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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1983)/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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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LG 트윈스
2.1. 2006~2009 시즌2.2. 2010 시즌2.3. 2011 시즌2.4. 2012 시즌2.5. 2013 시즌2.6. 2014 시즌2.7. 2015 시즌2.8. 2016 시즌2.9. 2017 시즌
3. 롯데 자이언츠
3.1. 2018 시즌3.2. 2019 시즌3.3. 2020 시즌3.4. 2021 시즌
4. 연도별 주요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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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G 트윈스, 롯데 자이언츠 소속 외야수 이병규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

2.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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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06~2009 시즌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양대학교에 입학하여 대학야구 최고 수준의 타자 중 하나로 각광받았으나,[1] 작은 키가 문제여서 결국 프로 구단에 지명받지 못하고 2006년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사실 대학 4년간 통산 성적은 타0.271/출0.362/장0.433/OPS 0.795로 그렇게 압도적이진 않다. 졸업년도에도 통산 성적과 비슷한 수준으로 작은 체구를 감안한다면 스카우트들이 외면할 만한 성적이다.

2009년 8월 23일, 2군에서 서승화가 이병규의 이마를 배트로 밀어 상처를 낸 사실이 드러나[2] 징계를 받은 후 1군 2패만 기록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이 사건으로 선발로 예고된 서승화 대신 박지철이 급히 콜업되어 선발로 등판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3] 뉴스

하지만 신고선수 입단 후 2군을 초토화시키며 타격 능력 하나는 진퉁임을 보여줬다. 이 당시 LG의 감독이었던 이순철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뭔가 이종환과도 비슷한 케이스. 좋은 선구안과 준수한 뱃 컨트롤, 강한 손목힘 덕분에 작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장타력을 보여줬다. 또한 스카우트 및 2군 감독 경험으로 유망주를 키우는 안목이 있음을 증명한 박종훈 감독이 2010년에 부임하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해졌다.

신고선수임에도 첫해만에 정식선수로 전환, 확장 엔트리에 콜업되어 데뷔 첫 안타를 쳐내기도 했고, 2008년은 꽤 많은 경기에 나와 인상깊은 모습도 몇 번 보여주었다.

2군 시절에 라뱅과 동명이인인데 2군에 있는 것에 주목한 방송국 PD에 의해, 1군을 꿈꾸는 유망주의 내용으로 인간극장 비슷한 다큐멘터리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2.2.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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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시즌을 앞두고 복귀한 라뱅 이병규와 같이 쌍병규 모드로 외야에서 맹활약했다. 개막 당시에는 1군에 빅5의 존재로 자리가 없었으나 이택근이 개막한지 얼마 되지 않아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기회를 잡아 활약하기 시작했다.

5월 1일 문학 SK전에서 라뱅과 함께 징검다리로 한 이닝 동반 홈런을 때렸다. 이걸 보고 사람들은 뱅투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팀은 스코어 3:21로 개털렸다.

5월 7일 잠실 KIA전에서 타구를 빠뜨린 뒤 후속 플레이 과정에서 꽈당 넘어지면서 결승점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5월 11일 청주 한화전에서 류현진에게 9이닝 17K 신기록으로 패배하는 와중에 류현진 상대로 솔로홈런으로 영패는 면하게 했다.

타격감이 주춤했다가 5월 19일과 20일 대구 삼성전에서 이틀 연속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 19일에는 큰 이병규와 함께 적시타를 합작하기도 하며 빅이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5월 23일 잠실 두산전에서 5타수 4안타의 맹타를 휘두르며 타율을 0.224에서 0.252로 끌어올렸다. 이택근이 복귀하는 상황이지만 박용택이 손목 통증 및 타격 부진으로 인해 선발 출장 빈도가 많다.

5월 26일 잠실 KIA전에서는 5타수 2안타 2타점 3득점으로 맹활약했다.

5월 29일 목동 넥센전에서는 4타수 3안타 1볼넷에 3루타 1개와 홈런 1개로 4타점을 기록하며 난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오히려 2010 시즌 5월 중순부터는 되려 라뱅보다 이 쪽이 더 잘해서 '작뱅이 일낸다'라면서 엄청난 칭송을 받았다. 빅5가 부상과 박용택의 타격 부진 등으로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며 붙박이 좌익수로 뛰면서, 6월 1일까지 타율 0.277에 5홈런 20타점을 올렸다. 헬게이트매치였던 5월 29일과 30일 경기에서도 끝내기를 막는 보살 + 맹타를 휘두르면서 5월에 LG의 이병규하면 작뱅이라고 생각하는게 편할 정도. 오죽하면 가끔 뉴스에 라뱅이 나온다면 '큰뱅'이라고 따로 수식어가 붙어야 될 정도로 입장이 많이 바뀌었다.

6월 들어서 1일과 2일 사직 롯데전에서 잇따라 멀티히트로 좋은 감을 이어갔다. 6월 2일은 볼넷까지 얻어 3출루 경기. 6월 16일 두산전에서는 4타수 3안타 2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렀으나 LG는 패배했다. 6월 18일 잠실 롯데전에서는 3타수 2안타 1타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시즌 타율을 0.296으로 만들었다. 5경기 12타수 7안타로 좋은 타격감을 이어가던 중 6월 21일 허벅지 근육통으로 1군에서 말소되었다. 여기까지 55경기 출전하여 0.296의 타율과 함께 5홈런 23타점.

7월 9일 1군에 복귀하였고 7-3으로 뒤진 7회 1사 2,3루에서 대타로 투입되어 고창성을 상대로 추격의 우월 3점 홈런을 터뜨렸다. 그리고 8-7로 역전한 8회에도 1타점 2루타로 쐐기를 박아 9-7 역전승의 1등 공신이 되었다. 복귀전에서 2타수 2안타 4타점의 영양 만점 활약으로 시즌 타율은 3할을 넘겼다.

시즌 최종 성적은 규정 타석에 50타석 미달했지만, 데뷔 후 처음으로 100경기 이상 소화하며 타율 .300, 출루율 .389, 장타율.479, OPS 0.868, 12홈런 53타점이라는 매우 준수한 성적을 냈다. 타석 수의 차이도 있고 해서 누적 스탯에서는 차이가 크지만, 장타율과 OPS에서는 KIA 최희섭과 비슷할 정도이다. 규정 타석을 못 채웠기에 의미는 없지만.

전통적으로 좌타 외야수가 많은 LG라지만, 소위 외야 빅5를 뚫고 이렇게까지 성장할 것으로는 누구에게도 기대 밖의 일이었다. 게다가 겨울 이적 시장 당시 넥센 히어로즈 이장석 구단주가 그 해 세이브왕을 차지한 손승락의 트레이드 카드로 작뱅그리고 돈?을 원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1년만에 엄청난 입지 상승을 보였다. LG 팬들도 손승락↔작뱅 트레이드가 실제로 일어났다면 손승락을 얻더라도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란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발 빠르기가 아니라 주전경쟁으로 이대형의 5년 연속 도루왕을 저지시킬 유력 후보로 손꼽히는 작뱅이었다. 당시 타팀 감독 & 코치들은 이대형보다 작뱅을 훨씬 높게 치는 분위기였다. 트레이드 협상 때 작뱅을 주구장창 요구하는 반면, 이대형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안 줄 정도였다. 풀타임 주전으로 뛴다면 20홈런 이상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던 작뱅이었다.

2.3. 2011 시즌

2011년 시즌을 앞두고 스프링캠프 기간 중 무릎 부상을 당해 4월 9일 현재까지 1군 출장기록이 없었다. 설령 복귀하더라도 시즌 초반이지만 펄펄 날고있는 LG 외야진의 두꺼운 벽을 넘을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5월 5일 기준으로 LG 외야수들이 잘 했고 부진하던 이진영마저 타격감이 살아났다. 부상이 생각보다 깊었던데다 6월에 복귀한다고 해도 타격감을 찾으려면 시간도 걸리기 때문에 이병규로서는 불운한 한해다. 타팀에서는 서동욱과 함께 매의 눈으로 노리는 선수이다.

무릎 부상이 고질병임이 밝혀졌고, 2011 시즌 직전 부상을 당했을 때 수술 소견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新 연봉제로 인해 연봉이 1억까지 상승한데다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어찌어찌 재활로 해보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2010 시즌 때도 무릎 때문에 문제가 있었는데, 내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게 표면화됐다. 여담으로 트레이드설이 나돌았던 손승락을 작뱅과 바꾸지 않았던 이장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더라.

박종훈 감독이 복귀가 더딘 작뱅에게 쓴소리를 날렸다. 수술 이후 부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몸을 사린다는 이유로 작뱅의 분발을 촉구했는데, 시즌 전에 큰 이병규 혹은 이대형을 밀어낼 거라는 전망까지 나왔던 걸 생각하면 뼈아픈 쓴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어찌어찌 재활을 마치고 8월 2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잠실 경기부터 다시 출장하기 시작했고, 박용택이 타격 부진으로 2군으로 내려간 틈을 타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였다. 8월 28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 2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 4회초 복귀 후 처음으로 우월 솔로홈런을 기록했다. 스코어 0:1로 지고 있던 상황에 동점을 만드는 천금같은 홈런. 게다가 위의 이병규, 즉 라뱅 항목에 언급했지만 라뱅도 이어서 투런포를 시전하며 쌍뱅 쓰리런을 기록, LG팬들을 환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1군 복귀 후 살이 많이 찐 듯한 모습으로 "무릎 부상 때문에 운동이 부족해서 살이 찐 게 아니냐"라는 얘기를 듣자,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이 붙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관련기사 당시의 활약상을 보면 작뱅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팀의 가을야구는 거의 요단강 건너기 직전이었지만 복귀 이후 작뱅은 나름대로 타선의 중심에서 최선을 다하였다.

9월 14일 두산 베어스 와의 잠실 홈경기에 5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했는데, 1회말 1사 2, 3루 상황에서 김승회의 6구째를 받아친 것이 우중간 펜스를 넘어가는 작뱅 쓰리런을 쳐서 2011 시즌 3호째 홈런을 기록했다. 이 날 팀이 3연패를 벗어남과 동시에 5위 자리를 간신히 지키는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작뱅의 무릎 상태가 고질병이라는 게 드러났고, 선수를 하는 동안은 계속 안고 갈 수밖에 없는 부상이라는 카더라도 있는지라 내구성에 대한 의구심은 앞으로도 떨치기 힘들 듯했다. 당연히 시즌 후 연봉이 삭감됐다.

2.4. 2012 시즌

새롭게 취임한 김기태 감독에 의하면, 다시 본래 포지션인 1루수로 되돌아간다는 듯했다. LG에 복귀한 최동수와 함께 1루수 훈련을 했고 초반에는 최동수와 같이 플래툰으로 1루를 보다 타격감이 좋아지자 테이블세터나 중심타선으로 출장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6월 30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전 스코어 1:0으로 팀이 앞선 2회초 2사 1, 3루 기회에서 상대 선발 투수 박정배의 3구 직구를 그대로 밀어 좌측 담장을 넘는 시즌 마수걸이 작뱅 쓰리런을 작렬시켰다. 여담으로 김무관 타격코치와 김기태 감독이 정의윤과 작뱅 중 누가 먼저 홈런을 칠지 내기했는데, 정의윤한테 걸었던 김무관 코치가 이겼다. 정의윤은 6월 28일 KIA 선발 김진우를 상대로 마수걸이 솔로 홈런을 쳐서 작뱅보다 이틀 빨리 시즌 첫 홈런을 등록했다. 이 날 작뱅은 4타수 1안타 1홈런 1볼넷 3타점 1삼진 1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8:1로 승리했다.

7월 2일까지 217타석으로 당시까지의 규정 타석 210타석을 겨우 넘긴 상태에서 타율 .343으로 2위, 출루율 .468로 2위를 기록했지만 득점권 타율이 2할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팬들에게 까였다.

이후 8월에 1군에 다시 올라와 잠실 삼성전에서 적시 2루타를 치고 바로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가는 등 유리몸 기질도 다분했다.

결국 1군 69경기에 출전하여 71안타 .318, 2홈런 21타점 23득점, 장타율 .422, 출루율 .435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몸관리를 잘 하여 풀타임 출장을 했다면 더 좋은 성적을 냈으리라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다. 특히 이 해 sWAR*이 2.62로 풀타임 3할을 기록한 라뱅보다도 무려 0.8이나 높았다. 시즌의 딱 절반만 뛰고 기록한 거라 풀타임 환산 시 홈런 5개가 될까 하는데 WAR*이 5를 넘는 괴상한 광경이 나와 차기 시즌에 기대를 거는 팬들이 많았다.

시즌이 끝날 때 쯤 오른쪽 무릎 관절 수술을 받았으며, 3개월의 재활 기간이 소요될 거라고 하였다.

2.5. 2013 시즌

다시 외야수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기사 참조. 시범경기 삼성 2연전에서는 좌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시즌이 시작된 후, 컨디션 난조 때문인지 며칠 지나지 않아 2군행. 2군에서 5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리그를 씹어먹었지만, 부상으로 잠시 빠지기도 했다.

시즌 초에는 외야에 자리가 없던 터라 2군으로 내려가도 눈에 띄지 않았지만, 이진영의 부상으로 외야에 구멍이 나면서 많은 이들이 작뱅의 복귀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2013년 6월 8일 SK와의 2군 경기에서 발목에 직격사구를 맞고 엠뷸런스에 실려갔다고 한다. 하필이면 부상으로 고생하던 부위였고 시즌아웃까지 점쳐지고 있다. 그리고 사구를 맞춘 SK 투수는 지난해까지 LG 선수였던 김영롱이라고 한다. 다행히 6월 10일자로 1군 엔트리에 합류한 것으로 보아 큰 부상은 아닌 듯했다.

초반에 활약해줬던 문선재 김용의의 부진으로 선발 1루수로 자주 출전하였다. 지표는 적긴 하지만 팀내 출루율 1위를 기록하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하였다.

9월 4일 SK전에서 9회말 끝내기 안타를 때려 팀의 영웅이 되었다. 이 승리로 LG는 1위에 등극하여 1일천하를 누렸다.

최동수의 은퇴식이 열린 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플레이오프 직행 팀이 결정될 수 있었던 10월 5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스코어 2:0으로 지던 6회말 1사 1, 3루 상황에서 선발 투수 노경은에 이어 등판한 유희관을 상대로 1-2루 간을 빠지는 안타를 기록하여 LG 트윈스가 2:5로 역전승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귀중한 타점을 올렸다. 이 날 최하위 한화가 넥센에게 승리함에 따라 LG 트윈스는 정규 리그 2위를 차지하며 극적으로 2013년 플레이오프에 직행, 11년 동안의 비밀번호를 끊는 쾌거를 이루었다. 플레이오프 엔트리에도 합류함에 따라 이병규는 데뷔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출전하게 되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 2차전은 선발 좌익수 겸 6번타자, 3차전은 선발 1루수 겸 6번타자, 4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12타수 3안타 1홈런[4] 3볼넷 2타점 2득점, 타율 .250, 장타율 .500, 출루율 .4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했다.

2.6.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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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의 커리어 하이 시즌.

2.7.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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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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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017 시즌

파일:2017041801000869000063651.jpg
이 사진은 이사만루2017에서 17이병규 사진으로 쓰이고 있다.

개막 엔트리에서는 제외됐으나 2군에서 5할을 치면서 리그를 폭격했고 4월 중순 쯤 콜업되었다.

4월 21일 기준 .190이라는 타율에 여전히 어슬렁어슬렁 수비를 시전 중임에도 감독과는 무슨 관계인지 꾸준히 나오고는 있다. 그래도 중심타선에 두기에는 기량이 영 좋지 못해 주로 6번 타순 정도로 출장 중. 부상과 폼 하락으로 2군 간 이천웅이 콜업 가능해질 때까지는 계속 보게 될 듯하다. 4월 21일 잠실에서 열린 vs기아 3연전 첫 경기에 좌익수-6번타자로 선발 출장, 8회말 대량 득점 과정에서 1사후 2루 땅볼을 치고 산책러닝 하다가 아웃될 뻔 했다. 김선빈의 1루 악송구가 아니었다면 아웃되는 상황이었고, 이후 추가점도 없어질 뻔. 해설인 이순철이 프로로서의 자세가 안 되어있다며 극딜을 했다.

4월 23일, 잠실에서의 기아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채은성과 함께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 직전까지 타율이 .148이니 양상문도 계속 기용하기는 애매했을것. 7회말 7-0까지 LG가 앞서가자 7회말 선두타자 대타로 출장했는데 또 잘하지도 못하는 눈야구 하다가 한가운데 직구를 멀뚱히 쳐다보면서 루킹 삼진. 상대투수 한승혁이 빠른 볼로만 상대했고 점수가 크게 벌어진 상태라 마음껏 스윙을 해봤어도 될 텐데 여전히 아무 생각 없는 본인 스타일을 고집 중이다.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하는 LG 타자들 중 유일하게 아무 의욕도 없는 플레이로 일관중이다.

결국 4월 26일 SK전을 앞두고 1군 엔트리에서 빠지고 말았다. 쏴리쥘럿!! 대신 등록된 선수는 안익훈. 하지만 5월 9일 삼성 원정경기 전에 1군에 다시 왔다... 10일 경기에서는 3안타를 기록했고, 5회말에는 조동찬의 타구를 펜스 앞에서 잡아내는 호수비 또한 기록했다. 이후 주전 붙박이는 아니더라도 띄엄띄엄 주전 출장 및 지명타자로도 나오는데 1군 콜업후 타율이 .205에 그쳐 결국 양상문도 포기, 5월 24일부로 2군으로 내려갔다.

MBC에서 중계한 2군 이천 두산전 경기에서도 주루를 하다가 부상으로 교체된 적도 있다.

그러다가 이승엽의 은퇴식에서 코멘트를 적어둔 것이 잠시 포착되었다.

시즌 종료 후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3. 롯데 자이언츠

3.1.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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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019 시즌

롯데에서 맞는 두 번째 시즌. 시즌 전 수염을 깎았다.

작년말의 종아리 부상 때문에 재활군에서 시즌을 시작한다.

5월 23일 퓨쳐스리그에서 대타로 출전하며 복귀했고, 이후 6월 29일 두산전을 앞두고 1군에 복귀해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하지만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7월 7일에는 아쉽게 파울홈런을 기록했고 결국 7월 10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후 1군으로 콜업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이번시즌 1군 출전은 고작 8경기에 그쳤다. 성적은 8경기 22타석 3안타, 타율 0.158/출루율 0.273/장타율 0.263.

3.3.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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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선수들은 근황이라도 나왔는데 이병규는 아예 생사조차 확인 불가능이었으며 유일하게 확인되는 건 3군에 있다는 것 정도였다. 결국 은퇴 수순을 밟아가는 듯 했으나 8월 21일 2군에 등록되었다.

8월 26일 2군 NC전에 대타로 등장해 안타를 기록했고, 27일 2군 kt전에는 3타수 2안타를 기록해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이에 팬들은 빨리 이병규가 1군에 올라와서 허일을 밀어내고 대타 자원으로써 활약해주기를 바라는 중. 허문회 감독은 9월 초 콜업할 예정이라고 했다.

8월 31일 2군 엔트리에서 말소됐고 1군 엔트리에 신용수가 말소되면서 이병규가 9월 1일 1군에 등록됐다. 거의 2년만에 부상을 딛고 부활한 것이다. 1군에 등록되자마자 kt전에 8번 타자로 선발 출장하는데, 지명타자가 아니라 1루수로 출전했다. 그리고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허문회 감독은 종아리 부상을 막기 위해 시즌 끝까지 이대호, 정훈 등과 돌아가며 1루를 맡길 것이라고 밝혔다.

9월 4일 기아전 DH1에서 7회말 만루 상황에 대타로 출전하여 볼넷으로 2년만의 타점을 기록했다. 같은 날 DH2 6회말 2점 홈런으로 2년(726일)만의 홈런을 기록했다.

9월 7일 LG전에 선발 출장해 1회 볼넷을 얻어냈고 2회 딕슨 마차도의 투런포 이후 초구 솔로포로 백투백 홈런을 쳤다. 시즌 2호 홈런. 현재까지 복귀 후 안타 2개 모두 홈런이다.

9월 10일 삼성전에서 7회 이전까지 부진하다 7회 2번 타석에 들어서 모두 안타를 기록했다.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면, 타율 자체는 .227로 낮은 편이지만 22타수 5안타 2홈런 7타점을 기록하며 클러치 상황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2할 2푼대의 타격에 비해 높은 0.370의 출루율을 바탕으로 OPS는 0.870을 찍는중. 8월까지만 하더라도 어디서 뭐하는지 알 수 없었던 선수가 9월에 팀에 합류하자마자 타격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만약 롯데가 포스트시즌에 합류하게 된다면 이병규의 경험과 타격은 천군만마가 될 것이다. 다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예상했지만 예상치 않은 콜업과 활약으로 알 수 없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9월 16일 키움 히어로즈 경기에서는 3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18일 LG 트윈스 전에서 8회초 팀의 역전승에 보탬이 되는 2루타를 기록했다.

19일 NC 다이노스 전에서 5회말 결정적인 2점 홈런을 기록했다.

9월 20일 NC 다이노스 더블헤더 경기에서는 모두 1안타씩 기록했다.

9월 22일 KT 위즈 전에서 2회말 선제 솔로포를 기록했고, 6회말에는 도망가는 적시타를 쳐냈다. 그러면서 시즌 타율은 0.271까지 상승했다. 현재까지 주로 6번타자로 출전하며 타선에 큰 힘이 되고 있다.

9월 26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는 2루타를 2개 기록하며 2타점 경기를 펼쳤다.

16일 고척 키움전부터 12경기 연속 안타를 치고 있다. 27일 광주 KIA전에서도 8회 포문을 열어 동점의 발판을 마련했다.

9월 29일 LG 트윈스 전에는 5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10월 3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1회말 장시환을 상대로 투런포를 쏘아올렸다. 시즌 비율스탯은 타율 0.322/출루율 0.435/장타율 0.533이 되었다. 현재 오윤석과 함께 타격감이 가장 좋다.

시즌 최종 성적은 53경기 164타수 45안타 9홈런 32타점 28득점. 타출장 /.274/.381/.463로 비록 막판에 팀 분위기가 침체됨과 동시에 페이스가 떨어졌지만 후반기 팀에 합류하여 롯데의 5강 경쟁에 활력소가 되었다.

3.4. 2021 시즌

신본기 kt wiz로 이적하면서 LG 시절에 사용했던 등번호인 7번을 롯데 이적 후 처음으로 달게 됐다.

4월 8일까지 4경기 모두 대타로 나와 1안타 3볼넷으로 출루율 100%를 기록했다.

5월 8일 기준으로 대타로 나올 때마다 안타, 못하면 볼넷이라도 얻어서 출루하는 훌륭한 대타 자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타율은 0.296.

하지만 시즌이 진행될수록 선구안도 무뎌지고 대타로 나와서 아웃만 당하는 일이 잦아졌다. 타율도 0.250까지 떨어지며 더 이상 대타요원으로는 쓰기 힘든 모습을 보였고 결국 5월 26일 1군에서 말소됐다 대신 올라온 선수는 배성근.

퓨처스리그에서도 경기 출전이 없는 등 롯데가 젊은 야수들을 적극 기용하면서 미래가 무척이나 불투명해졌고, 결국 시즌 중인 2021년 7월 22일 선수로써 은퇴를 선언했다. 롯데의 2군 타격코치로 새출발 예정이라고 한다. #

은퇴 선언 후 웨이버 공시되면서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6 LG 7 8 .125 1 0 0 0 0 7 0 0 .125 .125
2007 1군 기록 없음
2008 33 78 .231 18 6 1 1 9 7 0 7 .372 .294
2009 16 17 .176 3 2 0 0 4 0 0 4 .294 .333
2010 103 307 .300 92 17 1 12 53 57 5 47 .479 .389
2011 33 88 .250 22 3 0 4 14 13 1 21 .420 .387
2012 69 223 .318 71 17 0 2 21 23 8 46 .422 .435
2013 73 172 .291 50 6 1 2 26 24 1 29 .372 .393
2014 116 360 .306 110 28 3 16 87 66 5 79 .533 .423
2015 70 230 .243 56 9 1 12 35 42 2 46 .448 .370
2016 103 290 .272 79 12 2 7 37 43 8 57 .400 .389
2017 19 44 .205 9 0 1 0 5 5 0 4 .250 .27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8 롯데 103 198 .273 54 11 1 10 39 31 0 57 .490 .432
2019 8 19 .158 3 2 0 0 0 1 0 3 .263 .273
2020 53 164 .274 45 4 0 9 32 28 0 29 .463 .381
2021 29 34 .235 8 0 0 0 4 4 0 9 .235 .395
KBO 리그 통산(15시즌) 835 2232 .278 621 117 11 75 366 344 30 438 .441 .394

[1] 재학 시절 조순권과 입학 동기생이다. 입학 당시 좌병규, 우순권으로 불릴 만했다. [2] 말이 상처지 실제로는 강하게 휘둘러서 머리를 꼬매야 했다고 한다. 그나마 뇌나 두개골에 피해가 안 간게 어딘가... [3] 물론 박지철은 털렸고, 얼마 못 가 2군으로 내려가서 시즌 끝나자마자 방출되었다. [4] 이 홈런이 LG 트윈스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나온 유일한 홈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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