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13:57

자이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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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슬람에서 기원했지만 대다수 드루즈인들조차도 스스로를 별개의 종교로 분류한다.
  • * 일반적으로 시아파와는 별개의 종파로 분류되는 경우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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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역사

1. 개요

아랍어: الزيدية
영어: Zaidiyyah / Fivers

통칭 자이디야 혹은 5이맘파.

제5대 이맘으로 주류 시아파가 섬기는 무함마드 알 바키르가 아닌 그의 동생 자이드 알 샤히드를 따르는 분파다. 본래 여러 반란과 이란 카스피해 남안 타바리스탄 지역에서의 알라비 왕조 수립 등 수니파 중앙 정부와 극심하게 대립했으나 결국 모두 진압되고 구석으로 숨어 이슬람 세계의 서쪽 끝인 북아프리카 마그레브에 이드리시 왕조, 아라비아 반도 남쪽 끝의 예멘에 이맘국인 라시드 왕조를 세워 세력을 유지했다.

특히 후자는 1962년 공화정 수립 이전까지 세력을 유지했으며 현재도 예멘의 무슬림 중 절반이 자이드파다. 초창기 정통 칼리파인 아부 바크르 우마르를 부정하는 다른 시아파와 달리 자이드파는 그들의 이맘직을 인정하여 대다수 수니파들과 어느 정도 타협의 여지를 남겼지만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정통성 우위는 여전히 주장하며 우마이야 칼리파조부터의 칼리파들을 단죄하고 비합법적인 칼리파와의 싸움을 신자의 도리로 여긴다.

예멘의 북부 지역[1]과 그와 접경한 사우디아라비아 서남부(아시르 지방)에 주로 분포한다.

2. 상세

제4대 정통 칼리파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암살된 후 그의 장남 하산 이븐 알리, 차남 후세인 이븐 알리을 거쳐 후세인의 아들인 제4대 이맘 알리까지 쉬아 진영은 하나로 유지되어 있었지만 알리 이븐 후세인이 사망한 후 그의 두 아들인 무함마드 알 바키르와 자이드 알 샤히드를 놓고 분쟁이 벌어졌다. 전자는 지하에서 조용히 신학 연구에만 몰두했는데 후자는 형과 달리 정치적이었고 이맘의 현실적인 권력을 믿었기에 반우마이야 투쟁에 나섰다. 이때 형 무함마드 알 바키르를 이맘으로 모시며 재야에 머물던 이들이 주류 시아파를 이루게 되었고 동생 자이드 알 샤히드를 따라 무장 투쟁에 나선 이들이 자이드파('자이디야')를 이루게 되었다. 740년 마침내 자이드 알 샤히드는 무장 봉기를 일으켰으나 우마이야 칼리파 히샴의 군대에 패배하고 붙잡혀 처형되었다.(히즈리력 122년 사파르력 2일)[2] 2년 후 그의 아들 야흐야가 재차 봉기했지만 그도 전사하고 말았다. 비록 실패했지만 자이드파는 이라크의 쿠파 일대에서 영향력을 유지했다.

자이드 일가가 사망한 후 일파는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차남인 후세인 이븐 알리의 후손이 아닌 장남 하산 이븐 알리의 후손들 중에서 이맘을 찾았다. 그 결과 하산의 아들인 하산 알 무싸나(그 역시 자이디 이맘으로 인정됨)의 후손들이 이맘직을 역임했다. 그의 장남 이브라힘 알 아므르의 5대손 야흐야 알 하디는 아라비아 반도 남부 예멘에 이맘국을 세워 1,000년간 유지되었고 다른 아들 압둘라 알 카밀의 막내인 이드리스는 메디나에서의 반란이 실패한 후 북아프리카 마그레브로 이주하여 이드리시 왕조를 세웠으며 일단의 하산과 후세인의 자손들이 자이드파와 아직 이슬람의 손길이 미약했던 이란 북부의 타바리스탄에서 선교를 통해 알라비 왕조를 세워 아바스 칼리파조를 위협했다. 이렇듯 자이드파는 다른 시아 분파들에 앞서 여러 곳에서 자립을 시도했다. 7이맘파는 909년에 이르러서야 파티마 왕조를 건립했고 12이맘파는 10세기 중반에 부와이 왕조로서 역사의 중심에 나타났다. 사실 자이드파는 12이맘파였던 사파비 왕조 이전까지의 시아파 가운데 가장 큰 그룹이었으며 현재도 시아파에서 12이맘파에 이어서 두 번째로 큰 그룹이다.

자이드파는 후세인 이븐 알리 이후의 이맘은 이쓰마, 즉 무오성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12이맘파에서 주장하는 숨겨진 이맘 사상도 거부하며 중요하게도 우마르, 우스만 등 수니파 정통 칼리파나 그들의 가르침도 인정하고 있다. 그 때문에 자이드파의 교리는 시아파 가운데서는 비교적 제일 수니파에 가깝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들을 비롯한 사하바들이 처음부터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를 지지하지 않은 것은 과오이지만 그렇다고 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시조라 할 수 있는 자이드 알 샤히드가 (후에 수니파에 흡수되는) 무타질라 학파의 스승 와씰 이븐 아타이의 제자였던 사실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성과 유연한 사고를 중시했던 그 가르침에 따라 자이드 알 샤히드는 우월한 이맘과 평범한 이맘이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다만 우미이야 칼리파조처럼 명백히 비합법적인 칼리파들에 대항해 싸우는 것은 신자의 도리로 여겼으며 '타끼야'나 임시 결혼 등 수니파의 박해를 피하기 위한 신앙 위장을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모습도 공존한다. 2014년에 벌어진 예멘의 후티 반란은 시아 계열 자이드파가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3]

3. 역사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 하산 이븐 알리의 후손들이 모로코 지역에 자이드파 국가인 이드리시 왕조를 세웠다. 하산의 후손들은 북 이란 카스피해 연안에 자이드파 왕조를 세우기도 했고 북 예멘을 1962년까지 자이드파 아래서 통치하기도 했다.

[1] 북예멘 지역 [2] 서력으론 대략 740년 1월 [3] 사실 이 내전 소식 때문에 한국을 위시한 전세계에서 자이드파에 대해 재조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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