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서(蜀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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費詩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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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촉한의 정치가이며 자는 공거(公擧)로 익주 건위군 남안현 사람.2. 정사 삼국지
유장의 밑에서 면죽의 현령으로 있었는데 유비가 오자 바로 유비에게 항복한다. 그 공으로 성도가 함락된 뒤 독군종사가 되고 지방으로 나가 장가 태수가 되었다가 다시 중앙으로 와서 익주전부사마가 되었다.한중 공방전의 승리로 한중왕에 오른 유비가 관우, 장비, 마초, 황충을 사방장군으로 삼았고, 그중 관우는 전장군 가절월로서 가장 으뜸이었으나 제갈량은 장비와 마초는 황충이 사방장군에 오를만큼의 맹활약을 직접 봤으나 관우는 그러지 못해서 입지에서 격차가 큰 황충과 자신이 같은 대열에 갑자기 있게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해 유비는 자기가 직접 설득하겠다고 대답했는데, 비시는 바로 그 유비를 대신해 관우에게 관직을 전달하고 설득을 하기 위해 형주로 간다.
"대장부는 평생 노병(老兵)과 같은 대열에 있지 않는다!" 그는 그에게 제수되었던 관직을 거부하였다. 비시가 말했다. "왕업을 세우는 자가 임용하는 인물에게 하나의 기준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옛날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은 전한의 고조와 어릴 적부터 친한 교분이 있었고, 진평(陳平)과 한신(韓信)은 초나라에서 도망쳐 뒤에 한나라에 도착했지만, 관직의 순서를 정하는 논의에서는 한신을 가장 높은 지위에 있게 하였고, 이 때문에 소하와 조참이 원한의 마음을 가졌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한왕(漢王)은 일시적인 공로에 근거하여 한승(漢升:황충)을 높은 신분이 되게 했지만, 마음속의 평가가 어찌 군후(君候)와 동등하겠습니까! 게다가 한중왕과 당신을 비유컨대 그는 주군과 한 몸처럼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고 화와 복도 같이 합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생각해 보면, 관호(官號)의 높고 낮음이나 작위와 봉록의 많고 적음을 계산하여 그를 마음으로써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일개의 관리로써 명령을 받아 이를 시행하는 사람이지만, 만일 당신이 임명을 받지 않아 곧 돌아가게 된다면 당신 때문에 이와 같은 거동을 애석해 할 것이며, 아마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
유비가 한중왕에서 황제로 즉위하려고 하자 비시는 아직 적이 강하고 우리는 그들을 이기는 것의 근처에 가지도 못했는데도 황제에 즉위하면 대의명분에 맞지 않는다며 말리자 유비의 분노에 의해 영창종사로 좌천된다.[1]
225년, 제갈량의 남정 때 그를 보좌하며 맹달이 제갈량에게 함께 공모하자는 편지를 보냈을 때 벌써 2번이나 배반을 하고 세 번째로 배반을 하려는 인물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하였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고 그와 계속해 연락을 취한다.
장완이 정권을 잡자 간의대부가 되었으며 후에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3. 삼국지연의
행적은 비슷하다. 사방장군에 조운이 추가되어 오호대장군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관우가 오호대장군에 황충이 들어간 것에 대해 관우가 장비는 내 동생이고 조운은 처음부터 함께한 동료고 마초는 명문가의 자제고 이름 높은 군웅이니 괜찮은데 황충은 다 늙어빠진 노인네일 뿐인데 왜 황충이 끼어드냐고 화를 내었고 비시가 이를 설득해 수령시켰다. 이후 형주로 찾아와 관우에게 귀부한 호반을 데리고 성도로 돌아갔다. 유비의 황제 즉위를 반대하여 좌천된 일화는 삭제되었다. 이후 제갈량이 북벌을 일으킬 때 극정과 함께 비서에 임명되어 성도에 남았다.여담이지만 이 부분은 문제가 좀 있는데 정사에서야 관우와 황충의 경력이나 활약 등에서 차이가 크게 나긴 했고 그가 공을 세우는 걸 직접 본적도 없으니 그렇다 치는데 연의에서는 관우와 황충이 서로 맞붙은 건 물론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한번씩 살려줬고 서로 간에 동등한 적수로 인정해 놓고서 정작 나중에 가선 황충 따위랑 나를 세트로 묶냐며 불쾌해 하는 것이기 때문.
다만 장수로서야 황충을 인정한다 쳐도 유비의 의형제이자 수많은 전공을 세우며 중원에 이름이 드높은 자신하고 기껏해야 한현 따위의 밑에 있던 황충이 자신과 같은 급이라는 걸 인정할 수 없다고 보면 그럭저럭 말은 된다.
4. 미디어 믹스
삼국지 11 |
삼국지 12, 13, 14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2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촉나라의 문관으로 등장하지만 취급이 묘하게 별로. 비시가 비중있게 묘사되는 장면이라면 관우 설득이 대표적이니까. 삼국지 9편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4/무력 28/지력 63/정치력 69/매력 65에 특기도 농업, 혼란, 반박. 총 3개뿐이다. 어째서인지 이편부터 12편까지 천수의 재야로 나온다. 남안군과 남안현의 한자가 같아 혼동한 듯 싶다. 이 편에서 등장하는 같은 군 출신인 장익은 207년에 무도의 재야로 등장한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5/무력 28/지력 64/정치력 74/매력 66으로 전작과 달리 정치력이 소폭 오르고 여전히 천수의 재야지만 마등군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삼국지 12에서의 일러스트는 오른손을 펼치면서 관우를 설득하는 모습이며 능력치는 통솔력 18/무력 28/지력 65/정치력 74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약간 올랐다. 특기는 경작, 수집에 전법은 기동력약화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상업 1, 농업 3, 설파 4, 교섭 3, 언변 3. 관우를 설득할 때 말솜씨를 반영했는지 말솜씨에 관련된 특기들을 보유했고, 전수특기까지 설파다. 전법은 동요도발. 병과적성은 전부 C다. 후반에 촉 내정용 문관으로써 활약이 가능하다.
삼국지 14에서 능력치는 통솔력 14, 무력 28, 지력 63, 정치력 71, 매력 66으로 전작과 달리 통솔력이 4, 지력이 2, 정치력이 3 하락했다. 개성은 동지, 주의는 명리, 정책은 종횡술 Lv 3, 진형은 안행, 전법은 진정,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1]
이 무렵 관우가 전사하고 형주를 상실한데다 조조 사후 조비가 결국 선양을 빌미로 헌제에게서 제위를 빼앗고 후한을 멸망시키며 위나라를 건국한 상태였다. 유비 입장에서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닌만큼 분위기 전환 및 후한을 이어가려고 황제에 오르려 했고, 비시는 지금 조짐이 좋지 않은데다 섣불리 황제를 칭하면 명분을 의심받을 수 있으니 나중으로 미루자며 의견이 갈렸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