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6 00:32:31

콜럼버스 이전 시대

미국사의 시대구분
<colbgcolor=#002664> 건국전 선콜럼버스 시대
( 아메리카 원주민)
식민지 시대
( 13개 식민지)
혁명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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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전쟁 시대)
레이건 시대
21세기 탈냉전 시대 현대 시대
콜럼버스 이전 시대
Pre-Columbian era
파일:카호키아마을복원도.jpg
미시시피 문화의 최대 도시 카호키아 마운즈빌
<colbgcolor=#ddd><colcolor=black> 시기 기원전 약 2만 년 전 ~ 1492년
주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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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아메리카 이주 (기원전 20,000 ~ 8000년경)
푸에블로 1기 시대 (750년경 ~ 900년경)
푸에블로 2기 시대 (900년경 ~ 1130년경)
초기 미시시피 시대 (1000년경 ~ 1500년경)
중기 미시시피 시대 (1200년경 ~ 1400년경)
후기 미시시피 시대 (1400년경 ~ 1540년)
이로쿼이 연맹 결성 (1142년 8월 31일 또는 1450년경)
노르드인의 빈란드 정착 (1012년)
이전 선사 시대
다음 식민지 시대
1. 개요2. 역사
2.1. 인류의 아메리카 대륙 이주2.2. 북아메리카 원주민과 문화2.3. 선대 푸에블로 문화2.4. 미시시피 문화2.5. 이로쿼이 연맹의 결성2.6. 최초의 유럽인 접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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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사의 시대 구분. '선콜럼버스 시대' 또는 '선주 아메리카 시대(Precontact Americas)'라고도 하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바하마 제도에 도착함으로써 스페인의 아메리카 이주가 시작된 1492년보다 이전을 가리킨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각지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시대이다.

2. 역사

2.1. 인류의 아메리카 대륙 이주

북아메리카에 처음으로 도래한 사람들은 빙하기 시절 베링 해협[1]을 통해서 북아시아에서 육로로 건너온 것으로 추측되는 사람들이다. 그 시기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으나 많은 역사학자, 고고학자, 고인류학자들은 약 3만 년 전에 처음으로 북미 대륙이 인류에게 발견됐으며, 1만 5천 년~2만 년 전 대규모 이동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마지막 빙기를 필두로 아프로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육로는 완전히 끊어졌고, 곧 아메리카 대륙은 인류가 정복했으며 고대인들은 이후로 다양한 문화와 문명을 꽃피웠다.

2.2. 북아메리카 원주민과 문화

북미에는 너무나도 많은 부족과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북미 원주민 문화'라고 퉁치기에는 너무 범위가 광범위해지며, 그렇기에 식민지 시대 이전의 역사는 짧게 정리하기 굉장히 어려워진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이들 문화는 고인디언(Paleo-Indian, 혹은 Paleo-American) 문화에 기반을 두고 발달하였으며, 많은 문화권이 현재 미국과 캐나다 땅에 위치해 있는 그레이트플레인스와 오대호 주변으로 발달하였고, 또한 서부 및 남부의 인접 지역에도 자리잡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유사한 스토리의 창조 신화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미시시피 호를 숭상시하던 애니미즘 정서와 관련히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8천 년경에는 나디네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구사하던 사람들이 태평양을 항해해서 북미 태평양 해안에 정착했다. 이들은 후에 아사바스카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그 후에는 아파치 나바호 족 등으로 분화되었다. 이들의 언어와 문화는 고인디언 문화권을 필두로 생겨난 기존의 북미 원주민의 문화와 판이하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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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원주민의 민족적/문화적 분류.

2.3. 선대 푸에블로 문화

기원전 12세기경부터 four corners 일대에 정착한 선대 푸에블로인들은 절벽에 대규모 도시를 건설하고 선대 푸에블로(아나사지) 문명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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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주 메사버드 국립공원의 선대 푸에블로 절벽 궁전(Cliff Palace) 유적

2.4. 미시시피 문화

서기 9세기 들어서 미시시피 강을 중심으로 해서 소규모 도시 국가들이 형성되었고, 외부와 교역하거나 장대한 건축물을 만들고 인구 수만 규모의 도시도 지니는 등 미시시피 문화는 북미에 뿌리내린 수많은 문화권 중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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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문화 또는 관련 문화의 사람들이 거주했던 곳을 보여주는 지도

2.5. 이로쿼이 연맹의 결성

1142년경에는 온타리오 호수를 주변으로 하여 이로쿼이 연맹이 결성된다. 현대에는 프랑스어인 '이로쿼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이로쿼이 연맹의 사람들은 본인의 부족연맹을 하우데노사우니(긴 집에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렀다. 이로쿼이 연맹은 현재의 미국과 캐나다 영토에 걸쳐져 있었으며, 히아와타를 비롯하여 데가나위다(일명 피스메이커, Peacemaker), 지곤사세 등의 평화주의적 지도자들이 비슷한 방언 수준으로 다른 언어를 쓸 뿐인 모호크족, 오네이다족, 오논다가족, 카유가족, 그리고 세네카족이 모두 통일되어 평화로운 이웃사촌으로 살아야 한다며 구성한 일종의 연합부족의 형태였다.[2] 히아와타는 전쟁에 시달리는 이 다섯 부족들의 국민들을 위하여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설득해 나가며 연합을 이뤄냈고, 끝내 전쟁을 통해 공포적인 정치를 하던 모하크족의 지도자 타도다호까지 설득해내는 데 성공해 '대평화율법'을 선포함에 따라 다섯 부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다섯 부족이 연합되었기에 '오족 연합(Five Nations)'라고도 불리는데, 1722년 투스카로라족이 가입해 잠시 '육족 연합(Six Nations)'가 되었었다. 일종의 연방제이자 양원제로 이루어져 있는 이로쿼이 연맹의 정치 체계는 굉장히 민주적이었으며[3], 수세기 후 벤자민 프랭클린 조지 워싱턴은 이들의 후손들에게 직접 이로쿼이 연맹의 정치 체계를 배워 연구하였고, 이는 후에 완성되는 미국 헌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전설에 따르면 모든 부족들이 비무장하고 무기들을 모두 한 소나무 밑에 묻었는데, 흰머리수리 한 마리가 날아와 소나무 위에 앉아 울부짖었고, 이를 본 데가나위다가 "수리가 우리들을 항상 지켜볼 것이며 위험한 상황에서는 소리내 울어서 우리에게 알릴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미국의 상징이 흰머리수리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4]

북미 원주민들은 남부의 경우 이곳에 상륙한 콩키스타도르들에 의해 쫓겨나기 시작했고 동부도 처음에는 영국인을 비롯한 여러 이주민들과 공존을 꾀했으나 나중에는 이들도 스페인처럼 전부 학살하거나 외진 곳으로 쫓아내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미군과의 인디언 전쟁으로 이어진다.

2.6. 최초의 유럽인 접촉

유럽에서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것은 스칸디나비아에 거주하던 노르드인 바이킹(Viking)들이었다. 그들은 서기 1000년경에 북대서양의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거쳐 북아메리카 대륙의 북쪽 해안 뉴펀들랜드섬에 도착했다.[5] 이들 바이킹 무리를 이끌었던 레이프 에이릭손(Lief Ericson)은 그곳을 "풀의 땅"( Vinland)이라고 이름지었다.[6] 레이프 에이릭손의 무리가 북대서양에 도착한지 10년 뒤, 토르핀 카를세프니(Thorfinn Karlsefni)가 이끄는 집단도 탐험을 시도하여 오늘날의 캐나다 세인트로렌스 강 유역에서 약 1년간 정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착지들은 원주민들의 적대적인 태도에 부닥치고 본토와의 연계도 어렵자 되돌아오고 말았다. 이들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 saga)는 입을 통해 후손들에게 전설로 계속 구술로 전해지다가, 14세기에 이르러 문자로 옮겨져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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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은 해수면이 높아져 육로가 잠겨있지만 약 1만 년 전 빙하기 때만 해도 육로로 연결되어 있어 아시아에 사는 생물과 아메리카에 사는 생물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 [2] 캐나다의 국명은 이들의 언어에서 비롯되었는데, '마을'이라는 뜻의 '카나타(Kanata)'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3] 현 정치학자들은 이들의 정치 체계를 아나르코공산주의, 혹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로 분류하기도 한다. [4] 이로쿼이 연맹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Extra History'라는 역사 전문 애니메이션 유튜브 채널이 제작한 영상이 있으므로 참고 바람. 1편 2편. 한국어 자막도 있다. [5] 참고로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는 그 이름과 실상이 서로 반대인데, 몇몇 전승과 가설에 따르면, 이곳을 방문한 바이킹들이 살기 좋은 아이슬란드 땅은 그들이 독차지하고자 다른 외부인들이 오지 않도록 "얼음땅"(Ísland)이라 명명했고, 오히려 얼음이 가득 찬 그린란드는 어떻게든 이주민을 끌어모으기 위해 "푸른땅"(Grønland)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6] 꽤 오랫동안 실체가 오리무중한 전설 취급이었는데, 하필 빈란드 사가에서 포도가 언급되어서 빈란드의 빈(Vin)을 포도 및 포도주를 뜻하는 로망스어 유래로 오인하는 바람에 더 남쪽의 미국 동해안을 탐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고대 노르드어로의 접근을 시도하면서 좀 더 북쪽으로 조사지역을 옮긴 끝에 유적을 발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