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10:27:23

파리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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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자칭 파리의 심판에 대한 내용은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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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
2.1. 심사단 구성
3. 결과
3.1. 화이트 와인 시음 결과3.2. 레드 와인 시음 결과
4. 결과 발표 이후5. 1979년6. 1986년7. 2006년 두번째 파리의 심판 (30주년 기념)8. '파리의 심판'의 의의9. 여담10. 대중매체에서11. 관련 문서12. 관련 링크

1. 개요

Judgment of Paris

1976년에 열린 와인 블라인드 테스트.

프랑스 와이너리들의 안하무인한 자존심을 꺾은 사건이다. 어떠한 제품의 품질을 판단할 때 이미지와 브랜드 효과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발전을 등한시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자기 자리에만 안주했을 때 얼마나 명성이 추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유명한 사례이다.

원래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 파리스의 심판'을 뜻하는 표현인데 아래 나오는 기사의 제목에 'Paris'를 이용한 언어유희로 쓰이면서 이름이 굳어졌다.

2. 배경

예나 지금이나 프랑스 와인은 최고급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에서도 '프랑스 와인이 아닌 와인은 와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자부심이 만연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그러한 프랑스 와인을 따라잡으려는 움직임이 계속되었다.

그 중에서 미국 캘리포니아가 품질 좋은 포도가 자랄 수 있는 적합한 환경으로 각광받았다. 이 지역에 위치한 UC 데이비스 양조학과 출신들이 와인을 빚기 시작했으며 로버트 몬다비 같은 인물들의 공헌으로 와인의 품질이 급속히 높아졌다. 하지만 포도주 시장과 프랑스 본토에서는 여전히 미국산 와인을 이삼류로 치부하고 있었다.

이런 세간의 인식 속에서 영국인 와인 평론가 스티븐 스퍼리어( 2011년 5월 인터뷰)는 미국 와인과 프랑스 와인의 공정한 평가를 위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개최했다. 블라인드 테스트의 개최 목적은 캘리포니아를 방문한 스퍼리어가 미국 와인들의 품질이 상당한 것을 보고 프랑스 와인의 상대가 될 수 있을지 비교하기 위함이었다. 스퍼리어 본인은 당연히 프랑스 와인이 이길 것이라고 굳게 믿었으며 다른 심사위원들도 다르지 않았다. 역사와 전통의 프랑스 와인이 미국의 와인 같은 이류에게 질 가능성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2.1. 심사단 구성

순서 이름 국적 당시 직책
1 스티븐 스퍼리어 영국 아카데미 뒤 바인의 창업자, 본 행사 주최자
2 패트리샤 갤러거[1] 미국 아카데미 뒤 바인의 원장
3 크리스티앙 바네케 프랑스 레스토랑 투르 다르장[2] 수석 소믈리에
4 장 끌로드 브리나 프랑스 레스토랑 탈리번트[3] 사장
5 피에르 브레주 프랑스 AOC(원산지 통제 명칭) 위원회 수석 감독관
6 오데트 칸 프랑스 와인잡지 라 르뷔 뒤 뱅 드 프랑스의 편집자
7 피에르 타리 프랑스 샤토 지스꾸르[4]의 소유주, 당시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쎄 협회 회장
8 레이몽 올리비에 프랑스 레스토랑 르 그랑 베푸[5] 사장
9 끌로드 뒤부아-미요 프랑스 레스토랑 가이드북 골 미요의 이사
10 오베르 드 빌렌 프랑스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6]의 소유주

1976년 파리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와인 업계에서 명성이 높은 높으신 분들로 구성된 평론가 11인이 미국 와인과 프랑스 와인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평론가 11인 중 9인이 프랑스인으로 선발되었으며 나머지 두 명은 이 테스트를 개최한 스티븐 스퍼리어와 그가 프랑스에 설립한 와인 학교인 아카데미 뒤 뱅(Académie du Vin)의 원장인 미국인 패트리샤 갤러거(Patricia Gallagher)였다.

심사위원 중 프랑스인이 대다수였지만 블라인드 테스트였기 때문에 편파 판정의 여지는 없었다. 프랑스인이 곧 전문가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어차피 그 누구도 미국 와인이 이길 리가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편파판정을 할 생각조차 없었으며, 미국 와인 업계도 "우리가 제법 많이 성장했으니, 종주국 프랑스로부터 한번 배우는 자리를 가져보자" 정도로 나섰기 때문에 진다고 해도 아쉬운 일은 없었다.

원래는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의 시음 결과를 동시에 발표하려고 했지만 레드 와인의 시음 준비가 늦어져서 화이트 와인의 시음 결과만 먼저 발표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모두의 예상 밖이었다.

3. 결과

3.1. 화이트 와인 시음 결과

파일:파리의심판_화이트와인.jpg
[7][8]

시음을 맡았던 심사위원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국의 화이트 와인이 프랑스의 것보다 뛰어나다는 결과가 나와 버린 것이다. 게다가 위의 도표에도 나온 바와 같이 상위 5위권안에 미국산 와인이 무려 3개나 포함되어 있었다. 시음 전까지만 해도 미국 와인을 프랑스 와인의 적수로 여기지 않았던 심사위원들은 긴장했으며, 시음장의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이때 타임지의 기자 조지 M. 테이버는 화이트 와인 시음에서 평론가들이 위대한 프랑스 와인이라고 평가한 와인은 사실 캘리포니아 와인이었고 향이 없으니 캘리포니아 와인이라고 했던 것은 몽라셰였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와인 세팅을 도왔던 소믈리에들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수석 소믈리에가 캘리포니아 와인에 프랑스 와인보다 높은 점수를 매기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전해진다.

뒤이어 레드 와인의 시음을 진행했는데 이때 심사위원들은 미국 와인이 1등을 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대동단결했다. 조금이라도 미국산이라는 의심이 가는 와인에는 가차없이 낙제점을 주고 프랑스 와인에는 점수를 후하게 준 것이다.

3.2. 레드 와인 시음 결과

파일:파리의심판_레드와인.jpg
[9]

화이트 와인을 심사했을 때보다 프랑스 와인이 점수를 많이 얻었으며 1등부터 4등까지는 4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심사 당시 그랑크뤼 2등급이었던 샤토 무통 로쉴드는 1위와 1.5점 차이로 2위를 차지하면서 선전했다.

그러나 1등을 차지한 와인은 다름 아닌 미국의 1973년산 스택스 립 와인 셀러 S.L.V. 카베르네 소비뇽이었다. 결국 미국산 와인이 프랑스산 와인을 꺾어 버린 것이다! 가격으로는 2위 샤토 무통 로칠드의 가격이 스택스 립의 3배가 넘었기 때문에 당시 와인 업계에 안겨준 충격은 엄청났다.[10]

4. 결과 발표 이후

평가를 한 평론가들도 당황할 정도의 대사건이었고 심사 위원 중 한 명인 오데트 칸은 자신이 투표한 쪽지를 스티븐 스퍼리어로부터 빼앗으려고 할 정도였다. 유력 와인 잡지의 수석 편집자였던 오데트 칸은 이후 자신의 잡지에 시음 순서가 프랑스 와인에 불리하게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음 순서는 현장에서 제비뽑기로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의혹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리고 미국 타임스 잡지의 프랑스 특파원인 조지 M. 테이버[11]가 이 블라인드 테스트의 결과를 파리의 심판이라는 헤드라인을 내걸고 기사화하면서 대대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여담으로 현지 특파원들은 어차피 프랑스 와인이 이길 것이라 생각해서 대부분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지 테이버 홀로 이 행사를 취재하러 갔다. 이를 기사화한 테이버 기자조차 미국 와인이 선전할 것이라고 예상조차 못했으며, 단지 마침 행사장과 가까운 곳에 있었고 맛있는 와인들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특종을 단독 보도하게된 것이다. 이후 테이버는 당시의 경연대회 모습과 5년여간의 추가 취재 내용을 곁들여 2005년 <파리의 심판>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 저서는 영화 <와인 미라클>의 각본을 집필하는 데 많이 인용되었다고 한다.

프랑스는 스스로 문화대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였고 프랑스 와인은 그 프랑스 문화의 정수로 여겼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프랑스 못지 않게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탈리아 와인을 시음해 본 후 "프랑스산이 아닌 것 치고는 제법이네."라고 말해서 이탈리아인들을 공분을 샀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드높은 자존심을 과시하던 프랑스인들은 자신들보다 문화적으로 뒤쳐진다고 여겨온 미국이 더 뛰어난 와인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이 사건에 대해 무시하거나 축소 보도했으나 이미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할 수는 없었다. 반면 다른 나라들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특히 프랑스에 와인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조롱을 당해온 이탈리아가 가장 기쁘게 받아 들였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은 프랑스 와인 업계는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시음회에 참가했던 평론가들은 본의 아니게 매국노 취급을 받게 되었다. 평론가들은 와인 관련잡지 편집자,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관계자, 유명 와이너리 소유주에 프랑스 와인 원산지 통제 위원회 총감독 등 와인 업계의 높으신 분들이었음에도 이런 결과를 보여줬으니 엄청난 욕을 먹은 것은 당연지사였다. 특히 시음회 주최자 스티븐 스퍼리어는 영국인이라는 이유로 미운털이 박혀 프랑스 와인 업계에서 쫓겨났다.

반면에 미국 와인 업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었다. 프랑스에 비하면 와인을 빗어온 역사가 한참 뒤쳐진 풋내기였던 미국 와인이 품질로 프랑스 와인을 이겨버린 것이다. 심지어 당시 기준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미국은 금주법으로 인해 포도 벽돌 같은 거나 만들던 암울한 상황이었다. 그런 금주법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신기술을 동원하면서 연구의 연구를 거듭했고 우직하게 한 길만 걸어 갔다. 그리고 금주법이 풀린 1930년대 초를 기준으로 불과 40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미국의 와이너리들은 이 사건 이후 세계의 여러 와이너리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이 사건 당시 샤토 몬텔레나를 만든 와인 양조업자는 와인 관련 모임에 참석하려고 프랑스의 유명 와이너리를 방문하고 있었으며, 이 사건을 조지 M. 테이버로부터 전해듣자 "시골 촌놈들이 만든 와인인데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평을 남겼다. 아무리 캘리포니아 와인이 좋은 평가를 받았어도 거만한 태도로 나오면 와인 업계의 눈총을 받을 것을 고려해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 시음회의 결과를 전달받지 못했던 프랑스 와이너리 관계자들은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미국 와인도 프랑스 와인만큼 훌륭한 와인이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프랑스인들과 헤어진 후 자신이 탄 버스가 프랑스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했다고 한다.

레드 와인 시음에서 2위를 한 샤토 무똥 로칠드는 1976년 5월 파리의 심판 당시에는 보르도 그랑크뤼 1등급이 아니고 2등급이었다. 무똥 로칠드는 2등급이었을 때 "1등급이 아닌 2등급으로서 굴욕을 참을 수 없다. 무똥이 곧 나다."라는 글자를 병에 새겨넣을 만큼 1등급 승급에 목이 매여 있었다.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던 와이너리 투어 오픈, 청원서 제출, 각종 로비를 통해 1등급 승급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는데 1976년 5월에 일어난 파리의 심판에서 이름없는 미국 와인에게 1등을 내준 것이다.

결과가 공표되자 무똥 로칠드의 주인이었던 바롱 필립 로칠드가 스퍼리어에게 전화를 걸어 불같이 화를 냈다고 전해진다. 그는 선조의 뒤를 이어 4대째 양조장 주인을 맡게 되었고 1등급 승급에만 20년을 바쳤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목표로 했던 1등급 와인은 물론이고 그 자신이 심혈을 기울였던 사토 무똥 로칠드까지도 이름도 모르는 미국 와인에게 패배했으니 화를 낼 만도 했다. 그래도 그로부터 한 달 뒤 1976년 6월 무똥 로칠드는 당시 프랑스 농업장관이었던 자크 시라크에 의하여 1등급에 승급되었다. 이에 감격하여 1973년 빈티지[12]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부인에게 허락을 받아 라벨에 피카소의 초상화를 새기고 "난 2등이었다가 이젠 1등이 되었다. 무똥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추가하여 자신감을 드러냈다.

2006년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파리의 심판 사건이 캘리포니아의 역사적 사건 중 하나임을 법률로 공표하였다. 그리고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는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1위였던 Stag's Leap과 Chateau Montelena를 한 병씩 영구 소장 물품으로 선정했다. 현재도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은 수많은 와인 연구가들의 논쟁 대상이 되었으나 연구가들의 결론은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였다.

5. 1979년

3년 후인 1979년 프랑스의 미식잡지 '골 미요'에서 와인올림픽을 주최하여 33개국에서 330종의 와인을 10개국 62명의 와인 전문가가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했지만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 부문에서는 미국이 1등을 했고 로제 와인 부문에서는 스페인이 1등을 했다.

6. 1986년

1986년에도 동일하게 와인 비교 시음회가 개최되었고, 이때 결과는 1위에서 5위까지를 모두 미국 와인이 차지하였다.

7. 2006년 두번째 파리의 심판 (30주년 기념)

2006년 파리의 심판 30주년 기념 시음회 결과(올드 빈티지 부문).

이후에도 열린 여러 재대결들은 엄밀히 따지면 프랑스 와인과 신세계 와인이 맞붙는다는 전제만 같을 뿐 파리의 심판 2회전이 아니다. 그러나 파리의 심판으로부터 30년이 흐른 2006년에 그 사건을 기념하고자 재대결을 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프랑스 와인 측 주장에 따르면 "프랑스(특히 보르도) 와인은 장기숙성형 와인이므로, 오랜 숙성이 지난 와인으로 지금 다시 비교해보면 프랑스가 이길 것이다!"이었다. 1976년 파리의 심판 행사를 주관했던 스티븐 스퍼리어가 이 행사도 주관하였기 때문에 정식 파리의 심판 재대결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때 스티븐 스퍼리어는 "이번에야말로 보르도 와인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심사에 참석한 심사위원들은 다음과 같다.
직위 캘리포니아 심사단 영국 런던 심사단
심사위원장 Patricia Gastuad-Gallagher Steven Spurrier
위원 Dan Berger Micheal Bettane
위원 Anthony Dias Blue Michael Broadbent, MW[13]
위원 Stephen Brook Michel Dovaz
위원 Wilfred Jaeger Hugh Johnson
위원 Peter Marks, MW Mathew Jukes
위원 Paul Roberts, MS[14] Jane MacQuitty
위원 Andrea Immer Robinson, MS Jasper Morris, MW
위원 Jean Michel Valette, MW Jancis Robinson OBE, MW
위원 Christian Vanneque Brian St. Pierre

2006년 30년 전 파리의 심판과 정확히 같은 날짜인 5월 24일에 영국 런던의 Berry Bro's and Rudd[15]와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Copia 박물관[16] 두 곳에서 정확히 같은 시간[17]에 대결을 펼쳤다. 이때 1976년 심판에서 사용되었던 와인을 그대로 다시 가져와 시음 평가를 가졌다. 그리고 결과는 놀라웠다.
1. Ridge Vineyards Monte Bello 1971 미국
2. Stag’s Leap Wine Cellars 1973 미국
3. Heitz Wine Cellars ‘Martha’s Vineyard’ 1970 미국
4. Mayacamas Vineyards 1971 미국
5. Clos Du Val Winery 1972 미국
6. Chateau Mouton-Rothschild 1970 프랑스
7. Chateau Montrose 1970 프랑스
8. Chateau Haut-Brion 1970 프랑스
9. Chateau Leoville Las Cases 1971 프랑스
10. Freemark Abbey Winery 1967 미국

1976년 당시 그나마 1등만 내주고 2, 3, 4등을 가져왔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상위 1등부터 5등까지 전부 미국에게 내주어 버린 것이다. 보르도 그랑크뤼 가격이 70년대와 달리 천정부지로 치솟아 버린 2006년 1등급 와인인 무똥 로칠드와 오브리옹이 1/10~1/5 가격대의 와인들에게 완패한 것. 그리고 프랑스 와인 측에서 줄곧 주장했던 "장기숙성 능력은 프랑스가 우수하다"는 주장도 완파되었다.[18]

마스터 오브 와인, 마스터 소믈리에가 참가하는 등 유수의 세계적 와인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도출한 결과를 부정할 수는 없었고, 프랑스의 여러 언론들은 이 날을 " 치욕의 날"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8. '파리의 심판'의 의의

미국은 나파 밸리와 같이 유럽에 없는 뛰어난 기후 조건을 가진 토지와 활발한 정보 교류가 가능한 현대에 점점 상향평준화 되는 와인 기술로 프랑스를 이긴 것이다. 즉, 최고의 자연환경과 최강의 자본, 그리고 최신의 기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파리의 심판은 '프랑스 와인'이란 브랜드 하나만으로 다른 와인들을 압도하던 시절에 종언을 고하는 사건이었으며, 미국과 같이 다른 지역에서도 좋은 제조 조건과 기술력이 있다면 훌륭한 결과물을 빗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 사건이 안겨준 또 다른 긍정적인 변화는 신대륙 와인들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 불식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한 화이트 와인 샤토 몬텔레나와 레드 와인 스택스 립은 불티나게 팔려나갔으며, 다른 신대륙 와인들도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했다.[19]

9. 여담

파리의 심판 당시 포도도 자라지 않는 나라[20]에서 온 영국인이 블라인드 테스트를 개최한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국은 이전부터 와인을 상당히 선호해왔다.

영국은 포도를 재배하지 못했기 때문에 와인은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다. 그렇다보니 영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와인 수입국이었고, 20세기 국제 무역이 활발해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프랑스 고급 와인은 영국 귀족들이 거의 대부분 소비했고 아시아나 신대륙 쪽에는 수출되지 않았다. 그래서 포도주의 품질이나 홍보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유명 평론가가 다수 배출되었고 거래 시장도 컸다.[21] 전문가가 많고 마스터 오브 와인 협회나 와인 자격증으로 유명한 WSET(Wine&Spirit Education Trust, 와인 및 증류주 교육 협회)가 창설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그런데 원산지가 아닌 주요 수입국에서 전문가와 명품이 많이 배출되는 현상은 생각 외로 흔한 일이다. 비싸게 수입한 물건인 만큼 제대로 알아보고 즐기자는 풍조가 생기기 때문이다. 가령 탄산수는 원산지인 유럽에서는 단순한 식수에 불과했지만 탄산수를 유럽에서 수입해서 소비하던 미국은 이를 개량해서 지금의 탄산음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한국의 명란젓이나 조미김은 본토인 한국에서는 평범한 반찬 중 하나지만 일본에서는 인기 상품이다 보니 한국 수산시장에 올라오는 명란이나 김 중 최상품은 전부 일본인이 사가고 한국에서 유통되는 건 그보다 낮은 등급의 상품들이다.

또한 국산의 경우 신토불이나 애국소비 같은 국수주의적 분위기가 있어서 국산과 수입산의 공정한 비교가 쉽지 않고, 오히려 비교 자체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100% 수입, 그것도 여러 나라 제품을 수입하는 경우라면 제 3자의 입장에서 동등한 비교가 가능하다 보니 전문가가 많이 배출되는 것이다.

10. 대중매체에서

<와인 미라클>(2008)이라는 영화가[22] 이 사건을 다뤘다. 주인공 격인 스티븐 스퍼리어 역은 알란 릭맨이, 1위 와이너리 샤토 몬텔리나의 경영주 아들은 당시 신예 배우였던 크리스 파인이 주연했다. 다만 영화의 평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우선 사실관계가 실제와 다른 부분이 많다. 짐 바렛은 극중에 샤토 몬텔레나 와인을 직접 제조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본업은 변호사였으며, 와이너리를 소유했을 뿐 제조는 다른 와인메이커에게 맡겼다고 한다. 아들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보 바렛은 실제로 서핑에 심취한 히피였으나 히피 열풍이 꺼진 1970년대부터는 와인 제조와 경영 수업에 박차를 가하였고 1972년부터는 모든 와인 제조에 참여했다. 현재는 아버지를 뒤이어 몬텔레나의 소유주이자 수석 와인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실제로 와인을 만든 와인메이커는 마이크 그리치(Mike Grgich)라는 사람이었는데 와인 매니아라면 알 만한 Grgich Hills 와이너리가 이 사람이 차후 독립하여 창설한 와이너리다. 원래 마이크의 이야기도 영화에 중점적으로 담으려고 했으나 본인이 사양하여 마이크의 이야기는 담기지 않았다고. 다만 영화 초반부 와인 래킹작업을 한다는 이야기에 짐과 보가 복싱을 하는 장면에서 "마이크는 래킹을 한 번 더 해야겠다고 말했다"며 지나가듯이 이름이 언급되기는 한다.

더불어 스티븐 스퍼리어의 동업자이자 행사 공동 주최자였던 미국인 여성 패트리샤 갤러거의 이야기도 생략되었고 그를 대신할 만한 인물로 바로 옆 가게 리무진 투어 사장인 모리스라는 가상 인물이 출연하여 행사 진행을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묘사된 바와 달리 파리 테이스팅은 파리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으리으리하게 열린 행사지 영화처럼 이상한 풀밭에서 열리지 않았다.

만화 < 신의 물방울>에서는 아무래도 프랑스 와인을 애호하는 작가의 성향상 마주하기 싫은 불편한 진실이라 그런지 이 일을 두고 함정이 많은 일이라고 믿기 어렵다고 딱 한 마디 하고 일절 거론하지 않는다. 반면 정반대 성향의 작품인 소믈리에, 소믈리에르 등에서는 언급되며, 소믈리에르는 감수자의 칼럼에서는 이 사건을 거론하면서 브랜드성과 가격에만 매달리는 와인 스노비즘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모야시몬 단행본 6권 후기에서도 이 일화가 소개되었다. '부르고뉴의 신(神)'이라고까지 불리는 프랑스의 와인 양조가 '앙리 자이에'도 이에 대해 "본인들의 명성만 믿고 노력을 게을리했는데 패배하는 게 당연하지."라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마리 와인의 우열을 맛으로만 따지는 것은 외모지상주의나 다름 없다는 식의 궤변을 토로한다.

와인과 와인 문화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룬 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에서도 언급된다.

11. 관련 문서

12. 관련 링크



[1] 원래 와인에 대해 문외한이었으나 스티븐 스퍼리어의 학원 제자로 들어간 이후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3~4년만에 학원 강사가 되었고 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미국에서 최고 와인 전문가 대접을 받았다. [2] 16세기에 만들어진 파리 최고(最古)의 레스토랑으로 경연 당시 미쉐린 3스타 [3] 1946년 창업한 파리 레스토랑으로 경연 당시 미쉐린 3스타 [4] 보르도 그랑크뤼 3등급 샤토 [5] 1784년 창업한 파리의 고급 레스토랑 [6]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꼽히는 그 로마네 꽁티 맞다. [7] 1위인 샤토 몬텔레나 샤도네이는 나파 밸리에서도 유독 프랑스풍 포도 재배와 양조 방식을 추구한 와이너리다. 샤토 몬텔레나라는 이름부터 헬레나 산(언덕)의 성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단어인데 샤토 몬텔레나가 위치한 곳이 세인트 헬레나 산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샤토 몬텔레나의 샤도네이가 파리의 심판에서 우승했지만 정작 몬텔레나의 주력은 샤도네이가 아니라 카베르네 쇼비뇽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현재 몬텔레나의 샤도네이는 직접 재배가 아닌 도매상(네고시앙) 형태로 포도를 사 와서 양조를 진행한다. [8] 10위인 데이비드 브루스 와이너리는 운반 도중 상한 탓도 있어서 미국 와인임을 심사위원들에게 들켰고 심사위원들은 공정하게 0점이나 1점을 주었다. 편파판정이 아니라 운반 중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는 평가를 보류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9] 현 시점에서 파리의 심판 우승 버전에 가장 근접한 스택스립의 레드 와인 라인업은 S.L.V이다. 와이너리의 담당자 말에 의하면 과거 스택스립의 와이너리 투어 중에 파리의 심판 우승 기념 투어가 있었는데 다른 라인업이 아닌 오직 S.L.V 버티컬 테이스팅으로만 진행되었다고 한다. [10] 참고로 스택스 립(Stag's Leap) 와인 셀러와 스택스 립(Stags' Leap) 나파 밸리는 서로 다른 와이너리인데 이 두 와이너리는 같은 스택스 립 지역에 있다. 때문에 이름이 똑같아서 두 와이너리는 이름 사용권을 두고 법정싸움까지 했지만 스택스립이 지명이기 때문에 둘 다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대신 '의 위치를 옮겨 Stag's Leap과 Stags' Leap로 구별했다. 현재 이 두 와이너리는 서로 화해했고, 심지어 각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포도를 섞어 와인을 출시하는 등 원만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11] 영화 와인 미라클에서는 무명 대필 기자에 와인에 대해 조금 아는 애호가 정도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21년간 타임지에서 근무하면서 브뤼셀, 본, 파리, 워싱턴 DC 등 유럽과 미국 주요 도시에서 활동한 이름 있는 특파원이었다. 1973년부터 약 3년간 파리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음식과 와인에 대한 식견을 넓혔다. [12] 빈티지는 출시년도가 아니라 그 와인을 만들 포도를 수확한 해를 기준으로 작성하므로 3년 전에 수확한 포도를 양조/숙성하여 1976년에 출시하였기 때문에 1973년 빈티지다. [13] 마스터 오브 와인 [14] 마스터 소믈리에 [15]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유통사이자 와인 교육기관으로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높다. [16] 나파 밸리에 설립된 와인 및 음식 관련 교육기관이자 비영리 박물관이다. [17] 1976년 심판 당시 "와인이 비행기를 타고 옮겨지면서 상해버리는" David Bruce Winery 같은 경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달라질 경우 한 쪽의 결과가 다른 쪽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18] 1976년 대회와 달리 레드 와인 시음회만 열렸는데 와인이 장기숙성이 가능한 이유는 포도 껍질이 검은색을 띄게 만드는 타닌 성분 때문이다. 화이트 와인은 타닌 성분이 없기 때문에 장기숙성에 적합하지 않고 30년이나 지난 화이트 와인은 포도맛 식초가 되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레드 와인 부문만 심사한 것으로 보인다. [19] 실제로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등등에서 만들어지는 신대륙산 와인들은 가격에 비해 품질이 나쁘지 않은 이른바 가성비 와인으로 꼽힌다. [20] 영국은 국토의 대부분이 와인용 포도 재배의 북방한계선 이북에 자리했고, 일조량도 좋은 편이 아니라 그간 국산 포도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영국 남부 지역에서도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의 와이너리 [21] 반대로 프랑스는 스카치 위스키의 주요 수입국이다. # 인도에게 수출량을 추월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장 많은 위스키 수입국이 프랑스였다. [22] 영어 제목은 Bottle Sh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