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지네딘 지단/클럽 경력
1. 개요2. 데뷔3.
유로 19964.
1998 프랑스 월드컵5.
유로 20006.
2002 한일 월드컵7.
유로 20048.
2006 독일 월드컵9. 지단의 은퇴 이후 레 블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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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네딘 지단의 국가대표 경력을 서술하는 문서이다.2.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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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매치 첫 데뷔는 1994년 8월 17일 체코와 맞붙은 친선 경기였는데, 0-2로 끌려가던 후반전에 교체로 투입된 지 얼마 안 되어 수비수 2~3명을 드리블 돌파하고 환상적인 중거리 골로 데뷔 골을 기록했고, 이후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를 꽂아 넣어 극적인 무승부를 이끌었다. 지단은 이때의 감격에 대해 "절대 잊지 못할 만큼 컸다."라고 회고했다.
여담이지만, 지네딘 지단이 선발되지 못한 1994년 미국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프랑스는 약체 이스라엘에게마저 2-3으로 충격패하고, 또한 불가리아전에서 다비드 지놀라가 엉성한 크로스를 차는 바람에 백패스가 되면서 불가리아에게 공을 내주고 결국 역전 골을 얻어맞으며 연달아 패배하였다. 부진한 성적으로 결국 1990년에 이어서 또 다시 본선 진출에 실패, 말그대로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1][2]
참고로, 1990년과 1994년 레 블뢰의 스쿼드는 지네딘 지단이 맹활약했던 1998년의 황금세대와 비교해도 그에 못지 않게 화려했었다. 장피에르 파팽[3], 다비드 지놀라, 에릭 칸토나, 조슬랭 앙글로마, 폴 르갱같은 황금세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던 1990년, 1994년 세대를 통틀어서 프랑스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라고 부른다. 지단 급의 선수가 월드컵에 처음 나온 것이 꽤 늦은 1998년인 이유는 결국 1990, 1994년 월드컵 본선에 프랑스가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 유로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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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단은 당시 대회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프랑스는 4강까지 올라갔다. 당시 지단은 프랑스 주전을 차지했지만, 이후 대회에서와는 달리 입지를 완전히 다지지는 못했다. 지단은 그래도 대회 내내 평타 정도를 쳤으며, 8강전과 4강전에서는 승부차기 첫번째 키커로 나서서 두 번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체코와의 4강전에 승부차기 끝에 패해 탈락했다.
5경기 0골 0어시스트
4. 1998 프랑스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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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전부터 지단은 이미 스타 플레이어였고, 대회 전부터 호나우두와 함께 가장 유력한 MVP 후보 중 하나로 꼽혔다. 물론 배당은 호나우두가 가장 높았지만, 지단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 마냥 깜짝 등장한 것은 아닌 것이다. 다만, 갑자기 등장한 양 느껴진 것은 아무래도 대회 도중에 받았던 2경기 출장 정지 탓이 크다.
이 대회에서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을 중심으로 티에리 앙리와 유리 조르카에프를 윙에 세워 상대 진영을 헤집었다. 이 때 지단이 전진하면서 생긴 틈을 메우기 위해 에마뉘엘 프티나 디디에 데샹이 전진해야 했는데, 그 뒤에 펼쳐진 공간은 마르셀 드사이와 로랑 블랑, 측면과 중앙을 넘나들며 미친 듯한 운동량을 보여준 비셴테 리사라수와 릴리앙 튀랑이 성공적으로 메웠다. 이때의 레 블뢰는 지단은 물론이고 다른 멤버들도 그야말로 사기 캐릭터급이었다.
남아공과의 첫 경기에서만 해도 훌륭한 플레이로 프랑스 국민들의 기대감을 끌어올린 지단이었지만, 사우디와의 2차전에서 태클을 하는 사우디 주장 푸아드 아민의 골반을 밟아 버리는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퇴장을 당하게 되었다.[4][5] 이로 인해 지단은 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고, 결국 조별리그 3차전과 16강전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6]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 복귀를 하였으나, 이 경기 자체가 0:0으로 무승부로 비긴 상태에서 승부차기까지 갔던 경기였기에 딱히 돋보이지는 않았고,[7][8] 크로아티아와의 4강전에서는 날카로운 슈팅을 여러번 때리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릴리앙 튀랑의 인생 골 2개가 더욱 강렬하였다.[9]
결국 레 블뢰는 결승전까지 진출을 하지만, 지단 개인의 활약을 브라질의 호나우두와 비교하면 임팩트가 부족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결승전까지의 지단의 활약을 평가하자면 퍼포먼스 자체는 뛰어났지만 득점이 없고 사우디전 퇴장으로 활약에 공백이 생기는 등 아쉬운 점이 존재했다.
그리고 결승전 직전 도박사들의 예측도 브라질의 우승이 6:4 정도로 우세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모든 것이 뒤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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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의 헤더 골로 브라질을 침몰시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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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나우두의 발작 사건으로 이런저런 말이 많았던 월드컵 결승전이지만, 그래도 브라질이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단은 코너킥 두 번을 모두 헤더로 골대 안으로 꽂아 넣으며 레 블뢰의 승리를 이끌고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반면, 호나우두는 경기 내내 제대로 화면에 잡힌 장면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호나우두는 고개를 숙였고, 지단은 기쁨의 포효를 질렀다. 그리고 세계는 '마에스트로'의 충격적인 등장에 열광했다. 그렇게 지네딘 지단은 조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레 블뢰 역사상 첫 번째 FIFA 월드컵 트로피를 거머쥐게 된다.
그리고 결승전 종료 이후 가장 유력한 MVP 후보로 지목된건 바로 지단이었다. # #
그러나 당시만 해도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에 MVP 투표를 했기 때문에 대회 MVP는 호나우두가, 2위는 골든슈 수상자인 다보르 슈케르가, 3위는 팀 동료 릴리앙 튀랑이 차지하였다. 결국 지단은 사우디전 퇴장으로 인한 2경기 결장과 투표시점의 문제로 아쉽게 MVP 투표 6위에 그치게 된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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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즌에서 유벤투스의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끄는 활약을 보였던 지단은 월드컵에서의 활약상까지 더하게 되면서 1998년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시상하는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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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 이후 자크 시라크 대통령으로부터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 모습. 당시 그를 포함한 국가대표 선수단 전원에게 수여되었다. |
5경기 2골 1어시스트
5. 유로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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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 지단을 포함하여 황금세대 멤버들이 여전히 건재했기 때문에 안 그래도 사기 캐릭터급으로 강했던 레 블뢰의 능력이 정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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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00 결승전 당시[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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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경기 2골 1어시스트
6. 2002 한일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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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직전(2002.05.26, 수원)에 열린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에서 시즌을 치르며 1년 내내 누적된 피로와 무리한 출전으로 왼쪽 허벅지 근육 파열 부상을 당해 삼성서울병원으로 후송되었다.[13] 결국 지단이 결장한 프랑스는 개막전에서 세네갈 쇼크를 맞고 0:1로 패배하며 위기에 빠졌다. 우루과이와 치른 2차전도 앙리가 퇴장당하는 수적 열세속에 0:0 무승부.
결국 프랑스는 문학에서 열리는 조별리그 마지막 덴마크전에서 무조건 2골 차이로 이겨야 16강 진출이 가능한 절박한 상황인 탓에 부상당한 지단을 16일만에 불러내 출장시키는 무리수를 두었지만, 오히려 토마손과 롬메달에게 얻어맞고 0:2로 패배하여 결국 조 꼴찌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짐을 싸게 된다.[14] 1950년 이탈리아와 1966년 브라질에 이어 월드컵 사상 세번째로 전대회 우승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3명의 리그 득점왕[15]을 보유한 프랑스는 한 골도 못 넣고 짐을 싸야 했다.
결국 프랑스의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광탈의 큰 원인 중 하나는 지단의 부상과 그로인한 정상적이지 못한 컨디션, 지단을 대체 가능한 유일한 플레이메이커였던 로베르 피레스의 대회 개막 전 부상으로 인한 엔트리 탈락으로 플레이메이커가 제대로 없는게 문제였다. [16]
1경기 0골 0어시스트
7. 유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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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 쇼크 이후에 지단의 국대 커리어도 슬슬 정점에서 내려간 듯 했다.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는 선언을 꽤나 오래 전부터 하였고,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프랑스는 우승 후보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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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 추가시간 득점으로 팀을 패배에서 구해내다. |
조별리그 2차전 크로아티아전에서도 선발출전하여 앙리의 짧은 코너킥을 올리자 뒤에 누가 있는지 확인도 없이 감각적으로 몸을 돌리면서 발뒤꿈치로 볼을 띄어 갈라스에게 전달하는 경악스러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갈라스는 헤딩을 했지만 아쉽게도 골로 연결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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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단의 영향력은 조별리그까지만 빛났고, 8강에서는 수비형 볼란치만 4명을 쓴 복병 그리스에게 0-1 패배 탈락으로 일격을 맞고 결국 대회 종료 후에 씁쓸하게 은퇴하게 된다.[17] 한 시대를 발 아래 둔 마에스트로의 국가대표 은퇴가 이렇게 씁쓸하게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4경기 3골 1어시스트
8. 2006 독일 월드컵
자세한 내용은 지네딘 지단/2006 FIFA 월드컵 독일 문서 참고하십시오.9. 지단의 은퇴 이후 레 블뢰
지단이 레 블뢰를 완전히 떠난 후, 당장 유로 2008 예선부터 프랑스는 플레이메이커의 공백에 시달리게 되며 본선에서는 역대급 졸전으로 1무 2패로 광탈하게 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역시 오심골로 간신히 본선에 올랐으나, 이에 그치지 않고 도메네크 감독의 막장 지도력이 아주 제대로 빛을 보게 되면서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레몽 도메네크는 곤살로 이과인을 원했지만, 이과인의 선택은 아르헨티나였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멕시코와 홈 팀 남아공에 돌림빵을 당한 건 둘째 치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에서도 가까스로 본선에 진출했다.[18] 그야말로 격세지감. 다행히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꿀조에 편성된 덕인지 막강 화력을 과시하며 조별리그를 통과하고 8강까지 올랐다.
2012년에 로랑 블랑의 후임으로 사령탑에 오른 디디에 데샹 감독이 이끄는 프랑스가 유로 2016 때 앙투안 그리즈만, 폴 포그바, 드미트리 파예 등을 필두로 선전했으나, 아쉽게도 포르투갈에 밀려 준우승했다. 그러나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갖가지 징크스를 극복하고 마침내 20년 만에 우승하여 지단 없이도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다른 국가들 못지 않은 유럽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이 지단의 존재 유무에 따라서 경기력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을 보면, 지단의 존재감이 프랑스에서 얼마나 큰 무게감을 지녔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프랑스 축구계의 영원한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존재라서 지단의 은퇴 이후 프랑스에서도 "제 2의 지단" 열풍이 불면서 수많은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쏟아져 나왔다.
포스트 지네딘 지단이라고 각광받던 선수는 프랑크 리베리, 사미르 나스리, 아템 벤 아르파, 요앙 구르퀴프 등 여러 선수들이 있었지만, 위에서 언급된 명단에 있는 선수들 중에서는 12-13 시즌의 프랑크 리베리 정도를 제외하면 아무도 전성기 시절의 지단급에 도달했다고 평가받지 않는다.[19]
2010년대 들어서 유로 2016 준우승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우승을 이끈 앙투안 그리즈만이 그리즈만의 애칭인 그리지(Griezy)와 지단의 애칭인 지주(Zizou)의 합성어인 그리주(Griezou)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자국 팬들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리즈만 역시 그나마 지단의 아성에 근접했을 뿐 아직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레벨은 아니라는 평이 지배적이다.[20]
또한 그리즈만과 함께 월드컵 우승을 이끌며 향후 10년간은 프랑스 축구를 이끌어갈 것으로 평가받는 슈퍼 유망주인 킬리안 음바페가 출현하면서 향후 어떻게 성장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2021년 개최된 유로 2020에서는 역대급 전력이라는 평을 받으며 많은 전문가들이 프랑스의 우승을 점쳤으나, 16강에서 스위스에게 승부차기로 패배하고, 선수단의 불화까지 더해지며 2010년 월드컵을 다시 연상시켰다. 해당 대회에서 맹활약을 기대받았던 음바페는 4경기 0골 1도움 + 16강 승부차기 실축으로 대회 최악의 선수들 중 한 명으로 꼽히며 그의 커리어에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이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감독으로 성공한 지네딘 지단을 레 블뢰 감독으로 불러서 선수단의 기강부터 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졌다. 참고로 지네딘 지단 역시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을 사임한 이후 차기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원해서 현재 클럽팀의 감독 제의를 모두 다 거절하고 있는 중이다.[21]
하지만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킬리안 음바페, 앙투안 그리즈만, 올리비에 지루 등의 엄청난 활약으로 프랑스가 지난 대회에 이어 연속으로 결승까지 진출하였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끝에 준우승 하자, 이미 세대교체는 완벽하게 되었으며 지단 이후로 프랑스 국대의 새로운 황금기가 찾아왔다는 주장이 주류가 되었다. 특히 지난 유로에서 광탈의 주범으로 꼽히던 킬리안 음바페는 결승전 해트트릭을 포함 월드컵에서 8골을 넣으며 지단 못지않은 슈퍼크랙으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이렇게 프랑스가 기존 자원들의 줄부상에도 불구하고 준우승까지 이뤄내자, 디디에 데샹의 감독 재계약이 스멀스멀 떠오르더니, 결국 2026년 월드컵까지 4년간 재계약에 성공하며 지단의 프랑스 감독 데뷔는 몇년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
[1]
결국 프랑스를 꺾은 불가리아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고 8강에서 당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독일을 꺾고 4강 진출 신화를 이뤄냈다.
[2]
재밌게도 프랑스가 있던 조에는
스웨덴도 있었는데 이 팀도 불가리아랑 함께 4강에 오랜만에 안착했다.
[3]
심지어 발롱도르 수상자였다.
[4]
의외로 사람들이 지단이 성깔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5]
그럼에도 키커와 가제타에서 각각 2.5점, 6.5점의 평점을 받은 것을 보면 퇴장을 제외하고 퍼포먼스 자체는 준수했다고 볼 수 있다.
[6]
지단의 공백을 조르카에프가 나름 잘 매우긴 했으나 그럼에도 프랑스의 공격은 원활하게 잘 풀리지 못했다.
[7]
다만 키커와 가제타에서 각각 2점, 6.5점의 평점을 받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퍼포먼스 자체는 훌륭했다.
[8]
사실 이탈리아의 감독이던
체사레 말디니가 지단을 집중 마크하는 전술을 썼다.
[9]
항목에 설명이 있지만 간단히 써보면, 튀랑의 국가대표 커리어가 142경기 2골인데 그 2골을 이 경기에서 넣었다. 그것도 동점 골과 역전 골.
[10]
간혹 1998년 월드컵 당시 지단이 결승전 원툴이라고 폄하하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시각이다. 왜냐하면 지단은 출전한 5경기에서 모두 키커 평점 2.5점 이상, 가제타 평점 6.5점 이상을 받으며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평균 평점으로도 튀랑 다음으로 2위(키커 2.00, 가제타 7.00)였으니 1998년 월드컵의 지단은 결승전 이전까지 버스를 탔다기 보다는 오히려 사우디전 퇴장과 2경기 결장으로 흠결은 있어도 종합적으론 대회 MVP급 활약을 펼쳤다고 보는 게 타당한 시각이다.
[11]
참고로 지단을 수비하는 선수는 잔루카 페소토이며 당시 유벤투스에서 함께 뛰던 사이였다. 뒤에 13번 수비수는
알레산드로 네스타.
[12]
2000년 발롱도르 수상자는
루이스 피구였는데 클럽과 국가대표에서 무관이었고 유로 2000에서 지단과 맞대결을 벌여 패배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큰 논란이 되고 있다.
[13]
정상적인 컨디션이었다면 가벼운 부상에 그쳤을 것이다.
[14]
이 날 경기 양국 국가 연주 때 카메라가 국가를 부르는 프랑스 선발 멤버 지단을 비춰주자, 프랑스 팬들을 포함한
인천문학경기장의 상당수 관중들이 환호했다. 경기는 0:2로 졌지만 정작 지단 본인은 이 경기에서 활약하며 이 날 경기의 MOM에 선정된다.
[15]
지브릴 시세,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
[16]
무엇보다 피레스는 대회 개막 직전 시즌인 2001-02 시즌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것 뿐만 아니라 EPL 도움왕과
FWA 올해의 선수까지 석권할 정도로 폼이 제대로 올라와서 부상만 안 당했어도 지단의 대체도 충분히 가능한 선수였다.
[17]
결국, 그리스는 4강에서 체코, 결승에서 포르투갈을 잡아내며 기적적인 우승을 차지한다.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이기도 하다.
[18]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1차전에서 0:2로 패배했으나 2차전에서 기적적으로 3:0으로 승리했다.
[19]
그나마
프랑크 리베리를 제외하면 월드클래스에 도달했다고 평가받은 선수도 없다. 물론, 그 리베리마저도 12-13 시즌을 빼면 지단만큼 뛰어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20]
앙투안 그리즈만이 국제대회 토너먼트에서 기록한 공격 포인트는 지단과
미셸 플라티니가 기록한 공격 포인트를 넘었지만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임팩트에서는 다소 부족하다는 평이다.
[21]
2022년 6월,
PSG와 링크가 진하게 떴으나, 지단 본인은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뭐 지단이 마르세유 출신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