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1 09:33:23

타나카 히로미치

1. 개요2. 경력3. 특징4. 작품5. 기타

1. 개요

田中弘道
일본의 게임 개발자.

대표작은 파이널 판타지1, 파이널 판타지 III, 성검전설 2, 성검전설 3, 파이널 판타지 XI.

2. 경력

어린 시절엔 울트라맨, 철완 아톰을 좋아했으며 이 두 작품에 매료되어 컴퓨터와 전기공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철완 아톰에는 당시 현실엔 없던 벽걸이 TV가 나왔는데 그런 걸 실제로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이미 독학으로 대학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학창시절에 납땜으로 전자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를 전기에 미친 놈이었다고 한다.

요코하마국립대학 전기공학 출신. 전기 공부를 하려고 들어갔는데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자신이 초등학교, 고등학교 때 다 직접 연구해서 알고 있던 거라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1] 그래서 놀면서 다녔다고 한다. 사카구치 히로노부와 대학 친구였다. 서로 "아 이놈은 공부하기 싫은 놈이구나." 라는 느낌이 와서 친해졌다고 한다.

사카구치 말로는 타나카가 당시 고액의 애플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으며[2] 타나카가 위저드리 울티마 같은 게임을 하게 해줘 게임의 재미를 알았다고 한다. 컴퓨터 부품 구할 돈이 필요해서 당시 스퀘어(현 스퀘어 에닉스)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좀 하다가 게임 개발을 할 기회를 잡으면서 대학은 중퇴하였다. 일단 게임 개발을 하면서 계속 학교는 다녔지만 4학년 때 실수로 유급하였고 교수가 추천해준 대기업 추천을 걷어차고 스퀘어에서 계속 일하기로 하면서 교수와 관계가 틀어졌다. "이렇게 된 거 대학은 안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대학은 그만두었다.

스퀘어에서 '알파' 라는 게임을 기획했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같은 게임을 호리이 유지보다 먼저 구상해서 기획하고 있었는데 드래곤 퀘스트가 먼저 나와버려서 그건 못 만들었다고 한다.[3] 좀 더 빨리 만들었으면 자신이 일본 최초의 JRPG 제작자 타이틀을 얻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카구치와 함께 파이널 판타지를 제작해 성공시켰다. 사카구치 말로는 파이널 판타지 1, 3는 타나카가 없으면 안 나왔을 게임이라고 한다. [4] 당시 파이널 판타지 1은 사카구치와 이시이 코이치, 카와즈 아키토시가 만들고 있었는데 신인들이라 게임 제작이 전혀 진행되지 않아 회사에서 스퀘어의 톰 소여의 모험을 만들고 있던 타나카에게 "파이널 판타지 팀이 위험하니까 좀 가봐라." 라고 했다고 한다. 가봤더니 진짜 개판이 나있었고 그걸 수습해서 발매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파이널 판타지 III는 시나리오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 손을 댄 게임으로 스스로도 자신작으로 꼽으며 리메이크에도 관여했다.

이후 여러 사정으로 제작이 좌초된 타나카 판 파이널 판타지 4 [5] 성검전설 2로 제작해서 성공시켰고 성검전설 3에도 크게 관여했다. 이 두 작품은 스토리도 타나카가 썼다.

사카구치가 "이제 시대는 온라인 게임이다." 라고 하며 게임 개발을 시켜 파이널 판타지 XI을 프로듀스해 성공시켰다. 발매 초기에는 게임에 미흡한 부분이 많고 너무 어렵다며 욕을 많이 먹었지만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거나 게임 커뮤니티를 찾아가며 게임 유저와 직접 소통했다. 그리고 유저가 불만점을 제시하면 바로바로 수정하는 혜자 운영으로 호평 받았으며 지금도 파이널 판타지 11 플레이어들이 좋아하는 프로듀서이다.[6] 스퀘어 에닉스 퇴임 후에는 "11을 플레이 하면 '아 여기 고치고 싶은데.' 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젠 고칠 권한이 없으니 하지 않는다." 라고 밝혔다.

그러나 파이널 판타지 XIV는 엉망으로 만들어 비판 받았다.[7] 요시다 나오키는 타나카를 지적해서 말한 건 아니지만 "전임 제작진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새로운 MMO의 표준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만들어서 그렇다.", "일단 내놓고 고치면 된다는 생각은 지금 시대에 전혀 통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책임을 지고 사임해 다시 파이널 판타지 11 쪽으로 돌아갔으며 2011년 건강 문제로 스퀘어 에닉스를 퇴임했다. 예전부터 희귀병이 있었지만 혈압이 정상이면 일상 생활이 가능한 병이라 신경을 안 쓰고 살았는데 나이를 먹고 혈압이 높아지니 악화되어 쓰러졌고 병원에 가보니 그 여파로 신장이 죽어버렸다고 한다. 한동안 투석을 안 하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 대외 활동이 불가능했고 죽음을 각오했지만 여동생의 신장을 이식받고 구사일생 했다.

스퀘어 퇴사 후 겅호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에서 게임 개발 노하우를 전수하고 후임을 육성하고 있다고 한다. 하고 싶은 건 다 만들었고 건강 문제도 있어 신작을 만들 생각은 딱히 없다고 한다.

3. 특징

파이널 판타지 초기 작품 스태프는 신인이 많아 여러 방면에서 사고가 터졌고 그걸 수습하던 사고 수습 전문가가 타나카 히로미치였다고 한다. 예로 이란의 프로그래머 나르샤 지베리[8]가 파이널 판타지 3 제작 때 비자 문제로 일본에서 쫓겨나자 아예 미국에 있는 그의 집까지 쫓아가서 몇 달 간 생활하며 게임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9]

스토리나 게임 디자인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라 그의 작품색이 드러나는 작품은 적다. 세계관이나 시나리오는 별 관심이 없고[10] 게임성만 뛰어나면 게임이 재밌어진다는 것이 지론이라고 한다. 파이널 판타지의 경우 스토리는 사카구치 히로노부 담당이었다고 한다. 다만 게임의 재미를 체크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잘 고안했으며 사고를 잘 수습해 그의 게임은 대부분 일정 이상의 퀄을 보장했다.

파이널 판타지 3 전까지는 멤버들이 주먹구구 식으로 만들었는데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 호리이 유지처럼 자료를 많이 만들고 철저히 정리하는 제작 방식을 도입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스퀘어 작품은 전부 그렇게 만든다고 하며 자료 보존도 잘 된다고 한다.[11]

예외로 사가 2 비보전설, 성검전설 2 성검전설 3는 타나카가 시나리오도 쓴 게임이라 그의 색이 크게 드러난다. 성검전설 2, 3는 시나리오로도 호평을 받았다. 다만 성검전설 3를 만들 때 동료에 따라 스토리가 바뀌는 시스템을 도입했다가 복잡해져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체험을 했기 때문에 이 이후로는 다시는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시이 코이치는 "타나카 씨는 글 잘 쓴다고 생각하는데 더 안 써서 아쉽다." 라고 하기도 했다. 제노기어스부터는 자신은 안 나서고 후배들을 지원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기초 UI를 만들어냈으며 파이널 판타지 3에서는 잡 체인지 시스템을 개발했다. 게임의 첫인상은 대부분 UI가 정한다고 주장하며 UI를 알기 쉽게 만드는 것을 특히 신경쓴다고 한다. 파이널 판타지 특유의 파란색 UI는 타나카 히로미치가 만든 것이다.

울티마 시리즈 팬이라 자신의 게임은 어딘가 울티마 같아진다고 한다.[12]

북유럽 신화를 자주 인용하는데 자신이 북유럽 신화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고 같이 일하던 스태프 아오키 카즈히코(青木和彦)가 좋아해서 넣는 것이라고 한다. 다만 오딘은 자신이 처음으로 만든 소환수라 애정이 깊다고 한다.

4. 작품

5. 기타

아내는 스퀘어 초기의 그래픽 스태프였던 나카타 히로미(中田浩美)이다.


[1] 진짜 전문적인 건 3학년 때부터 가르쳤고 1, 2학년 때 배운 건 다 아는 거였다고 한다. [2] 다만 타나카 히로미치 말로는 그 애플 컴퓨터는 아키하바라 전자 상가에서 불법 정크 제품을 모아다 직접 조립, 납땜해서 만든 싸구려 정크품이었다고 한다. 정품이 5000엔이면 정크는 500엔이었다고 한다. 돌아가긴 잘 돌아갔다고 한다. [3] 기획 당시 타이틀 명이 성검전설이었다고 한다. [4] 다만 1의 게임 기초 컨셉을 제안한 사람은 사카구치라 보통 시리즈의 아버지는 사카구치로 치며 타나카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1, 3도 시나리오는 사카구치가 했기 때문에 사카구치 색도 강하다. [5] 현재의 파이널 판타지 4는 SFC용으로 개발 중이던 파이널 판타지 5를 앞으로 땡겨서 발매한 것이다. [6] 당시 세계의 게임 커뮤니티 분위기가 지금보다 좋았으며 상식적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지 2020년대처럼 게임 커뮤니티가 어그로로 망가진 상태였다면 이런 운영은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7] 현재의 파이널 판타지 14는 요시다 나오키가 다 뜯어고친 버전이다. [8] 타나카가 직접 캐스팅했다고 한다. 당시 나르샤는 불법 짝퉁 PC 게임 제작 전문으로 유명했는데 하드웨어 스펙이 높은 아케이드 게임을 스펙이 낮은 PC로 복사해내는 걸 보고 "이 사람은 천재다." 라고 생각해 불렀다고 한다. 일본어를 못해서 의사소통도 안 되지만 하드웨어 스펙을 초월해 게임을 프로그래밍하는 대단한 사람이라 놓치기 싫었다고 한다. 성검전설 2도 프로그래밍해줬다 당시 스퀘어에 영어를 할 줄 아는 멤버가 1명도 없어서 나르샤랑 의사 소통을 계속 하다 영어에 눈을 떴다고 하며 사카구치 히로노부보다 영어를 잘 한다. [9] 당시엔 인터넷이 없어서 원격 제작이 거의 불가능했다. 다만 파이널 판타지 3 때 한 번 게임에 버그가 크게 터졌을 때 나르샤에게 전화를 걸어 수정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나르샤가 천재라서 프로그램을 전부 외우고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라고. [10]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반대로 세계관을 더 중시한다. [11] 파이널 판타지 1, 2의 자료는 유실된 게 많다고 한다. [12] 반면 사카구치는 위저드리가 좋았다고 한다. [13] 미소녀가 나오는 건 당시 최신 애니메이션을 보던 사카구치 히로노부가 "미소녀가 있어야 잘 팔린다." 라고 해서 추가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