좋은 킥력과 함께 더욱 좋은 효과를 끌어냈다.

무엇보다도 이 선수의 강점은 엄청난 강심장이라는 것. 덕분에 큰 경기에서의 활약이 그야말로 기록 갱신급으로 뛰어나다. 포르투 시절에는 비야레알과의 유로파 리그 4강전 한 경기에만 후반전에 혼자서 네 골을 집어넣어 팀의 5-1 승리를 이끌었었고, 브라가와의 결승전에는 결승골로 1-0 우승을 시켰으며[10] 다음 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뛸 때도 역시 빌바오와의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 개인 기량으로 환상적인 골을 두 번이나 뽑아내었다. 첼시와의 슈퍼컵 경기에서도 전반에만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는데, 특히 두번째 골은 세계 최고의 수비수라 불리는 애슐리 콜, 존 테리 등을 모두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환상적인 왼발 슛으로 집어넣어 털리는 첼시 팬들마저 팔카오가 대단하다고 외칠 정도였다.

전성기 때는 상당히 빠른 스피드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부상 이후 스피드가 크게 줄었다. 부상 이후 이러한 속도의 문제로 인해서 정확한 타이밍에 패스를 제공받아야만 득점을 넣을 수 있다는 단점이 생겼다.

16-17 시즌을 기준으로, 팔카오의 운동 능력이 상당히 떨어졌다. 이로 인해, 예전만큼 왕성한 수비 가담이나 활동력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 위치하며 상대 수비를 위협하다가 기회가 오면 골을 넣는 전형적인 포쳐의 움직임을 가져갔다.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인지는 몰라도 전성기까지는 아니지만 맨유, 첼시, 더 나아가서는 모나코 초창기 시절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리그 수준의 차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래도 맨유, 첼시 시절에 넣은 골을 다 합친 것보다 해당 시즌 전반기에 넣은 골이 많다는 것은 그가 확실히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증거이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출전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2005/06 리버 플레이트 프리메라 디비시온 11 7 0 0 0 0
2006/07 리버 플레이트 프리메라 디비시온 20 3 0 0 0 0
2007/08 리버 플레이트 프리메라 디비시온 27 11 0 0 12 8
2008/09 리버 플레이트 프리메라 디비시온 32 13 0 0 3 3
2009/10 FC 포르투 프리메이라 리가 28 25 5 5 8 4
2010/11 FC 포르투 프리메이라 리가 22 16 3 3 16 18
2011/1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리가 34 24 1 0 15 12
2012/1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리가 34 28 4 2 2 1
2013/14 AS 모나코 리그 1 17 9 2 2 0 0
2014/15 AS 모나코 리그 1 2 2 0 0 0 0
2014/1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26 4 3 0 0 0
2015/16 첼시 FC 프리미어 리그 9 1 0 0 0 0
2016/17 AS 모나코 리그 1 29 21 2 1 10 7
2017/18 AS 모나코 리그 1 26 18 1 0 5 3
2018/19 AS 모나코 리그 1 33 15 1 1 5 0
2019/20 갈라타사라이 쉬페르리그 16 10 3 1 3 0
2020/21 갈라타사라이 쉬페르리그 17 9 0 0 1 0
2021/22 라요 바예카노 라리가 22 6 3 0 2 0
2022/23 라요 바예카노 라리가 27 2 2 0 0 0

6. 팔카오에 대한 말, 말, 말

모든 콜롬비아인들이 팔카오의 활약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는 골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보통 비범한 재능이 아니다. 팔카오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다. 그는 기회가 찾아오면 그것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 카를로스 발데라마
그는 우리 팀의 상징이자, 콜롬비아 축구의 상징이다.
- 호세 페케르만
완벽한 선수는 팔카오의 제공권 장악력, 푸욜의 성격, 사비의 오른발, 메시의 재능과 왼발, 부스케츠의 전술적인 움직임, 호날두의 골 결정력을 모두 갖춘 선수이다.
-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팔카오는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9번이다. 팔카오 같은 득점력을 가진 선수는 드물다. 그는 페널티 지역에서 괴물이다.
- 파코 에레라 (前 RC 셀타 데 비고 감독)
팔카오는 전형적인 중앙 공격수이다. 타고난 골잡이다. 드리블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항상 좋은 위치에 있고 크로스가 올라올 때마다 항상 위치를 잘 읽는다. 베티스전의 골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공중전은 팔카오가 최고다.
- 안드레스 팔롭
팔카오는 키가 190cm가 안되지만 점프력이 엄청나고 헤더 경합에 능하다. 공중볼의 곡예사다. 그를 보니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슈팅하더라.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는 그가 최고다. 완벽한 9번 공격수이다.
- 미겔 앙헬 모야
팔카오는 지금 최고의 순간을 보내고 있다. 헤더 슈팅이 가장 위협적이다. 그 점에 있어선 최고의 전문가이다. 거의 모든 슈팅이 골문으로 온다. 그는 찾아오는 기회를 거의 모두 골로 연결하는 사냥꾼이다.
- 비센테 과이타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선수이며 골에 굶주린 선수이다. 그는 칠레가 낳은 위대한 공격수들의 장점을 합쳐놓은 것 같은 선수이다. 환상적인 헤더 기술은 사모라노를 생각나게 한다. 또한 볼을 잘 받고 공간을 열어주는 면은 마르셀로 살라스 같기도 하다.
- 클라우디오 브라보
골잡이의 본능을 타고났다. 중원에서의 플레이는 세밀함이 떨어지지만 전방에서는 최고다. 골문 앞 25m 반경 안에서 위치 선정이 아주 좋다. 무엇보다 공을 경합할 때 보이는 집념이 엄청나다. 호랑이가 먹이를 낚아챌 때 온 힘을 몰아치는 것 같이 플레이한다. 별명이 잘 어울린다. 팔카오는 경기를 결정할 수 있는 핵무기다.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경기에서 종료 직전에 프리킥으로 골을 넣어 팀 승리를 이끌었던 플레이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셀타에서 뛰고 있는 박주영 선수에게도 팔카오의 장점을 많이 이야기해주었다.
- 김용갑,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던 기간 중에 지켜본 팔카오에 대한 평가.
FC 포르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AS 모나코에서 활약하던 팔카오를 지켜봤을 때 나는 그의 영리한 움직임에 놀랐고 결정력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 폴 스콜스
팔카오의 능력은 여전히 월드클래스이다. 나는 팔카오를 상대하며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게 됐다. 그의 움직임과 마무리 능력은 가히 최고 수준이다.
- 존 테리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또 말해야 겠다. 라다멜 팔카오 같은 선수와 함께 내가 경력을 시작한 건 그야말로 최고였다. 최고의 경험이었다. 모두가 팔카오는 환상적인 스트라이커라고 말한다. 인격적으로도 정말 훌륭했다. 놀라운 사람이다. 팔카오가 나를 최고의 시즌으로 초대했다. 내가 어리다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그때 나는 17세였다. 그것은 내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으며 내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 킬리안 음바페

7. 여담

  • '팔카오'라는 이름은 과거 브라질 황금의 4중주의 일원이었던 축구선수 호베르투 파우캉(Roberto Falcão)에서 따온 이름이다.
  • 프로필에도 언급했듯 '팔카오'는 성이 아닌 이름의 일부다. 팔카오의 풀네임은 '라다멜 팔카오 가르시아 사라테'로, 이름이 '라다멜 팔카오'[12], 부계 성이 '가르시아', 모계 성이 '사라테'다. 이때문에 일부는 '팔카오'를 별명처럼 취급해서 '라다멜'도 빼고 그냥 '팔카오'만 표기하기도 하나, 엄밀히 부친이 작명한 이름의 일부인 만큼 별명과는 차이가 있다. 루이스 엔리케 호세 엔리케처럼 이름이 두 단어일 때 그걸 통째로 등록명으로 사용하는 케이스가 있는데 팔카오도 그런 케이스에 더 가까운 편. 선수 본인이 본인을 '라다멜 팔카오'라고 칭하고 그렇게 불러주는 것을 선호한다고 밝혔으므로 틀린 표기도 아니다. 출처
  • 아버지인 라다멜 가르시아 (1957~2019) 도 축구 선수였는데 원래 베네수엘라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야구 팬이라면 잘 알다시피 베네수엘라는 야구를 즐겨하는 나라인지라 축구를 하기엔 환경이 좋지 않아서 콜롬비아로 옮겼다고 한다.[13]
  • < 콜롬비아 만세 , 팔카오 만세 > (Viva Colombia , Viva Falcao) 라는 응원가가 있다. #

파일:external/www3.pictures.zimbio.com/GQ+Men+Of+The+Year+Award+2012+h0yJBiYlyOBl.jpg
  • 성공한 축구선수가 다들 그러하듯이 아내가 상당히 예쁘다. 로렐라이 타론이라는 아르헨티나 출신 가수라고 하는데 남미 축구선수 아내들 중 적어도 열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해도 반론이 없을정도 그리고 슬하에 딸이 2명 있었다. 그리고 2017년 8월 18일 셋째 딸을 낳았다.

파일:external/www.soccerblog.com/rf.jpg
  • 남미 출신 축구선수 중에서는 보기 드문 야구 팬이기도 하다. 상기됐듯 팔카오의 아버지가 베네수엘라 출신인데다, 콜롬비아가 남미에서는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야구를 잘하는 나라로 이름난지라 이상하다고는 볼 수 없다. 팔카오의 출신지인 산타마르타는 카리브해에 면접한 북부 콜롬비아 지역으로, 이 지역은 축구보다 야구가 더 인기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팔카오는 자신이 축구를 안 했다면 야구선수가 됐을 거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배팅 실력도 괜찮지만 선수 수준은 아니다.
  • 인간계 최강이라는 별명과는 다르게 개인 기록은 부실한 편이다. 월베에 한번 들었지만 그것뿐이며[15] 그 외에 기록은 옹즈도르 3위, 유로파 득점왕 2회 정도인데 본인과 비슷한 급이라고 평가받는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 곤살로 이과인 등과 비교하면 아쉬운편이다.

8. 같이 보기


[1] 흔히 '라다멜 팔카오'라 불리기에 '팔카오'가 성일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으나, 스페인어 작명법을 알고 있다면 본명에서 바로 알 수 있듯 '팔카오'는 성이 아니라 이름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여담' 문단을 참조할 것. 비슷한 사례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다비드 루이스 등이 있다. [2] 2023년 3월 28일 기준, 콜롬비아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3] 참고로 가운데에 팔카오의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은 후안 마누엘 산토스 당시 콜롬비아 대통령이다. 대통령까지 문병오게 만들 정도로 당시 콜롬비아 대표팀에서 팔카오의 위상은 엄청났다. [4] 이 쪽은 자신이 부상을 참으며 에이스 역할을 했으나 팀은 탈락하고 자신은 몰락한 경우. [5] 토티와 비슷한 상황이었으나, 이쪽은 무리한 복귀가 화근이 되어 팀은 우승하나 본인을 망친 경우. [6] 일본전에서 멀티골을 넣은 잭슨 마르티네스와 첫 경기인 그리스전에서 한 골을 넣은 테오필로 구티에레스 두명이서 세 골을 넣은게 전부였다. [7]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귀국 후 술집 또는 나이트클럽에서 총격살해를 당한 사건도 있다. 다만 저 사건은 콜롬비아 안에서 벌어졌던 일이었다. [8] 메시 호날두의 아성에 도전했던 최전성기 시절 팔카오의 별명은 '인간계 최강' [9] 본인의 트위터에서 메시와 호날두를 칭찬하며 "하지만 나도 머리는 쓸만하지 ㅋㅋ"라는 농담을 했다. 본인도 헤더 능력에는 자부심이 있는 듯. [10] 물론 위에 서술한 대로 유로파 리그 득점왕은 그의 차지였다. [11] Clausura(클라우수라) [12] 스페인어는 본래 퍼스트네임-미들네임 구분이 없으므로 '라다멜 팔카오'가 하나의 이름이다. 만약 한국인 선수 이름을 ' Heung Min Son'이라고 표기한다고 가정할 때, 'Heung Min'이 하나의 이름이지 'Heung'이 퍼스트 네임, 'Min'이 미들 네임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 물론 등록명 등에서 이름의 앞 단어를 잘라다가 퍼스트네임처럼 사용하는 케이스도 많다. [13] 그래도 베네수엘라 출신 축구선수로는 살로몬 론돈이 있다. [14] 피스컵에 출전했을 당시에 1차전과 3차전을 수원에서 치렀고 2차전을 부산에서 치렀다. 서울을 방문했을 때에는 2019년에 있었던 벤투호 대한민국과 콜롬비아의 친선경기이다. 오히려 수원에서 더 많은 경기를 치러봤음에도 부산과 서울의 이름만 기억하는 것은 수원보다 부산이 상대적으로 외국인이 발음하기 쉬는 지명이며, 서울은 한국의 수도로 어느정도 잘 알려진 이유에서 알고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5] 사실 이 당시에는 월베에 들기 힘든편이였어서 이것도 대단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