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채만식이 잡지 "조광"에 1938년 1월부터 9월까지 연재한 장편소설. 소설 전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탁류와 함께 채만식의 2대 장편소설로 언급된다.
2. 줄거리
소설의 시작은 구두쇠 윤 직원[1]이 억지를 부리며 인력거 삯을 깎고, 전차비를 안 내려 하는[2] 에피소드에서 시작한다. 이 인력거 삯 협상이 압권인데, 목적지에 도착한 후 윤 직원이 삯을 물어보자 인력거꾼이 겉보기에는 풍채 좋고[3] 인심도 후해보여 주시는 대로 받겠다고 하자 윤 직원이 그럼 됐다라며 단 한푼도 주지 않고 그냥 떠나려 한다. 농담인 줄 알았던 인력거꾼은 외상이냐고 물어보지만 농담이 아니라며 그냥 떠나려 하자 그래도 돈은 내고 가셔야 한다며 윤 직원을 붙잡는다. 거기에 윤 직원은 역으로 주는대로 받겠다 해서 정말 내 맘대로 줬더니 이제는 돈을 내놓으라며 사내놈이 한 입으로 두 말한다며 역정을 낸다.(...) 결국 돈을 내긴 하는데 원래 50전인 것을 기어코 25전으로 깎아(...)[4][5]낸다.그런데 이런 것도 다 사연이 있다. 윤 직원의 아버지 윤용규는 도박꾼으로 하루하루 돈이나 잃는 사람이었지만,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돈으로 지주와 고리대로 돈을 긁어모은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가 조선 관리들의 토색질로 괴롭힘당하고 화적떼의 손에 목숨을 잃은 것을 봐왔던 윤 직원은, "이놈의 세상 언제 망하느냐?! 오냐, 우리만 빼고 어서 망해라!"라고 외치면서 아버지보다 더 지독하게 돈을 긁어모아 갑부가 되어 경성부에서 떵떵거리고 산다.
일제강점기에 사는 윤 직원은 "토색질도 없고 화적질도 없는 이 세상이야말로 태평천하"라고 외치면서,[6] 중일전쟁에 대해서도 "이 훌륭한 일본의 통치를 거부하다니 역시 지나[7] 놈들은 무지몽매한 놈들"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작품에 보면 " 중국이 사회주의로 물들려고 하는 상황이라, 일본이 중국 내 사회주의를 없애기 위해 중국으로 출정했다"는 윤 직원의 시선이 나오는데, 정작 이 당시 중국은 장제스가 사회주의자들을 보이는 족족 탄압하던 시기였다. 윤 직원의 무식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요소.[8]
또한 윤 직원은 기부나 자선은 물론[9] 집안 식구들에게 쌀밥 먹이는 것도 인색해하면서,[10] 경찰서 무도관[11]을 짓는데는 돈을 아낌없이 베푼다. 이유야 당연히 자기 자신이 누리는 태평세상을 지켜줄 일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한편으로 윤 직원은 자신의 부족한 명예를 채우기 위해 애를 쓰는데, 자신은 향교에서 돈으로 직원 자리를 사고 족보를 조작한다. 또 두 손자를 각각 군수, 경찰서장 감으로 보고 손자들의 출세를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퍼붓는다. 오늘날에서 보면 경찰서장은 몰라도 군수는 뭐냐 싶겠지만, 그래도 당시는 일제강점기라 조선인들의 출세가 쉽지 않은 시기였으니 주임관 5등 ~ 6등관인 군수나 판임관 1등 ~ 2등관인 경부가 맡는 경찰서장 정도만 해도 조선인으로는 탑티어급 출세였다.[12][13]
그러나 윤 직원 가문은 말 그대로 콩가루 집안. 당장 윤 직원 자신부터가 첩과의 사이에서 증손자 경손과 동갑인 늦둥이 아들 태식을 두고 있다.[14] 태식은 15살이나 되었는데 발육상태가 좋지 않아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다 자기 손으로 코를 푸는 것도 못한다(...) 딱히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유전병일 수 있다. 고령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유전병을 가질 확률이 높아지는데, 증손자까지 둔 사람이 그 증손자뻘 아들을 뒀다면야. 윤 직원의 증손자 윤경손은, 자신과 동갑이지만 할아버지뻘인 태식을 맨날 괴롭힌다. 작중에서 경손이 태식을 놀리다가 울리고는 "어유 우리 할어버지~ 착하지 착해"하면서 달래는 장면까지 있고, 그러면서 어머니에게 "늙어서 첩 얻으믄 못 써요. 태식이 같은 오징어(...) 나와요" 라 디스한다.
윤 직원은 나이를 72살이나 먹은 작중 시점에서도 어린 소녀들에게 음욕을 품는 등 엉큼한 생각들만 가득 차 있다. 집에 노래하러 놀러 오는 동기(童妓)[15] 춘심이 있는데, 증손자 경손하고 또래인 춘심을 어떻게든 안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다.[16] 그래서 나이를 소개할때 65살로 속이고 비싼 금반지까지 사 주며[17]
아들 윤창식 주사는 겉으로는 고상한 신사처럼 보이지만, 사실 기생 출신 첩을 둔데다가 술과 마작, 계집질에 빠져 하루하루 돈을 시궁창에 갖다 박고 있다. 거기다가 십중팔구 떼먹히는 주제에 친구들에게 보증은 아낌없이 서 주면서 정작 길거리 거지들한테 동전 한냥 던져주는 것도 아까워하는 위인이다(...) 그러면서도 말싸움만큼은 지지 않아서 이 죽일놈아 내돈 갚아라 운운하는 아버지 윤 직원에게 분재[20]할때 자기 분에서 미리 까면 되지 않느냐고 큰소리쳐서 윤 직원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 버린다.(..) 게다가 첩 옥화는 윤 주사가 주는 돈으로는 부족한지, 여고생이라고 속이고 매춘을 하다가 종수한테 들킨다.
맏손자 윤종수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윤 직원이 종수를 명문 고보라도 보내기 위해 강습소[21]를 보내주는 등 3수까지 시켜봤지만 성질이 워낙 놈팽이인지라 재수에 삼수까지 다 실패하자, 간신히 인맥을 써서 시골 군서기[22] 자리를 앉혀 주었는데 약삭빠른 종수는 군수 활동비(즉 로비 자금)라는 명목으로 여러 차례 윤직원에게 거액의 돈을 뜯어갔다. 게다가 종수가 인감을 복제하여 가문 소유의 토지를 몰래 팔아버리는 것도 모자라 고리대금에 손대며 감옥살이까지 하게 되자 윤 직원이 보석금을 내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종수에게 쓴 돈만 도합 10만원[23]이 넘는데도 종수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며 주색과 향락에 빠져 산다.[24] 그럼에도 윤 직원은 손자가 근미래에 군수 자리 꿰찰 것 하나만 바라보고 여전히 돈을 펑펑 써주는 등 쩔쩔매고 있다. 심지어는 여고생 매춘을 하려다가 아버지의 첩 옥화와 불륜을 저지를 뻔 하기까지 한다.[25] 이 정도면 인간으로서 정말 답이 없다..
며느리[26]와 손자며느리들도 남편이 밖으로 싸돌아다니기만 하니 하루하루 불만만 쌓이고, 윤종수의 아들이자 증손자 윤경손도 양아치 기질이 다분하여 땡땡이는 일상이요 춘심과 연애를 하고 있으며[27], 양반가로 시집보낸 딸은 남편이 죽고 소박맞아 친정으로 돌아와 함께 산다.
콩가루 집안도 이런 콩가루 집안이 없다. 윤 직원 자신도 이런 상황에 답답해할 정도.
그래도 윤 직원은 가부장적인 태도로 집안을 이끌며, 일본으로 유학 간 작은 손자 윤종학이 경찰서장이 되는 날만을 기다린다.[28][29]
그러던 어느 날, 윤 주사는 어김없이 마작을 하는 과정에서 심부름꾼에게 일본에서 날아온 한 전보를 받게 된다. 한창 마작을 하는 상황이라 대충 훝어보고 짜증을 내며 ".... 바보 같은 놈!" ".... 에라 모르겠다!!" 이라 내뱉으면서 대충 주머니에 넣어 마작을 이어서 하다가[30] 결국 쏘이고 만다.[31] 윤 주사는 화가 나기도 하고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에서 술을 퍼마시고 잔다. 다음날 윤 주사는 집에 가서 윤 직원을 만난다. 마침 가족들과 점심을 먹고 있던 윤 직원은 "흥!! 해가 서쪽에서 뜨겄구나? 멋허러 오냐? 돈 달래러 왔지?" 라며 오래간만에 집에 찾아온 아들을 못마땅했으나, 곧 윤종학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윤종학이 사회주의 운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까지 알자[32] "이 태평천하에 그게 무슨 짓거리냐"면서 멘붕에 가까운 충격을 받는다.[33]
"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들이 있너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 넌 다 지내 가고오… 자 부아라,[34]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착착 깎어 죽일 놈!… 그 놈을 내가 핀지 히여서 백 년 지녁[35]을 살리라고 헐 껄! 백 년 지녁을 살리라고 헐 테여… 오냐 그 놈을 삼천 석 꺼리는 직분히여 줄려구 히였더니, 오―냐, 그 놈 삼천 석 꺼리를 톡톡 팔어서 경찰서으다가, 사회주의 허는 놈 잡어 가두는 경찰서다가 주어 버릴 껄! 으응, 죽일 놈!"[번역2]
마지막의 으응 죽일 놈 소리는 차라리 울음 소리에 가깝습니다.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쿵쿵 발을 구르면서 마루로 나가고, 꿇어앉았던 윤주사와 종수도 따라 일어섭니다.
"…그놈이, 만석꾼의 집 자식이, 세상 망쳐 놀 사회주의 부랑당패에, 참섭을 히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
연해 부르짖는 죽일 놈 소리가 차차로 사랑께로 멀리 사라집니다. 그러나 몹시 사나운 그 포효가 뒤에 처져 있는 가권들의 귀에 어쩐지 암담한 여운이 스며들어, 가득히 어둔 얼굴들을 면면상고, 말할 바를 잊고 몸둘 곳을 둘러보게 합니다. 마치 장수의 죽음을 만난 군졸들처럼…….
- 마지막 장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니라'[37] 중 윤 직원의 대사.
3. 해설
아마도 중고등학생들이 "반어적 표현"을 잘 사용한 소설을 배울 때 이 소설로 스타트를 끊었을 것이다. 작가인 채만식은 비슷한 주제에 비슷한 형식의 소설인 〈 치숙〉을 쓴 바 있다. 이 소설의 주제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개인의 안위를 위해 국가와 민족을 살펴보지 않는 일제 당시의 친일파들을 비판하는 것'이 되겠다.애당초 위에도 나와 있듯이 윤 직원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우리만 빼고 어서 망해라!"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윤 직원에게 일제는 자신의 권력과 안위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나 다름 없으며, 그런 일제에 반하는 좌익 운동을 하는 손자는 그야말로 역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소설의 마무리에 "태평천하"라면서 울부짖는 윤 직원의 모습이 이 소설의 주제를 잘 부각했다고 한다.
소설의 제목인 '태평천하'부터가 이러한 반어적이자 풍자적 표현이다. 윤직원은 손자인 종수와 종학을 각각 군수와 경찰서장에 앉히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도지사, 도경국장 등 고위직들을 죄다 일본인들이 독식하던 당시에 군수와 경찰서장은 식민지 조선인들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였다. 심지어 내지인 버프를 받고 있던 일본인들과도 경쟁해야 했던 만큼 당시 조선인들이 군수, 경찰서장 자리까지 오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웠다. 윤직원이 태평천하라고 칭송하는 일제 지배는 역설적으로 그의 손자들이 군수, 경찰서장 이상으로 출세하는 걸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던 셈.[38]
비단 왜정 때가 아니라, 자신의 안위만 확보되면 그 시대를 '태평천하'로 판정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요즘도 위 대사에서 명사 몇 개만 바꾸면 딱 들어 맞는다.
한편 윤종학이 사회주의에 참여한 것도 딱히 이상할 일은 아닌데 당시엔 명문가, 부잣집 출신이 독립운동 같은 곳에 투신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던 이시영과 그 6형제가 대표적인 사례.
다만 이렇게 비판한 채만식 본인이 해당 문서에서 보다시피 징용을 찬양하는 등의 친일 행위를 불가피하게(?) 저질렀다보니 자기모순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나마 다른 뻔뻔한 친일 문인들과 달리 광복이 되고 나서 " 민족의 죄인"이란 작품으로 자신의 행적을 밝히며 반성하긴 했지만.
작중 타임라인은 1937년 9월 말(양력 기준)의 어느 날부터 그 다음날 오후까지 약 24시간에서 30시간 사이이다. 1937년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시기(정확히는 7월 7일)이기도 하며, 그 즈음부터 군수물자를 충당하기 위해 국가총동원법으로 조선의 고혈을 쥐어짜기 시작했으니 제목의 '태평천하'와는 정반대 상황이었던 셈이다.
작중에서 윤 직원이 대복한테 아침 공기가 쌀쌀한 걸 보니 올해 날씨가 심상치 않다며 아직 추수하기 전인데 소출이 줄어들 게 걱정된다는 말을 하는데, 바로 전해인 1936년에는 기록적인 이상 저온으로 냉해가 있었던 바 있다.
작품에 모로코라는 1930년 영화가 나온다.
4. 영상화
4.1. MBC
태평천하 太平天下 |
|
장르 | 시대극 |
방송 시간 | 매일 / 오후 9시 20분 |
방송 기간 | 1969년 11월 3일~ 1969년 11월 15일 |
각색 | 김민부 |
연출 | 표재순 |
4.2. EBS
2007년, EBS 문학산책에서 영상화된 바 있다.[39].
[1]
直員:
향교의 직위 중 하나이다. 본명은 윤두섭. 어릴 때는 얼굴이
두꺼비 같다고 해서 윤두꺼비라고 불렸다. 후술할 아버지 윤용규는 얼굴이 말상이라 생전 말대가리라고 불렸다.
[2]
전차를 탔는데 일부러 고액권만 있다는 식으로 안내양을 속여 어찌저찌 무임승차한다. 버스비가 1,500원인데 50,000원짜리 지폐밖에 없다며 버스에서 진상을 부리는 것과 비슷한 짓이다.
[3]
작중 "28관(
貫) 600몬메(
匁)"라고 나온다. 1관은 3.75kg, 1몬메는 3.75g이므로 SI 단위로 환산 시 무려 105kg의 거구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집도 높은 곳에 위치해 한참을 헉헉거리며 올라왔다 했으니 후하게 삯을 쳐주는 게 당연한 상황.
[4]
원래는 20전만 주려 했으나 인력거꾼의 반발이 심해 인심쓰는척 5전을 더 얹어 주었던 것이다. 이마저도 안받으면 말라면서 협박하는건 덤.
[5]
참고로 일제강점기 시절과 현대 대한민국 시절의 물가를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해당 논문에 의하면 대략 일제강점기 시절의 1원은 2020년대 현대 대한민국 기준 약 50,000원에서 60,000원 즈음으로 환산이 가능하다. 당시 100전=1원이었고,
해당 기사에 의하면 인력거꾼의 삯은 1920년대 기준 약 500m에 15전(단거리) 혹은 4km에 60전(장거리)가 표준이었다.
[6]
워낙 일제강점기의 악명이 높아서 그렇지 구한말 역시 지배층의 타락으로 상당히 막장이던 시절이 있었다.
[7]
원문 표현. 당시 일본은 비하적인 의미로 중국을 영어 China를 음차한 표현인 지나(支那)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이게 비하적 명칭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아서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상당히 보편적으로 쓰인 표현이기도 했다. 지금 한국에서는 지나가 중국이란 걸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중국에서 이런 표현을 거리낌없이 썼다간 중국인들에게 몹시 안 좋은 시선을 받게 된다.
[8]
물론 윤 직원 시선에서 보면 이해를 못할 일도 아니다. 중일전쟁은
국공합작이 이뤄진 후로 보는데, 사회주의를 태평세상 망쳐놀 망할 것 취급하는 윤 직원이, 거기다 일본을 매우 우호적으로 보는 시선까지 감안하면 그의 눈에 중일전쟁이란 '훌륭한 통치를 거부하고 오히려 그 통치를 망쳐놀 것들과 어울리는 어리석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윤 직원은 애초에 일본에 우호적이니 일본을 옳게 볼 것이며, 본인은 조선에서 살며 중국과 연이 없으니 중국의 입장을 알 수 없으니, 일본의 입장을 가감없이 받아들이며 해석할 수 밖에 없다.
[9]
자선운동가들이나 관공서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펼치는 논리가 "나는 만석꾼으로서 소작을 하고 싶어하는 농사꾼한테 소작을 하게 해주니 그것만으로도 큰 선심이요, 적선 아니냐?"다. 굶주리는 사람들한테 일자리라도 주는 게 어디냐는 훌륭한 식민지 논리이자 궤변일 뿐.
[10]
집의 심부름꾼으로 고향 산지기 아들인 삼남이를 쓰는데, 삼남이가 지적장애인이어서 삼시세끼 밥만 주면 되기 때문이다.
[11]
이것도 한자가 武道館(일본어로 쓰면
부도칸)으로 무술, 특히
유도를 훈련하는 곳을 말한다. 쉽게 말해 체육관.
야인시대 1부의 경찰서 장면마다 유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잡히는 것도 같은 이치다.
[12]
사실 지금도 군수자리 우습게 볼 게 아니다.
국회의원 코스 중 하나가 지자체장이고,
김두관의 경우는 군수 시절의 업적 덕에 처음으로 민주계 출신
경상남도지사에 당선되어 한때 대권 일보직전까지 올라갔었다. (2012년에 대권 출마 때문에 섣불리 사퇴했다가
홍준표에게 지사직을 헌납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까지 군수를 포함한 모든 지자체장이 선출직이 아니라 임명직이었는데, 경찰서장에도 보통 4급
총경을(
경무관으로 보하는 경우도 있음), 관선직 군수도 보통 4급을 보했으니, 경찰서장과 군수는 동급 공무원이었다. 그리고 도시에서는 3급 이상의 고위공무원이나
검사 등 특정한 종류의 공무원이 아닌 이상은 별다른 권력을 가졌다고 볼 수 없지만, 농사 짓는 시골 동네에서는 아직도 주사(6급) 이상이면 그 동네 안에선 나름대로 출세한 양반 취급 받는다. 시골은 아직도 중앙의 공권력이 도시처럼 강하게 미치지 않기에 해당 지역 토박이 출신 공무원 몇 명이 동네를 좌지우지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때문에 이들이 지역 유지들과 마음 먹고 유착해버리면 외부에서 더 강한 공권력으로 싹을 도려내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
[13]
지방자치제 도입 이전과 이후를 떠나 군수 자리의 위세가 우습게 볼 것은 아닌것이, 최소 수만에서 많으면 수십만의 인구를 가진 기초자치단체(시군구)의 행정책임자로서 큰 권한을 가지고 있고 적어도 천여명에 이르는 시군구청 직원들의 직접적인 상사이기도 하므로 그 영향력은 막대하다. 게다가 과거에는 공권력의 권위가 강했고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에는 선출직으로서 지역의 정치적 대표자라는 입지를 가지므로 그 위상이 가볍지 않았던 것. 이런 군수가 '그런데 군수가 뭐냐' 와 같이 가볍게 보이는 것은 군청이나 읍면동사무소(주민센터)와 같은 기관은 일상에서 접하기 쉽기에 보통 사람의 감각에서 상당한 권한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실감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 볼 여지가 크다. 특히 권력의 권위주의 성향이 강하던 시대의 경우 고압적 공권력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경찰에 비해 일상적으로 접하는 군청이나 면사무소 직원은 비교적 만만해 보이기 쉬웠던 것. 하지만 실질적인 권한이나 영향력 측면에서는 군청이 경찰서에 비해 딱히 밀릴 것이 없다. 이러한 감각을 이해해볼만한 사례로, 종종 농담조로 사용되는 "알아야 면장도 해먹지" 식의 표현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70~80년대생 이상의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종종 사용되는 표현이지만 저런 표현을 사용하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해당 표현에서 우습게 묘사되는 '면장'이 공무원의 직제상으로는 보통 5급 공무원이 맡는 직위임을 알고는 "생각보다 직급이 높다"고 놀라고는 한다. 5급 사무관이 공무원 직급 체계에서 슬슬 관리직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만만찮은 직급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면사무소에 앉아있던 추레한 초로의 면장이 사무관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14]
당대 기준으로도 증손자를 굉장히 빠르게 봤다. 72살에 15살 증손자라면 57살에 증손자와 아들가 태어난 것인데, 당대에도 증손자는 70 언저리에나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15]
어린 기생을 말한다.
[16]
작중 윤 직원은 남도 판소리에 사족을 못 쓰는 걸로 나오는데, 소리 들을 겸 + 안마 받을 겸 + 응큼한 욕망도 채울 겸 해서 시골에서 올라온 춘심을 고용한 상황이다.
[17]
이 금반지는 금은방에서 구입했는데, '당연하게도' 치열한 가격 흥정 끝에 에누리 받아 구매했다.
[18]
"런치"(lunch)가 일본에서 "란치"(ランチ)가 되었고 이게 또다시 한국에서 "난찌"가 되었다. 춘심이가 원하는
미쓰코시 경성점 식당 런치 메뉴는 당시 경성 모던보이/모던걸들에게 최고로 핫했던 데이트 코스였다고 한다. 윤 직원은 이전에 양식 식사를 하려다 "쇠스랑을 펴 놓은 것"(포크)을 보고 반감이 들었기에 "난찌"만큼은 거절했다.
[19]
춘심이는 나이보다 일찍 철이 들어서 윤 직원을 뜯어먹을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추근거리는 걸 거절하지 않았다. 단순히 추근거리는 걸 넘어 심지어는 다리 주물러드리러 오는 열네 살짜리 아이에게도 음욕을 품어 강제로 껴안는등 아동 성폭행 미수까지 저지른 답 없는 인간이다.
[20]
나중에 상속이나 분가할때 재산을 나눠준다는 의미.
[21]
현재로 치자면 대입 재수전문학원.
[22]
현재로 치면 지방직 9급 공무원 정도에 해당하는 말단.
[23]
박기주 김낙년의 연구에 따르면 1937년 대비 2009년 현재 물가 수준은 6,069배이므로 대략 6억원이라고 할 수 있다. 2023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10억원이라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24]
여기에 성격도 상당히 우유부단한 편이라 '병정'으로 내세우는 병수가 없으면 기껏 서울에 와도 술도 못 마시고 매춘도 못 하는 성격이다. 그걸 꿰뚫어본 병수는 윤종수가 우라까이한(위조한) 자기 조부 도장을 수형(수표)에 찍도록 구슬리고 그 수표를 빼돌리고 있다. 종수 본인은 모르고 넘어가거나, 눈치 채더라도 병수가 좋게 좋게 슬쩍 흘러넘기니 모른 척 같이 넘어가는 호구스러움을 보여준다.
[25]
그나마 서로 마지막 양심은 있던 건지 서로 처음 마주한 순간 기겁하여 도망친다. 작중 서술에 따르면 옥화는 이 일을 두고 걱정 하다가도 윤 주사에게 얻어먹은 돈이 꽤 되니 손절당해도 그나마 손해볼 것 없다(...)라는 속셈을 굴리고 있다.
[26]
윤 직원과는 거의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는 사이이다. 여담으로 작중 시점에서 이미 사망한 지 오래인 윤 직원의 아내와는 사이가 더 좋지 않았다. 윤 직원의 아내가 죽기 전 며느리보고 "오냐 내가 이제 죽으니 네 속이 다 후련하겠구나!"라고 외치고 갈 정도.
[27]
이걸 두고 본문에서는 "그렇지만, 소비절약은 좋을지 어떨지 몰라도, 안에서는 여자의 인구가 남아 돌아가고(그래 한숨과 불평인데) 밖에서는 계집이 모자라서 소비절약을 하고(그래 칠십 노옹이 예순다섯 살로 나이를 야바위도 치고, 열다섯 살 먹은 애가 강짜도 하려고 하고) 아무래도
시체의 용어를 빌려 오면, 통제가 서지를 않아 물자 배급에 체화(滯貨)와 품부족(品不足)이라는 슬픈 정상을 나타낸 게 아니랄 수 없겠습니다."라고 드립을 치고 있다.
[28]
하지만 윤종학도 윤 직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복선이 소설 내에서 여러 차례 나온다. 조카 경손이 "작은아버지(종학)는 경찰서장 같은거 할 인물이 아니에요" 라고 말하는 거라든가, 종학이 윤 직원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서 자유연애를 하고 싶으니 명문가 출신 아내랑 이혼하게 해달라고 조른다든가. 그러나 문벌과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는 윤 직원이 허락해줄 리 없었다.
[29]
다만 윤종학의 경우 '윤 직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인물' 인 것과는 별개로 소설 전체의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인물은 아니다. (특히 윤씨 집안의 막장 구성원들 중에서는 그나마 부정적인 면모가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다.) 종학이 윤 직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윤 직원이 가진 타락하고 이기적인 욕망에 부응할 생각이 없고, 보편타당한 윤리를 따르는 인물이라는 의미이기도 한 것. 게다가 윤경손은 "작은아버지가 경찰서장 할 인물인 줄 아시우?" 라거나 "경찰서장 오백리 갔수" 와 같이 말하지만 그렇다고 종학을 경멸하거나 얕잡아보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집안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은 작은아버지이고, 나도 작은아버지를 닮아서 똑똑하다'라느니, '(낙제만 안하면 되는데) 공부 잘하는 놈들은 다 바보다. 단 우리 작은아버지만 빼고' 같은 소리를 할 정도로 종학에 대한 호감을 대놓고 드러내는 인물이다. 작중 지문에도 '경손은 이 집안의 많은 인물 중 숙부 종학만은 존경한다'고 명확하게 나와있고, 심지어 작은할아버지인 태식을 '오징어'라고 조롱한 것도 어머니와 숙모가 (자유연애를 하고 싶어) 이혼하겠다는 종학을 두고 '사내가 얼마나 못났으면 첩을 백은 못 얻어서 새장가 들겠다고 조강지처 이혼을 하려고 하냐'고 흉보는 소리를 듣자 "첩을 얻으면 태식이같은 오징어가 나오니까 못쓴다" 라고 종학을 옹호하는 맥락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경손이 종학에 대해 이정도로 명확한 호감을 가진 이유 역시 이 전후의 대화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이혼 그런거 좀 하면 어떠냐'는 말을 아무렇지도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경손은 새로운 세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이며, 따라서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그런 사고방식을 공유하는 친척인 종학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이다. 결국 작은아버지는 경찰서장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말 역시 '그런거 할 능력 없다'는 무시가 아니라 (종학의 내면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어느정도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공유하는 경손만이 '반체제 성향인 작은아버지가 어떻게 체제를 지키는 경찰서장을 하냐?'는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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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어르신께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말하는 심부름꾼에게 "가만 있어! 잠깐만... 이게 이렇게..." 하고 무시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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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을 아는 사람이면 흥미로운 장면인데, 윤 주사는 무려 청일색 텐파이였다! 이후 상대의 패를 읽었음에도 역전을 노리다가 결국 쏘인 것.
[32]
어제 윤 주사가 받은 전보에는 "종학 사상관계로 경시청에 피검"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확히 말해 원문은 일본어고 한국어로 번역한 문장이 첨부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일본 전보는 전부 카타카나로만 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종학)シサウ カンケイ デ ケイシテフ ニ ヒケン"((종학)思想關係で警視廳に被檢) 정도가 원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대 가나 표기법으로는 思想는 しそう, 警視庁는 けいしちょう지만, 이 당시에는
역사적 가나 표기법을 쓸 때라 しさう, てふ로 썼었다. 물론 신자체는 커녕 구자체였다.(신자체는 이 소설의 시점에서 한참 뒤인 1949년에 제정된다.)
[33]
일제강점기 당시 사회주의 운동은 단속 대상이었다. 정치적으로도 입장이 다르지만 장기간노동과 저임금에 저항하는 노동쟁의를 겸하여 반일, 즉 독립운동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보통 사상범도 아니라 반체제 인물로 얽힐 수도 있으니 고위직 출세는 고사하고 집안 전체가 풍비박산이 날 수도 있다. TV 소설 판에서는
김성겸이 연기했는데, 아예 "우리 집 망했다"고 통곡까지 한다.
[34]
'보아라'
[35]
무식한 데다
사투리가 섞이니
징역을 이렇게 발음한다.
[번역2]
착착 깎아 죽일 놈! 내가 편지를 보내서 그놈을 백 년 징역을 살게 할 거야! 백 년 징역을 살게 하라고 할 거야… 오냐. 그놈에게 삼천 석 짜리 유산은 따로 떼어다 남겨 주려고 했더니, 오―냐, 그 놈 몫의 삼천 석짜리를 다 팔아서 경찰서에다가, 사회주의 하는 놈 잡아 가두는 경찰서에다 줘 버릴 거야! 으응, 죽일 놈!
[37]
"
진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호(胡)이니라."라는 뜻이다.
진시황은 저 '호'가
오랑캐인 줄 알고(오랑캐라는 뜻도 있다.)
만리장성을 쌓고
흉노족을 토벌했지만 그 호는 오랑캐가 아니라 자기 아들
호해(胡亥)였다는 말이다. 실제로도 진나라는 진시황이 죽고 호해가 집권하자 망국의 치세에 접어든다. 본 소설에 나오는 윤 직원 집안의 상황을 한 줄로 요약해 주는 글귀.
[38]
만약 윤 직원이 해방 후 한국 전쟁 시점까지 어찌저찌 살아남아 있었으면 조선인민군과 내무서원들에 의하여
인민재판소로 끌려가서 악질 반동 지주라고 온갖 욕을 먹은 후에 대창에 찔려 죽거나, 총살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39]
야인시대
세트장을 활용했는지, 야인시대 팬이라면 눈에 익을 건물들이 종종 보인다. 이를테면 원작에서 윤 직원과 춘심이 공연을 보러가는 곳은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본관)인데, 영상에서는
우미관으로 나오는 것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