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19:43:01

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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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서(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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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宓
진밀[1]
파일:external/i6.qhimg.com/t017ce25cdde581e005.jpg
무후사에 서 있는 진밀의 상.
최종직위 대사농
성씨 (秦)
(宓)
자래(子勑)
생몰 기간 ?년 ~ 226년
고향 익주(益州) 광한군(廣漢郡) 면죽현(綿竹縣)

[clearfix]

1. 개요

삼국시대 촉한의 신하이며 는 자래(子勑)로 익주 광한군 면죽현 사람.

한국에서는 '진복'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은 한국에서 '복'과 '밀' 두가지 발음으로 읽히고, 삼국지연의의 국내판에서는 주로 '복'으로 표기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지 시리즈의 한글판에서도 모두 '진복'으로 번역되어 있고,[2] 국역 삼국지에도 '진복'으로 나온다. 그러나 후한서에서는 秦密로 표기하였고, 자치통감에서도 宓에 대한 주석에서 '宓,莫必翻,通作密。(宓의 반절ㅏㄱ+ㅍㅣㄹ이다. '밀(密)'이라고도 쓴다.)'[3]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올바른 이름은 '진복'이 아닌 '진밀'이다.[4]

2. 정사 삼국지

젊을 때부터 어린 시절부터 재능과 학식이 있었으므로 주나 군에서 초빙되었지만 병을 핑계로 나서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당신은 자신을 소부, 허유, 사호에 비견하고자 하지만 어째서 문재를 발휘해 과시하고자 하냐고 물으니, 진밀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내가 쓴 문장은 모든 어휘를 다 써서 쓴 것도 아니며, 내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한 것도 아니라 문재를 과시한다는 말 따위를 말할 수 있겠소?, 호랑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름다운 겉모습을 가지고 봉황은 태어나면서부터 오색찬란한데, 이를 가지고 색채로 자신을 꾸민다고 할 수 있겠소?, 특성이라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딸려오는 것이오.

팽양 같이 남을 깔보기로 유명한 사람도 진밀을 칭찬하면서 자신의 태수 허정에게 추천할 정도였지만 그때마다 그는 병이 있다고 하며 나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간섭했던 것은 주목인 유언에게 상서를 올려 유학자 임정조를 추천했던 일이다.

194년, 유장이 주목이 되자 왕상이 말하길
빈천하고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역시 언제나 그대와 몸을 끝가지 할수 있습니다! 변화는 보옥에 의지하여 세상에 이름을 빛냈습니다. 응당 한번 와서 주목( 유장)과 만나십시오.

진밀이 답장을 하여 말했다.
과거 요(삼황오제) 허유를 우대한 것에는 넓지 않음이 없었지만, 자신의 두 귀를 씻었고, 초나라에서 장주를 초빙함에 있어서는 넓지 않음이 없었지만, 낚시대를 쥐고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역>에서 말하기를 '확실하구나, 뽑을 수 없는 것이' 라고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빛날 수 있습니까? 군국의 현명함이 있은 후 자식이 훌륭히 보필하는 것입니다. 이때 소하, 장량의 책략을 실행해도 지혜가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밭두렁 사이에서 등으로 태양을 받으며 안희처럼 보잘것 없는 음식을 먹고, 원헌의 띠로 두른 허름한 집을 노래하며, 때때로 산림이나 연못에서 노닐며, 장저, 걸익 등의 무리와 짝하며 검은 원숭이의 슬픈 소리를 듣고, 학이 소택에서 우는 것을 보며, 편안한 생활을 즐기며 걱정이 없는 것을 복으로 알고 있습니다. 텅비고 헛 된 이름 속에 있고 영험이 없는 거북이의 지위에 있어 나를 아는 자가 적으면, 내가 고귀하다고 한것이 됩니다. 이것은 제가 지향하는 것에 이를 수 잇는 때인데, 어찌 고통스럽고 슬프겠습니까?

왕상이 엄군평과 이홍의 사당을 세우자 편지를 보내 이것이 같은 고향 사람을 후대하는 것이라 하면서 익주 문사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사마상여를 위해 사당을 지으라고 했다. 호족 이권이 전국책을 빌려 식견을 늘리고자 했는데, 전국책 종횡가의 책이므로 좋지 못하다고 했다.

214년, 유비 익주를 평정하자 이번에는 광한 태수 하후찬이 진밀을 초청하여 사우좨주로 삼아 오관연을 겸임하도록 했으며, 유비가 진밀을 중부[5]라고 불렀으나 진밀은 이번에도 질병이 있다면서 집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하후찬은 공조인 고박과 주부 왕보를 데리고 요리사와 식품을 갖고 진밀의 집을 찾아 가는데, 이번에도 진밀은 누워서 문답을 할 뿐 결국 거절했다.

하후찬이 고박에게 질문했다.
그대의 주(익주)에서 생산하는 생활 필수품은 실제로 다른 주보다 단연 뛰어나지만, 선비들은 다른 주와 비교하면 어떤지 모르시오.

고박이 대답했다.
서한 이래로, 작위를 받은 자는 아마도 다른 주만 못할 것입니다만, 저작을 하여 세상의 사표가 되게 하는 점에서는 다른 주와 비교하지 못합니다. 엄군평은 황제, 노자의 학문을 본 후에 지귀를 지었고, 양웅 역경과 태현(太玄), 논어를 보고 <법언>을 지었고, 사마상여는 한무제를 위해 봉선의 문장을 제정했는데, 오늘 날 천하에 모두 알려졌습니다.

하후찬이 중부는 어떠하지 묻자 진밀은 수판(簿)으로 얼굴을 치고 말했다.
원컨대 명부께서는 중부라는 이름을 작은 풀에 의탁하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명부를 위해 일의 근원을 설명할 수 있기를 요청합니다. 촉에는 문부산이 있고, 장강이 그 산의 한가운데로부터 흘러나오고, 천제는 그곳에 번창할 운을 모았으며, 신명은 이 땅으로 행복을 세웠기 때문에 비옥한 땅이 천리나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회하와 제하등 네 하천 가운데, 장강이 그 우두머리입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우는 석뉴에서 태어났는데, 지금은 문산군입니다. 과거 요가 홍수를 만나고 곤이 물을 잘 다스릴 수 없었는데, 우는 장강을 통해 황하의 제방을 무너뜨려 동쪽 바다로 흘러가도록 하여 백성들을 위해 재해를 제거했습니다. 인류가 있는 이래로 공이그 를 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둘째입니다. 천제는 방(房), 심(心)의 움직임을 보고 정치를 펴고, 삼(參), 벌(伐)을 보고 정책을 결정했는데, 삼과 벌은 익의 분야(分野:하늘의 별자리와 서로 일치하는 지방)입니다. 삼황은 지거 (祗車)를 타고 곡구를 나왔는데, 지금의 사곡에 해당합니다.[6]

이것은 곧 우리 주의 지리입니다. 명부의 고견으로 평론하면 천하의 비교하여 어떻습니까?

그 결과 하후찬은 반나절을 보내면서도 어떠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익주에서 진밀을 초빙하여 종사좨주로 삼아 그제서야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좌중랑장, 장수교위에 임명되었다. 220년에 유비가 황제를 칭한 뒤에 오나라를 치려고 하자 천시에 따르면 지금 유리할 수가 없어 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이에 유비는 화가 나 진밀을 옥에 가두었다가 풀어주었다.

224년에 제갈량이 익주목을 겸하면서 익주별가, 좌중랑장, 장수교위로 임명되었으며, 오나라에서 장온이 오자 그와 문답을 하는데 막힘이 없자 장온은 진밀을 존경하게 된다. 오나라가 사자 장온을 보냈을 때, 백관들을 모두 가서 전송했다. 사람들이 모두 모였는데 진밀이 아직 가지 않자, 제갈량이 여러차례 사람을 보내 재촉했다.

장온이 그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제갈량이 익주의 학자라고 말했다. 진밀이 도착하자 장온은 어떤 학문을 했는지 질문했는데 진밀은 다섯 척의 어린이조차도 모두 학문을 하거늘, 하필 나에게 묻느냐라고 했다. 장온이 하늘에는 머리가 있는지 묻자 진밀은 시경을 인용해 서쪽에 있다고 했다. 또 하늘에 귀가 있느냐고 묻자 다시 시경을 인용해 귀가 있다고 했고 하늘에 발이 있느냐고 했을때도 똑같이 시경을 인용했다.

장온이 하늘에는 성이 있는가 묻자 진밀은 천자의 성이 유씨므로 하늘의 성도 유씨라고 대답했다. 이에 장온이 해는 동쪽에서 태어난다고 은근히 오나라를 띄우지만 진밀은 "동쪽에서 태어나지만 서쪽에서 죽습니다." 라고 응수했다. 대답은 울리는 것 같이 질문에 따라 나왔다. 진밀의 문재와 변론은 모두 이와 같았다. 이는 촉한의 신하로서 오나라의 사신에 맞서 촉한의 정통성을 옹위하고 국격을 사수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던 것이다.

대사농으로 승진했고, 건흥 4년( 226년)에 세상을 떠났다. 진밀은 황제의 계보를 적은 문장에서 오제를 같은 일족으로 한 것을 보고 그렇지 않은 근본을 밝혔다. 또 황, 제, 왕, 패, 용에 대해 논의를 전개하였는데, 이치상 매우 통했다. 초주는 젊었을 때, 여러차례 그를 방문하여 질문하고, 그의 말을 <춘추연부론(春秋然否論)>에 기록했다.

이전에 제갈량 동부 임안의 장점을 묻자 동부에 대해서는 터럭같은 작은 선이라도 찬미하고 티끌만한 악이라도 비난했으며, 임안은 남의 선한 일을 기록했지만 과오에 대해서는 잊었다고 얘기했다. 진수는 '진밀은 처음에는 세속을 벗어난 고고한 사람을 흠모했지만, 어리석은 사람과 같은 신실함은 없었다. 그러나 응대하는 재능에는 남음이 있었고, 문장은 웅장하고 화려했으므로 한 시대의 재능있는 선비라고 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고 계한보신찬에 따르면 사농(司農, 진밀)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고, 아름다운 문장을 썼다. 문장은 화려하고 내용은 논리정연하며 탁월한 광채가 있었다.

3. 삼국지연의

처음에는 유장을 섬기고 있는 것으로 나오며, 유장이 항복할 때 유비의 사자로 온 간옹과는 예전부터 아는 사이라고 나오면서 간옹이 오만하게 구는 것을 꾸짖었다.

그 후 유비를 섬겨 제갈량과 함께 유비가 황제 지위에 오르도록 돕는다.

후에 오에 출병하려는 유비를 말리려다 투옥되었으며, 오의 사자 장온이 왔을 때는 그의 오만한 태도에 화가 나 취한 척하면서 정사의 일화처럼, 그의 문제를 모두 논파하여 장온을 불쌍하게 여긴 제갈량이 중재를 하러 온다.

4. 기타

성도에 있는 무후사에는 유물로 만들어진 문신랑과 무장랑이라 하는 흙으로 빚은 상이 있는데, 문신랑 중 방통, 간옹, 부융, 여개, 비의, 동화, 등지, 진진, 장완, 동윤, 마량, 양홍, 정기 등과 함께 진밀의 토용이 전시되어 있다.

5. 미디어 믹스

5.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429.jpg
삼국지 12, 13, 14

한자를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에 매번 '진복'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사료는 많이 남아있으나 크게 임팩트 있는 일화가 없어서 인지 몰라도 능력치는 고만고만하다.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15/6/71/78. 배반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12/6/70/71/76에 특기는 기술, 반목, 항변 3개. 기술 셔틀로 쓰라는 소리다.

삼국지 11에서 조금 상향되어 16/7/72/78/76의 능력치가 되었지만 특기가 없다.

삼국지 12에서는 통솔이 상향되어 31/7/73/78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특기는 무력저하. 일러스트는 두 손을 모으면서 오를 치려는 유비를 말리기 위해 간언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삼국지 13에서는 드디어 제대로 번역되어 진밀로 나온다. 통솔 31/무력 7/지력 73/정치 78로 삼국지 12와 동일하다. 특기로는 농업 1, 설파 1을 갖고 있다. 전수특기는 농업이고 전법은 수비지휘로 병과 적성은 C/C/C.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14, 무력 7, 지력 70, 정치 75, 매력 76으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17, 지력과 정치력이 각각 3 하락했다. 개성은 동지, 조달, 학자, 주의는 명리, 정책은 종횡술 Lv 3, 진형은 장사, 전법은 혼란, 매성, 진정, 친애무장은 간옹, 왕상, 혐오무장은 없다.

5.2. 신삼국

더빙판 성우는 정성훈 / 나가타 마사야스.

충언을 마다하지 않는 문관으로 등장한다. 관우에 이어 장비마저 죽자 유비는 복수심에 미쳐서 손권과 전쟁을 일으키려 하며, 진밀에게 격문을 쓰게 한다. 진밀이 유비를 만류하며 한나라를 멸망시킨 조비부터 처단해야지 손권과 전쟁을 하면 안된다고 간언하자, 유비는 격노하여 진밀을 참하라고 명하며,[7] 제갈량이 대신 격문을 쓰겠다고 나서서 겨우 진밀은 목숨을 부지한다.[8][9]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와 다르게 한국어 더빙판에서도 이름이 제대로 진밀이라고 나온다.


[1] 후한서 권82하에는 秦密로 나온다. [2] 이는 일본에서 이 사람의 이름을 しん ふく로 읽었기 때문이다. 삼국지 시리즈가 일본 게임이니 번역가들이 고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진복으로 번역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3] 출처. [4] 宓의 뜻, 발음 설명의 출처. [5] 제환공 관중을 존중하여 중부라고 불렀는데, 훗날 탁월한 신하에 대한 존칭이 되었다. [6] 촉기蜀記』에서 이르길, "삼황三皇이 기거(祗車, 신화 속에 나오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수레)를 타고서 곡구谷口(계곡이나 골짜기의 입구)에서 나왔다."라 하였는데 진밀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야곡으로 알고 있는지는 상세하지 않습니다. [7] 처음부터 처형을 명한건 아니고, 자긴 이미 뜻을 굳혔으니 더 이상 논하지 말라며 경고부터 했다. 그럼에도 진밀이 굽히지 않자 빡쳐서 처형을 명한 것. [8] 유비는 격문을 대신 쓰겠다는 제갈량에게 '내가 쓸테니 그럴 필요 없다'며 진밀의 투옥을 명하고 처리는 정벌을 끝내고 논하겠다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는 모두 적으로 간주하겠다며 재차 경고한다. [9] '저 놈을 끌고 가 참하라'는 대사는 조조의 전용대사로, 관우 장비가 죽기 전까지 유비는 함부로 사람을 죽이라고 명한 적이 없다. 관우 장비가 죽은 후, 광기로 물들어가는 유비를 묘사하는 명 에피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