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파벨 티모페예비치 고르굴로프[1] Павел Тимофеевич Горгулов Pavel Timofeyevich Gorgulo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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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고르굴로프의 머그샷 | |
출생 | 1895년 6월 29일 |
러시아 제국
쿠반 지방
라빈스크 (現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지방 라빈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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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32년 9월 14일 (향년 37세) |
프랑스 제3공화국
파리
라상테 교도소 (現 프랑스 파리 라상테 교도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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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의사 |
범죄 유형 | 국가 지도자 암살 |
처벌 | 사형 |
수감처 | 라상테 교도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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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벨 고르굴로프는 백계 러시아인이자, 에코파시스트다.폴 두메르를 암살했다.
2. 생애
고르굴로프는 러시아 제국 쿠반 지방 라빈스크에서 태어났으며 의학을 공부하던 중 머리에 중상을 입게 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볼셰비키에 맞서 백군에 복무한 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로 이주하여 학업을 마쳤다. 하지만 이후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불법이었던 낙태 시술을 했다가 발각되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추방당했다.파리를 거쳐 니스로 이주한 고르굴로프는 1931년 또 의료법을 위반해 추방당했다. 고르굴로프는 모나코에서 거주증을 발급받고 1932년 5월 4일까지 모나코에서 살았다.
2.1. 폴 두메르 암살과 최후
1932년 파리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고르굴로프[2] |
1932년 5월 6일, 파리의 살로몬 드 로스차일드 호텔에서 도서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고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 폴 두메르가 참석했다.
고르굴로프는 브라우닝 FN M1910 권총을 숨기고 호텔에 도착했다. 그 후 고르굴로프는 폴 두메르 뒤에서 총을 꺼내 세 발을 발사했다. 그 중 두 발은 대통령의 뒤통수와 오른쪽 겨드랑이에 명중했고, 대통령은 바닥에 쓰러졌다. 두메르는 파리의 보종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지만 다음 날 사망했다. 고르굴로프의 살해 동기는 " 백군을 무시한 협상국에 대한 복수"라는 이유였다.
고르굴로프는 1932년 7월 25일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그는 재판에서 "달 여행을 계획했다", " 자기가 린드버그 주니어의 유괴범이다"라는 주장까지 하는 등 다른 사람의 증언을 방해하며 정신병 행세를 했다. 하지만 이틀 후 배심원단은 그의 행동을 무시하고 고르굴로프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1932년 9월 14일 고르굴로프는 파리의 라상테 교도소 단두대에서 참수당했고, 이브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Россия, моя страна!"
"러시아, 나의 조국이여!"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
"러시아, 나의 조국이여!"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