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6:19:10

태종 이방원(드라마)/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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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평점3. 전개4. 연출5. 각색6. 한계7. 결론

[clearfix]

1. 개요

2021년~22년에 방영한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평가에 관한 문서.

2.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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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개

작품 초반에 전개가 굉장히 빨라서 일부에서는 '〈 한국사기〉만큼의 속도'라는 평도 있을 정도이다.[1] 회차와 대표적인 사건들과 실제 일어난 년도를 보면 아래와 같다. 물론, 실제 역사와 다르게 드라마에서는 사건이 일어난 순서나 과정을 각색한 경우도 있음을 참고해야 한다. 전주 이씨 가문의 배경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전주 이씨 가문(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

* 1회: 위화도 회군(1388년)
* 2회: 개경 시가전, 우왕의 회군파 장수( 이성계, 조민수, 변안열 등) 암살 시도와 폐위(1388년), 김저, 정득후의 이성계 암살 시도(1389년 11월)
* 3회: 폐가입진 및 공양왕 즉위(1389년 11월)
* 4회: 우왕, 창왕 처형(1389년 12월)
* 5회: 윤이·이초의 옥사(1390년 6월)
* 6회: 정도전 탄핵 및 유배(1392년 4월), 한씨 사망(1391년 10월)
* 7회: 이성계의 낙마(1392년 3월)
* 8회: 정몽주의 죽음(1392년 4월)
* 9회: 공양왕 폐위(1392년 7월), 조선 건국(1392년 8월)
* 10회: 이방석 세자 책봉(1392년 8월)
* 11회: 이방원의 명나라 입조(1394년)
* 12회: 왕씨 몰살(1394년), 한양 천도(1394년 10월), 신덕왕후 강씨 사망(1396년 9월)[2]
* 15회: 정도전의 사병 혁파(1398년 3월~), 요동정벌 시도(1397년 6월~)
* 16회~17회: 1차 왕자의 난(1398년 8월)
* 19회: 정종 즉위(1398년 10월), 2차 왕자의 난(1400년 1월)[3]
* 20회: 이방원 세자 책봉(1400년 2월)
* 21회: 이방원의 사병 혁파(1400년 4월), 태종 즉위(1400년 12월)
* 22회: 원경왕후 왕비 책봉(1401년 1월), 가례색 설치(1402년 1월)
* 23회~24회: 이지란 사망(1402년 4월), 조사의의 난(1402년 11~12월)
* 25회: 이거이 숙청(1404년), 효순궁주 김씨의 경녕군 출산(1402년 추측)
* 26회: 양위 파동(1406년 8월), 민무구· 민무질 숙청(1407년 7월)
* 27회: 태조 승하(1408년 5월), 민제 사망(1408년 9월)
* 28회: 민무구·민무질 사사(1410년 3월), 2차 양위 파동(1409년), 정안왕후 사망(1412년 8월), 세자에 대한 1차경고(1413년 8월)[4]
* 29회: 민무휼· 민무회 숙청(1416년 1월), 세자 어리의 스캔들(~1417년[5]), 조영무 은퇴(1413년 10월)
* 30회: 이숙번 숙청(1416년 6월), 하륜 사직(1416년 10월)
* 31회: 황희의 파직 및 유배, 양녕의 항의문(1418년 5월), 충녕대군 세자 책봉(1418년 6월) 및 즉위(1418년 8월), 강상인의 국문(1418년 8월, 11월)[6]
* 32회: 심온 사사(1419년 1월), 원경왕후 민씨 사망(1420년 8월), 태종 승하(1422년 6월 8일)

이는 본 드라마가 32부작으로 편성해 제작했기 때문인데,[7] 주 2회(토요일, 일요일) 방영을 감안하면 3달 남짓[8]의 기간 안에 위화도 회군에서 시작하여 정몽주 살해와 조선 건국, 2차례의 왕자의 난과 조사의의 난, 민씨 형제들의 숙청, 양녕의 폐세자,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하는 일에다 심온 숙청까지 다뤄야 하는데 그러려면 단 한 회라도 미적거릴 틈이 없다. 사실상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다룬 〈용의 눈물〉의 거의 5배속 이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 때문에 이방원이 관여하지 않은 사건이면 중요한 사건은 언급만 해주는 수준으로 전개한다.[9] 이렇게 빠르게 감아야 하니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한 회 당 1~2년이 훌쩍훌쩍 지나간다.

특히, 조민수의 실각이나 최영의 처형은 이방원이 관여한 바가 거의 없는 만큼, 적은 분량상 이방원에게 집중하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따라서 정치 파트는 동시대를 다룬 〈용의 눈물〉이나 〈정도전〉과 겹치기 때문에 본 드라마는 그냥 '전주 이씨 가족사'를 중심으로 쾌속 진행을 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도 두 차례의 왕자의 난 조사의의 난처럼 전주 이씨 일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건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가 되었고, 정도전 등이 주도하게 되는 정치 이야기는 이방원이 직접 겪는 갈등이 아닌 이상 배경으로 간략히 넘어갔다.

등장인물의 퇴장도 병사나 자연사한 인물은 일일이 안 다루고, 죽을 시기를 지나면 자연스레 하차한다.[10] 정변이나 숙청이 아닌데도 죽음을 다룬 경우는 신의왕후 한씨, 신덕왕후 강씨, 이지란, 민제, 이성계, 정안왕후 정도인데 이들은 하나 같이 전주 이씨의 어른이나 친척이면서 그 죽음이 극 전개에 중요한 분기점이라 안 다룰 수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11]

그리고 과거의 KBS 대하드라마 시리즈는 초중반부에 앞을 못 보고 질질 늘어지게 진행하다 정작 드라마에서 심도 있게 다뤄야 하는 시대 후반부의 중요 사건들은 날림 처리해서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 대왕의 꿈〉은 진평왕 재위 시대 묘사가 지나치게 늘어져 백제 멸망까지는 어찌 진행했지만, 정작 이 드라마의 주연급이 태종 무열왕 문무왕인데도 이 왕이 재위하던 시기의 주요 사건인 고구려 멸망 및 나당전쟁은 아주 간략하게 퉁치고 넘어가 버렸고, 〈 대조영〉 역시 실제 대조영이란 인물과 직접적 관련이 별로 없었을 가능성이 높은 고구려 후기, 고구려 부흥 운동 시대에 집중하느라 정작 더 중요할 천문령 전투나 건국 이후 20여 년간 나라를 다스린 기간은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12] 이 때문에 오랜만에 다시 시도하는 대하드라마인 만큼 이런 고질병을 확실히 방지하기 위해 초반부터 진도를 빠르게 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을 수 있다.

또한 소위 백성들의 애환을 조명하며 주인공들의 각성을 유도하거나, 주인공들에게 명분을 실어주는 사극 고유의 클리셰에 무심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독특하다면 독특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중심이 되는 전주 이씨 가문을 비롯한 작중 인물들이 대의명분을 내세우려 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행보를 보이는 것을 신선하게 평가하는 시선이 있다.

4. 연출

연출 면에서는 기존의 KBS 대하드라마의 작품들과 달리 거의 영화 같은 색조를 사용한다. 카메라도 과거의 정적인 구도와 달리 드론 등을 이용해 역동적인 구도를 잡는데, 발전한 화질에 비해 아쉬운 연출도 없지는 않다. 대표적인 것이 1회에서 우왕을 대각선으로 클로즈업하는 등의 장면[13]은 기존 대하드라마 팬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여기에 그동안 퓨전 사극에서 쓰인 세련된 연출 기법을 도입한 흔적이 보이는데, 원래 그런 연출을 하던 사람들이 아니고 옛날 사극에 익숙한 사람들이 도입해서 쓰는 거라 그런지 연출 전개가 익숙하지 못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떤 때는 정말 세련된 연출을 보여주다가 어떤 때는 1990년대 연출이 보이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연출 전개는 4회까지 심하게 왔다갔다를 거듭하다가 이방원이 정몽주를 척살하기로 마음을 먹은 7회 중후반 이후부터는 제작진이 적응했는지 호평이 많은 편이다. 그 외에 대표적으로 좋은 연출로 호평받는 장면들은 2회에서 최영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암시하듯이 민씨가 붉은 천을 자르는 장면과 5회에서 정몽주와 공양왕의 발악을 사마귀 두 마리가 싸우다 청주로 달려가는 정도전이 탄 말의 발에 밟혀 죽는 것( 당랑거철)에 비유한 장면, 그리고 10회에서 아들이 죽자 오열하는 이방원 부부와 세자 책봉에 기뻐하며 환하게 웃는 이성계 부부가 오버랩되는 장면 등이 있다.

주연들이 선인인지 악인인지 애매하게 연출된 것도 본작의 특이점이다. 정도전에서 묘사된 것처럼 주연들 개개인의 선한 면과 악한 면이 극명히 부각되는 정도는 아니지만, 주인공인 이방원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연들이 말로는 자기합리화를 하면서도 결국에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주인공은 항상 선인이라는 클리셰는 확실히 부정한다. 다만 대립하는 상대를 1차원적인 악인으로 묘사하면서 주인공이 옳다는 것을 부각시켰던 초중반 에피소드들은 객관성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렸다. 대표적인 예시로 신덕왕후가 있는데 〈 정도전〉에서는 이성계를 옆으로 내조하면서 다소 온화한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본작에서는 주인공이 이방원이다보니 역대 신덕왕후 중에서도 가장 악독하게 묘사되었다.

살육 장면을 연출하는 데에 있어 연령이나 성별을 안 가리고 적나라하다. 2000년대 들어 굉장히 순화되어 그려졌던 그간의 경향과 달리 창왕의 최후를 그대로 칼을 쓰는 참수식으로 연출하는 점이나,[14] 8회 정몽주의 격살 후 목을 매거는 효수형의 재현, 12회 가별초의 왕씨 몰살 장면에서는 왜구들이 백성을 도륙하는 듯한 장면이 떠오를 정도이고 몰래 숨었다 도망치는 아이까지 활로 쏴 사살하는 장면이 있다. 19회에서는 2차 왕자의 난 중에 무고한 일반 백성이 휘말려 칼에 베여 죽고, 심지어 어린 아이의 어머니가 화살에 맞아 죽어 졸지에 아이가 고아로 전락했다. 고문 장면들 역시 상당히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는데 민무휼 / 민무회 형제들을 고문할때 보여준 압슬형은 정말 버틸 수가 없는 압슬형의 끝을 보여준다.

파일:IMG_9204.jpg
전투씬에 대해서는 혹평이 상당히 많은데 두 차례의 왕자의 난과 조사의의 난과 관련된 연출에 대한 혹평이 많다. 엑스트라 규모부터 빈약하고 전투 씬도 몇번 패싸움만 하다 끝나는 걸로 연출하여 평가가 매우 안 좋다. 물론 펜데믹과 과거에 비해 한참 오른 인건비 등으로 제작 환경이 매우 악화된 상태여서 아쉽지만 이해하고 넘어가는 반응도 있고, 기병의 경우는 1월에 있은 말 학대 사건으로 인해 하마터면 방송 자체가 종영될 뻔했기에 최대한 조심하는 경향이 강해져 숫자를 어쩔 수 없이 대폭 줄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도 몰입을 방해한다는 반응이 많으며, 애초에 말을 처음부터 안전히 다루고 KBS에서 대처를 신속하게 했다면 드라마가 종영될 정도로 논란이 커졌을 일도 없었기에 좋게 봐줄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5. 각색

이 사극에서는 기존 사극에서 이성계와 강씨 소생의 경순공주 정도를 제외하면 비중이 없어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이성계와 이방원 소생의 공주들과 왕자들이 언급되거나 등장하고[15], 방우부터 방간까지 이방원의 친형제들의 묘사가 역대 사극 중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

공식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를 감안하면, 이방우는 드디어 새 왕조에 반대하며 은거했다는 야사에서 벗어날 듯하며[16], 이방과도 뛰어난 무장이자[17] 정치적으로 절대 무관심하지 않으며 아버지의 대업에 참여하는 역사 속 그 모습이다.[18] 이방번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공양왕의 조카딸과 혼인하는 바람에 세자로 선택받을 수 없었다는 추측을 반영하여 그가 1차 왕자의 난 때 상당한 군사력을 거느리고도 이방석의 편에 서지 않은 이유를 묘사했다.[19]

우왕 때(1383년) 문과 10등(병과(丙科) 7등)으로 과거에 급제한 이방원 역시 다른 형제들과 달리 무장하지 않고 관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으로 나오면서 위화도 회군 당시 소식을 듣고 개경에서 도망쳐 가족들이 있는 포천과 철원의 전장(田莊, 대농장)으로 가 홀로 그들을 데리고 도망치는 과정을 잘 묘사했다. 덤으로 이방원의 무예 역시 적당히 너프되었는데 무인정사 때문에 흔히 무관으로 보여지던 이방원의 모습보다는 문관의 모습으로 병사들을 상대로도 꽤나 고전한다. 이방원이 역사의 승자가 된 것이 무예가 아니라 정치력과 통솔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적당한 너프다. 프롤로그로 잠시 나오고 중후반에 재등장한 이도(충녕대군) 보도자료에서는 '이방원처럼 왕이 되길 원했던 조용한 야심가로, 왕좌를 향한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하게 되는 인물'이라고 소개해 실록에 나온 묘사처럼 은근히 왕위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며 아버지를 닮은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유아 시절에도 양녕에게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정통 사극을 표방하면서 여말선초 시대의 여성 활약을 제대로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이성계는 촌구석의 장수였기에 문벌귀족 중심의 중앙 정치에 대해선 연줄은커녕 아무것도 모르는 수준이었다. 이성계의 책사로 그려지는 정도전 역시 이상가이자 혁명가인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행정가라고 봐야 했다.[20] 그런 이성계를 도와준 것이 바로 문벌귀족의 신덕왕후다.[21] 그녀가 가진 다양한 연줄은 물론 뛰어난 정치력을 바탕이 있었기에 이성계의 대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극중 신덕왕후가 이성계를 뛰어넘는 듯한 권력을 누리는 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이성계야 무서운 왕이지만, 그런 왕을 바로 옆에서 보필하는 것은 신덕왕후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방원 역시 마찬가지라 처가의 가문인 여흥 민씨 역시 문벌귀족의 중심이었다.

원경왕후 민씨 역시 이러한 연출로 수혜를 입었지만, 1차 왕자의 난에서 민씨 부인이 갑옷을 입고 사병을 통솔하는 장면은 완전한 창작일 뿐더러[22], 민씨 부인이 입은 갑옷도 다른 인물들과 달리 고증 따위 갖다 버린 광개토태왕이나 천추태후급의 근본 없는 판타지스러운 갑옷이기에 이 부분에서 일부 네티즌들은 PC나 페미니즘을 예로 들며 제작진을 비난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실제로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 비난을 보면 죄다 해당 장면을 언급하며 다른 장면은 없다. 즉, 다른 장면들은 공교육에서도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에 대해 배우기에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저 장면만큼은 도저히 넘길 수 없었던 것이다.[23]

묘사에 실록을 반영하다 보니 이러한 부분에 대해 익숙하지 못한 시청자들이 왜곡이 아니냐며 비난하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 그 외에도 무비판적으로 실록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는 의문을 표하는 시청자들도 많아졌는데, 왕과 비 단종실록을 너무나도 충실히 따르다 후에 왜곡에 대하여 비판을 받게 된 것을 감안하면 납득할 만한 우려다. 물론, 태조실록, 정종실록, 그리고 태종실록 역시 승자 쪽(태종, 하륜 등)의 입장이 반영된 만큼, 기록을 전부 다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한다. 다만, 이 점을 감안하여 기록과는 다르게 묘사된 경우가 이방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없지는 않다. 또한 이방의 역시 실록의 기록과는 다르게 이방간이 일으킨 2차 왕자의 난에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 각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양녕대군에 관해서는 용의 눈물은 야사에서 유래된 세자 양보설을 채택하여 오히려 양녕대군을 미화시켜 몇 안 되는 옥의 티로 남았지만 본 드라마에서는 실록에서 표현한 개차반의 모습들을 묘사, 얼마나 양녕이 날라리였는지를 보여줬다.

6. 한계

그간 여말선초 사극에서 기록에 충실하지 않았던 정몽주의 죽음이나 양녕대군의 행보를 제대로 묘사하는 등 조선 건국 과정에서 전주 이씨 가문이 크게 개입하거나 사고를 치는 사건들에 한해서는 좋은 재현도를 보여주지만, 32회라는 비교적 적은 분량으로 인해 조대림 사건 등 태종의 권모술수와 정치력을 보여줄 수 있는 몇몇 사건들과 그의 애민정신에 대해서는 딱히 조명하지 못했으며, 흔히 알려진 외척 제거와 자식 사랑, 왕권 강화 정도만 묘사하였다는 점은 아쉽다고 할 수 있다. 전주 이씨 집안 이외의 사람들은 전개를 위한 최소한의 역할만 하기 때문에 그간 여말선초를 다룬 사극에서 주연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 정도전 정몽주는 물론 다른 인물들도 과감히 곁가지로 쓰는 등 과감한 각색도 행했으며, 심지어 이성계-이방원의 직계 중심으로 가다 보니, 그 외의 인물들은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모를 정도로 소리소문없이 퇴장하였다.

기획의도에 충실하다고 볼 수는 있지만, 이로 인해 전주 이씨 가문 외의 인물들은 사실상 각본가의 장기말 정도로만 느껴지는 위화감이 생긴다. 애초에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많은 인물들의 죽음을 그냥 넘어가거나 아예 언급도 하지 않는 점도 비판받을 여지가 다분한데, 특히 방영 이전부터 전주 이씨 가족사를 중심으로 다룬다고 강조했으면서 정작 본작에선 이방원의 동복 형제들의 죽음은 전부 스킵했다. 이방원의 마지막 아들인 성녕대군 역시 등장은 커녕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은 달리 말하자면 본작이 시간대 분량 분배에 성공적이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여말선초와 관련하여 가장 좋은 재현도를 보여준 사극이라기에는 어폐가 있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기에 전주 이씨 가문 한정으로는 이전의 사극들보다는 발전되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준수하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또한 주 시청자 층이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설명이 적게 나온 바람에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불친절한 전개를 보이고 있는 점이 아쉬운데, 1회 프롤로그에서 태종이 세자에게 자기가 저질러 온 패륜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장면부터가 그렇다.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태종의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할지 방향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쾌한 도입부이지만, 역사를 잘 모르는 시청자들에게는 뜬금없는 스포일러의 향연이다.[24] 게다가 이 프롤로그 장면은 드라마 후반부에 제대로 회수되지 못한 점으로 인해 방영 당시에 혼란스러워 했던 시청자들도 있었다.[25] 물론 드라마 기획부터 '또방원' 소리를 들었던 만큼[26] 자잘한 디테일이나 혼란의 여말선초, 위화도 회군, 왕자의 난 같은 건 알아서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평도 있지만, 명색이 KBS 대하드라마인데 당시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활약했던 여러 사대부들과 대신들에 대하여 사실상 거의 언급도 없는 부분은 충분히 문제될 여지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드라마의 의복과 소품들은 〈정도전〉 때 만들어 놓은 것을 재활용했다.[27] 의복들은 이미 재현도가 높기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지만, 병사들이 환도를 패용하지 않거나 주연 측이 전투시 투구를 착용하지 않는 모습, 죄인들을 소달구지에 태워 귀양을 보내는 묘사 등 여전히 사극에서 흔히 보이는 고질적인 소품 오류가 존재한다.[28] 또한 조선 초기의 세자들이 전부 홍룡포를 입는데, 당시엔 옷감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관복을 입는 것이 정확한 재연이지만, 그럴 경우 세자가 누구인지 인식하기 어려워지기에 그런 고질적인 오류는 그대로 남겼다. 마치 서양 사극에서 배경이 등자가 없었던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타는 장면을 촬영할 때의 안전을 고려하여 등자가 나오는 것과도 비슷하다. 극 중 '마마'라는 말도 본래 조선 중기 이후에 들여온 호칭이기에 본작의 시대상으로는 적합하지는 않지만, 해당 오류 역시 여말선초를 다룬 여러 사극에서 지켜지지 않은 부분이다. 이렇게 기존 사극의 고질적인 오류나 엉망스러운 전투 대열 및 장면[29] 등을 담습한 점은 달리 말하자면 앞으로의 KBS 대하드라마가 해결해야 할 숙제라는 점으로도 볼 수 있다. 그 외에 세부적인 역사 재현 내용에 대해서는 역사 탐구 문서 참고.

게다가 아무리 연출이 발전되었다고는 하지만, 기존의 KBS 대하드라마 제작진들에게는 새로운 시도였기에 냉정하게 말해서 결과물이 아주 좋다고 보기는 어렵다. 후반부로 갈 수록 전개도 너무 빨라졌으며, 작품 자체가 처음부터 사실상 생방 촬영급[30]으로 급하게 제작되었기에 카메라 구도도 이전 사극들만큼은 아니지만 단조로워졌고, 프롤로그도 사실상 회수되지 않았다는 점은 확실히 단점으로 지적될만한 부분이다. 사실 이미 방영 전부터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인해 고발되기도 하였고, 말 죽음 사고 역시 이러한 제작환경의 안일함과 허술함으로 인한 안전불감증 때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며[31], 해당 사건으로 인해 드라마 태종 이방원은 '말방원'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었다.

이정우 작가의 각본에서도 반복적인 하소서체 및 단조롭고 식상한 패턴이 많이 보여 아쉬움이 남는데, 일례로 주연 측에서 대립하는 측에게 질타를 당하거나 위기감을 느끼면 상대의 이름/직위를 말하며 분노하거나 열폭하기만 할 뿐 아무 반박도 제대로 못하고, 연출도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여 종종 그들의 얼굴이 화면에 부담스럽게 클로즈업되는 등 광개토태왕에서나 볼법한 장면들이 잦다.[32] 갈등상황에 있는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적대감을 대놓고 표하며 어떨 때는 건방지다 싶은 태도로 적대 관계의 윗사람을 대하는 것도 큰 특징.[33] 정도전이 죽기 전에 이방원과 나눈 대화를 드라마 정도전에서의 묘사와 비교해 봐도 작가의 집필 실력이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다. #

또한 빌드업은 나쁘지 않다고 쳐도 이를 푸는 과정 및 결과가 너무 허술하거나 어색하여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 게다가 실록에 의존하면서도 전개가 꽤나 빠르기에 인물들의 변화도 보는 이에 따라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많으며, 인물들의 동기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사로 처리하는 등의 장면들이 잦다. 말년에 권력을 내려놓았다는 해설의 설명과 극에서 보여지는 이방원의 행보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등 해설과 관련한 문제도 빈번한데, 이러한 단점 역시 역시 감독 및 각본가의 미숙한 역량과도 연관지을 수 있다. 이로 인해 네이버 블로그나 트위터 등지에서 구식 연출 및 이정우 작가의 처참한 각본에 대한 비판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이정우 작가가 고려 거란 전쟁의 각본에도 참여하였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작품성에 관하여 불안하다는 반응도 나오게 되었으며, 그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여러 단점들 때문에 아무리 2020년대에 TV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적다고는 하여도 본작의 시청률이 징비록 장영실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시청률과는 별개로 본작의 화제성이 없지는 않았고, 후속작을 준비할 수 있도록 명맥을 이어나가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7. 결론

전반적으로 아쉬운 각본 및 연출과는 별개로 매니아층에서는 범작 정도로 여겨지며 나쁘지 않은 평을 받았다. 전주 이씨 가문 한정으로 전작들과 비교하면 나름 적절한 재현도와 동일한 역사 인물들을 다루면서도 기존 드라마와 차별화된 캐릭터성, 그리고 정통 사극에 걸맞은 배우들의 연기력 덕분에 수준 낮은 대본과 구식 연출 등의 한계점이 어느 정도 덮어졌다고 볼 수 있다. 유튜브 댓글 등에서는 32부작인 것이 너무나 아쉽다는 평가가 많으며, 정통 사극을 기대한 많은 시청자들의 갈망을 충족시켜 주었다는 의견이 있다.

정통 사극 배우들의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태종 역을 맡은 주상욱의 경우 방영 전부터 방영 초반까지 정통사극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이후 열연을 펼치며 첫 정통사극 주연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34] 실장님 전문 배우만 어울릴 줄 알았는데 다시 봤다는 평이 많다.[35][36] 일부 시청자들은 주상욱이 차기 대하드라마에도 캐스팅되길 바란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원경왕후 역의 박진희도 가족을 잃은 슬픔을 잘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전의 원경왕후 역할을 맡은 최명길의 뒤를 잇는 좋은 연기를 펼쳤으며, 세종 역의 김민기도 만 20세의 데뷔 2년차 신인 배우에게 기대하는 것 이상의 연기력을 선보이며 프롤로그와 극 후반부를 잘 이끌어내었다. 첫 정통사극에 출연한 조연 배우들 역시 호평을 받았다. 또한 기존의 정통사극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였다. 이렇게 이들의 연기가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32부작의 장단점을 잘 나타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50부작 이상의 정통사극과 달리 32부작이라는 비교적 짧은 회차 속에 속도감 있는 전개를 보이며 빠른 전개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에게는 호평을 받았으나, 반대로 빠른 전개로 인해 태종의 여러 모습들이 축소된 것이 아쉬웠다는 평가도 받았다.[37] KBS가 차기작도 32부작으로 편성할 계획을 밝히면서 이제는 50부작 이상의 장편 사극을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38]

그럼에도 여러모로 KBS 대하드라마의 재기를 시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KBS가 차기작도 준비하면서 그동안 끊긴 명맥을 다시 잇게 만든 데 있어 큰 의의가 있다.

고려 거란 전쟁이 종영된 후에는 전자의 양규에 대한 묘사 정도를 제외하면 차라리 태종 이방원이 더 잘 만들었던 작품이라며 재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 정치 사극과 전쟁 사극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시청률과 화제성은 조금 떨어질지언정 태종 이방원은 최소한 지나친 역사 왜곡은 적은데다가 실록을 나름 재현했다는 점이 크다. 둘 다 같은 작가가 집필한 작품인 것을 생각하면, 후속작에서 작가의 단점과 각색이 극대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 위화도 회군(1388년)에서 고려 멸망(1392년)까지 4년을 8회만에 정리, 태종 즉위(1400년)까지의 8년을 12회만에 정리하였다. 약 30년의 기간을 32회 동안 정리해야 하므로, 평균 회당 1년은 흐르는 속도. [2] 12회에서 사망 직전에 회차가 끝나고 13회가 시작하자마자 사망하므로 사실상 12회에서 퇴장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앞의 11회까지 놓고 보면, 일의 순서가 뒤죽박죽 섞인 느낌도 있다. [3] 정종 때에 벌어진 개경 천도가 삭제되었다. [4] 드라마 마지막에 태종이 세자에게 경고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실록에서는 세자 교육을 담당한 관리들 앞에서 "종실에 어찌 (달리) 적당한 사람이 없겠느냐"며 경고했다. [5] 1417년 2월 15월에 발각되고 22일에 왕세자가 잘못을 종묘에 고하였으므로, 어리와의 스캔들 자체는 이전의 일일듯하다. [6] 강상인의 사건은 세종이 즉위한 지 보름 후의 일로, 이전의 상왕들과 달리 태종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강상인의 첫 국문은 8월이었고, 태종이 다시 일을 끄집어 내어 심온의 이름을 끌어낸 것이 11월이다. [7] 2014년 정도전이 50부작이었음에도 후반 전개는 약간 날림이 되었다. 참고로 당시 이것을 두고 사극 팬층에서는 50부작은 너무 짧다는 불평불만이 나왔다. 다만 이번 드라마에서는 그런 볼멘소리는 거의 없는데, 지금은 한동안 정통사극 자체가 씨가 말랐기에 감지덕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8] 물론 전술했듯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중계방송이나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TV 토론 등이 끼어 있어서 기간이 변동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올림픽 중계방송의 경우, 이전 사극들을 방영할 때도 정상적으로 방영했었기 때문에 이로 인한 결방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았다. 물론, 한국과 중국의 시간 차이나 본 드라마 앞에 편성된 9시 뉴스가 특집으로 편성된 경우에는 다소 늦게 시작한 일도 있다. [9] 국초 굵직한 국정 현안인 한양 천도도 12회 태조의 어명 한 씬, 실제로 한양에 입궁하는 장면 한 씬으로 간략히 처리되었다. 하륜과 정도전이 기싸움하긴 했으나 하륜이 본격적으로 이방원의 사람이 되기도 전이고 이방원과는 크게 연관이 없으니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지 않은 듯하다. 또 이 과정에서 왕씨 학살도 지나가는데, 너무 무리해서 압축하느라 이성계가 세자를 위해서라며 대뜸 왕씨 학살을 지시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10] 그나마 이방원의 최측근 3인방인 조영무, 하륜, 이숙번은 정계 은퇴는 보여주었다. [11] 예로 정종의 죽음은 아예 다루지 않으면서 왕후인 정안왕후의 죽음은 다루었는데, 이 상중에 세자의 비행이 돋보였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이성계의 죽음 역시 인물 자체보다는 이방원과의 갈등 해소와 연결되었다. 정종도 마지막 남은 형마저 죽으며 점점 고독해지는 이방원의 모습을 그리는 장치로 활용이 가능했겠지만, 심온의 옥사부터 이방원의 죽음까지 최종회에서 모두 다루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포기한 경우다. [12] 그나마 대조영의 경우 참작의 여지는 있는 것이 고왕 재위 기간에 관하여서 기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따라서 드라마의 주제를 사실상 '고왕의 업적'보다는 '고구려의 부활'에 맞출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가 되었어야 할 천문령 전투를 미흡하게 처리한 건 역시 실드 불가. [13] 일부러 개그 씬으로 연출한 장면인데, 분위기 자체가 워낙 어두운 상황이라서 효과적이지 못했다. [14] 2014년작 정도전에서는 창왕의 최후를 사약을 내리는 식으로 연출했다. 더 오래된 작품인 용의 눈물 같은 경우도 사약을 먹였는데, 예고편에서는 창왕이 사약을 먹고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참혹하게 그린 듯한 장면이 나왔지만 본 방영본에서는 삭제되었다. [15] 언급되는 경우는 이방원의 요절한 장남과 차남 그리고 이방연이며, 등장하는 경우는 경신공주, 경선공주, 정순공주, 경정공주, 그리고 이방원의 요절한 3남이다. [16] 실제로 고려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는 어릴 적 이성계의 교육으로 인한 것이다. 또한 극 중 은거하기는 해도 그 이유가 새 왕조에 대한 반대보다는 이성계가 자신에게 가르친 충과 전혀 반대되는 행위를 하는 데에서 온 반감, 이방원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대업에 대해 생긴 회의감, 그리고 가문 내에서 자신의 위치에 가깝다. 다시 말해 가족들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되었다고 볼 수 있다. [17] 이성계의 무골 기질을 다 가장 많이 이어받은 아들이니만큼 무예가 상당히 뛰어나게 묘사된다. 정점은 2차 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을 제압할 때인데 이방원은 칼도 들고 있었고, 갑옷까지 입고 있었지만 곤룡포를 입은 맨손의 이방과에게 철저하게 제압당했다. [18] 이방과가 정치를 포기하는 이유는 그 근본 문제가 가족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방과 역시 드라마를 통해 그 이유를 묘사한다. [19] 역대 사극 중 최고 분량과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냥 세트로 이방석과 죽임을 당했던 모습에서 드디어 벗어났다. [20] 실제 역사에서 행정과 정치는 물론 외교까지 모두 잘했던 능력자는 정몽주다. 그에 비해 정도전은 훌륭한 사상가였고 행정 능력도 상당했을지언정, 정치력이나 외교는 좋기는 커녕 성격이 나빠서 적을 많이 만들었다. [21] 물론 남은, 남재 등의 참모들도 뛰어난 정치력으로 이성계에게 힘을 보탰다. [22] 자택에서 기다리다 1차 왕자의 난이 실패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돌자 갑옷을 입고 무장하여 싸우려 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실제로 갑옷을 입고 1차 왕자의 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사병을 이끌었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 [23] 사실 초반부에도 기존 작품들보다 주동적이고 야심을 대놓고 드러내는 민씨와 그에 대비되게 문과로 과거를 급제하여 머리는 좋지만 나머지는 유약하다는 식으로 묘사된 이방원에 대한 각색 역시 방영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호불호가 갈렸다. 하지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점차 볼멘소리는 사라져갔고, 특히 이방원은 왕이 된 이후로는 철혈군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이게 되었고, 민씨도 마찬가지로 최대한 이방원에 맞서며 그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까지 하면서 작품의 객관성을 챙겨주었다. [24] 여말선초 같은 역사의 순서 정도만 알고 있는 역사를 잘 모르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극의 전개와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버거운 것은 사실이다. [25] 31회에서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하는 장면과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배경과 분위기 외에 대사도 판이하게 다르다. 아마 각본을 쓰는 과정에서 설정을 바꿔서 일어난 일로 보이는데, 몰아서 보면 조금 어색한 편이다. [26] 본 드라마 전까지 25년간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의 수가 지상파, 케이블 합치면 10개이다. [27] 다큐멘터리 3일〉에서 본 드라마 촬영 현장을 다룰 때 소품실 장면이 나오는데, 그동안 KBS 대하드라마에서 사용한 각 시대별 의복들이 비춰졌다. [28] 띠돈 맺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대다수의 대한민국 사극들에는 지켜지지 않는다. 소품팀에서 의견을 내도 연출팀에서 동선, 촬영시 그림 문제, 정석으로 단단하게 묶는다면 촬영 사이에 배우들이 앉거나 기대어 쉬기 어렵다는 점, 헐겁게 매자니 풀숏에서 칼집이 덜렁거릴 테니 시청자의 시선에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거부해왔다. 몰라서 안 지키는 게 아니다. [29] 특히 조사의의 난을 다룬 24~25회의 처참한 전투 장면들로 인하여 방영 당시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후속작 고려 거란 전쟁에 몇몇 시청층이 불안감을 느끼고 걱정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30] 하이라이트 방영분도 4회분만 나왔고, 역사저널 그날에서 주상욱이 한 얘기에 의하면 2회에서 이성계와 이방원이 혁명에 대하여 서로 대화하는 장면을 첫 방영으로부터 2달 전에 찍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12월부터 방영한 32부작의 사극의 2회를 10월에도 촬영 중이었다는 말인데, 장편으로서 최소 10회분 이상은 사전 제작이 필요한 대하사극을 제작하기에는 안일한 방식이다. [31] 본작이 국내에선 범작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유독 해외에서 평가가 박한 것도 단순히 말 죽음 사고로 인하여 그렇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2020년대에 들어서 한국 드라마에 눈이 더 높아졌기에 이러한 전개 및 연출의 어색함이 한국 역사를 잘 모를 수 밖에 없는 해외 시청층에게는 크게 단점으로 부각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32] 태종은 초반부부터 후반부까지 이런 식으로 성을 내는 일이 굉장히 많으며, 초반부에 이성계 측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지란은 궐 안에서 공양왕에게 "전하!"라고 큰 소리로 윽박지르는데, 아무리 공양왕이 허수아비 왕이더라도 대놓고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예법에 어긋나는 것은 당연하기에 꽤나 어색한 장면이다. 그나마 양녕대군의 경우 경박하고 열등감에 찬 망나니 캐릭터에 어울리기에 이런 패턴이 크게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다. [33] 가장 대표적으로 17회에서 이방원이 병사들의 창으로 이성계를 농락하는 장면이 있다. [34]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 역을 맡아 역대 이방원 중 최고의 연기력을 펼친 유동근이 인터뷰를 통해 주상욱의 연기력을 칭찬하였다. [35] 사실 주상욱은 출세작이 사극인 선덕여왕 월야 역으로, 사극으로 유명해진 배우인 만큼 사극 연기는 검증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응징자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성공적으로 소화한 배우이다. 그것을 감안하면 의외일 수는 있으나 우려될 정도는 아니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6] 대하사극의 한 세대를 끌어간 최수종 역시 과거 예능이나 로맨스 드라마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성공적인 사극 전문 배우가 된 바 있다. 주상욱도 이러한 최수종의 연기 행보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기도 한다. [37] 마지막 촬영 후기에서 태종을 연기한 주상욱 본인도 본작에서 할 이야기가 더 많았는데 풀어내지 못한 점이 굉장히 아쉬웠다고 밝혔다. [38] 인건비 증가, 말 학대 논란과 같은 안전 문제, PPL과 같은 광고의 제한 등 사극 제작 환경이 과거에 비해 어려워진 점이 한 몫 한다. 또한 정서적으로도 고도화된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가 해당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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