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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管領(관령)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다음가는 고위 역직으로 초기에는 집사로 불렸다가 바뀌었으며, 쇼군을 보좌하여 막부의 정치를 통솔하는 위치였다. 즉 아시카가 가문의 집사, 총관, 청지기, 궁재와도 같은 사조직이면서 막부의 재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막부 쇼군 아시카가 가문의 분파인 호소카와, 시바, 하타케야마 가문이 번갈아서 취임했기에 3관령(3관)으로 불렸다.[1]
2. 상세
무로마치 시대의 삼관사직 체제는 센고쿠 시대에 들어가면서 깨져 사실상 호소카와 가문이 간레이 직을 독점했고, 쇼군을 허수아비로 두며 실권을 행사했다. 나중에는 이 자리를 두고 호소카와 가문 내에서결국 이 1차전에서 서국의 강자 오우치 요시오키와 손잡은 호소카와 타카쿠니가 승리했으나, 패배해서 최후를 맞은 호소카와 스미모토의 아들 호소카와 하루모토가 세력을 키워 역습을 가해 타카쿠니를 몰아내고 간레이가 되었다.[2]
그 뒤 하루모토도 가신 미요시 나가요시에 의하여 밀려나게 되었고, 그 뒤의 간레이들은 미요시의 꼭두각시가 되었으며 미요시 가문이 쇠퇴하자 미요시 가문의 가신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이후 오다 노부나가의 상락으로 간레이직 및 막부는 무력화되었고 이어서 무로마치 막부는 멸망했다.
간레이라는 호칭은 가마쿠라 시대에도 사용되었다. 싯켄을 간레이로 칭하기도 하였으며, 싯켄직을 독점한 호조씨의 직속가신들인 어내인(御内人)들의 수장은 나이간레이(内管領)라는 직책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