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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안첼로티/감독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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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장점
2.1. 강력한 플랜 A를 구축하는 역량2.2. 덕장
3. 단점
3.1. 좁은 선수 기용 폭3.2. 부족한 세부 전술3.3. 친인척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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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를로 안첼로티의 감독 스타일을 정리한 문서.

카를로 안첼로티의 감독 스타일 변화 분석글

2. 장점

2.1. 강력한 플랜 A를 구축하는 역량

안첼로티가 가진 최대 장점은 가지고 있는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선수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약점은 다른 선수와의 시너지로 가리며 팀에 최적화 된 조합을 단 기간에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밀란에서 두 번째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1], 첼시에서 첫 번째 시즌에 리그 우승, FA컵 우승, 레알 마드리드 1기 첫 번째 시즌에 코파 델 레이, 챔피언스 리그 우승, 레알 마드리드 2기 첫 번째 시즌에 리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등 단기간에 팀의 성적을 우승권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 것.

수비 전술을 강조하는 이탈리아 출신 답게 수비의 안정화를 강조하며[2], 미드필더 출신 답게 최적의 중원 조합을 만들어내 강력한 중원 장악력을 만드는 것에 특출난 실력을 보이는 감독이다. 이 때문에 수세적인 입장에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업계 최고 수준이다. [3] [4]
  • 밀란 시절에는 유명한 4-4-2 다이아몬드 / 4-3-2-1 크리스마스 트리 포메이션으로 미드필더 숫자에 4~5명을 투입하며 중원의 장악을 제1의 목적으로 하는 베스트 11을 구축했다. 안첼로티는 이 시기에 엄연히 현대축구에서 가장 세련된 전술을 구사했는데, 공격형 미드필더로 커리어 초기를 보냈지만 피지컬의 열세로 별 성과가 없던 안드레아 피를로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시키고 후방 플레이메이커로서 상대의 압박에서 벗어난 채로 패스와 경기 조립의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었고, 피를로가 가진 수비와 운동 능력에서의 상대적 약점은 운동 능력과 수비력이 뛰어난 젠나로 가투소가 채워줬으며, 보다 전방에는 다재다능함을 바탕으로 링커 역할을 하는 클라렌스 세도르프와 스피드를 활용한 역습 상황에서의 볼운반과 날카로운 패싱력을 활용한 찬스 메이킹, 정확한 결정력으로 득점까지 모두 정상급으로 해내는 카카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하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때의 안첼로티는 지금과 다르게 오히려 전술적으로 매우 진보된 감독으로 평가받았으며,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FM 등 축구 게임으로 안첼로티식 크리스마스 트리 전술을 구현하려는 유저들이 적지 않다.
  • 첼시 시절 역시 2007년 팀과 이별했지만 여전히 팀의 DNA에 깊게 자리잡고 있던 무리뉴의 4-3-3을 훌륭하게 계승해 미하엘 발락 - 마이클 에시앙 - 프랭크 램파드의 강력한 중원을 구축했으며, 공격적으로 활용되던 발락을 수비적으로 기용함과 동시에 램파드의 공격력을 극대화해 램파드에게 커리어 하이 시즌을 선물했다.
  • 첼시 시절에 이어 이번에는 다이렉트로 무리뉴의 팀을 이어받은 레알 마드리드 1기에는 첼시 시절과 달리 중원 재개편에 적극 뛰어들며 시스템부터 선수 구성까지 완전한 재개편을 진행했다. 무리뉴 시절 중원은 사비 알론소, 사미 케디라의 더블 피봇에 메수트 외질이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는데, 근본적으로 무리뉴 하에 선수비 후역습 기조의 수동적인 축구를 하기도 했고 세 명 모두 압박 대처 능력이 떨어져 빅게임에서 상대와 맞불을 놓는 양상이 벌어질 때 중원 장악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5] 안첼로티는 부임 후 과감히 외질을 쳐내고 앙헬 디 마리아를 왼쪽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하면서 히트를 쳤고, 2012-13 시즌 영입되었지만 서브에 머물러 있던 루카 모드리치를 중용해 디 마리아 - 알론소 - 모드리치라는 압박 대처 능력도 강하고 레알 마드리드가 무리뉴 하에서 가장 잘하던 속공은 물론 상대의 압박을 지속적으로 이겨내고 주도적으로 중원을 장악해 경기를 풀어내는 것이 요구되는 경기들에서도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결과 8강과 4강에서 지난 두 시즌 동안 레알 마드리드를 탈락시킨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을 만나서도 중원 힘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며 이들에게 승리했고, 레알 마드리드가 12년 동안 염원하던 라 데시마를 안겨주었다. 이후 2014-15 시즌에 알론소, 디 마리아의 이탈에도 영입생인 토니 크로스 하메스 로드리게스에게 이들의 역할을 계승시키며 팀에 성공적으로 녹아들 수 있도록 해주었다.
  • 이후 바이에른 뮌헨, 나폴리, 번번히 실패하며 에버튼 감독까지 맡게 될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으나 이런 흑역사 속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에서 티아고 알칸타라의 포텐을 폭발시키고 나폴리에서는 그의 지도 하에 파비안 루이스, 알랑 마르케스가 세리에 최상급 미드필더로 스텝업했으며, 에버튼에서 애제자인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쏠쏠하게 써먹는 등 미드필더를 잘 다루는 특유의 감각을 보여줬다. 다시 팀의 부름을 받은 레알 마드리드 2기에는 첫 시즌에는 모드리치를 제외하면 폼이 떨어진 크카모를 중용하면서 감이 떨어졌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후반기부터 적재적소에 에두아르도 카마빙가 페데리코 발베르데를 기용하고 성장시키면서 여전히 미드필더 다루는 감각이 뛰어남을 증명했다. 2022-23 시즌에는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로서 발베르데의 포텐을 완전히 폭발시키고 카세미루의 갑작스러운 이탈로 중책을 맡게 된 오렐리앵 추아메니를 나름 성공적으로 팀에 녹여내었고, 2023-24 시즌에는 주드 벨링엄을 마치 밀란 시절 카카를 다루듯 프리롤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하고 윙어들을 최전방 공격수처럼 좁혀 벨링엄을 보좌하며 벨링엄의 강력한 공격력을 최대치로 써먹는 모습을 보였다.

수비 전술에 있어서는 확실히 현대 축구에서 다수의 강팀들과 전술적으로 세련된 언더독 팀들이 추구하는 적극적인 프레싱과 높은 수비 라인에 비해서는 보수적인 모습이다. 빠른 수비 복귀와 공격수들의 수비 가담을 강조하지만 높은 수비 라인과 프레싱은 안첼로티의 팀에서는 전력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 사이 촘촘한 간격과 컴팩트한 수비를 강조한다.[6] 특히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라인을 높여서 맞불을 놓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미드필더들이 수비 라인 위에 블록을 쌓아 핵심 공간을 줄인 채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는 데에 집중한다. 하지만 중원의 선수 구성이 점점 젊어짐에 따라 어느 정도 전방 압박을 구사하는 모습이 늘어나고 있긴 하다.

공격 전술은 선수들의 창의성과 개인 역량에 맡기는 편이며, 플레이와 포지션에 있어서 선수들에게 매우 높은 자유도를 부여하는 감독이다. 이 또한 빌드업과 공격 전개를 모두 통제하는 현대 축구의 트렌드와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선수의 장점을 극대화해 알맞는 포지션에 배치하고 역할을 부여하며 이들을 위한 공격 루트를 만들어 일관성 있게 그들이 날뛸 수 있는 환경을 깔아주는 것이 안첼로티의 특징이다.

이로 인해 선수들 개개인의 컨디션과 상대의 대응에 따라 때때로 공격이 무질서하고 비효율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해줘 축구"라는 조롱을 받기도 하지만, 선수들의 창의성을 억제하지 않고 이들의 강점을 최대의 효율로 뽑아먹는 데에는 안첼로티 만한 감독이 없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어울리지 않은 전술 때문에 부진하거나 팀을 옮기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스타급 선수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조율하며 전술까지 맞춰주는 것은 쉽지 않다.

레알 마드리드 2기 기준 용병술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 강력한 플랜 A를 중시하기 때문에 갑자기 선발 라인업을 크게 뒤엎는 경우는 보기 힘들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답게 경기 전 분석은 물론 경기 중 흐름과 상대 팀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감각이 매우 뛰어나며 경기에 필요한 선수를 알맞은 타이밍에 투입해 흐름을 뒤집는 데에 신기에 가까운 역량을 보여준다. 또한 경기 중에 선수들의 위치나 역할을 세부적으로 조정해 변화를 주는 역량도 우수하다. 이러한 그의 역량으로 2021-22 시즌 챔피언스 리그 헬대진에서의 열세를 극복하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해줘 축구 한다고 비판받는 와중에도 전반전을 열세로 보내다가 후반전 전술 변화와 선수 교체로 이를 곧잘 뒤집어내며 명장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란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2. 덕장

"안첼로티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브라질에서 선발로 뛸 수 있도록 많은 조언을 해줬다. 그는 나에게 많은 자신감을 주었다. 그는 필요할 때면 항상 나에게 강경했다. 그는 나의 아버지와 같다."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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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밀란 시절에는 젠나로 가투소에게 걸핏하면 폭행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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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시절. 존 테리 드록바에게 쓰다듬당하는 안첼로티.안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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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시절. 엘 클라시코를 이기고 루카 모드리치에게 깜놀당하는 안첼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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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장난질을 당해도 무신경했지만, 치차리토 윙크에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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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2기 시절. 2021-22 시즌 라리가 우승 퍼레이드 당시의 모습으로, 선글라스를 쓴 채로 시가를 피우는 제스처를 취해 웃음을 자아냈다. 실제로는 시가를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전술 이상으로 안첼로티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한 덕목은 바로 그의 인품과 그로 인해 따라오는 선수들의 충성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선수 개개인을 존중하고 그들과 속깊은 대화를 나누며 깊은 신뢰를 쌓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선수와의 불화는 거의 없으며, 선수들도 안첼로티를 큰형님처럼 생각해서 미스터 혹은 코치로 부르지 않고 카를로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게 장난질의 희생양이 되는 감독이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 선수진은 선수들과의 친화력을 뽐내며 화목하게 지내는 안첼로티에 비해 무뚝뚝하고 단절된 모습을 보이기로 유명한 베니테스가 감독이 되자 하나같이 입을 모아 안첼로티가 너무 그립다고 말했고 특히 크로스와 모드리치는 이적까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 호날두가 직접 "안첼로티 감독은 화를 잘 내지 않는다"라며 친화력에 엄지를 치켜들었을 정도이다. 이에 안첼로티는 "그렇다, 나는 크고 순한 곰이라서 화를 잘 못 낸다."라고 말했다. 특히 안첼로티가 감독으로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팀 중 하나인 레알 마드리드는 스타들이 모인 팀인 만큼 선수들을 장악하지 못하면 온갖 불화설과 가십거리가 나오는 팀인데, 안첼로티의 부드러운 리더십은 이런 팀을 원팀으로 만들고 다독이기에는 안성맞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선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안첼로티가 전술적으로 유연성을 갖추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가 안첼로티의 대표적인 전술적 묘수였던 안드레아 피를로의 3선 기용인데, 이는 피를로 자신이 자신은 후방에서도 뛸 수 있다면서 먼저 안첼로티를 설득해서 이루어진 포지션 변경이었다. 피를로의 포지션 변경은 안첼로티의 원래 계획에 없었고 처음에는 성공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했음에도, 선수의 요청을 받아들여 본인의 전술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피를로의 포지션 변경은 선수들과 격의 없이 지내며 감독의 전술에 대해서까지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안첼로티의 코칭 스타일 덕에 이뤄낸 성과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높은 자유도가 방임, 태업 내지 공무원 모드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인데 그의 팀은 이런 일이 없다.

인터뷰를 해도 다른 빅클럽의 감독과는 달리 상당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어투를 사용한다. 첼시 감독 부임 시절에는 무리뉴 감독의 날카로운 독설을 들어왔던 팬들이 안첼로티는 좀 심심하다는 평이 많았다. 덕분에 언론이나 선수단과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는 편이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 일화로 안첼로티의 딸이 디에고 로페스를 두둔하며 사람들이 카시야스만 신경쓰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논란이 커지기 전에 빠르게 카시야스에게 사과를 전했다. 위 사실은 카시야스가 직접 밝혔다.

첼시에서도 선수단과 굉장히 원만한 사이였다. 존 테리가 말하기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무리뉴지만, 안첼로티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2등이다. 그리고 선수 관리 측면에서는 안첼로티가 내가 본 사람 중 1등이다. 그렇게 탑 레벨에서 오랫동안 감독하면서 요즘 선수들까지도 잘 다루는 모습을 보면 그의 능력을 알 수 있다." 라고 할 정도로 그의 선수단 관리 능력을 상당히 고평가했다.

나폴리에서도 선수단과는 사이가 좋았다. 나폴리에서 함께 했던 알랑 마르케스가 방출 명단에 오른 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제의를 거절하고 안첼로티 하나만 보고 에버튼으로 이적할 정도였다.

다만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선수단과의 불화로 경질당했고, 파리 감독 부임 이후부터는 가끔 인터뷰에서 독설을 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덕장, 보살 이미지가 조금씩 깨지기도 했다. 에버튼에서는 아쉬운 성적에도 구단이 안첼로티를 장기적으로 구단을 이끌 적임자로 보고 플랜을 짰는데 레알 마드리드에서 제의가 왔다는 이유로 바로 구단을 떠나버리면서 덕장 이미지에 흠을 남겼다.

3. 단점

3.1. 좁은 선수 기용 폭

AC 밀란, 레알 마드리드 시절을 제외하면 안첼로티는 한 팀에 3년 이상 머무르지 않았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서 무려 5번의 우승을 거둔 것에 비해 항상 빅클럽을 맡았음에도 리그 우승 기록은 6번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화려한 커리어에 유이한 흠집이다. 이로 인해 로테이션에 인색하고 주전급 선수들에 대한 혹사가 많기 때문에 단판전에 비해 장기 레이스에서는 약한 편이고 보수적인 선수 기용과 플랜 A에 대한 고집 및 유망주들에게 주어지는 제한적인 기회로 인해 팀의 장기적인 블루 프린트를 완성시키지 못한다는 비판이 안첼로티의 커리어 내내 따라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안첼로티가 이런 결과에 대해 비판받아야 하는 부분은 플랜 A의 요구 사항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 선수의 선발 기회를 크게 제한하는 그의 보수적인 경향 및 좁은 선수 기용 폭 때문에 시즌 중 핵심 선수의 결장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지, 안첼로티가 안토니오 콘테 마냥 무조건적으로 베테랑들을 지나치게 선호해 팀의 세대 교체를 방해한다는 비판이나 로테이션에 인색하다는 비판은 그의 커리어를 돌아보면 정확한 비판이라고 하기엔 힘들다. 안첼로티가 윈나우에 특화된 감독은 맞지만, 자신의 플랜 A에 맞는 로테이션 자원들이나 유망주들이 있다면 이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애초에 플랜 A를 선발 선수들의 성향에 맞춤 제작으로 짜면서 그 플랜 A를 짤 때 고려되지 않은 선발이 아닌 선수들도 똑같은 전술 하에 똑같은 경기력을 보이기를 기대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문제이다.
  • 유일하게 장기 집권을 한 밀란 시절 커리어는 리그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보이던 유벤투스 인테르에 밀려 리그 우승을 2003-04 시즌 단 한 번 밖에 하지 못했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 2002-03 시즌 우승을 시작으로 스쿼드 변화가 지속적으로 있어왔던 5년 동안 패권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7]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비판을 받는 것이 의아할 수 있으나, 내용을 파고들면 카카로 대표되는 주전급 선수들의 지속적인 혹사 및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로테이션 급 선수들에 대한 외면으로 시간이 갈수록 밀란의 라인업이 고착화되어 노인정이라는 조롱을 들을 정도로 평균 연령이 올라가고 경기력이 하락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안드리 셰브첸코 같은 주전급 선수들의 이탈에 대해 플랜 A를 세부적으로 수정하고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같은 자신의 기준에 맞는 새로운 주전급 선수들을 팀에 잘 녹여내는 대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주전급 선수들에 대한 혹사와 그로 인해 밀란 후반기에는 잇몸으로 버티듯 하는 위태로운 경기들이 매우 많았다.
  • 하지만 밀란 시절 세대 교체를 미루고 핵심 선수들만 기용하며 팀의 라인업 고착화와 고령화의 원인이 되었다는 비판을 안첼로티만 감수하기엔 그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안첼로티가 선수 기용에 있어서 상당히 보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안첼로티에게 영입 권한도 없고[8] 밀란의 기조가 윈나우였기 때문에 뎁스를 늘리고 유망주를 영입하는 것보다는 나이가 있고 비싸더라도 검증된 베테랑 선수들을 수급하는 데에 집중했고, 안첼로티 역임 당시 밀란에 등장한 유망주도 그가 어린 나이에도 월드클래스 공격형 미드필더인 후이 코스타를 밀어내고 적극적으로 기용한 카카, 그리고 뛰어난 재능을 가져 안첼로티가 여러 번 기용했지만 결국 팀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유약한 멘탈을 가져 팀에 녹아들지 못했던 요앙 구르퀴프 뿐이었다.
  • 첼시 시절 역시 베스트 11 위주로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첫 시즌에는 강력한 플랜 A를 바탕으로 리그 우승에 성공했지만 두 번째 시즌에 들어서서 프랭크 램파드의 부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며 팀의 공격 라인업의 무게가 현저하게 떨어졌으며, 그 결과 리버풀 전 패배를 시작으로 팀이 순식간에 무너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선두 경쟁에서 뒤쳐져 간신히 리그 준우승을 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첼시 시절 역시 하미레스, 존 오비 미켈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등 로테이션을 아예 안돌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첼시 시절을 갖고 단순히 로테이션을 하지 않는 감독이라고 못 박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밀란 시절과 마찬가지로 영입에 대한 권한도 경쟁자였던 알렉스 퍼거슨과는 달리 안첼로티에겐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100% 폭넓게 다룰 수 있는 스쿼드를 구상한 것도 아니었다. 감독의 의사와 관계 없이 페르난도 토레스에 거금을 지른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안첼로티를 비판해야 하는 부분은 램파드의 공백에 대한 플랜 B 부족이지 로테이션과 유망주 등용에 인색함은 아니다.
  • 레알 마드리드 1기 시절 역시 강력한 베스트 11을 기반으로 라 데시마를 일궈냈지만 두 번째 시즌 루카 모드리치의 부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토니 크로스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한 것이 수비적으로 큰 리스크를 일으키며 전반기 22연승이라는 미친 페이스를 보였음에도 후반기 부진한 결과 무관에 그치며 경질되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역시 안첼로티의 영입 권한은 없었으며, 14-15 시즌 정확한 패스 전개에 못지 않게 수비적 역량이 뛰어난 사비 알론소의 대체자로 패스 전개는 알론소에 전혀 뒤지지 않지만 수비력이 그리 좋지 않은 토니 크로스를 대체자로 영입한 것은 명백한 보드진의 의사로 이뤄진 결정이다. 안첼로티는 이러한 그들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최선의 플랜 A를 가동했지만 결국 스쿼드 밸런스에 한계가 드러난 것 뿐. 오히려 안첼로티에 대한 비판은 첼시 시절과 마찬가지로 모드리치가 부상으로 빠졌을 때 대처가 미흡했다는 점이다. 애초에 모드리치를 1대1로 대체할 수 있는 로테이션 자원이 있을 리가 없으니 모드리치가 부상으로 빠지면 대대적인 플랜 수정이 필요한데, 안첼로티는 보수적인 경향 때문에 플랜을 수정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고 볼 수 있다.
  • 안첼로티의 최대 흑역사 중 하나인 바이에른 뮌헨 시절 역시 좁은 선수 기용폭이 그의 발목을 크게 잡았다. 애초에 전술 컬러가 확실하고 빡센 바이에른 뮌헨의 컬처에 맞지 않는 감독이기도 했지만 전 시즌 펩 과르디올라 요주아 키미히, 킹슬리 코망 등 어린 선수들을 쓸만한 선수들로 키워놓은 것을 무시하고 30대가 한참 넘은 로베리를 주구장창 굴렸으며, 티아고 알칸타라를 자유로운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하며 그의 포텐을 폭발시킨 것은 좋았지만 반대로 토마스 뮐러를 철저히 외면했다. 오히려 또 다른 흑역사인 나폴리 시절에는 주전들의 체력 관리를 위해 로테이션을 적극적으로 가용했고, 나폴리가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큰 팀임에도 많은 선수에게 출전 기회를 제공했지만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나폴리 시절에는 후술하겠지만 전임 마우리치오 사리 하에 철저하게 세부적인 전술이 주입되는 것에 익숙한 선수단과 세부 전술을 짜는 것에 크게 관심도 없고 소질도 없는 안첼로티의 성향이 너무나도 상극이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에 가깝다.
  • 레알 마드리드로 복귀한 첫 시즌에는 크카모 중 모드리치를 제외하면 나머지 둘의 폼이 점차 떨어짐에도 이들을 중용하고 에두아르도 카마빙가, 페데리코 발베르데에게 특히 빅게임에서는 제한적인 출전 시간을 부여하며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긴 감독 커리어와 계속되는 하락세로 느낀 것이 있었는지 로테이션에는 그리 인색하지 않고 전력 우위에 있는 상대에게는 로테이션을 적극적으로 돌렸으며 카마빙가와 발베르데가 선발로 투입되는 경기에서는 그들의 강점을 살릴 수 있게 미묘하게 역할을 바꿔주며 그가 커리어 내내 지적받았던 플랜에 선수를 끼워넣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검증된 자원임에도 에덴 아자르, 가레스 베일을 철저히 외면하고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호드리구 육성에 힘을 쏟으며 베테랑에 의존한다는 비판을 정면으로 받아치는 데에 성공했다. 이로 토대로 여유롭게 리가를 우승하고[9]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한 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리그 막판까지 우승 경쟁을 펼치며 지친 리버풀에게 체력 우위를 점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 두 번째 시즌에도 호드리구를 변칙적으로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기용하고 다니 세바요스를 로테이션 자원으로 중용하는 등 전술적 유연성과 로테이션은 확실히 예전에 비해 개선된 모습이 보이고 있다. 또한 레프트백의 붕괴에 대해 에두아르도 카마빙가를 레프트백으로 활용하며 현명하게 대처하는 등 핵심 선수의 부재에 대한 대처도 확실히 개선된 모습이 있다. 세 번째 시즌에도 주전 공격수들인 비니시우스, 호드리구와는 확실히 성향이 다른 호셀루, 브라힘 디아스를 경기 중 교체나 로테이션의 일원으로 선발 투입했을 때 그들에 맞는 조정을 해주는 모습을 보아 더 이상 선수단 운영에 있어서 마냥 보수적이고 유연성이 떨어지는 감독이라고 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3.2. 부족한 세부 전술

안첼로티는 레알 마드리드 1기까지만 해도 전술적으로는 거의 비판을 받지 않았으나, 바이에른 뮌헨과 나폴리를 거치며 전술적 트렌드에서 뒤쳐진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레알 마드리드에 복귀해서도 안 풀리는 경기에서는 전술적인 비판을 많이 받는다. 2000년 대 밀란을 지휘하던 시기 안첼로티는 전술적으로 극찬을 받는 감독이었고 첼시에서도 주장 존 테리가 그의 세부 전술에 대해 극찬하는 등 전술적으로 굉장히 세련된 모습을 보여줬지만 2000년 대 말과 2010년 대 초에 펩 과르디올라, 위르겐 클롭, 디에고 시메오네라는 트렌드 세터 3인방의 등장과 함께 전술의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것은 물론 팀 컬러를 큰 틀 하에서 획일화하고 감독이 세부적인 것까지 크게 개입하는 추세로 변했는데, 여전히 팀 컬러를 확립하고 그 안에서 세부 전술을 다듬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최적화된 베스트 11을 구축하는 데에 집중하고 선수들에게 크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안첼로티가 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실패는 유프 하인케스, 펩 과르디올라 하에 주도적인 축구를 추구하고 세부 전술의 지속적인 훈련과 발전을 통해 상대를 분쇄하는 강력한 팀컬러를 구축한 바이에른 뮌헨의 컬처와 안첼로티 특유의 선수의 자율성에 맡기는 성향이 마찰을 일으킨 것이 가장 크다고 봐야하며[10], 이때 안첼로티는 커리어 사상 거의 처음으로 선수들과 공개적으로 불화를 겪을 정도로 선수단의 신임을 잃었다. 나폴리에서의 실패 역시 같은 맥락으로, 전임자인 마우리치오 사리는 펩도 한수 접고 들어갈 정도로 광적으로 선수들의 플레이를 통제하고 패턴 플레이를 지독하게 주입시키는 감독인데 안첼로티는 이런 전술적 디테일에 크게 투자하지 않는 감독이다 보니 사리의 훈련 및 전술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선수들과 마찰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꺾여가던 커리어를 반전시킨 레알 마드리드 2기에도 조직적인 세부 전술보다는 가장 잘하는 선수들에게 공격 테이블을 깔아주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경기력이 크게 꺾이기도 한다.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 안첼로티 체제 하에서 유망주들의 성장 및 팀의 성적에 큰 불만을 품진 않으면서도 안첼로티를 "해 줘 축구하는 감독"이라고 까는 것은 이러한 스타일 때문이다.

3.3. 친인척 관리

선수단 운영 및 전술 외적으로 지적되는 안첼로티의 문제는 친인척 관리다. 사실 안첼로티는 원래부터 자기의 사위를 자신의 직장에 고용해 왔었을 정도로 이 부분에 있어서 모든 이가 그러려니하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레알 1기, 2기 모두 사위 베니아미노 풀코 영양사로 재직할 정도였다.[11]

다만, 문제가 불거진 것은 자격이 없는 자신의 아들 다비데 안첼로티 폴 클레멘트의 후임 수석 코치로 임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리 자신의 아들이 능력이 좋아도 자격이 있는 이가 하는 게 맞는데 그게 아니다 보니 팀의 분란과 반목이 생기면서 제대로 무너지게 된게 뮌헨 시절 안첼로티이다. 어찌 보면 덕장과 라커룸을 잘 관리한다는 안첼로티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 이는 나폴리에서도 그대로 반복하여 그 시즌 나폴리는 전 시즌만도 못 한 성적을 거두고 온갖 잡음 끝에 안첼로티는 다시 경질되었다. 그러나 에버튼에서도 아들과 사위를 그대로 데려온다고 하니 이 가족주의는 절대 못 고칠 듯하다. 그나마 다비데는 레알 마드리드 수석 코치 부임 이후에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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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시즌은 챔피언스 리그가 아닌 UEFA컵에 참가했고 4강까지 진출했다. [2] 안첼로티가 이끌어온 팀들 중 풀 시즌 기준으로 경기당 1실점이 넘어가는 팀은 안첼로티 커리어 최저점이었던 20-21 시즌 에버튼이 유일하다. [3] 전반전에 다소 밀리더라도 체력을 아끼고 후반전부터 템포를 올리며 상대 팀을 공략하는 전략으로 챔스 결승전에서 리버풀, 도르트문트를 격파하고 우승했으며, 새로운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 상대로도 지나칠 정도로 움크리며 단 한번의 기회를 득점으로 살려내는 전술을 선보이는 게 그 예시이다. [4] 물론 맨시티가 트레블을 거뒀던 시기에 챔스 준결승전 2차전에서는 그야말로 맹폭을 당하며 0-4로 패배했지만, 어찌저찌 전략이 통하기만 한다면 안첼로티가 맨체스터 시티를 토너먼트에서 두 차례나 탈락시켰을만큼 꽤 유효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안첼로티는 수세적인 입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만큼 유연한하고 용기있는 전술을 펼칠 수 있다는 것. [5] 특히 2011-12 시즌 4강에서 맞붙은 바이에른 뮌헨이나, 2012-13 시즌 4강에서 맞붙은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이런 경향이 강했으며, 심지어는 16강에서 만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퀄리티 떨어지는 중원에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6] 2021-22 시즌 후반기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여러 경기에서 오른쪽 윙어로 나선 발베르데를 수비 시에는 빠른 기동력을 앞세워 종종 오른쪽 윙백에 가까운 위치에 배치시켜 백5를 만들게끔 주문하는 등 세부적인 조정을 통해 수비적인 안정성을 확보하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감독이다. [7] 2002-03 시즌 우승, 2003-04 시즌 8강, 2004-05 시즌 준우승, 2005-06 시즌 4강, 2006-07 시즌 우승 [8] 대표적으로 안첼로티는 팀의 전술을 바꿔 윙어를 기용하기 위해 프랑크 리베리 영입을 요청했었으나, 보드진이 이를 거절하고 공격수인 알레샨드리 파투를 영입한 예가 있다. [9] 물론 디펜딩 챔피언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이벌 바르셀로나가 전반기에 크게 무너지며 일찌감치 격차를 벌릴 수 있기도 했다. [10] 펩의 빡세고 복잡한 훈련에 익숙해져 있던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이 안첼로티의 느슨한 훈련에 불만을 가졌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11]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안첼로티는 "내 딸이 걔랑 결혼한 게 그렇게 잘못이야?"라고 꽤 불쾌해했다. 그러나 이 사위도 장인이 일이 없는 경우엔 쭉 무직 상태였기에 낙하산 취급받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