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0 07:04:11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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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lephone[1]

1. 개요2. 역사
2.1. 기술 발달2.2. 다이얼 방식 변화2.3. 최초 제작자 논란2.4. 한국
3. 전화망4. 호칭5. 방송과의 관계6. 여담
6.1. 부가기능
6.1.1. 자동응답기6.1.2. 내선전화 관련
6.2. 언어별 전화 인사말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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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통신 수단의 한 종류. 음성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먼 곳으로 전송하고, 이 신호를 다시 음성으로 재생함으로써 멀리 떨어진 사람 간의 통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 또는 기계를 말한다. 즉 인터콤과 원리는 동일하다. 그러나 인터콤과는 달리 단말기 간에 통신이 직접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앙의 '교환국'이란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차이가 있다.

그 원리를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유선 전화기를 가지고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송화기에 대고 말을 하면 내부의 자석이 음성을 전기 신호로 바꿔 전선을 통해 상대의 수화기에 전달한다. 상대의 수화기는 전달받은 전기 신호를 다시 음성으로 변환시켜 들려주게 된다. 이는 어릴 때 가지고 논 적이 있을 법한 '실 전화기'의 원리와 유사한데, 실 전화기가 실의 진동으로 목소리를 전달한다면 전화기는 전선이나 전파를 매개체로 목소리를 전달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 때문에 전화기를 사용하려면 전화하려는 기기들을 미리 전선 혹은 전파로 연결해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전화의 보급을 위해선 우선적으로 국가적 범위의 통신망을 구축해야 하며, 이 모든 통신망을 관리하는 중앙 시스템과 시스템 관리 업체 역시 요구된다. 그것이 오늘날의 통신 서비스 업체.

누군가의 집을 찾아갈 때 주소를 알아야 하듯, 전화를 걸려면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알아야 한다. 물론 카카오톡이나 라인 등등의 VoIP 어플의 경우 서로 친구가 되어있다면 전화번호를 몰라도 음성통화나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2]

본 문서에서는 통신 네트워크와 유선으로 연결되는 유선전화, 소위 지상선(landline) 전화에 대해 주로 다룬다. 휴대 전화는 별도의 문서가 있다. 피처폰, 스마트폰도 자세한 별도 문서가 있으니 참조해보자.

2. 역사

2.1. 기술 발달

최초의 전화기는 오늘날처럼 정교한 부품을 만들 능력이 떨어져서[3] 부품들을 큼직큼직하게 만들다보니 그 사이즈가 거대하기 그지없었다. 당시의 가정용 전화기는 현재의 공중전화기 수준으로 거대했는데, 결제 시스템 등의 자잘한 기능들이 많이 들어가서 사이즈가 큰 공중전화기와 달리 순수하게 전화 기능을 구현하는 것만으로도 그 정도의 크기가 필요했다. 이후 기술이 발달하여 아래와 같이 전화기가 발전했다.
파일:Telephone-History-Bell-System.jpg
이미지로 보는 전화의 역사
  • 수동 교환기
    교환원이 전화국에서 각 이용자가 연결된 회선의 단자를 일일히 연결해서 통화를 성사시키는 방식이다.
    • 자석식 전화기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특허를 낸 법적으로 인정되는 최초의 전화기. 전자석에 연결된 엷은 철판을 진동시키면, 유도전류에 의하여 수화기 끝에서 음성이 재생된다. 전화기의 핸들을 돌리면 발전기가 회전하여 신호가 송출되어 교환원에게 요청하고, 교환원에 의해 연결되었다.
    • 공전식 전화기
      종전에는 핸들을 돌려야 신호가 송출됐으나, 공전식 전화기는 전력이 항상 공급되며, 전화를 들면 바로 교환원에게 연결됐다.
  • 자동 교환기
    이전에는 전화할 때 상대방에게 바로 연결하는 것도 안돼서 교환기와 교환수를 통해 연결해야 했다. 비유하자면 누군가에게 전화할 때 무조건 114를 써야 했던 셈이다. 모든 전화를 교환원이 수동으로 연결해줘야 하니 전화가 엉뚱한 상대에게 연결되는 사고가 일어남은 물론, 인건비도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자석을 이용한 '자동 교환기'가 발명되었는데, 미국인 알몬 브라운 스트로저가 그 주인공이다. 스트로저가 자동 교환기를 발명하게 된 이유가 다소 골때리는데, 원래 장의사였던 스트로저는 어느 순간부터 일거리가 줄어들고 있음을 깨닫고 원인을 알아봤다. 그런데 그가 살던 동네의 인구나 사망률이 크게 감소했다거나 한 일은 없었고, 이내 스트로저는 원인이 수동 전화 교환소에 있음을 알게 된다. 알고보니 교환소 교환원의 남편이 스트로저와 같은 장의사였고, 그래서 장의사를 찾는 전화가 올 때 고객이 딱히 스트로저를 지목하지 않았다면 무조건 자신의 남편에게 전화를 연결해 주었던 것이다. 진상을 알게 된 스트로저는 직접 전화소에 찾아가 항의했지만 그 전화회사의 사장이 문제를 일으킨 교환원의 남동생이었다.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이에 열불이 터진 스트로저는 다이얼과 전자석을 이용한 자동 교환기를 발명하였다. 이를 '스트로저 스위치(Strowger switch)'라고 부른다. 결국 스트로저는 교환수가 남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생업에 어려움을 끼친 것을, 무례를 끼친 교환수는 물론이거니와 교환수들 모두의 밥그릇을 깨버리는 것으로 대처한 셈이다. 이 부분은 2017년 7월 23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이후 스트로저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Strowger Automatic Telephone Exchange Company'[4]를 설립하여 자동 교환기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벨 시스템(Bell System)[5]에 자동 교환기를 납품할 정도로 잘 나갔다. 이 때 원하는 사람에게 연결하기 위해 전화번호가 사용됐고, 전화기에 다이얼이 비로소 생겨났다.

    우리가 잘 아는 집전화 사이즈의 작은 전화가 나온 것은 20세기 중반인 1931년으로, 약 반세기가 지나서야 나왔다. 그것이 바로 에릭슨 1001 모델(개요 상단의 이미지). 갈수록 전화의 수요는 증가하기만 했고 실내를 넘어 실외에서도 전화의 수요가 발생할 정도가 되자, 많은 국가들은 거리에 공중전화를 설치해 이용료를 받는 대신 바깥에서도 통화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자 모뎀을 통해 컴퓨터끼리 통화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 휴대 전화
    전화기는 계속 경량화되어 오늘날의 휴대 전화로 이어진다. 1980년대 이후 개발된 휴대 전화를 통해 사람들은 전화기를 들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당시 한국에서는 휴대 전화 자체가 가격이 어지간한 차량 1대 정도로 매우 비싼데다가 수신률도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부유층이나 회사 중역들 정도나 들고다니는 물건 취급이었고 삐삐 정도나 들고다니면 그나마 최신이었다. 1982년경 문자메시지 기능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삐삐의 시대를 거친 후부터 보급률이 점차 상승하였고, 1990년대말과 2000년대 초반에 완전히 대중화되어 1인 1휴대전화가 기본이 되었다. 그래서 공중전화는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져 점점 철거되다가 2010년 이후론 최소한의 명맥만 잇는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나마 병사들의 휴대 전화 사용이 제한되는 군 부대에선 많이 쓰였지만 2020년 7월부로 병사들의 휴대 전화 사용이 전면 허용되면서 이제는 군대에서도 공중전화를 거의 안 쓰게 됐다.

    휴대 전화의 폭발적인 발달과 보급으로 집전화 또한 정말 극도의 기계치인 사람이 아닌 이상 거의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정도의 기계치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노인이라도 대다수가 휴대 전화를 사용한 지 20년이 지나 최소 기능은 다 활용하는지라 이제는 칠순 이상 노인들이 많은 시골에서조차도 집전화는 안 쓰는 추세다. 다만 사업체나 가게 등 영업목적이나 공공기관 등 유선전화 자체는 여전히 그 쓸모가 많기 때문에 집전화의 수요가 줄어든 거지 유선전화 자체가 사라지는 추세는 아니다.
  • 스마트폰
    과거의 휴대 전화는 음성 기능이 전부였지만 휴대 전화의 기능은 갈수록 늘어났고 2010년대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포함한 스마트폰이 보급된다.[6] 스마트폰의 대중화 이후 기존의 휴대 전화를 피처폰이라고 따로 구분할 정도로 스마트폰은 만능 기기라고 불릴 만한 성능을 선보였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크게 달라질 정도에 이른다. 불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먼 미래에나 대중화됐을 것 같았던 기술이 사람들의 상상보다 빠르게 일상생활로 다가온 것이다.

    한편 넓이와 두께의 한계까지 도전하던 휴대 전화의 경량화는 스마트폰 등장 이후 정체되었다. 전화만 잘 되면 됐던 피처폰과는 달리 스마트폰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기기이고, 따라서 큰 디스플레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 크기를 줄이면 역효과가 나기 때문. 기술적으로도 고성능화에 따른 배터리 문제로 인해 휴대 전화의 크기를 줄이기 쉽지 않은 점도 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사용되는 스마트폰은 오히려 후반기의 피처폰보다 커진 상태다.

2.2. 다이얼 방식 변화

자동 교환기의 등장은 발신자가 직접 전화번호를 입력할 필요로 이어져, 다이얼도 비슷한 시기에 나오게 된다. 고정식 전화의 다이얼은 다음과 같이 변해왔다.
  • 다이얼식(로터리식): 원하는 숫자의 구멍에 손가락을 끼워 끝까지 돌리고, 놓은 후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음 숫자도 처음부터 반복한다. 이는 마치 모스부호 장단음 구분처럼 숫자마다 다이얼이 돌아오는 시간을 다르게 해서 전화번호를 전송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전화를 거는 시간이 길어 불편해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다이얼 문서에 나오듯 돌림 번호판을 의미할 뿐이던 것이 굳어져 현재는 그냥 전화번호 입력 자체를 의미하게 됐다.
  • 버튼식: 특정 버튼을 누르면 고유의 주파수가 전송돼 숫자가 입력된다. 무엇보다 시간이 적게 걸려서 일부 레트로 제품 외에는 다이얼식을 완전히 멸종시켰다.

2.3. 최초 제작자 논란

전화기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라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전화를 제작한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일 뿐이다. 재밌게도 전화기는 비슷한 시기에 여러 명의 발명가가 각자 제작에 성공했고 오히려 벨은 한참 늦게 발명한 편이다.

전화기를 최초로 개발했다고 말할만한 사람들은 안토니오 무치, 필립 라이스, 엘리샤 그레이 등이었고 그중 안토니오 무치는 돈이 없어서 특허를 신청하지 못하고 임시 특허만 등록했었다. 그 와중 그레이엄 벨이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이다. 무치는 벨을 상대로 법정 소송을 걸었으나 승소 직전에 병으로 급사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패소한 건 덤. 그래서 법적으로 전화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벨이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안토니오 무치 문서로.[7] 그리고 당시엔 이들 말고도 전화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발명가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2002년까지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했다고 되어 있었으나, 미국 하원에서 안토니오 무치가 최초로 발명한 것으로 수정하였다. 하지만 상원에서 부결되는 바람에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지만... 이외에도 벨에게 밀려 빛을 보지 못한 필립 라이스와 엘리샤 그레이도 개발자로 인정되었다.


KBS 스펀지에서도 전화기를 벨이 발명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방영되었는데, 여기서는 소송도중 무치가 사망해 재판이 중단, 벨의 발명으로 인정했다고 방영하였다.

2.4. 한국

동양에 서양 문물이 전래된 조선 개화기에 함께 전래되었다. 한국에 전화기가 처음 소개된 것은 1882년이지만 본격적으로 설치, 운영된 것은 1898년이며 이때는 텔레폰(Telephone)을 음역덕률풍(德律風)이라고 불렀다. 1896년 궁 내부에 자석식 교환기가 설치되면서 최초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당시 전화기의 사용법은 상대에 따라 달랐는데, 만일 국왕과 전화를 한다면 받는 신하 입장에서는 의관을 똑바로 갖추고 전화를 걸거나 받기 전 큰절을 3번 올려야 했다. 구한말에는 전화기가 왕의 옥음(玉音)을 전해주는, 왕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 행정 처리의 편의성을 위해 1902년부터 부산까지 그 개통이 확대되었다. 한편 그 와중에 전화기를 이용해 왕족임을 사칭하는 거짓 전화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보이스피싱인 셈이다.

백범 김구가 사형을 당하기 직전, 고종이 직접 전화로 김구의 사형을 연기하도록 명해서 사형을 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이 이야기는 논란이 있는데 김구 문서로.)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한반도 내 모든 전화 사업권은 일본의 손으로 넘어갔으며, 이때부터 한반도 전역으로 통신망이 확대된다. 이 과정에서 1935년 기존의 자석식, 공전식을 버리고 자동식이 채택되었다.

1945년 광복 후 드디어 모든 통신 사업 주도권이 수복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1950년 6.25 전쟁의 여파로 한반도 내 모든 통신망들이 대파되어 다시 복구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이로 인해 전화의 보급이 늦어졌다. 대한민국은 1960년대 통신망을 복구하고 한동안 정부 측에서 체신청에게 사업권을 부여, 1960년대 중반에는 EMD 교환기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화의 보급이 시작된다.

1960년대 경제 성장 과정을 거치며 소수의 부유층이나 관료층, 기업들의 전유물이었던 전화기의 수요가 점차 늘어났고, 가정의 전화 수요는 넘쳐나는데 가용회선수는 적었고, 공중전화를 설치하기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수요가 넘쳤다. 이쯤 되자 심지어 장관이나 청와대 높으신 분들이 전화 좀 놔 달라고 체신청에 압력을 넣는다든가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전화 회선 그 자체가 투기 대상이 되어 웃돈을 주고 사고팔거나 아예 월세 놓듯이 빌려주는 일까지 벌어지곤 했다.

1960년대 후반에 전화회선 하나 놓는데 웃돈 얹으면 수십만 원씩이나 되는 거금이 들어가고[8], 기껏 신규 회선을 뽑았더니 그걸 또 전화상들이 싹쓸이하여 웃돈을 얹어 파는 등 악순환이 계속되자[9] 정부에서는 나름대로 특단의 조치를 내리는데, 1971년 7월 전기통신법을 개정하면서 전화 회선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을 금지한 것. 단 여기에는 "기존에 가입한 전화에는 이를 소급해 적용하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는데 이렇게 되자 법 개정 이전에 가입해서 타인에게 양도가 가능한 전화는 '백색전화', 양도 불가능한 전화는 '청색전화'라는 별명이 붙게 된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심플하게 전화국에 비치되어 있던 가입 내역 기재 원부(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가입자 DB)의 색상이 예전 것은 흰색, 법 개정 후에 나온 양도 불가 전화는 파란색이어서였다.

근데 이 법이 통과되고 나서도 여전히 전화 회선 공급량은 수요에 한참 못 미쳤고, 정부에서 전화 회선을 못 받은 사람들은 기존 백색전화 회선 가입자들의 전화를 매입하는 방법을 빼고는 전화를 놓을 방법이 없으니 수요에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급기야는 백색전화 투기질에 나서는 사람까지 등장했는데 이게 한창 막장으로 치달았을 때에는 전화 회선 한 대 매매 가격이 260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참고로 서울에서 50평짜리 이 이 가격에 팔리던 시절이다. 이런 일은 1976년 전자식 교환기가 도입된 뒤 전화 회선 수를 수요만큼 공급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고, 1970년대 후반의 폭발적인 회선 공급에 힘입어 일반 가정에서의 전화 보급이 시작되며 1980년대에는 이미 남한 전체에 천만 회선이 깔리게 되었다.

그 뒤 1982년, 체신청의 전화 사업 부분이 " 한국전기통신공사"라는 이름의 공기업으로 출범하면서 사업권이 분리되고, 이 해에 아예 모든 기계식 교환기를 전자식으로 교체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반전자 교환기가 남아있었는데, 2003년 6월 광화문 본사에 설치되어 있던 반전자교환기의 철거를 마지막으로 전자 교환기로의 교체가 100% 완료되었다.

북한 역시 6.25 전쟁 이후 통신망이 대파되었다가 역시 약 10년의 시간을 거쳐 복구했으나, 내부용/외부용으로 구분하며 가정용 전화기는 보편화되지 않은지라 개인적인 용무로 전화를 걸거나 받을 일이 있으면 전화가 있는 집에 가서 양해를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1990년에는 내/외부용 통신망을 전부 합치면 약 80만 회선 정도였다.[10] 그리고 이마저도 국제전화망은 거의 구축되어 있지 않고 그나마 있는 것들은 지정된 국가와의 통화를 목적으로 회선 두세 개만을 제한적으로 개통한 상태였고,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경제 위기로 인해 정전이 잦아 전화를 제때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통신망의 노후화도 심각했다. 북한에서 전화에 대한 접근성이 그나마 높아지게 된 것은 2010년대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나서의 일인데, 이것도 지역 간 격차가 있어 대도시는 불편이 덜하지만, 농어촌 등 낙후 지역에서는 두세 가구당 한 대씩 있는 씩이라 1인 1대에 가까운 남한에 비하면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집 전화는 1980년대부터 빠르게 국내에 보급되어 2000년대 초반까지 성행했다. 특히 휴대전화가 보급된 90년대 말 이후에도 한동안 수요가 좋았는데, 이유는 노년층과 유년층의 휴대전화 보급율이 매우 낮았고 휴대전화 통화요금이 집전화보다 많이 비쌌기 때문이다.[11] 또 휴대폰과 유선전화의 역할을 철저히 분리해서 생각했던 점도 있었다. 유선전화는 2002년 2,349만대로 최대 수요를 기록하고 2000년대 후반까지 쓰이다가, 2010년대에 들어 1000만대 이하로 사용률이 떨어지며 스마트폰에 대체당하게 된다. 2024년 시점에는 1000만대 정도 보급되어 있어 조만간 1000만대선도 붕괴될 위기에 처해있다. 그래도 3G 회선 수보다는 훨씬 높으며, KT 유선전화 사용자 수 1위 겸 점유율 99%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3. 전화망

전화망에는 크게 POTS, ISDN, VoIP, 이동통신망[12]이 있다. POTS은 일반적인 유선 전화망이고, ISDN은 유선 전화망에 디지털을 추가한 형태이고, VoIP는 인터넷 통신을 통해 음성을 전송하는 전화 방식이다. 이동통신망은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인해 개설된 망이다. POTS은 정전이 되거나 인터넷 회선에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수익이 낮아서 요금이 비싼 편이다. VoIP는 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나, 정전이 되거나 인터넷 회선에 장애가 발생하면 전화도 사용할 수 없다. ISDN은 전화망 용도로 상용화된 나라가 얼마 없으며, 인터넷 용도로는 DSL에 밀려서 잊혀졌다. 통신사에서는 유선과 무선 및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으며,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이들을 서로 통합하여 운용하고 있다. 크게 음성망 중심으로 모든 전화망을 통합하거나 인터넷 망을 중심으로 모든 전화망을 통합하는 방법이 있다.

전국, 나아가 전 세계의 가입자와 통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네트워크를 공중전화교환망(PSTN)이라고 부른다.

4. 호칭

과거에는 전화라 하면 본 문서에서 기술하는 유선식 전화밖에 없었기에 그냥 '전화'라 부르면 되었으며, 휴대전화 등장 후에도 상당 기간 '휴대전화'(셀룰러 폰), '전화'(유선식 전화)로 구분하였으나, 휴대전화의 보급률이 유선식 전화를 넘어선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유선식 전화를 이르는 호칭이 새로 필요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개 '집전화'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며, 유선전화 등의 용어도 사용된다. 미국 등 영어권에서는 단말기가 전화 네트워크에 실제 케이블(구리선이나 광섬유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인 '지상선 전화'(landline phone)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가장 오래되었기 때문에 POTS(Plain old telephone service)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어에서는 단말기가 사용자와 함께 이동하는 이동전화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단말기가 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다는 의미인 '고정전화'(固定電話)라는 용어를 흔히 사용한다.

"무선전화"라는 용어도 20세기에 사용된 적이 있는데, 이는 휴대전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화기와 전화 본체가 전선으로 연결되지 않고 무선으로 연결된 전화를 말한다. 이제는 수화기가 무선식이란 사실은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집전화라 부른다. 그러나 무선전화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는 통화 중에 수화기를 들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은 굉장한 장점이었기에, 마케팅에 적극 활용되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무선전화"라 하면 휴대전화의 조상인 원시적인 무선전화(쉽게 말해 다이얼이 달린 무전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잠깐 동안이지만 관련 법률도 있었다(무선전화취급에관한임시조치령). 오늘날엔 이런 의미로 무선전화라는 용어를 쓰지 않지만, 법률 쪽에서 무선전화란 용어가 나오면 이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으니 주의하자. 대개 법령 내에 용어 정의가 되어 있으니 혼동할 일은 없을 것이다.

유선식 전화를 휴대전화나 VoIP와 구분하여 PSTN(Public switched telephone network)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PSTN은 유선전화와 동의어가 아닌 말 그대로 공중의 여러 전화기들이 연결된 전화 교환망으로 엄밀하게는 유선전화와 무관하다. POTS는 물론 휴대전화나 일부 VoIP[13]도 PSTN에 연결되어 있다.

5. 방송과의 관계

원래 알렉산더 벨은 ‘통신장치를 발명해야겠다!’라고 마음먹고 달려든 것이 아니었으며 ‘뭔가 전선으로 음악 같은 소리를 원거리 송출하는 장치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즉 그가 원래 만들려고 했던 것은 일종의 유선 방송 장치였던 셈이다.

전화는 라디오와 달리 수신 전용 장치가 아니라 송수신기로, 양방향 통신, 즉 음성 신호를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보낼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지만, 전화의 초창기에는 수신만 되는 서비스도 존재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까지는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 미국에서 전화를 통한 초보적인 방송시스템이 고안되어서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라디오가 퍼지기 이전까지 상용되기도 했다. 때문에 전화는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앞서 사상 최초로 등장한 방송이다.

예를 들어 헝가리는 1893년부터 1943년까지 "Telefon Hirmondo"(텔레폰 히르몬도)[14]라는 방송을 전화로 송출했다. 전화 단자에 스피커를 연결하거나 그냥 수화기를 들고 청취하는 방식으로 음악, 뉴스, 증권시황, 오페라, 낭독, 콘서트, 강의, 스포츠 중계 등 다양한 내용이 방송되었다. 텔레폰 히르몬도는 1925년에 해당 회사가 라디오 방송권을 따낸 뒤에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면서 라디오 방송을 재전송했으며, 이는 1943년 2차 세계대전으로 방송 설비가 박살나 중단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방송 초창기 당시에는 전화기 자체가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에 개인이 직접 가입하기보다는 사회명사와 부유층, 법인들이 주로 가입했다고 하며 일반인들은 주로 가게나 병원, 레스토랑, 카페같은 공공장소에서 방송을 청취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화방송은 송출범위와 전화기 보급의 미진으로 인해서 한계는 있었지만, 당대 기준으로는 실시간으로 뉴스를 전달받을 수 있는 유일한 전자매체였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텔레폰 히르몬도는 방송편성시간을 정해서 방송을 내보내는 체계적인 방송시스템을 갖추었다는 점 때문에 라디오 방송의 효시로 평가받기도 한다.

전화는 초기 음향기기의 역사와도 함께한다.[15] 초창기 음향기기는 전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대표적으로 음향기기의 라인 입출력 단자(3.5 폰잭, RCA, XLR)의 표준 임피던스인 600옴은 전화선의 임피던스에서 나온 것이다. 오디오의 주파수 특성을 조절하는 이퀄라이저도 통화 음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나온 물건이다. 스피커 제조사인 JBL AT&T 산하 전화기 제조사였던 웨스턴 일렉트릭이 반독점법으로 인해 음향기기 사업을 독립시키면서 설립되었던 알텍 랜싱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악기의 음을 고를 때 이용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있어, 해당 번호를 누르면 특정 음이 흘러나왔다. 우리나라도 20세기에는 다양한 서비스를 전화로 제공했으며, 특정 번호에 전화를 걸면 현재 시각, 오늘의 바이오리듬 등의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전화로 음악을 송출하는 것이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오늘날엔 전화선의 대역(bandwidth) 활용을 최대화하기 위해 전화선을 따라 흐르는 신호를 고도로 압축(compress)하며, 이 압축 알고리듬은 인간의 음성을 압축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음악과 같이 주파수 폭이 넓은 소리는 잘 압축하지 못한다. 때문에 음악 소리를 전화를 통해 들을 경우 듣기 괴로운 저음질의 소리가 들린다. (오늘날 통화 대기 중에 재생되는 컬러링 음질이 형편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16]) 이런 이유로 현재 개발되는 오디오 코덱은 대부분 보이스용 혹은 음원용으로 나누어져 있다. 두 모드를 동시에 지원하는 코덱은 생각보다 적다.

6. 여담

  • 전화 공포증이라고 해서, 먼저 전화하기를 싫어하거나 전화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기사도 여러 개 나왔으며, 전화에 자주 노출되면 저절로 나아진다는 의견도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현상은 전화가 처음 발명되어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에도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자기 집에 불쑥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무례하고 불쾌하게 상각했다. 19세기에 집에 전화가 있을 정도로 부유한 사람은 흔히 하인도 있었으며, 이런 경우 전화를 하인이 받았다. 사람들이 전화 통화하는 것을 즐기던 시대는 집전화의 전성기였던 20세기 중후반으로 한정되는 셈이다.
  • 유선전화기는 대체 어디서 전기를 공급받는 것인가 하는 의문들이 많은데, 전화선을 통해 2에서 3와트 정도의 미약한 전기가 공급된다. 수화기를 놓았을 때에는 DC 48V 정도의 전압이 공급되며, 전화벨이 울릴 때는 AC 100V까지 올라간다. 송전망과는 별개로 전력을 공급하기 때문에 집이 정전되거나 차단기가 내려가도 유선 전화기는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전기의 양이 대단히 적기도 하고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 전화국에서 그냥 내준다. 무선 전화기나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다기능 유선 전화기는 전화선에서 끌어오는 전기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건전지나 별도의 어댑터를 장착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이용해 전기요금 아끼겠다고 선풍기 같은 다른 가전제품들을 전화선에 물려서 쓸 수는 없다. 쇼트 등을 예방하기 위해 흐를 수 있는 전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주로 쓰이던 가정용 전화기는 지금의 RJ-11 형식이 아닌 일반 110V 전원 단자와 동일한 형태의 플러그를 사용했다. 그래서 전원과 전화 단자를 구별하기 위해 벽에 준비된 소켓은 전원의 경우 수평으로, 전화의 경우는 수직으로 설치하는 것이 상례였다. 당시 나이 드신 분들은 그걸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전화기를 전원 소켓에 연결했다가 홀라당 태워먹던 일도 부지기수. 그래서 오래된 주택은 90년대 초반까지도 전화 연결을 위해 일반 110V 플러그를 구해서 RJ-11 끝을 잘라 전선을 연결하던 과정이 필수였다.
  • 일단 벽에 단자를 연결할 수만 있으면 아무리 오래된 구식 전화기라도 통화가 된다. 이로 인해 1960년대 만들어진 다이얼 방식(로터리) 전화를 이용해 지금도 통화가 가능한 것이다. 이는 전화 시스템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 아니라, 구식 전화기로도 전화를 걸 수 있도록(후방 호환성) 시스템을 디자인했기 때문이다.[17] 이런 일이 가능한 네트워크는 전화와 라디오 정도로 의외로 적다. 예를 들어 TV는 수십년 전 모델로 방송 시청이 불가능하다(디지털 변환기[18] 필수).
  • 멀리 있는 사람에게 말을 전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서브컬쳐에서 세뇌당한 채로 세뇌 시전자의 의사를 전달하는 캐릭터를 일컫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로하나가 있다. 정확히는 아몬 전용 송신기. 더블오 퀀터 ELS와 대화하기 위한 기체라 휴대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옛날 송수화기의 송화부에는 분말 형태의 탄소 진동판이 사용되었는데 오래 사용하면 이 분말이 습기 등으로 굳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때, 송화기를 두드려서 충격을 주거나 마이크의 가운데를 칼로 긁어 주면 잡음이 없어졌다.
  • 양손에 A전화기와 B전화기를 동시에 들고 A 전화기에서 통화 연결 후 B 전화기에서 수신한 뒤, 두 전화기를 양쪽 귀에 대고 말을 하면 양쪽 전화기에서 귀를 찌르는 시끄러운 굉음과 쇳소리가 난다. 이는 A 전화기에서 발신된 소리가 바로 B 전화기로 수신, 송출된 소리를 다시 A 전화기가 받아 전달하는 무한루프 현상 때문에 그렇다. 일반적으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서로 다른 번호의 전화 두 대가 그렇게 가깝게 있을 일이 별로 없기에), 라디오 생방송에 청취자가 전화를 걸어 통화 음성이 방송으로 송출될 경우 라디오의 스피커 소리를 작게 줄이지 않으면 이 현상이 일어난다. 진행자가 전화를 건 청취자에게 꼭 “라디오 소리를 줄여 달라”고 요청하는 이유.
  • 집전화를 설치하지 않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출생자 중에는 유선 전화기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19] 그래서 스마트폰의 전화 앱 아이콘(수화기 모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른다고 한다.[20] 이런 형태의 전화 받는 시늉을 내라고 하면 유선전화기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주먹 쥔 상태에서 엄지와 소지만 뺀(즉 수화기를 흉내낸) 손동작을 하지만, 유선전화기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떠올리며 그저 손바닥을 편다. 또한 공중전화도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공중전화 부스를 그저 들어가서 핸드폰으로 전화하라고 설치한 줄 아는 경우도 있다는 듯.
    • 이런 2000년대 중후반 출생자들은 회사에 취업하면 회사의 내선 전화기 사용법을 몰라서 당황한다.[21] 전화 수화기를 입사 이후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지금도 병원이나 식당, 상점, 관공서, 학교, 군대[22] 등에서는 유선 전화기가 필수이고, 특히 식당이나 병원에 가다 보면 직원이 유선 전화기를 쓰는 것을 볼 기회도 있을 텐데도 유선 전화기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다만 자율좌석형 오피스[23]를 도입한 회사의 경우 일부 고정석 근무자를 제외하면 유선전화를 지급하지 않고 업무 전화까지 개인 휴대폰을 사용하기도 한다.
  • 요즘은 식당에서도 업주들이 식당에 전화가 걸려올 경우, 유선전화가 아닌 자신의 휴대폰으로 연결되게 돌려 놓는 경우도 종종 있고, 네이버 지도나 구글 지도, 카카오맵 등에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식당 번호로 기재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 2000년대 중후반 출생자들부터는 유선 전화기 사용법을 모르거나 아예 유선 전화기 자체를 처음 보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업주들이 식당에 오는 전화를 자신의 휴대폰으로 연결되게 돌려 놓는 이유 또한 직원들 중 2000년대 중후반 출생자들은 유선 전화 사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 아예 차라리 자신이 전화를 받기 위해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식당 번호로 기재하거나 식당 전화를 자신의 휴대폰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 퍼즐특급열차 초창기에 답변용 소품으로 쓰인 적이 있다. 방음실 내부에서 버저를 누른 팀이 수화기를 들고 정답을 말하는 규칙.
  • 옛날에 위기탈출 넘버원에서는 벌칙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 정답이면 밀가루가 발사되지 않지만 틀리면 아래 구멍에서 밀가루가 발사된다. 반대로 지워야 산다에서는 정답을 누르면 밀가루가 발사된다. 먹물 벌칙이나 손바닥 벌칙 다음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던 벌칙.
  • TTY-RTT라고 해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식 전화기 또는 서비스가 있으나 국내에서는 시행한 적이 없다. 별도의 특수 타자기를 전화기나 휴대전화 단말기에 연결해서 쓰는 방식과(물론 비장애인의 경우 오퍼레이터가 청각장애인이 발신한 문자를 읽어 준다.) 실시간으로 텍스트가 전달되는 방식이 있다. 후자의 경우 비상시에 매우 유용해진다. 일본에선 난청인을 위한 '히츠단'이라는 필담기가 있었다.

    이런 특수타자기는 커플러에 수화기를 올려서 통화하는것 외에도 휴대전화를 연결할수 있도록 USB포트가 탑재되기도 한다.
  • 언론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통화는 대통령의 통화인데, 대통령의 통화는 사진으로 남겨지는 경우가 많다. 보안 문제로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현대에도 대통령의 통화만큼은 유선전화를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은 대통령의 가상 대화 유머를 만들 때 짤방 소재로 쓰인다.

6.1. 부가기능

6.1.1. 자동응답기

전화를 받지 않으면 미리 지정된 인사말을 재생하거나, 반대로 부재중인 수신자에게 음성으로 메시지를 남기고 수신자가 확인하는 기능. 처음엔 카세트 테이프를 탑재하다가 반도체 저장장치로 갈아탔다. 미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한국은 부유층이 좀 쓰다가 음성사서함 등장으로 씨가 말랐다.

6.1.2. 내선전화 관련

일반 전화 말고 회사 관공서 내에서 따로 내부망(PBX)을 구축해서 고유의 내선번호로 부서간 연락하는 시스템을 내선전화라고 한다.[24] 여기에 특화된 버튼 많은 전화를 키폰이라 한다.
  • 돌려주기 : 타 부서로 지금 하고 있는 통화를 넘겨주는 기능. "저희 부서 업무가 아닙니다. 관련 부서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대화를 생각하면 빠르다.
  • 당겨받기 : 전화기가 여기저기 많은데 먼 전화기가 울릴 때 내 앞의 전화로 대신 받는 기능.
KT의 안내영상

6.2. 언어별 전화 인사말

언어
한국어 여보세요?
영어 Hello?[25]
표준 중국어 喂(wéi)?[26]
프랑스어 Allô?
러시아어 Алло?
독일어 Hallo?
스페인어 ¿Diga?[27]
이탈리아어 Si?, Pronto?
일본어 もしもし?[28]
에스페란토 Halo?

7. 관련 문서

7.1.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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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문단을
전화/휴대 전화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2. 기타



[1] 이미지는 초기의 다이얼식 전화기. 영어로는 'Rotary dial'이라고 한다. 참고로 지금도 인터넷전화가 아닌 일반전화 회선이 있다면 이 방식(다이얼 펄스)의 전화기를 사용해 통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보다 더 극 초창기에는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것도 없어서 교환수에게 직접 번호를 말하면 연결해주는 식이었다. 당연히 교환수는 통화 내용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2] 개인의 계정 정보가 전화번호를 대체하기 때문이다. [3] 무려 19세기다. [4] 이후 'Automatic Electric'가 되며, 이후 GTE에 인수되고, GTE는 Bell Atlantic에서 인수한다. Bell Atlantic는 버라이즌이 되어 명성을 떨치고 있다. [5] AT&T의 전신.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세운 기업이다. [6] 스마트폰 이전에도 이런 기능을 탑재한 휴대 전화들은 꽤 존재했으나 그 성능이 매우 조악하면서 제한적이었다. [7] 라이스가 살았던 마을에는 '진짜 전화기의 최초 발명가는 라이스'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카더라 [8] 당시에는 평균 연봉이 몇 만원 정도 했던 시절이었다. [9] 야인시대로 잘 알려진 동대문 정치 깡패 이정재도 전화상으로 상당한 이득을 취했다고 한다. 이쪽은 곽영주와 친분까지 있었으니... [10] 같은 시기 남한의 회선 총 개수는 1,500만 회선이었다. [11] 때문에 90년대 말 ~ 2000년대 초 통신사 광고를 보면 아이들 방에 집전화를 놓으라거나 휴대전화와 같이 쓰라는 식으로 홍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12] 모든 전송이 패킷 통신으로 통합된 LTE의 VoLTE의 경우에는 이동통신망보다는 인터넷 전화(VoIP)에 가깝다. [13] 가입자끼리만 전화가 가능한 것이 아닌 스카이프 같이 일반 전화와 연결이 되는 VoIP 서비스 [14] 전화 해럴드, 즉 전화 신문이란 의미. 당시엔 라디오도 TV도 없었기에, 당시 대중매체의 대명사였던 신문을 방송 명칭으로 사용한 것이다. [15] 증폭기가 없던 시절의 원시적인 음향기기는 사실상 전화나 다름없었다. 애당초 스피커가 스피커(말하는 장치)라 불리는 이유가 전화기에서 유래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16] 게다가 컬러링은 VoLTE보다 음질이 나빠서 VoLTE지원 기기로 컬러링을 들어도 유선전화와 음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 [17] 받는 것 한정. 거는 것은 2020년 이후 전화 교환기가 거의 다 교체된 탓에 이제는 불가능하다.(일부 구축 아파트에선 사용가능)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옛날 전화기를 실사용하고자 한다면 기계식(다이얼식)은 앞에서 말했듯이 이제는 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니, 1980년대 초반부터 나온 전자식(mfc 방식)을 알아보는 게 속 편하다. [18] 시중에서는 디지털 tv 컨버터라고 많이 쓰인다. [19] 2000년대 초반생까지는 유선 전화기를 알고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20] 2000년대 중후반부터 지어진 아파트들은 터치스크린형 인터폰 월패드에 유선전화 기능이 내장되어 있으며 통화는 스피커폰으로만 가능하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아파트의 월패드는 수화기와 다이얼이 있는 유선전화에 카메라로 현관을 볼 수 있는 흑백 액정과 문 열림 버튼이 달린 형태의 기기가 많았고, 이 기기로 유선전화를 쓰는 방법은 시중의 일반 전화기와 같아서 이런 집에 산다면 어린 나이어도 유선전화가 뭔지 알 수 있다. 다만 2000년대 초반 일부 아파트들은 다이얼이나 터치스크린 등 입력장치와 수화기가 없고 카메라 화면, 비상벨, 경비실 통화, 문 열림 버튼만 있는 월패드가 달려 있기도 하다. 이 경우 외부로 유선전화 발신이 불가능하며 수신만 가능하다. [21] 보통 기본은 회사 내선에 연결된 상태고, 지정된 숫자를 누르면 통신사 망으로 전환되어 외부와 통화가 가능해진다. [22] 신병들이 대부분 사회 초년생이다보니 행정병으로 배치받고 전화 사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부내 내 전화는 군스마트폰처럼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유선전화이기 때문. [23] 도서관이나 스터디카페에서 자리를 발권하듯 키오스크 등을 통해 자신이 일할 자리를 마음대로 고르는 시스템의 사무실. [24] 위키피디아는 기업용 전화 시스템이라고 표제어를 해놨다. [25] 다만 이는 20세기부터 널리 사용된 인사말이고, 전화가 최초로 발명된 시절에 전화를 받은 사람이 하는 인사말은 “어호이”(ahoy), 또는 “어호이호이”(ahoy-hoy)였다. 이는 전화 인사말로 새로 만들어진 신조어가 아니라 당시 널리 사용되던 인사였기에 전화에서도 사용되었을 뿐이다. [26] 전화를 시작할 때 하는 인사만 2성으로 발음한다. "저기요..."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주의를 끄는 용법으로 쓸 때는 4성(wèi)으로 발음한다. [27] 이는 지역마다 다르다. 멕시코에서는 ¿Bueno?가 더 많이 쓰이고, 어떤 지역에서는 ¿Alo?가 더 많이 쓰이며, ¿Diga?는 회사 등지에서 다른 전화를 넘겨받을 때 많이 쓰인다. 쿠바 등의 일부에서는 ¿Oigo? 가 쓰이기도 한다. [28] 申す(말하다)에서 나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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