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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시가 붙은 건물은 현재 창덕궁 영역이다. | |||||||||||||
경복궁 · 창덕궁 · 창경궁 · 덕수궁 · 경희궁 |
대한민국 사적 제123호 창경궁 | ||
<colbgcolor=#bf1400> 창경궁 집춘문 昌慶宮 集春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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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 와룡동) | |
건축시기 | 1484년 (창건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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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집춘문[1] |
[clearfix]
1. 개요
창경궁의 출입문이다. 성균관과의 거리가 걸어서 1 ~ 2분 걸릴 정도로 굉장히 가깝다. 그래서 임금이 성균관에 갈 때 주로 사용했다.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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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동궐도〉 집춘문 |
2.1. 거둥길
대한제국 멸망 이후 몇십 년간 문 밖에 일반 가정 집 및 상가들이 들어서서 한동안 출입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2008년에 종로구에서 집춘문에서 성균관까지 이어지는 도보 코스를 만들고 그해 12월 5일에 준공식을 가졌다. 그리고 ‘거둥길’이란 이름을 붙였다.길이는 66m, 폭은 2~3m로, 예산은 1억 5천여만원이 들었고 공사 기간은 총 6개월이 걸렸다. 공사를 위해 주변의 담 등을 헐었고, 높은 지대에 있는 집춘문을 편하게 왕래할 수 있게 나무 계단을 만들었다. #
그러나 종로구와 문화재청 사이의 의견 충돌이 생겼다. 그래서 거둥길은 유령길처럼 방치 상태로 놓였고, 준공식 날이 집춘문이 열린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를 참조. 이후 현재까지 닫혀있다.
3. 구조
- 1층[2] 목조 건물이다. 칸 수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총 1칸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용마루와 내림마루는 기와를 얹어 마감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공포를 두지 않은 민도리 양식이다.
- 문짝은 나무 판으로 중앙 열에 달았다. 양 측면의 칸 마다 중인방을 끼운 뒤 위는 벽으로 마감했고, 아래는 마감하지 않은 채 외부와 통하게 했다. 천장은 서까래와 구조들이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만들었고, 문 위에는 벽을 두었다.
[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경궁관리소.
[2]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