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22:58:28

이상한 선생님

1. 개요2. 줄거리3. 전문

1. 개요

채만식이 광복 직후 당시 때 지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의 풍자소설이다. 일제강점기에 권력에 빌붙어 친일 행위를 하다가 광복 후 친미파로 변신하고, 똑같이 일제강점기에 반일 성향을 가졌던 인물을 빨갱이로 몰던 사람들을 해학적으로 풍자했다. 일부 중학교 교과서[1]에 이 단편소설이 수록되었다.

2. 줄거리

일제강점기 어느 국민학교가 배경. 그 학교에는 키가 매우 작고[2] 이마가 툭 튀어나온 승엽 박 선생과, 키가 크고 정이 많으며 온순한 강 선생이 있었다.

박 선생은 적극적인 친일파로, 아이들이 한국어를 쓰면 바로 혹독한 벌을 준다.[3] 하지만 강 선생은 일본어가 서투르다는 이유[4] 일본어를 전혀 쓰지 않는다.[5]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전쟁에 져 항복하자, 강 선생은 일본인 선생들과 교장에게는 " 일본으로 빨리 돌아갈 궁리나 하라"고 하고 박 선생에게는 "자네 같은 충신이면 일본에서도 괄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일본으로 함께 떠나라고 평소답지 않게 심하게 면박을 주고는 태극기를 그리기 시작한다. 박 선생이 한 마디도 못 하며 부끄러워하고 있자 강 선생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흥분을 가라앉히고 박 선생에게 "우리가 죗값은 나중에 치르더라도 우선은 같이 건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고 하며 함께 태극기를 그린다. 그 뒤 두 선생님은 친해지게 된다. 그리고 박 선생님은 과거에 친일파였던 주제에 학생들에게 " 일본인들은 천하에 불측한 인종"이라는 얘기를 한다. 또 "일본인들은 전쟁하길 좋아한다"고 말하며 임진왜란 때도 일본 조선에 쳐들어왔다가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에게 쫓겨간 이야기를 들려준다.

얼마 뒤 미군정기가 시작되고, 주인공이 다니고 있던 국민학교가 있는 동네에도 미군이 모습을 비추기 시작한다. 그러자 박 선생은 미군 장교 한 명에게 붙은 뒤에 주인공이 사는 학교와 동네를 소개시켜준다.[6] 이후 그는 극단적인 친미주의자가 된다. 한편 강 선생은 미군이 오기 전에 국민학교의 교장이 되고, 박 선생은 뭣이 마음에 안 들었던지 다시 강 선생과 사이가 나빠진다. 그러다가 강 선생은 갑자기 빨갱이라는 이유로 교장에서 해임당하고, 박 선생이 교장이 된다.

그후 박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했던 것처럼 미국인들을 열렬히 찬양하며, 미국을 욕하는 학생이 있으면 혹독한 벌을 준다. 이에 의아해하던 학생들은 "미국에도 천황이 있지 않고서야 박 선생이 이렇게 미국에 호의적으로 굴 수 없다"고 여기고, 박 선생에게 미국에도 천황이 있느냐고 묻는다. 박 선생은 "미국엔 천황 대신 돌멩이[7]라는 양반이 있다"고 가르치고, 이에 학생들은 박 선생을 '정말 이상한 선생님'이라 여긴다. 이와 함께 학생들은 '이제 그러면 황국신민서사 대신 미국신민서사를 외우고, 기미가요 대신 돌멩이가요를 불러야 하는 건가?'라고 상상을 펼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3. 전문

1장
우리 박 선생님은 참 이상한 선생님이었다.

박 선생님은 생긴 것부터가 무척 이상하게 생긴 선생님이었다. 키가 한 뼘밖에 안 되어서 뼘생 또는 뼘박이라는 별명이 있는 것처럼, 박 선생님의 키는 작은 사람 가운데서도 유난히 작은 키였다. 일본 정치 때에, 혈서로 지원병에 지원했다 체격 검사에 키가 제 척수[8]에 차지 못해 낙방이 되었다면, 그래서 땅을 치고 울었다면, 얼마나 작은 키인지 알 일이다.

그런 작은 키에 몸집은 그저 한 줌만하고. 이 한 줌만한 몸집, 한 뼘만한 키 위에 깜짝 놀랄 만큼 큰 머리통이 위태위태하게 올라앉아 있다. 그래서 박 선생님의 또 하나의 별명은 대갈 장군이라고도 했다.

머리통이 그렇게 큰 박 선생님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또한 여느 사람과는 많이 달랐다.

뒤통수와 앞이마가 툭 내솟고, 내솟은 좁은 이마 밑으로 눈썹이 시꺼멓고, 왕방울 같은 두 눈은 부리부리하니 정기가 있고도 사납고, 코는 매부리코요, 입은 메기입으로 귀 밑까지 넓죽 째지고, 목소리는 쇠꼬챙이로 찌르는 것처럼 쨍쨍하고.

이런 대갈 장군인 뼘생 박 선생님과 아주 정반대로 생긴 이가 강 선생님이었다.

강 선생님은 키가 크고, 몸집도 크고, 얼굴이 너부릇하고, 얼굴이 검기는 하여도 순하여 사나움이 든 데가 없고, 눈은 더 순하고, 허허 웃기를 잘 하고, 별로 성을 내는 일이 없고, 아무하고나 장난을 잘 하고……. 강 선생님은 이런 선생님이었다.

뼘박 박 선생님과 강 선생님은 만나면 싸움이었다.

하학[9]을 하고 나서, 우리들이 청소를 한 교실을 둘러보다가 또는 운동장에서(그러니까 우리들이 여럿이는 보지 않는 곳에서 말이다) 두 선생님이 만날라 치면, 강 선생님은 괜히 장난이 하고 싶어 박 선생님을 먼저 건드리곤 하였다.

“뼘박아, 담배 한 대 붙여 올려라.”

강 선생님이 그 생긴 것처럼 느릿느릿한 말로 이렇게 장난을 청하고, 그런다 치면 박 선생님은 벌써 성이 발끈 나 가지고

“까불지 말아, 죽여 놀 테니.”

“얘야 까불다니, 이 덕집엔 좀 억울하구나……. 아무튼 담배나 한 개 빌리자꾸나.”

“나두 뻐젓한 돈 주구 담배 샀어.”

“아따 이 사람, 누가 자네더러 담배 도둑질했대나?”

“너두 돈 내구 담배 사 피우란 말야.”

“에구 요 재리[10]야! 몸이 요렇게 용잔[11]하게 생겼거들랑 속이나 좀 너그럽게 써요.”

“몸 크구서 속 못 차리는 건, 볼 수 없더라.”

하나는 커다란 몸집을 해 가지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하나는 한 뼘만한 키에 그 무섭게 큰 머리통을 한 얼굴을 바싹 대들고는 사남이 졸졸 흐르면서, 그렇게 마주서서 싸우는 모양은 마치 큰 수캐와 조그만 고양이가 마주 만난 형국이었다.

2장
다른 학교에서도 다 그랬을 테지만 우리 학교에서도, 그 때 말로 ‘ 국어’라던 일본말, 그 일본말로만 말을 하게 하고 엄마 아빠할 적부터 배운 조선말은 아주 한 마디도 쓰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주재소의 순사, 면의 면 서기, 도 평의원을 한 송 주사, 또 군이나 도에서 연설하러 온 사람, 이런 사람들이나 조선 사람끼리 만나도 척척 일본말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했지, 다른 사람들이야 일본 사람과 만났을 때말고는 다들 조선말로 말을 하고, 그래서 학교 문 밖에만 나가면 만판 조선말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요, 더구나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 아버지, 언니, 누나, 아기 모두들 조선말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나와 운동장에서 우리끼리 놀고 할 때에는 암만 해도 일본말보다 조선말이 더 많이, 그리고 잘 나왔다.

학교에서고, 학교 밖에서고 조선말로 말을 하다 선생님한테 들키는 날이면 경을 치는 판이었다. 선생님들 중에서도 제일 심하게 밝히는 선생님이 뼘박 박 선생님이었다. 교장 선생님이나 다른 일본 선생님은 나무라기만 하고 마는 수가 있어도, 뼘박 박 선생님은 절대로 용서가 없었다.

나도 여러 번 혼이 나 보았다.

한번은 상준이 녀석과 어떡하다 쌈이 붙었는데 둘이 서로 부둥겨안고 구르면서, 이 자식아, 저 자식아, 죽어 봐, 때려 봐, 하면서 한참 때리고 제기고[12] 하는 참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고랏! 조셍고데 겡까 스루야쓰가 이루까(이놈아! 조선말로 쌈하는 녀석이 어딨어.).[13]"

하면서 구둣발길로 넓적다리를 걷어차는 건, 정신 없는 중에도 뼘박 박 선생님이었다.

우리 둘이는 그 자리에서 뺨이 붓도록 따귀를 맞았고, 공부 시간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 시간 동안 변소 청소를 하였고, 그리고 조행[14] 점수를 듬뿍 깎였다.

이렇게 뼘박 박 선생님한테 제일 중한 벌을 받는 때가 언제냐 하면, 조선말로 지껄이다 들키는 때였다.

강 선생님은 그와 반대로 아무 시비가 없었다.

교실에서 공부를 할 때 빼고는 그리고 다른 선생님, 그 중에서도 교장 이하 일본 선생님들과 뼘박 박 선생님이 보지 않는 데서는, 강 선생님은 우리한테 일본말로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일본말을 해도 강 선생님은 조선말을 하곤 했다.

우리들이 어쩌다

"선생님은 왜 '국어'로 안 하세요?"

하고 물으면 강 선생님은 웃으면서

"나는 ‘국어’가 서툴러서 그런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기에도 강 선생님은 일본말이 서투른 선생님이 아니었다.

3장
해방이 되던 바로 그 이튿날이었다.

여름 방학으로 놀던 때라, 나는 궁금하여서 학교엘 가 보았다. 다른 아이들도 한 오십 명이나 와 있었다.

우리는 해방이라는 말은 아직 몰랐고, 일본이 전쟁에 지고 항복을 한 것만 알았다.

선생님들이, 그 중에서도 뼘박 박 선생님이, 그렇게도 일본(우리 대일본 제국)은 결단코 전쟁에 지지 않는다고, 기어코 전쟁에 이기고 천하에 못된 미국, 영국을 거꾸러뜨려 천황 폐하의 위엄을 이 전세계에 드날릴 날이 머지않았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말을 해쌓던 그 일본이 도리어 지고 항복을 하다니,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직원실에는 교장 선생님과 두 일본 선생님 그리고 뼘박 박 선생님과 이렇게가 네 분이 모여 앉아서 초상난 집처럼 모두는 코가 쑤욱 빠져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은 운동장 구석으로 혹은 직원실 앞뒤로 끼리끼리 모여 서서 제가끔 아는 대로 일본이 항복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때 6학년에 다니던 우리 사촌언니 대석이가[15] 뒤늦게야 몇몇 동무와 함께 떨떨거리고 달려들었다. 대석 언니는 똘똘하고 기운 세고 싸움 잘 하고, 그러느라고 선생님들한테 꾸지람과 매는 도맡아 맞고, 반에서 성적은 제일 꼴찌인 천하 말썽꾼이었다. 대석 언니네 집은 읍에서 십 리나 되는 곳이었고, 그래서 오늘 아침에야 소문을 들었노라고 했다.

대석 언니는 직원실을 넘싯이 넘겨다보더니 싱긋 웃으면서 처억 직원실 안으로 들어섰다.

직원실 안에 있던 교장 선생님이랑 다른 두 일본 선생님이랑은 못 본체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뼘박 박 선생님이 눈을 흘기면서 영락없이 일본말로

“난다(왜 그래?)?[16]

하고 책망을 했다.

대석 언니는 그러나 무서워하지 않고 한다는 소리가

“선생님, 덴노헤이까[天皇陛下]가 고오상[降参](천황 폐하가 항복)했대죠?”

하고 묻는 것이었다.

뼘박 박 선생님은, 성을 버럭 내어 그 큰 눈방울을 부라리면서 여전히 일본말로

“잠자쿠 있어. 잘 알지두 못하면서…… 건방지게시리.”

하고 쫓아와서 곧 한 대 갈길 듯이 을러댔다.

대석 언니는 되돌아나오면서 커다랗게 소리쳤다.

“덴노헤이까 바가(천황 폐하 망할 자식!)!”

“…….”

만일 다른 때 누구든지 그런 소리를 했다간 당장 큰일이 날 판이었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이랑 두 일본 선생님은 그대로 못 들은 척 코만 빠뜨리고 앉았고, 뼘박 박 선생님도 잔뜩 눈만 흘기고 있을 뿐이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 걸 보면 정녕 일본이 지고, 덴노헤이까가 항복을 했고, 그래서 인제는 기승을 떨지 못하는 모양인 것 같았다.

마침 강 선생님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헐떡거리고 뛰어왔다. 강 선생님은 본집이 이웃 고을이었다.

“오오, 느이들두 왔구나. 잘들 왔다. 느이들두 다들 알았지? 조선이, 우리 조선이 해방이 된 줄 알았지? 얘들아, 우리 조선이 독립이 됐단다, 독립이! 일본은 쫓겨가구…… 그 지지리 우리 조선 사람을 못 살게 굴구 하시[19]하구 피를 빨아먹구 하던 일본이, 그 왜놈들이 죄다 쫓겨가구, 우리 조선은 독립이 돼서 우리끼리 잘 살게 됐어, 잘살게.”

의젓하고 점잖던 강 선생님이 그렇게도 들이 날뛰고 덤비고 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자아, 만세 불러야지 만세. 독립 만세, 독립 만세 불러야지. 태극기 없니? 태극기, 아무두 안 가졌구나! 느인 참 태극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못 했을 게다. 가만있자, 내 태극기 만들어 가지구 나올게.”

그러면서 강 선생님은 직원실로 들어갔다.

강 선생님이 직원실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교장 선생님이랑 두 일본 선생님은 인사를 하려고 풀기 없이 일어섰다.

강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더러 말을 하였다.

“당신들은 인제는 일없어. 어서 집으로 가 있다가 당신네 나라로 돌아갈 도리나 허우.

“…….”

아무도 대꾸를 못 하는데, 뼘박 박 선생님이 주저주저하다가

“아니, 자상히 알아보기나 하구서…….”

하니까 강 선생님이 버럭 큰 소리로 말한다.

“무엇이 어째? 자넨 그래 무어가 미련이 남은 게 있어 왜놈들하고 대가리 맞대구 앉어서 수군덕거리나? 혈서로 지원병 지원 한 번 더 해 보고파 그리나? 아따, 그다지 애닯거들랑 왜놈들 쫓겨가는 꽁무니 따라 일본으로 가서 살지 그러나. 자네 같은 충신이면 일본서두 괄시는 안 하리.”

“…….”

뼘박 박 선생님은 그만 두말도 못 하고 얼굴이 벌개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뼘박 박 선생님이 남한테 이렇게 꼼짝 못 하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강 선생님은 반지[20]를 여러 장 꺼내 놓고 붉은 잉크와 푸른 잉크로 태극기를 몇 장이고 그렸다. 그려 내놓고는 또 그리고, 그려 내놓고 또 그리고, 얼마를 그리면서, 그러다 아주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여보게 박 선생?”

하고 불렀다. 그러고는 잠자코 담배만 피우고 앉아 있는 뼘박 박 선생을 한 번 돌려다보고 나서 타이르듯 말했다.

“내가 좀 흥분해서, 말이 너무 박절[21]했나 보이. 어찌 생각하지 말게……. 그리구, 인제는 자네나 나나, 그동안 지은 죄를 우리 조선 동포 앞에 속죄해야 할 때가 아닌가? 물론 이담에, 민족이 우리를 심판하고 죄에 따라 벌을 줄 날이 오겠지. 그러나 장차에 받을 민족의 심판과 벌은 장차에 받을 민족의 심판과 벌이고, 시방 당장 조선 민족의 한 사람으로 할 일이 조옴 많은가? 우리 같이 손목 잡구 건국에 도움 될 일을 하세. 자아, 이리 와서 태극기 그리게. 독립 만세부터 한바탕 부르세.”

“…….”

뼘박 박 선생님은 아무 소리도 않고 강 선생님의 옆으로 와서 태극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 강 선생님과, 뼘박 박 선생님은 사이가 매우 좋아졌다.

뼘박 박 선생님은, 학과 시간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다. 일본이 우리 조선을 뺏어 저의 나라에 속국으로 삼던 이야기도 해 주었다.

왜놈들은 천하의 불측[22]한 인종이어서 남의 나라와 전쟁하기를 좋아하는 백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에도 우리 조선에 쳐들어왔고, 그랬다가 이순신 장군이랑 권율 도원수[23]한테 아주 혼이 나서 쫓겨간 이야기도 해 주었다.

우리 조선은 역사가 사천 년이나 오래되고 그리고 세계의 어떤 나라 못지않게 훌륭한 문화가 발달된 나라라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뼘박 박 선생님은 한편으로 열심히 미국말을 공부했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졸업을 하고 중학교에 가거들랑 미국말을 무엇보다도 많이 공부하라고, 시방은 미국말을 모르고는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뼘박 박 선생님은 한 일 년 그렇게 미국말 공부를 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미국 병정이 오든지 하면 일쑤[24] 통역을 하고 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에 조금 배운 것이 있어서 그렇게 쉽게 체득했다고 했다.

미국 병정은 벼 공출을 감독하러 와서 우리 뼘박 박 선생님을 꼬마 자동차에 태워 가지고, 동네동네 돌아다녔다. 뼘박 박 선생님은 미국 양복을 얻어 입고, 미국 담배를 얻어 피우고, 미국 통조림이랑 과자를 얻어먹고 했다.

해방 뒤에 새로 온 김 교장 선생님이 갈려 가고 강 선생님이 교장이 되었다. 강 선생님이 교장이 된 다음부터는, 뼘박 박 선생님은 강 선생님과 도로 사이가 나빠졌다.

우리는 한번 뼘박 박 선생님이 미국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교장 선생님이

“자넨 그걸 무어라구, 주접스럽게 얻어 피우곤 하나?”

하고, 핀잔하는 것을 보았다.

강 선생님은 교장이 된 지 일년이 못 되어서 파면을 당했다.

어른들 말이, 강 선생님은 빨갱이라고 했다. 그래서 파면을 당했노라고 했다. 또 누구는, 뼘박 박 선생님이 강 선생님을 그렇게 꼬아 댄 것이지, 강 선생님은 하나도 빨갱이가 아니라고도 했다.

강 선생님이 파면을 당한 뒤를 물려받아 뼘박 박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이 되었다. 교장이 된 뼘박 박 선생님은 그 작은 키가 으쓱했다.

뼘박 박 선생님은 미국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이 세상에 미국같이 훌륭한 나라가 없고, 미국 사람같이 훌륭한 백성이 없다고 했다. 우리 조선은 미국 덕분에 해방이 되었으니까 미국을 누구보다도 고맙게 여기고, 미국이 시키는 대로 순종해야 하느니라고 했다.

우리가 혹시 말 끝에 "미국놈……"이라고 하면, 뼘박 박 선생님은, 단박 붙잡아다 세우고 벌을 세우곤 했다. 전에, "덴노헤이까 바가"라고 한 것만큼이나 엄한 벌을 주었다.

“이놈아, 아무리 미련한 소견이기로, 자아 보아라, 우리 조선을 독립시켜 주느라구 자기 나라 백성을 많이 죽여 가면서 전쟁을 했지. 그래서 그 덕에 우리 조선이 왜놈의 압제에서 벗어나서 독립이 되질 아니했어? 그뿐인감? 독립을 시켜 주구 나서두 우리 조선 사람들 배 아니 고프구 편안히 잘 살라고 양식이야, 옷감이야, 기계야, 자동차야, 석유야, 설탕이야, 구두야, 무어 죄다 골고루 가져다 주지 않어? 그런데 그런 고마운 사람들더러, 미국놈이 무어야?”

벌을 세우면서 뼘박 박 선생님은 이렇게 꾸짖곤 했다.

우리는 뼘박 박 선생님더러 미국에도 덴노헤이까가 있느냐고 물었다. 미국에 덴노헤이까가 있지 않고서야 그렇게 일본의 덴노헤이까처럼 우리 조선 사람을 친아들과 같이 사랑하고, 우리 조선 사람들이 잘 살도록 근심을 하며, 온갖 물건을 가져다 주고 할 이치가 없기 때문이었다(해방 전에 뼘박 박 선생님은, 덴노헤이까는 우리 조선 사람들을 일본 사람들과 같이 사랑하고, 우리 조선 사람들이 잘 살기를 근심하신다고 늘 가르쳐 주곤 했다.).

뼘박 박 선생님은 미국에는 덴노헤이까는 없고, 덴노헤이까보다 훌륭한 ‘ 돌멩이’라는 양반이 있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그럼, 이번에는 그 ‘돌멩이’라는 훌륭한 어른을 위하여 미국 신민노세이시(미국 신민서사)를 부르고, 기미가요(일본의 국가) 대신 돌멩이 가요를 부르고 해야 하나 보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뼘박 박 선생님은 참 이상한 선생님이었다.


[1] 비상(김) 중2-1 3단원 [2] 얼마나 작냐면, 자신의 피로 일본군에 스스로 입대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써 바쳤다가 키가 너무 작아서 낙방했을 정도. [3] 작중 화자인 '나'가 친구와 어떻게 싸움을 벌였는데, 박 선생이 "こらっ! 朝鮮語で喧嘩するやつがいるか。(조선어로 싸움하는 녀석이 어딨냐)"고 일본어로 말한 뒤, 그 둘을 크게 혼낸다. [4] 작중 화자인 '나'가 "강 선생님은 아무리 봐도 일본어를 못하는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5] 일본어가 작품에서는 '국어'로 불린다. 실제로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국어의 자리를 일본어가 강탈하여 일본어를 국어라고 불렀다. [6] 이때 박 선생이 미군 장교에게 영어를 구사하는 묘사가 나오는데 이는 박 선생이 과거에 배운 것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서술했다. [7] 당시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을 가리킨다(임기 기간상 원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지만, 4선 재임 도중 1945년 3월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당시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이어갔다). 트루먼 + 인칭 접미사 -이 → 트루먼이 → 도루만이(일본식 발음) → 도루맨이 → 돌멩이. 이런 언어 유희는 채만식의 작품들의 특징이다. 치숙에서도 카를 마르크스 막걸리라 말한다. [8] 치수 [9] 하교 [10] '몹시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서 이르는 말 [11] 못생기고 연약함 [12] 팔꿈치나 발꿈치로 찌르는 것 [13] こらっ!朝鮮語で喧嘩するやつがいるか。 [14] 操行. 학생의 태도 및 행실에 대한 교사의 주관적 평가 [15] 지금의 언어생활에서는 '사촌형'이 자연스럽겠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손위 남성형제에게도 언니라는 말이 곧잘 쓰였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하는 졸업식 노래에 나오는 '언니'도 남녀 공통 언어였다. [16] 何だ? [天皇陛下] [降参] [19] 남을 얕잡아 보거나 업신여김 [20] 半紙. 세로 25cm, 가로 35cm 정도 크기의 얇고 흰 일본 종이 [21] 인정이 없고 쌀쌀맞다 [22] 생각이나 행동이 괘씸하고 엉큼함 [23] 고려 전기-조선 시대의 무관 관직. [24] 흔히 또는 으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