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30 17:40:25

종횡가

제자백가
농가 도가 묵가 법가 명가 병가 유가 음양가 잡가 종횡가 소설가


1. 개요2. 어원3. 상세4. 현대 외교5. 사상가6. 서브컬쳐에서의 활용

1. 개요



중국 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하나로, 대표적인 유세객(遊說客)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의 외교정책 ''(合縱連橫)에서 유래한다. 진나라의 성장과 관련 있는 제자백가로 진 혜문왕 때 연횡책을 주장한 장의와 동시대에 합종책을 주장한 공손연,[1] 그리고 진 소양왕 초기에 합종책으로 진나라와 맞섰던 소진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2. 어원

합종연횡에서 연횡(連橫)은 한자를 달리 해서 연횡(連衡)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衡은 '저울대 형'이라는 뜻과 소리 외에도 橫과 똑같이 '가로 횡'이라는 뜻과 소리도 가지고 있다. 저울추를 거는 막대기인 저울대는 '가로로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하므로, 이러한 가로대의 의미와 개념에서 유추해서 衡을 '가로 횡'의 뜻과 소리로 사용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아울러 유세(遊說)란 춘추전국시대에 사상가, 책사, 학자 등이 자신의 정견, 학설을 설파하며 각지를 돌아다니던 행위를 가리키던 말로, 오늘날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 또는 자기 소속 정당의 주장을 선전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인 '유세'도 여기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소진 등이 주장한 합종책(合縱策)이란 진(秦)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 , , , , 6국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의미이며, 이들 나라가 남북(세로)으로 합하는 형세에 빗대어 '합할 합(合)'자 + '세로 종(縱)'자를 써서 합종이라 일컬었다.

한편 장의 등이 주장한 연횡책(連橫策)이란 진나라와 이들 6국이 개별적으로 동맹을 맺어 화친해야 한다는 것으로, 6국의 단합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고자 하는 합종책에 맞서는 주장이다. 진나라와 다른 나라가 동서(가로)로 이어지기에 '이을 연(連)'자 + '가로 횡(橫)'자를 써서 연횡이라 일컬었다.

3. 상세

때는 기원전 4세기 말로 당시 중국의 지리적, 문화적 중심부인 중원에서 벗어난 위치 탓에 시골 변두리 듣보잡 취급 당하던 진나라가 법가 상앙의 변법(개혁)으로 국력을 키워 중원을 도모하려 함에 위기를 느낀 나라들이 소진의 유세에 설득되면서 시작된다. 연나라부터 설득했는데 이때는 그저 "조나라랑 동맹 맺으세요. 진나라가 여기 쳐들어오는건 쉽지 않은데 조나라가 쳐들어 오면 끝장나요." 였는데 정작 조나라에 가서는 연나라뿐 아니라 6국 모두가 맺어야 한다고 연설하는데 사기의 소진열전에서 5쪽이나 될 정도의 대 연설이었다. 뒤이어 잘 알려져 있는 소꼬랑지가 되느니 닭대가리가 낫다 (寧爲鷄口 無爲牛後, 영위계구 무위우후) 는 논리도 한나라 왕을 설득하면서 나온 것이다. 위나라에서는 "위험한 걸 지금 쳐버려야지 놔두면 커진다." 라는 식으로 불안감을 조장했고 제나라에 가서는 "제나라의 왕은 천하의 으뜸" 이라며 추켜세워주었고 초나라에서는 "이 동맹이 이뤄지면 초나라가 천하의 으뜸이 되겠지만 성사되지 않으면 진나라가 으뜸이 될 것이다." 라며 경쟁심을 부추기는 식으로 차례차례 동맹을 맺게 했다. 의외로 이 말들은 나름대로 맞는 말이었거나 맞는 말이 되었는데 우선 한나라의 경우 결국 진소양왕이 죽었을 때 한나라 왕이 직접 조문을 와야 했고 위나라의 경우 이미 진효공 시절에 공자 앙이 붙잡히고 하서지역을 빼앗겨 천도까지 해야 했으며 제나라는 제민왕 때에 진나라가 "개나소나 가진 왕 대신 내가 서제, 너님이 동제라고 하는 게 어떠심?" 이라고 할 정도로 국력이 강성했고 초나라의 경우는 초나라가 합종과 연횡 사이에서 이랬다저랬다 해서 진나라의 천하통일을 막지 못했지만 반대로 초나라가 확고하게 진나라를 배척했다면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도 있다.

이에 맞불을 놓은 게 장의인데, 묘하게도 장의는 소진과 함께 한 스승, 귀곡자(鬼谷子)를 모시고 공부하였으니 이른바 동문수학한 사이이다.

현대적인 학문 개념에는 잘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동양의 제자백가 사상을 깊게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면 종횡가가 한나라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학문의 한 갈래로 분류되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게 되어버렸다.[2]

그러나 현대 외교로 재해석한다면 합종작은 국가끼리 뭉쳐 거대한 국가에 대항해야 한다라는 것이고 연횡은 _거대한 국가에 대응하기 위해 뭉친 동맹을 하나하나 꼬드겨 무너뜨리는 방법_이다. 현대 외교 용어로 말하면 다자주의(multilateralism) VS 일방주의(unilateralism).

전국시대가 열린 직후, 전국칠웅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던 것은 위와 제였지만, 점차 중원의 주도권은 진나라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진의 국경이었던 하수와 진령산맥은 천혜의 요새였고, 두 자연 요소가 만나는 함곡관만 틀어막아 버리면 외부 세력이 진나라 영토 안으로 진격하는 것은 당시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한 당시 다른 6개국은 협소한 영토 탓에 자급자족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중세 이후로는 강남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양자강 일대가 엄청난 생산성을 보였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양자강 일대는 그냥 늪지대였기 때문에 초나라도 땅만 넓지, 생산력은 미미했다. 그나마 일단 땅은 무식하게 넓어서 진나라에게 열심히 얻어맞아도 천도를 하며 버틸 수 있던 것과 어쨌거나 땅이 넓은 만큼 결코 인구가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진나라는 영토 안에 관중평야가 존재해서 자급자족 및 물자 축적이 가능했던 점도 진나라의 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 중세 이전까지 중국 역대 왕조들의 수도 소재지가 대부분 관중 평야에 자리 잡았다는 점만 봐도 이 일대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중국 왕조들의 도읍이 지금처럼 동부로 옮겨지기 시작한 것은 수양제에 의해 대운하가 건설되어 물자 비축이 용이해진 이후이다. 참고로 진나라의 위치가 무조건 유리한 것은 아니었고, 나름대로의 불리함도 지니는데, 그것은 바로 중원 서부에 치우쳐서 강족을 비롯한 유목 민족들과 맞닥뜨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진나라 건국 초기는 이 이민족들과 생사를 건 피 터지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 주나라가 수도를 동쪽으로 옮겨야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서쪽에 박혀 있었기에 초기에는 중원 국가들에게 좀 무시당하기도 했다. 실제로 진(秦)나라는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진(晉)이 조, 위, 한으로 쪼개지기 전까지는 목공 대를 제외하면 중원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상술한 유리함을 지닌 진은 시간이 흐르면서 세력을 팽창하고자 시도했고, 6국 가운데 진과 국력으로 맞불을 놓을 수 있는 나라는 없었기 때문에 외교적인 술책을 고안해 내야 했다. 그리고 이 고민 속에서 종횡가가 등장한다. 기원전 4세기 후반 위(魏)의 공손연(公孫衍)은 처음으로 합종책을 제안하면서 연·조·위·한·제·초 6국이 연합하여 진에 대항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6국 간에도 서로에 대한 반감이 컸을 뿐만 아니라, 진나라의 방해 공작까지 겹치면서 이는 실패로 돌아간다. 합종책을 견제하기 위해 진나라는 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렸다. 뇌물이나 반간계는 기본이고 암살도 애용됐다. 거의 냉전 시대 당시 미국과 소련의 첩보전을 뺨치는 수준.

한편 진은 합종책에 대한 대항책으로 위의 장의(張儀)가 제안한 연횡책을 자국의 외교 노선으로 채택하는데, 연횡책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진이 6국 중 상대적인 약국을 도와 그 나라가 세력을 확대시키게끔 도와주자는 전략이다. 그리고 초나라가 진의 연횡책에 낚여 제나라와의 동맹을 파기하면서 진의 국력은 한층 더 커지게 됐다. 근데 뭐 이게 이상하지 않은 게 이후에도 초나라는 국력은 큰데 외교적으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여 타국의 신뢰를 사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아차 싶었던 6국들은 소진(蘇秦)의 주장에 따라 다시 합종책을 취하였다. 6국이 연합하여 진을 공격하게 되자 진도 할 수 없이 점령하였던 땅에서 후퇴했다.[3] 이후로도 합종과 연횡은 반복되었는데, 전국칠웅들은 손익 계산에 따라 합종과 연횡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를 비꼬아서 조진모초(朝秦暮楚), '아침에는 진나라 편, 저녁에는 초나라 편이다.' 라는 고사성어도 등장한다.

위와 같은 이유로 진나라를 상대로 한 합종은 결과적으로는 각국의 이해득실 차이로 유야무야 되었는데, 정작 합종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 건 제-연 전쟁 당시 제나라를 상대로 연 조 위 한 진 5국이 합종군을 맺어 제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밀어붙인 사건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해득실이 달라 합종이 쉽지 않던 전국칠웅들이 한마음으로 뭉쳐야 할 마음을 먹었을 정도로 당시 제나라의 패악질과 외교력 부족이 심했다는 반증이지만.

개념 자체는 매우 보편적이기 때문에 형태상으로는 서양사에도 나타나고, 아래 서술된 것처럼 근현대 외교에도 적용된다. 특히 고대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초기의 동맹관계가 로마를 중심으로 한 라틴 동맹으로 변모한 것은 로마 중심의 연횡책의 대표적 사례다. 또한 2차대전까지의 근세 유럽 열강의 얼키고 설킨 외교사는 그야말로 국익에 따른 합종연횡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4. 현대 외교

정치, 경제, 군사 의제가 주 안건인 현대 외교도 어떻게 보면 합종과 연횡을 오가는 외교 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세기 냉전에서 소련은 바르샤바 동맹 이외에도 세계 각지의 반미[4] 국가와 연계하여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는 합종책으로 도전하였으며, 반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한국, 대만, 남태평양에서는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영국을 통해 유럽까지[5] 바퀴살처럼 동맹 관계를 구축하고 중국을 끌어들여 소련 진영에서 이탈시키는 연횡책으로 대응하여 결국 승리하였으며, 21세기 들어 중국이 급부상하자 미국은 재차 중국과 러시아 포위, 나아가 붕괴를 위해 연횡책을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합종연횡이 이뤄지던 전국시대 진나라와 현대의 구도에서 연횡책을 쓰는 쪽은 최강국(진나라, 미국)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연횡책이라는게 좀 센 나라들이 협력해서 나에게 대들지 못하게 만드는게 목적이고 합종책은 (상대적으로든 절대적으로든) 약한 나라들끼리 모여서 강한 나라에 대응하는 방책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21세기초 현대는 연횡을 원하는 일극주의가 미국, 합종을 원하는 다자주의의 대표가 중국인 상황인데, 확실히 탈냉전기부터 코로나19 직후까지는 미국의 연횡이 먹혀들어가고 있었다. 미국은 중국의 외교를 전랑외교라고 지칭하며 대국주의적 성향을 패권주의로 간주했고 이에 따라 인접 국가는 중국을 견제하고자 미국과 손을 잡고 쿼드 등의 협력체를 만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신냉전이 본격화되고 미국이 원조와 쿠데타라는 당근과 채찍을 통해 반공 기지를 양성하던 20세기 냉전과 달리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가치 외교, 규칙 기반 질서를 명분으로 삼는 21세기 신냉전이 사실은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하기 위한 동맹국 흡혈에 가까운 것이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드러나면서 중국은 미국처럼 확고한 '혈맹'은 딱히 없을지라도 이런 일극주의에 반대하는 중견국과의 관계가 강화되고 있거나, 미국 체제로부터의 이탈이 가시화되고 있다. 튀르키예는 NATO 회원국이라는 점을 역이용해 독자 노선을 걸으면서 역사적 앙숙 러시아와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고[6] 미국이 쿼드로 심혈을 기울이던 인도도 러시아와 전통적 우방 관계를 내세우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오히려 러시아 원유를 수입하겠다고 밝혔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원유 증산 요구를 거절했고 페트로 달러마저 여차하면 위안화로 바꿔버리겠다고 선포했다. 자신이 앞마당으로 여기던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오랜 친미 종속국(과테말라, 콜롬비아 등 전통적인 반공 국가)조차 핑크 타이드 투쟁으로 인해 돌아서버렸고, 아프리카에서는 비록 군사 쿠데타일지언정 여전히 남아있던 미국과 특히 프랑스에의 종속에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해당 시위는 보도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 반미, 반불 투쟁 속에서 그 대적자인 중국과 러시아를 지지하는 건 기본에 심지어 인공기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 게다가 서아프리카 식민주의의 진원지인 프랑스에서도 신민중생태연합이 마크롱과 르펜 모두에 반기를 들고 있는 건 덤. 여기에 현재 프랑스 좌파의 대표인 불복당의 멜랑숑은 프랑스 좌파의 역사적 특징인 좌익 내셔널리즘 성향인지라 만약 마크롱의 중도파가 패배하면 (국민전선의 르펜은 애초에 국민적 배제 대상이니) 미국으로서는 '빨간맛 드골'이 집권하는, 프랑스의 핵 개발 및 나토군 탈퇴 시절보다도 한 술 더 뜨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 미중 대결의 명분인 대만에서조차 반중 여론과는 별개로 집권 민진당의 (경제는 백안시하는 것에 가까운) 반중 일변도 정책에 대해 대만 유권자가 지선 패배로 응답하고 있는 상태. 이런 일련의 흐름이 만들어낸 중간 결과물이 2023년 BRICS의 확장인데 비록 서방과도 등거리 관계를 맺고 있는 인도와 브라질이 확장에 소극적이긴 해도 세계가 점차 미국의 의중(민주주의 동맹 외교를 통한 '권위주의'와의 대결 구도 속에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 재확립)대로 집단 서방(5개의 눈, EU, 일본, 한국 등)과 글로벌 사우스(중국, 러시아 등 BRICS와 핑크 타이드 국가)로 양분되고 있는 상황이다.

5. 사상가

6. 서브컬쳐에서의 활용

  • 고종, 군밤의 왕 에서는 국가간의 외교를 논하는 현대적인 학문이 종횡가의 이름을 따서 '종횡학'이라고 불리며, 조선에서 먼저 연구가 시작되었기에 국제외교전 경험이 적은 미국이 종횡학자를 초빙해간다는 아스트랄한 언급이 존재한다.
  • 헉 내가 조괄이다 는 배경이 딱 저 시대. 조괄에 빙의해서 살아남기 위해 진나라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진나라가 합종책을 깨부수려고 각종 계책을 써오는 것을 직접 경험하는데, 압도적인 국력을 이용해 21세기 기준으로라면 중국이 한국의 모든 장성과 정치가들을 매수할 만큼 뇌물을 쏟아부으면서 군사적 위협과 실제 전쟁과 외교적 압박을 퍼부어대는 것 같다고.
    한편 연횡책은 결국 중원이 통일되어 평안해진다는 소프트파워라도 있지만 합종책은 그것에 반대할 뿐이고, 또한 서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대립하는 6개국이 한데 뭉쳐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결국 6개국을 한데 묶을 중심사상이 필요하다는, 연횡책과 마찬가지로 결국은 여러 나라를 통합하여야 한다는 논리적 모순도 지적된다. 그야 백기한테 포로 45만이 학살당하는 꼴을 못 봐서 그렇지


[1] 위나라 출신으로 서수로도 불리며 혜문왕 초기 진나라의 대량조가 됐고 장의가 온 뒤에는 진나라의 대량조를 버리고 다시 위나라로 돌아가 장의에게 맞서서 6국의 합종책으로 장의의 연횡책에 대항했다. [2] 참고로 제자백가의 학문을 처음으로 집대성한 것이 전한 시기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인데, 여기 오늘날 우리가 아는 소설가라는 단어도 학문의 한 갈래로 등장한다. 물론 현대와 같은 문예 창작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고, 백성들 사이에서의 옛날 이야기를 수집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인류학? [3] B.C. 318년에는 다 같이 진의 함곡관을 공격하였으나, 함곡관의 방어력이 실로 어마무시한 거여서 간단히 실패로 돌아간다. [4] 인도차이나, 이란, 아랍 사회주의 제국 등 [5] 미국과 유럽의 동맹 관계가 바로 NATO다. [6] 2020년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전쟁이 미국의 개입 이전에 양국 모두와 우호 관계인 러시아 선에서 정리되었는데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은 아제리가 사실상 판정승을 거둠. 참고로 당시 한국은 미국이 손을 떼자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인도, 튀르키예 등 실질적 중재국과의 관계 강화)에 따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범EU가 지원하고 '권위주의 국가 대신 민주주의 국가를 지원하라'는 일부의 여론이 지지하는 아르멘 대신 튀르키예의 형제국인 아제리를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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