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친위대의 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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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SS의용척탄병사단 랑에마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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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SS의용척탄병사단 발로니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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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무장척탄병사단 (제2러시아인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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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무장척탄병사단 (제1벨라루스인사단) |
31 SS의용척탄병사단 발로니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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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무장척탄병사단 샤를마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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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SS의용기병사단 뤼초프 |
38 SS척탄병사단 니벨룽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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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0> 제4SS경찰기갑척탄병사단 4. SS-Polizei-Panzergrenadier-Divi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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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일 | 1939년 3월 18일 | |||||
해체일 | 1945년 | |||||
소속 | 무장친위대 | |||||
규모 | 사단 |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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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G34 기관총으로 경계하는 제 4SS경찰기갑척탄병사단 병사들[1] |
2. 역사
친위대 장관 하인리히 힘러가 경찰 지휘권까지 쥐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친위대 예하에 있다시피했던 경찰조직에서 선발한 대원으로 편성한 부대로서[2] 경찰 출신들로 구성된 부대답게 개전 초 부대원의 7할이 운전면허증 소지자였다.[3] 초창기에는 부착물도 경찰과 동일한 것을 달았으나, 창설 이후부터는 경찰이 아닌 일반인 출신 신병을 뽑는 등 점차 경찰과의 연관성이 사라져 1943년부터는 일반 SS 부대와 동일한 부착물을 달았다. 즉, 부대 이름에만 경찰이 들어가는 일반 기계화보병사단.북부집단군에 소속되어 레닌그라드 포위전에 종군하였으며 소련 동계작전때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1944년 이후 유고슬라비아에 주둔하여 파르티잔 진압에 종군하였다. 1945년 미 육군에 항복했다.
3. 전쟁 범죄
1944년, 그리스국에서 그리스 레지스탕스들이 사보타주를 벌일 경우 본보기로 마을 전체를 학살하는 잔혹한 행위를 했다. 4월 5일에는 클리소우라 마을에서 280명의 민간인을 학살했으며, 6월 10일에는 디스토모 마을에서 218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심지어 임산부와 유아까지도 총칼로 찔러 죽였다고 한다.4. 역대 사단장
- 콘라트 히츨러 SS중장 (1940.9.1~9.8)
- 카를 페퍼-빌덴브루흐 SS대장(1940.9.8~11.10)
- 아르투어 뮐퍼슈테트 SS중장 (1940.11.10~1941.8.8)
- 발터 크뤼거 SS대장 (1941.8.8~1941.12.15)
- 알프레트 뷔넨베르크 경찰청장 (1941.12.15~1943.4.17)
- 프리츠 프라이탁 SS소장 (1943.4.17~6.1)
- 프리츠 슈메데스 SS소장(1943.6.1~8.18)
- 프리츠 프라이탁 SS소장 (1943.8.18~10.20)
- 프리드리히-빌헬름 보크 SS상급대령 (1943.10.20~1944.4.19)
- 위르겐 바그너 SS소장 (1944.4.19~5.?)
- 프리드리히-빌헬름 보크 SS상급대령 (1944.5.?~5.7)
- 헤르베르트 에른스트 팔 SS소장 (1944.5.7~7.22)
- 카를 쉬머스 SS대령 (1944.7.22~8.16)
- 헬무트 되르너 SS상급대령 (1944.8.15~8.22)
- 프리츠 슈메데스 SS소장 (1944.8.22~1944.11.27)
- 발터 하르처 SS대령 (1944.11.17~1945.3.1)
- 프리츠 괼러 SS대령 (1945.3.1~3.?)
- 발터 하르처 SS대령 (1945.3.?~1945.5)
5. 역대 참모장
- 발터 크뤼거 (1940.9.1~9.10)
- 니콜라우스 하일만 SS상급대령 (1940.9.10~1941.6)
- 라이만 소령 (1941.6.21~1942)
- 에리히 브라운 SS중령 (1943.2.24~4.?)
- 발터 블루메 SS소령 (1943.4~1943.7)
- 뤼디거 피프코른 SS대령 (1943.7~1943.10)
- 헬무트 코드츠 SS대위 (1943.10~1944.7.1)
- 빌헬름 라트케 SS중령 (1944.7.1~1945)
- 오토 클라이네 SS소령 (1945)
[1]
슈탈헬름에
질서경찰의 표식이 그려져 있다.
[2]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부터 독일 경찰은 군대에 필적할 만큼 중무장을 한 조직이라 별 문제는 없었다. 게다가 전간기와 나치 시대의 독일 경찰 중에는 군 출신이 많았다.
[3]
당시 자동차는 여기저기 보급되고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흔한 물건이 아니었던지라 운전면허는 전문 기술에 속했다. 자동차의 나라라는 미국에서조차도 도시 출신보다는 농촌 출신이 운전 가능자가 많았는데, 농업용 트랙터를 몰아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