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0 05:03:23

자히 하와스

<colbgcolor=#222><colcolor=#fff> 자히 하와스
زاهي حواس
Zahi Abass Hawass
파일:external/guardians.net/photo007_sm.jpg
출생 1947년 5월 28일
이집트 왕국 다미에타
국적
[[이집트|]][[틀:국기|]][[틀:국기|]]
학력 카이로 대학교
알렉산드리아 대학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직업 고고학자

1. 개요2. 생애3. 업적4. 기타

1. 개요

자히 하와스는 이집트 고고학자로, 고대 이집트 연구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힌다.

2. 생애

1947년에 이집트 다미에타에서 태어났다. 본래는 변호사를 지망했으나, 알렉산드리아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그리스 로마 고고학 석사과정을 밟았고, 카이로 대학교에서 이집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1]. 이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로 유학하여 그곳에서 이집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8년에 헤르모폴리스 발굴 작업에 참여했고, 1970년에서 1974년까지는 타라나 발굴 작업에 참여했다. 1969년에는 아비도스 사원[2]의 발굴 작업에, 1972년에서 1974년까지는 아부심벨 대신전에 대한 고고학 조사에 참가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에는 기자의 대피라미드의 관리자로도 일했다.

2000년대에는 카이로 박물관의 관장으로 일했고, 2002년과 2009년에 유물부 장관을 역임했다. 2011년에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하에서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하기도 했으나 2011 이집트 혁명으로 인해 실각했으며, 이때 카이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많은 수의 고대 이집트 유물들이 소실되는 비극을 겪었다.

3. 업적

고대 이집트 전문가이자 유물 수호자로도 불리며, 때문에 이집트 관련 고고학계와 여론에서는 인기가 높다. 그럴 만한 게 2000년대에 와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으로부터 도난당한 파라오시대 고분벽화 5점을 돌려받았으며. 영국 런던 대학교가 보유하고 있던 석기시대 유물 등 2만 5천 점, 미국이 보유한 3000년 된 목관 등 유럽과 미국에게 3만 점이 넘는 이집트 고대 유물을 되찾아오는 데 큰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유대주의자[3]이며 언플도 자주하는 등 정치적인 행동으로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이래 봬도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한, 자타공인 최고의 고대 이집트 전문가 중의 한 사람이다[4].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만든, 그의 네페르티티 미라를 찾는 연구 과정을 취재한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네페르티티 본인이거나, 그 친족일 가능성이 유력한 미라를 찾는데 성공한 모습이 나왔는데, 이 와중에 그는 각 미라의 안치 방식과 관의 형태 등을 보고 네페르티티의 생존 시기와 상관없는 미라들을 정확하게 판별해내는 위엄 넘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4. 기타

하와스는 고대 이집트 유물의 출입과 유적지 발굴을 허가하는 권한을 가져서, 국내외 관계자들은 그를 두려워한다. 그가 허락하지 않으면 유물과 유적지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작업하는 외국의 고고학자들은 발굴 결과를 공개하기 전에 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추방당한다. 여하튼 문화재에 대한 애착은 엄청나서 2011년 이집트 혁명 이후 몇몇 이집트 문화재가 도난당하자, 그야말로 분노하여 비난 인터뷰를 하고 도난 방지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초고대문명설을 아주 싫어해서 관련 연구자들한테는 연구 허가도 내어주지 않는다. 이는 제대로 된 고고학자의 입장에서는 고대인들의 과학기술을 근거없이 까내리는 낭설인 만큼 당연한 일이다.


[1] # [2] 아비도스 사원의 헬리콥터라는 희대의 오해와 관련된 곳이다. [3] 이집트 이스라엘 중동전쟁을 벌였던 탓에 반유대주의가 국민감정마냥 퍼져 있다. 그는 유대인 팔레스타인 지배를 받고 그걸 빌미로 학살을 벌이자면, 세상에 그 정당성으로 무수한 나라가 과거 역사로 지배당해야 한다면서 그들의 역사는 더럽다고 혐오감을 보이기도 했다. 이때 문화재를 훔치는 건 나치 같은 놈들이라고 욕한 인터뷰를 한 걸 보면, 그도 나치는 혐오하는 듯하다. [4] 사실 학자가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어느 정도 선에서는 용인되는 부분인게, 이렇게해서 연구비를 따내거나 연구 과정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도를 확보함으로서, 향후의 연구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 보이저 계획의 총책임자였을 당시에 "국민들의 혈세로 만든 탐사선이니, 이런 정치쇼도 해서 보여주는 게 예의다."라며 지구가 있는 방향으로 사진을 촬영해서 대중들에게 공개한 바 있고, 영국 물리학자 프레드 호일은 자신의 논문을 발표할 때마다 언론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정보를 미리 흘리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이것이 지나쳐서 서민의 경우처럼 본업에서 크게 이탈한다던가, 로버트 키호처럼 기득권층에 붙어서 곡학아세하는 경우 내지는, 황우석처럼 연구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점이다. 적어도 자히 하와스는 고대 이집트 연구에 문화재 보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유도라는 목적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