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23:54:54

클로디오

메로베우스 왕조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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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odio
(392 또는 395 ~ 445 또는 448)
프랑크족의 왕.

역사가 에티엔 르나르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고대 게르만어에서 '유명한'을 뜻하는 hluda에서 유래한 것이며, 형태 자체는 로마의 '클라우디우스'라는 인명에서 영향을 받아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 시점에 프랑크족 지배층에서 로마식 문화를 이미 어느정도 받아들인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 파라몽이 죽자 왕위를 계승했고 대머리왕, 장발왕이라는 별명이 있으며, 그의 별명 장발왕은 메로빙가 왕조의 왕들을 지칭하는 칭호가 되어 사람들이 왕의 긴 머리를 신성한 왕권의 상징으로 인식해 긴 머리가 잘린 왕은 신에게 부여받은 왕권을 상실받은 것으로 생각했다.

서로마 제국의 용병을 지낸 적도 있고 428년 이후에 로마의 지배를 거부하고 스헬데 강을 건너 갈리아 남쪽으로 내려왔으며, 디스파르굼의 한 곳에서 거처를 정하고 투르네이, 캄브레이 등을 점령한 후에는 솜므 강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431년에 아르투아 평원에서 진을 치고 있으면서 아들의 결혼 축하연을 치르고 있다가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의 기습을 받고 패배했다.
파일:Conquêtes_de_Clodion.png
살리 프랑크족의 원래 거주지(노란색)과 클로디오가 정복한 영역(연한 노란색)
그렇지만 클로디오는 라인 강에서 솜 강까지 이르는 지역을 모두 점령해 투르네(Tornai)를 수도로 삼았다.

왕위는 그가 죽은 후 아들 메로베우스에게 넘어갔다.

실존 여부가 불명확한 파라몽과는 달리 실존인물임이 확실한 첫 메로빙거 왕조 인물이다. 다만 메로베우스와 어떤 관계인지는 불확실해, 메로빙거 왕조 초기의 역사가인 투르의 그레고리우스는 '누군가가 메로베우스가 클로디오의 아들이라 카더라'는 식으로 사실 여부가 불확실하게 언급하며 그가 메로빙거 왕조의 사람인지도 명시하지 않았지만, 7세기 중반의 기록에서는 메로베우스는 클로디오의 아들로 확정되며, 8세기가 되면 여기에 더해 파라몽이 계보 위에, 그 파라몽 위에는 5세기 초에 실존했다는 프랑크 족의 부족장인 테오도미르[1]가 파라몽의 아버지라는 기록까지 더해진다.

만약 테오도미르가 실존인물이라면, 클로디오의 실제 전임자는 테오도미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1] 그 역시 투르의 그레고리우스의 기록에서만 언급되는데, 그레고리우스는 테오도미르가 클로디오의 전임자라고 되어있고 둘 사이의 관계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기록은 대부분 궁정 공식 기록이나 전승에 음유시인들이 보존한 이야기를 합쳐 만든 것인데, 이 시기 이야기는 절대다수가 음유시인들의 전승으로부터 추출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