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1c1d1f><tablebgcolor=#fff,#1c1d1f>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역대 원장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5da928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1998~현재) | ||||
초대 박도순 |
제2대 김성동 |
제3대 이종승 |
제4·5대 정강정 |
제6대 김성열 |
|
제7대 성태제 |
제8대 김성훈 |
제9대 김영수 |
제10대 성기선 |
제11대 강태중 |
|
제12대 이규민 |
제13대 오승걸 |
}}}}}}}}}}}} |
역임한 직위 | |||||||||||||||||||||||||||||||||||||||||||||||||||||||||||||||||||||||||||||||||||||||||||||||||||||||||||||||||||||||||||||||||||||||||||||||||||||||||||||||||||||||||||||||||||||||||||||||||||||||||||||||||||||||||||||||||||||||||||||||||||||||||||||||||||||||||||||||||||||||||||||||||||||||||||||||||||||||||||||||||||||||||||||||||||||||||||||||||||||||||||||||||||||||||||||||||||||||||||||||
|
대한민국 제25대 국무총리비서실장 | |
<colbgcolor=#5da928><colcolor=#fff>
대한민국 제4·5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정강정 鄭剛正 | Jung Kang-jung |
|
출생 | 1944년 5월 14일 ([age(1944-05-14)]세) |
경상북도 경주군 양북면 | |
재임기간 | 제25대 국무총리비서실장 |
2002년 7월 19일 ~ 2003년 3월 2일 | |
제4·5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 |
2003년 12월 24일 ~ 2007년 12월 24일 | |
학력 |
양북국민학교 (졸업) 양북중학교 (졸업) 대구사범학교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사) 영남대학교 (행정학 /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 고려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박사) |
가족 | 배우자 김문자, 슬하 2남 1녀 |
경력 |
불국사국민학교 교사 월성국민학교 교사 5급 을류 합격[1] 대구체신청 행정서기보 제17회 행정고시 합격 경제기획원 예산실 사무관 체육부 총무과장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문화행사운영단장 국무총리행정조정실 예방심의관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조정관 국무조정실 총괄조정관 국무총리비서실장 (제25대 / 국민의 정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제4·5대 / 참여정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 |
상훈 |
녹조근정훈장 (1989) 황조근정훈장 (2002)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교사, 공무원, 현재까지 유일한 연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2. 생애
국민학교 교사를 하다가 5급 을류(9급 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공직 생활 도중 5급 공채 시험에 합격해 주로 국무조정실에서 근무했으며 국민의 정부 시절 차관급인 국무총리비서실장의 자리까지 올라갔다.이후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에 임명되었는데, 교육관계자가 아닌 최초의 행정관료 출신 원장이라는 점에서 큰 충격과 화제를 몰고왔다.
참여정부에서 4년 간 평가원장을 지내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노무현 정권의 교육정책을 추진하는데 앞장선 인물 중 하나였다.
수능 과목 대폭 축소, 수능 범위 대폭 축소 등 숱한 논란 속에서 진행된 정부의 교육 개혁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러나 수능 과목 및 범위의 축소로 학생들을 입시 지옥에서 해방시키고자 한 정권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수능이 점차 어려워지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소위 킬러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교육 개혁 방향에 충실히 따른 결과, 최초의 비교육계 출신 평가원장이라는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평가원 설립 이래 처음으로 연임되며 6년의 임기를 보장받았다.
임기 후반에는 당시 정권의 숙원 사업이자 엄청난 논란을 야기했던 수능 등급제 시행에 앞장섰다. 당시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수능등급제'는 수능 성적표에 오로지 등급만을 표기하는 방식이었는데 로또 수능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끝나기 직전 2007년 11월에 치러진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2008학년도 수능 물리Ⅱ 복수정답 사태가 발생하게되는데 이과정에서 정강정 평가원장은 관습법을 운운하며, 거짓 해명 등으로 오히려 논란을 키웠고 사태 이후 한 달 넘게 자리를 버티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사상 최대의 득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며 정권교체가 일어나자 그제서야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했다. 그리고 수능 역사에 흑역사로 남은 수능 등급제 역시 1년만에 폐지되었다.
[1]
현 9급 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