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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장 중국공산당 중앙정치법률위원회 서기 저우융캉 周永康 | Zhou Yongk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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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colbgcolor=#ffffff,#191919>
한문: 周永康 (
병음: Zhōu Yǒngkāng) 한국 한자음: 주영강 |
출생 | 1942년 12월 3일 ([age(1942-12-03)]세) |
[[대만| ]][[틀:국기| ]][[틀:국기| ]] 장쑤성 우징 |
|
국적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쑤저우고등학교 중국석유학원[1] |
직위 |
중국공산당 국토자원부 부장 (
1998년 3월 ~
1999년 12) 쓰촨성 당서기 ( 2000년 1월 ~ 2002년 12월)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부장 ( 2002년 12월 7일 ~ 2007년 10월 28일) 중국공산당 중앙정치법률위원회 서기 ( 2007년 10월 22일 ~ 2012년 11월 20일) |
[clearfix]
1. 개요
저우융캉은 중국공산당 고위직을 역임하였으나 비리 혐의로 제명된 상하이방 계파의 정치인이다. 한때는 정법위 서기로서 후진타오 시대에 상무위원의 자리에 앉기도 했다.2. 생애
한국에서는 상하이방으로 알려져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그는 장쩌민-주룽지가 상하이에서 일할 때 만든 인맥과는 무관했기 때문에 상하이방의 일원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보다는 기술관료로 승승장구하다가 장쩌민 정부에서 권력핵심부에 진입해서,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상하이방과 행동을 같이한 인물이었다고 보는게 맞다.장쑤성 우시시 출신이다. 원래는 루(陸)씨지만 어머니 성을 받아 저우씨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우시가 매우 발달된 도시이지만, 그가 자라날 당시에는 한적한 농촌이었다. 이런 깡촌에서 태어났음에도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진학을 계속해 베이징의 명문대인 중국석유학원에 입학했다.[2]
그는 석유학원에서 자원공학을 공부했고, 대학을 졸업할 무렵인 1964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1967년에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지만 저우융캉은 다행히 수도에 멀리 떨어진 만주지역의 석유탐사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다칭유전을 개발하는데 한몫하였다. 이후에는 랴오닝성의 여러 유전 개발에 참가하여 여러 실적을 냈고, 이 때문에 중앙에서도 주목하여 1984년에는 중앙부처인 석유부의 차관에 임명되었다.
다시 1980년대 후반에는 신장 위구르 지역의 석유탐사에서 성과를 냈고, 1990년대는 해외로 진출하여 여러 제3세계국가의 석유탐사에서 다시 큰 실적을 냈다. 이러한 실적으로 1992년 10월, 14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결국 1997년에 200명 정원의 당중앙위원회에 진입할 수 있었다.
1998년에는 주룽지 총리 아래서 토지자원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권력 핵심부에 진입했고 2000년에 쓰촨성 당서기가 되면서 대권주자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가 재임할 동안 쓰촨성은 매년 10%씩의 고성장을 했고, 자신의 인맥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2002년 11월, 16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하였다. 2007년 10월, 1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하여 중국 공산당 서열 9위이자 사실상의 사법권 총수나 다름 없는 중앙정치법률위 서기까지 겸하였다. 이때의 별명은 '사법·공안의 차르'.
하지만 2012년, 정치적 후원 관계로서 자신의 정계 제자나 다름없었던 또 다른 거물 정치인인 보시라이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그를 구하기 위해 정법위 산하에 있던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무경부대)를 동원해 사실 상의 쿠데타 시도를 했다가 실패하면서 정치적으로 몰락하였고, 이후 2014년 12월 5일, 뇌물수수·기밀 유출·문란한 성생활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면서 사실 상의 정치 생명이 끝났다. #
중국당국이 발표한 그와 그의 일가의 부정축재액은 14조원에 달한다.
1989년, 천안문 사태의 여파로 자오쯔양이 숙청된 이후 거의 30년 만에 숙청된 정치국 상무위원이며 장쩌민 시대 이후로 지켜지던 정치국 상무위원은 처벌하지 않는다(刑不上常委)는 불문율이 마침내 시진핑 시대에 이르러 깨지게 되었다.[3]
그의 숙청을 시작으로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는 전직 정치국 상무위원, 위원급 거물들을 시진핑이 많이 처벌하였으며 심지어 자신이 발탁한 외교부장 친강, 국방부장 리상푸도 줄줄히 낙마하였다. 다만 친강은 사생아를 두는 등 사생활 문제가 가장 컸으며, 리샹푸는 2023년 로켓군에서 발생한 대규모 뇌물 수수 사건 [4] 및 로켓군 내부정보의 미국유출[5]이 결정적인 원인이기 때문에 일부에서 드는 권력투쟁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공안부와 정법위를 모두 장악했던 거물이자 한때 대권주자였기 때문에, 공산당 내 파벌 싸움이 있었으나 # 결국 2015년 5월 22일 이루어진 1심 재판에서 예상과 다르게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이 판결에 대해 저우융캉이 항소하지 않음으로써 형이 확정되고 공산당에서도 제명되었다. 이후 그는 베이징 친청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
스스로가 상하이방 계열의 거물 정치인인 동시에, 시진핑과 함께 후진타오의 차기를 두고 경쟁하고, 시진핑 이후에도 여전히 유력 차기 권력 주자 중 한 명이기도 했었던 보시라이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만큼, 그의 실각은 태자당 출신인 시진핑의 일인 독재 체제 구축을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특히, 상술하였던 보시라이 실각 당시 그가 지니고 있던 정법위 산하 무경부대(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를 움직이려 했던 사건으로 인해 이후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는 시진핑에 의해 아예 중앙정치법률위(정법위) 소속에서 중앙군사위 소속으로 옮겨져 중국 인민해방군의 일원이 되었다.[6] 그만큼 저우융캉의 실각은 여로모로 시진핑의 권력 강화의 방점을 찍는 계기가 되는 사건 중 하나가 된 셈.[7]
그의 축출을 기점으로 태자당, 공청단과 함께 중국 집단 지도 체제의 일원을 이루고 있던 상하이방은 세력을 급격하게 상실하게 된다.
한편 가족들도 대부분 몰락했지만, 아들 저우빈은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중국당국과의 사법거래로 귀국해 징역 18년에 3400억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3. 북한 관련설
그는 2010년 10월,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에 즈음하여 중국공산당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는데,[8] 김정일과의 면담에서 중국 당국이 김정남[9]을 은근히 밀고 있다고 분별 없이 다 불어 버렸다고 한다(…). 이에 친중파의 득세를 경계한 김정일이[10] 이후 김정남의 귀국 계획을 취소시키는 한편[11] 후계자로 김정은을 확실히 밀게 되었다는 것. 기사 그리고 이는 김정일 사후에 김정남 피살, 장성택 숙청[12]으로까지 이어졌다고.위 내용은 미국에 본사를 둔 반체제 언론 보쉰(博讯)에서 보도한 내용인데, 전반적으로 '외교 경험이 전무했던 저우융캉의 바보 짓 때문에, 중국이 김정남이라는 대북(對北)
제법 흥미로운 보도이긴 하나, 애초 김정남은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의 사생아에 불과하며, 2001년 일본으로의 밀입국 시도가 적발되어 세계에 망신을 산 이후 북한 정계에서는 일찌감치 주변인이 되었음을 고려하면[13] 적당히 걸러서 받아들일 필요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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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중국석유대학.
[2]
중국의 학원은 특수한 목적으로 설립된 대학이나 단과대학을 뜻한다.
[3]
천안문 사태 이후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수준을 처벌하는 것도 상당히 꺼렸다. 정치국 위원 중에서는 1995년 베이징 서기 천시퉁, 2007년 상하이 서기 천량위, 2012년 충칭 서기 보시라이의 숙청 3건 정도가 있다.
[4]
로켓군의 고위 장성 9명이 이 때문에 해임되고 사법처리되었다.
[5]
미국 공군대학 중국항공우주연구소(CASI)에서 2022년 10월 25일 공개하였음.
[6]
그 전에는 정법위 산하로서 인민해방군이 아닌 공안부의 군대였다.
[7]
시진핑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서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가 중앙군사위로 옮겨감으로써 사실 상 중국 내 모든 무장 세력을 손에 넣게 됨.
[8]
열병식에도 참석하여, 주석단에서 김정일, 김정은(당시 후계자)과 함께하였다.
#
[9]
베이징 유학 경험이 있다고 한다.
[10]
북중 관계가 가까운 것은 사실이나, 북한 지도부는 중국에 지나치게 예속되는 것도 우려하는 듯하다.
[11]
김정남은 오랜 기간 외국을 떠돌았으나, 당시엔 평양으로 돌아가 노동당 조직지도부 업무를 맡을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12]
장성택은 중국과의 관계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
그럼에도 김정일은 김정남을 인간적으로는 멀리하지 않았던 듯하다. 신빙성에 논란이 있긴 하지만 김정일의 유언이라고 알려진
10월 유훈에서는 '김정남을 배려해야 한다. 그 애는 나쁜 애가 아니다. 그의 애로(隘路)를 덜어주도록 할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완전한 복권(復權)을 주문했다기보다는 인간적인 배려를 당부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