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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78787><colcolor=#EEE156> 제이 커틀러 Jay Cutl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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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제이슨 아이잭 커틀러 (Jayson Isaac Cutler) |
출생 | 1973년 8월 3일 ([age(1973-08-03)]세) |
미국 매사추세츠 스털링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장 | 173cm[1] |
체중 | 시즌 118~127kg, 비시즌 136kg[2] |
팔 둘레 | 57.8cm (22in) |
가슴 둘레 | 147cm (58in)[3] |
허벅지 둘레 | 76cm (30in) |
종아리 둘레 | 51cm (20in) |
허리 둘레 | 86cm (34in)[4] |
SNS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보디빌더.2000년대 초중반 로니 콜먼과 미스터 올림피아 최고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고 2000년대 후반 챔피언에 4회 오른,[5] 당대 보디빌딩계를 주름잡았던 21세기 최고의 보디빌더 중 한명이다.
2. 생애
1973년 매사추세츠 스털링에서 태어났다. 아주 어린시절인 11살 때부터 형의 콘크리트 건설회사에서 일을 하며 지냈는데, 11살때부터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와 벽돌을 다루었다고 한다. 고등학생 무렵인 만 18세에 운동을 시작했고, 1993년에는 2년제였던 퀸스가몬드 전문대를 졸업했다. 대학시절 전공은 경찰행정학이었는데, 당시 장래 희망이 교도관이었다고 한다.그러다가 퍼스널 트레이너였던 마커스 로드리게즈를 만나 보디빌딩에 입문할 것을 권유받고 진로를 바꾸었다.
2.1. 보디빌더 활동
아직 학교에 다닐 무렵인 1992년 매사추세츠 우스터에서 열린 골드짐 보디빌딩 대회에서 우승한 바 있었고, 이듬해 1993년에는 Iron Bodies Invitational에서 우승하였다.이후로 1996년 NPC 내셔널 헤비급 우승 프로 카드를 받은 뒤 1998년의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6]에서 프로 데뷔 하였으며 11위를 하였다. 이듬해 1999년에는 유명 보디빌딩 대회였던 아놀드 클래식에서 4위, 정상급 보디빌딩 대회였던 IFBB에서 3위에 입성, 가장 권위있는 최고의 보디빌딩 기구였던 미스터 올림피아에서는 14위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그의 커리어는 한마디로 보디빌딩 역사상 최고의 콩라인(...)
라이벌인 로니 콜먼의 트레이닝이 일반인은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는 무지막지한 훈련법으로 유명했다면, 제이 커틀러의 훈련방식은 루틴에 머신과 프리웨이팅을 적절히 혼합한 정석적인 트레이닝으로 유명하다. 제이 커틀러는 "정 자세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세트수를 정확하게 끝내고 영양보충과 휴식에 매진하는 것"을 철학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커틀러의 훈련루틴은 무게와 횟수만 가볍게 할 경우 일반인도 충분히 따라할수 있는 훈련법이 많기에 추천할만하다. 거기다 영어만 된다면 제이 커틀러의 동영상은 지시도 매우 일관되고 정확해서 큰 도움이 된다. 훈련은 정확하게, 영양보충은 엄격하고 꼼꼼하게라는 철학덕분인지 은퇴 이후 보충제사업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2020 미스터 올림피아에서는 시상자로 모습을 비추었다. 전성기 때 항상 고수했던 올백머리나 모히칸 헤어가 아닌 삭발을 하고 나오며 신선한 근황을 팬들에게 보여줬다. 윌리엄 보낙에게 5위 메달과 상금 4만 달러를 시상했다.
3. 사생활
현재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서 거주 중이다. 머슬앤피트니스와 머슬러에 몇번 표지모델로 등장한 적이 있었고, 1998년에는 15세때부터 긴 시간을 함께했던 여자친구와 결혼하였다. 다만 그녀는 제이가 미스터 올림피아에 등극한 이후 제이가 은퇴하고 여유롭게 살기만을 기다렸는데, 그가 은퇴 이후에도 보충제 사업, 여행 등으로 아직도 할 일이 많음을 깨닫고 결별하였다. 둘은 각자의 다른 연인을 만나며 지금까지도 친구로써 사이가 나쁘지 않은걸로 알려져있다. 자신의 운동방법을 담은 DVD와 서적을 내고 단백질 보충제 사업을 하는 등, 개인사업으로 상당한 수입을 벌어들였다.무려 3000만 달러, 한화로 약 369억원에 가까운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2015년 유튜브 채널에서 집을 소개하는데 저택이 굉장히 넓은데다 방도 많아서 소개하는데 한참이 걸릴 지경이었을 정도. 첫부분에서 롤스로이스 레이스도 나온걸 보아 오너인듯하다. 이 덕분에 혹자는 그를 아놀드를 제외하고[9]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보디빌더로 보기도 한다.[10][11]
4. 수상경력
- 2013 미스터 올림피아 – 6위
- 2011 셰루 클래식 – 2위
- 2011 미스터 올림피아 – 2위
- 2010 미스터 올림피아 – 1위
- 2009 미스터 올림피아 – 1위
- 2008 미스터 올림피아 – 2위
- 2007 미스터 올림피아 – 1위
- 2006 미스터 올림피아 - 1위
- 2005 미스터 올림피아 - 2위
- 2004 미스터 올림피아 - 2위
- 2004 아놀드 클래식 - 1위
- 2003 GNC Show of Strength - 2위
- 2003 네덜란드 그랑프리 - 1위
- 2003 영국 그랑프리 - 1위
- 2003 러시아 그랑프리 - 2위
- 2003 미스터 올림피아 - 2위
- 2003 San Francisco Pro Invitational - 1위
- 2002 아놀드 클래식 - 1위
- 2001 미스터 올림피아 - 2위[12]
- 2000 미스터 올림피아 - 8위
- 2000 Joe Weider's World Pro Cup - 2위
- 2000 영국 그랑프리 - 2위
- 2000 나잇 오브 챔피언스 - IFBB - 1위
- 1999 Ironman Pro Invitational - IFBB, 3위
- 1999 아놀드 클래식 - IFBB, 4위
- 1998 나잇 오브 챔피언스 - IFBB, 12위
- 1996 Nationals - NPC, HeavyWeight, 1위
- 1993 Teen Nationals - NPC, HeavyWeight, 1위
5. 기타
-
전성기 시절 빈틈없이 꽉 들어찬 느낌의 바윗덩어리같은 근육미로 유명했으며 10년 넘게 고수하고 있는
마르코 로이스컷헤어스타일, 거기에 항상 저음의 모노톤으로 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듣다보면 정말 아무 감정없는 커다란 로봇이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경쟁자였던 로니 콜먼 등 여러 보디빌더들과 두루두루 원만하게 지내는 등 성격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13][14][15] 하지만 이와 별개로 협회와의 불화가 있었던 리 프리스트의 인사를 아무런 원한이 없음에도 공식 행사에서 무시한 적이 있는데, 협회의 눈치를 보고 계산적으로 구는 모습에 비판을 받았다.
- 본인기준의 적당한 중량 위주로 운동하지만 사실 그도 고중량 운동을 무척 신뢰하는 편이다. 실제로 라이벌인 콜먼과도 종종 훈련을 같이 했었는데 자신이 용을 써가며 겨우 네다섯번 반복한 중량을 가지고 십여차례씩 쉽게 반복하는 콜먼을 보며 경의를 표했다. 그도 본격적으로 사이즈를 증량하여 콜먼에 대항하기 위해 벤치프레스, 스쿼트, 바벨 로우같은 프리웨이트 운동들의 중량과 반복수를 증가시키기 시작했다. 그의 영상들을 잘 찾아보면 인클라인 벤치프레스 180kg을 치팅없이 정자세 12회를 반복할 정도.
-
약물 후유증과 하드한 훈련으로 인해 현재는 근육이 많이 빠지고 진통제 없이 활동이 힘든 상태인
로니 콜먼과 다르게 50이라는 나이에 아직도 100kg을 훌쩍 넘기며 여전히 복근과 하체 빗살이 보이는 낮은 체지방에 건장한 체격과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하고있다. 일부 운동 커뮤니티에선 진정한 승자는 제이 커틀러라는 말이 나올 정도. 심지어 23년 3월에 공개한 영상에서는 50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좋은 몸을 보여준다. 외신에서는 마스터즈 올림피아에 참가할 수도 있다는 말도 돌았으나 출전은 하지 않았다.
- 길고 두꺼운 코어통과 넓은 프레임을 지녔지만 등을 두툼하게 채울 정도의 중앙 승모근과 스킨위로 뚜렷하게 솟은 8팩[16]을 가져 비슷한 체형을 가진 선수들이 약점으로 보이는 부위들을 장점으로 가져갔다.
- 로니 콜먼, 플렉스 휠러 등과 함께 더불어 인성 좋기로 소문난 보디빌더중 한명이다.
- 제이의 베스트는 1999와 2009로 뽑을 수 있다. 1999년의 제이는 2009년처럼 거대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어디하나 부족함 없이 꽉 차있고 밸런스와 심미성을 두루 갖춘 모습이었고, 2009년의 제이는 덱스터 잭슨에게 미스터 올림피아 타이틀을 되찾아오며 올림피아에서 전래없는 역사를 썼고 제이의 아이코닉 모먼트인 쿼드 스톰프 사진이 이때 찍힌 사진이다.
- 현재 제일 거대한 올림피아 보디빌더인 빅 라미가 점점 등 하부 근육이 사라지며 결국 올림피아 자리에서 내려와 쇠퇴기를 걷고있는데 제이도 커리어 초창기에 하부까지 잘 발달한 등근육을 지녔었지만 커리어 중간~말기 까지 등하부 근육이 점점 사라지며 그의 대표적 약점으로 남게되었다.
- 전성기 시절에는 하루 7끼의 식사를 했으며 하루에 약 5000kcal에 탄수화물 1,000g 단백질 300~400g을 섭취했다고. 심지어 새벽 3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서 식사를 한 뒤 다시 취침을 한적도 있다고 한다(...) 운동하는 것 만큼이나 먹는 것도 고통스러워서 좋아하는 음식이 있냐는 질문에 좋아하는 음식은 없고 알약 하나로 음식을 대체했으면 좋겠다고 발언 하였으며 또한 본인에게 음식은 맛이 아닌 기능적인 요소라고 하였다.
- 2022-2023년 제너레이션 아이언에서 선정한 보디빌딩 및 피트니스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30인중 4위에 이름을 올렸다.
- 비시즌에는 8-9시간, 시즌때는 4시간만 취침했다고 한다.
- 잘생긴 보디빌더 중 한명이다. 특히 메부리 없이 오똑한 콧대를 가져서 무대위에 설때면 항상 아이홀에 짙은 그늘이 졌다.
-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만 19세 때 이미 100kg을 넘는 체중을 만들었다. 아무리 다이어트가 완벽히 진행되지 않았다고 해도 173cm, 내추럴로 100kg을 달성했다는 것은 그의 재능이 엄청났다는 것을 증명한다. 동시대에 뛰었던 로니 콜먼, 필 히스같은 보디빌더들이 말도 안 되는 역대급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여서 그렇지 그 또한 최상의 보디빌딩 재능을 기진 사람이였다.
- 비시즌에도 어마무시할 정도로 운동하는 로니 콜먼이나 매번 식단을 빡세게 하는 다른 빌더들과는 다르게, 제이는 비시즌에는 먹고 싶은거 다 먹고 대식가에다 술도 잘마셔서 비시즌때 모습을 보면 현기증남과 유사할 정도로 충공깽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보기에 따라 아주 귀엽게 보인다.
|
비시즌 모습 |
|
밈화가 된 합성 비시즌 모습[20][21] |
|
마커스 륄과 함께한 실제 비시즌 모습 |
[1]
175cm, 178cm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으나 175cm의 필 히스 옆에 섰을 때 제이의 키가 약간 작았다.
[2]
은퇴한 지금은 이렇게 많이 나가진 않는다.
[3]
전성기 시절 가슴이 워낙 커서 비행기에서 잘때 가슴에 얼굴을 대고 잘 수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4]
오프 보디빌더임을 감안해도 굉장히 허리가 두꺼워 약물 부작용에 의해 코어가 두꺼워졌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네츄럴 선수 시절 사진을 보면 타고난 통짜 허리이다. 하지만 넓은 어깨 프레임과 등을 가졌고 여타 코어가 두꺼운 빌더들처럼
배가 튀어나오는 타입도 아니었기에 단점으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어마어마한 상하체 매스를 자연스럽게 이어주어 몸 전체가 단단하고 꽉 차보이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편.
[5]
2006, 2007, 2009, 2010
[6]
現 뉴욕 프로 챔피언쉽
[7]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더불어 역대 최고의 보디빌더로 꼽히는 인물.
[8]
제이 커틀러는 후일 커리어를 회술하던 때, 당시 로니 콜먼의 눈에 두려움이 보였다고 말했는데, 이미 로니 콜먼은 불혹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때가 돼서야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다음해에 은퇴를 하게 된다.
[9]
아놀드는 현역시절 보디빌딩 자체로는 큰 돈을 벌지는 않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은퇴 이후
영화 및
정치 커리어의 성공으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10]
우승경력이나 명성은
로니 콜먼이 우위이나, 위에서 언급한 엄청난 고중량 고반복같은 훈련으로 인해 PED(performance-enhancing drugs)를 끊은 후 그의 몸은 완전히 망가져버렸고 수차례에 걸친 척추수술로 엄청난 돈을 날렸다. 다행히 회복은 잘 하고 있으며 벌어놓은 돈도 많기 때문에 여전히 어려움없이 잘 살고 있다.
[11]
제너레이션 아이언 인터뷰에서도 제이커틀러는 보디빌더 로니콜먼은 여전히 리스펙하지만 8회 미스터 올림피아를 쟁취했지만 그 대가로 걸을 수 없어질정도로 건강이 악화된것에 대해서는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게 맞는지에 대한 회의심을 나타낸 바 있다.
[12]
당시 로니 콜먼이 탈수 증세로 인해 백스테이지에서 물을 몇 갤런이나 마셔 수분이 가득 찬 몸이었기에 로니 콜먼의 승리에 논란이 있었다. 경기 이후 제이 커틀러는 지속적으로 자신이 로니 콜먼을 이긴 것이 분명했다고 말하며 올림피아 운영 측을 디스했고, 이를 아니꼽게 여긴 올림피아 운영 측은 제이 커틀러에게 불시 약물 검사를 시행, 검사에서 당시 금지 약물이었던 이뇨제가 검출되어서 상금과 순위를 박탈 해버렸다. 다만 이뇨제는 로니 콜먼을 비롯해서 수많은 보디빌더들이 사용하고 있었고 제이 역시 이를 알고있었기에 로니를 비롯한 다른 빌더들은 검사하지 않고 순위에 문제가 있다고 항의한 자신만 검사를 하여 묻어버리려 들자 크게 분노했다. 결국 제이는 미스터 올림피아 운영 측과 법정 공방까지 가게 되었고, 여러 공방 끝에 승소하면서 상금과 순위를 돌려받을 수 있었으나, 이 때의 불화로 제이는 2002년 올림피아를 불참하게 된다. 다만 얄궃게도 2002년의 로니는 최악의 모습을 들고 나왔고, 2002년의 제이는 커리어 베스트로 꼽힐 정도의 엄청난 몸으로 나왔기에 이 불화가 없었다면 2002년 미스터 올림피아 1위는 달라졌을 확률이 높았다. 제이 입장에선 여러 방면으로 올림피아에게 뒤통수를 맞은 셈.
[13]
로니 콜먼도 현역 때부터 유쾌하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대중과 동료들이랑 사이가 좋았다. 둘 다 은퇴한 이후 로니 콜먼이 고관절 수술로 고생할 때 찍은 다큐멘터리에도 나온 적 있는데, 만년 라이벌 관계였는데도 그를 최고의 보디빌더였다고 인정하는 말을 하기도 했으며 서로의 인스타그램에서 각자 현역이였을때 사진이나 현재 같이 찍은 근황 사진을 종종 업로드 하곤한다...
[14]
여담으로 2011년 올림피아때
필 히스에게 1위 자리를 내주면서도 그의 손을 들어주며 본인은 2위를 했지만 가장 친한 친구가 1위를 한 것이 기쁘다며 덕담까지 해주는 진정한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주며 킹빛 커틀러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였다.
[15]
은퇴 이후에 로니 콜먼과 쇼츠를 찍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shorts/7imWrrFa0AI
[16]
사실10팩이라는 얘기도있다.
[17]
로니 콜먼,
필 히스,
빅 라미 등 유명 보디빌더들은 대부분 백인이 아닌 유색 인종들이다.
[18]
68kg
[19]
당시 기준 한화 6600만원, 현재 환율로 계산 시 1억 원이 넘어가는 돈이다.
[20]
사실 이 사진은 포토샵으로 볼살과 뱃살 등을 늘린 사진이고 아무리 비시즌이어도 운동선수인 만큼 원본은 저만큼 살찌지 않았다. 워낙 자연스럽게 포토샵이 되어있어서 언뜻 보면 헷갈릴 수 있지만 자세히 보고 나면 등과 볼 부분이 어색한 걸 알 수 있다. 다만 해당 사진이 워낙 유명해지고 밈화 되어서 구글 검색시 원본 사진은 매우 찾기 힘들고 포토샵된 사진만 주루룩 나온다(...).
[21]
https://gifer.com/en/Fjcf 원본과 포토샵을 비교한 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