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4 07:02:42

쿠르트 폰하머슈타인에크보르트

파일:나치 독일 국장(화이트).svg 독일 국방군의 장성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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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6><colcolor=#fff> 쿠르트 폰 하머슈타인-에크보르트 남작
Kurt Freiherr von Hammerstein-Equord
파일:440px-Kurt_von_Hammerstein-Equord.jpg
이름 Kurt Gebhard Adolf Philipp Freiherr von Hammerstein-Equord 
쿠르트 게프하르트 아돌프 필리프 폰 하머슈타인-에크보르트 남작
출생 1878년 9월 26일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 힌리히스하겐[1]
사망 1943년 4월 24일 (향년 64세)
나치 독일 베를린
복무 독일 제국군 (1898년 ~ 1918년)
독일 국군 (1918년 ~ 1934년)
독일 국방군 (1939년)
최종 계급 상급대장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주요 서훈 철십자 훈장 1/2급
장인 발터 폰 뤼트비츠

1. 개요2. 생애3. 평가4. 가족 관계5. 어록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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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제국, 나치 독일의 군인.

2. 생애

1878년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에서 태어나 1차 세계 대전에서 서부전선에서 종군,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육군 참모총장까지 올랐다.[2] 하머슈타인은 집권하기 전부터 나치를 혐오해서 파울 폰 힌덴부르크를 통해 1932년에 히틀러가 총리에 지명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군복을 벗었다. 장검의 밤 때 자신의 친우 쿠르트 폰 슐라이허가 살해당하고 친나치 성향의 국방장관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가 장례식 참석을 금지했을 때도 무시하고 참석했다.

2차 대전 발발 후에는 현역으로 복귀했으나, 폴란드 침공 때는 후방인 서부 전선의 분견군A 사령관,[3] 이후에는 실레시아에 배치되었다가 1939년 9월 21일 나치 이념에 충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역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반나치 활동을 계속 했고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도 연루되었지만 1943년 베를린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자신의 관에 스와스티카가 덮이는 것을 원치 않아서 가족묘에 매장되었으며, 히틀러는 어쨌든 고위급 군인의 죽음이라 화환과 애도 메세지를 보냈는데 하머슈타인의 가족들은 이를 분실해서 장례식에 두지 않을 정도로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나치를 거부했다.

3. 평가

이런 범죄 행위를 보고도 묵인한 군대에 속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 유언

독일 국방군 장성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아돌프 히틀러와 사이가 안 좋았어도 적당한 강압과 회유를 통해 나치와 타협한 반면 하머슈타인은 나치가 집권하기 전부터 죽을때까지 나치에 반대했다. 당대 독일 군부 인사들이 나치는 반대했더라도 왕당파이거나, 전쟁범죄에 연루되었거나, 인종주의에 공감했거나 해서 '히틀러에 반대했다'는 것만 빼고는 높이 평가하기 어려운 반면 하머슈타인은 나치 집권 후에는 한직에만 있어서 전쟁범죄를 저지를 수 없었고, 유대인 학살에도 공감하지 않고 최대한 탈출을 도왔다. 왕당파 성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장인인 발터 폰 뤼트비츠가 주도한 카프 폭동에 동참 요청을 거부했고, 노동 조합 간부들과도 친하게 지내서 "붉은 장군"이란 별명을 얻기까지 한 것을 보면 최소한 국가에 충성하고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의식은 확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4. 가족 관계

마리 루이즈(장녀, 1908~1999), 마리 테레사(차녀, 1909~2000), 헬가(삼녀, 1913~2005), 콘라트(장남, 1918~2007), 루드비히(차남, 1919~1996), 프란츠(삼남, 1921~2011), 힐더(막내딸, 1923~2012)까지 4녀 3남을 두었는데 다 나치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
  • 마리 루이즈와 헬가는 아예 독일 공산당에서 활동했다. 당대 공산당에 대한 인식에 비추어보면 하머슈타인이 활동을 용인한게 정말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데, 딸들의 의사를 존중했거나, 똑같이 나치에 대항하기 때문이기 때문에 용인한 것으로 보인다.
  • 마리 테레사는 부친이 유출한 유대인 학살 계획들을 근거로 유대인들을 설득해서 도피시키는 활동을 했다.
  • 콘라트와 루드비히는 참전하기도 했지만 부친이 사망할 즈음에 현역 부적합 판정을 받고 후방 근무를 했고, 1944년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하기도 했으나 실패 후 도피해서 살아남았다.
  • 프란츠와 힐더는 히틀러 암살이 실패한 이후 연좌되어서 어머니와 함께 수용소에 갇혔고 미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위의 생몰년을 보면 알겠지만 격동의 시대를 살았음에도 다 엄청나게 장수했다.

5. 어록

나는 내 장교들을 영리하고, 게으르고, 근면하고, 멍청한 네 부류로 나눈다. 대부분은 이 중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영리하고 근면한 이들은 고급 참모 역할에 적합하다. 멍청하고 게으른 놈들은 전 세계 군대의 90%를 차지하는데, 이런 놈들은정해진 일이나 시키면 된다. 영리하고 게으른 녀석들은 어떤 상황이든 대처할 수 있으므로 최고 지휘관으로 좋다. 하지만 멍청하고 근면한 놈들은 위험하므로 신속하게 제거해야 한다.

실제로는 쿠르트 폰하머슈타인에크보르트가 아예 없던 말을 지어낸거 같진 않고, 원래부터 특유의 임무형지휘 시스템 때문에 그 높은 판단력을 보장할 수 있는 양질의 장교단 인적 자원 육성에 큰 관심을 가지던 독일 군부에서 종종 하던 관용어로 보인다.

6. 관련 문서



[1] 볼데크 [2] 당시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참모부 보유가 금지되어 있어서 '군사국(Truppenamt)'이란 이름으로 사실상의 참모부를 보유했다. 따라서 정확한 명칭은 '군사국 국장'. [3] 이때 루드비히 베크에게 히틀러가 여기 시찰을 오면 암살하겠다고 했다는데 히틀러가는 한번도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