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0 14:32:12

윤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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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윤동식(尹東植, Yoon Dong-shik)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972년 8월 24일([age(1972-08-24)]세)
서울특별시
학력 서울체육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 체육교육과 91 / 학사)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 교육학[1] / 석사[2])
종목 유도 종합격투기
신체 183cm, 90kg
종합격투기 전적 19전 9승 10패
승: 1KO, 4SUB, 4판정
패: 5KO, 1SUB, 4판정

1. 개요2. 선수 경력
2.1. 유도2.2. 종합격투기
2.2.1. 전적2.2.2. Pride2.2.3. K-12.2.4. 국내 격투기 활동
2.3. 파이팅 스타일
3. 수상 기록4. 예능 활동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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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유도 종합격투기 선수.

2. 선수 경력

2.1. 유도

1990년대 실력이 출중했던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국내 유도계의 파벌로 인해 올림픽에 한번도 나가지 못한 유도계 파벌의 최대 피해자다. 1990년대 한국 유도계의 간판 스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1993년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시작으로 각종 국제 대회를 휩쓸었는데, 효과 한번 안 내주고(무실점이라 생각하면 된다.) 47연승을 달려 주목받는 선수였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전기영과의 상대 전적 역시 11승 9패로 우위를 점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하지만 이렇게 실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그는 올림픽 메달은커녕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지도 못했다. 전기영이 체급을 올리면서 제대로 꽃을 피우나 했지만 부상으로 세계선수권을 낙마하기도 했으며, 윤동식이 용인대학교가 아닌 한양대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발전에 출전만 하면 경기가 심판들 오심으로 판정이 얼룩져 문제가 되지 않은 날이 없었다.[3][4] 2001년 은퇴를 선언한 뒤에도 유도에 미련이 남아 다시 현역으로 복귀해 2004 아테네 올림픽을 노렸지만 그마저도 좌절됐고, 이원희 등의 쟁쟁한 후배들에게 밀려 해설자로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비운의 유도왕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5]

2.2. 종합격투기

2.2.1. 전적

2.2.2. Pride

마사회 코치로 있던 그는 2005년 3월 돌연 종합격투기 진출을 선언하고 Pride와 계약을 맺었다. 유도 선수 출신들도 종합격투기계에서 많이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에, 윤동식 역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본 파이터들 사이에서는 ' 요시다 히데히코의 천적이었던 전기영보다 강한 선수'로 경계대상이었다고 한다.

약 한 달 동안 준비를 거쳐 2005년 4월, 미들급 그랑프리 토너먼트에서 일본의 프로레슬링 영웅 사쿠라바 카즈시와 경기를 치렀다. 데뷔전이자, 각각 다른 분야에서 정상급 실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선수끼리의 경기였기 때문에 한일 양국 팬들의 기대가 대단했다. 그러나 윤동식의 종합격투기 이해는 매우 낮았기에 사쿠라바의 공격에 유도에서처럼 거북이 자세로 방어하다가 TKO가 선언되었다. 애초에 종합격투기 경력 8년차에 PRIDE에서 잠시나마 정상급까지 올라본 베테랑 사쿠라바와 초심자 윤동식은 상대가 되지 않는 매치업이었던 것.[6]

이 경기 이후 팬들의 비난은 대단했다. 그러나 종합격투기와 유도의 차이를 확실히 느낀 윤동식은 묵묵히 훈련에 임했고 종합격투기를 본격적으로 익혔다. 사쿠라바 역시 윤동식을 따뜻하게 맞아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경기 후 윤동식의 손을 잡고 링 위로 올라와 함께 사진을 찍었으며 퀸튼전에서는 세컨 자격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2005년 10월 23일, PRIDE 30에서 윤동식은 유도 선수 시절 자신이 두 번이나 꺾었던 타키모토 마코토와 일전을 치른다. 초반에 마코토에게 하체관절기를 걸어 궁지에 몰기도 했지만, 마코토가 필사적으로 로프를 잡고 버티는 반칙을 벌이는 탓에 불발에 그쳤고 결국 3:0 판정패를 당한다. 사실 경기는 마코토가 홈 어드밴티지 덕에 말도 안되는 반칙과 편파로 승리를 가져갔지만 두 선수의 경기력 자체가 당시 메이저 단체인 프라이드의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해 다시 한번 격투기 팬들은 그에게 비난을 서슴치 않았지만 윤동식은 다시 묵묵히 훈련할 뿐이었다.

2006년 2월 26일 PRIDE 31에서 그는 '램페이지' 퀸튼 잭슨과 맞붙었다. 당시 한국의 격투기 팬들은 잔인한 매치업이라며 모두 윤동식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을 예상했다. 종합격투기 경험이라고는 일본인 두 명과 매치해본 것이 전부인 윤동식이 프라이드 미들급 톱클래스인 퀸튼을 이긴다니, 누가 봐도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퀸튼은 특유의 개그센스를 발휘해 "유도는 침대에서까지 쓸모없는 무술이다. 그러나 레슬링은 침대에서도 쓸 수 있는 유용한 기술이다.''라고 했고, 또 "식(Sik)이 링 위에서 아픈(Sick) 모습이나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윤동식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참고로 레슬링이 언급된 이유는 퀸튼의 베이스가 레슬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내용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윤동식은 타격공세를 뚫고 퀸튼에게 암바를 시도해 위험한 상황까지 몰고가기도 했고, 두 차례 있었던 슬램 시도도 적절하게 막아냈다. 코너에 몰려 스탬핑을 당하는 등 자신도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만, 이전의 두 경기에 비하면 놀랍도록 발전한 모습이었다. 비록 3:0 판정패를 당했지만, 전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에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퀸튼 역시 경기 후 락커룸에서 윤동식을 향해 'You're a good fighter!'라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이 경기를 통해 윤동식이 이후 보여줄 모습에 대한 기대 또한 당연히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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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튼과의 경기 이후 그는 -93 kg인 미들급에서 -83 kg 웰터급으로 내려온다.

웰터급으로 전향한 이후 2006년 11월 5일 무사도 13에서 브라질리안 주짓수의 강자 무릴로 부스타만테와 맞붙었다. UFC 웰터급 챔피언 출신이었으며, 프라이드에 와서도 댄 핸더슨과 웰터급 타이틀을 놓고 맞붙은 강자였다. 모두들 우려하면서도, 이전의 기량 상승을 본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윤동식은 부스타만테의 주짓수에 끌려다니며 3:0 판정패를 당했다. 이후 프라이드가 와해되자 K-1 히어로즈로 건너왔다.

PRIDE에서 윤동식의 전적은 4전 4패. 하지만 이것은 흥행을 위해 주최 측이 의도한 결과였다. 자국의 유도영웅을 꺾은 윤동식은 애초부터 악역 포지션으로 입성한 것이다. 프라이드 데뷔전에서 가진 인터뷰를 보면 일본선수에게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다라고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인에겐 지지 말라고 배웠다(日本人には負けるなと教えられてきたんだ)는 자막이 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쯤되면 주최 측의 의도가 훤히 보인다. 결국 PRIDE는 윤동식을 흥행을 위한 악역 떡밥 정도로만 다룰 생각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사쿠라바전을 다른 경기도 아닌 한일전으로 경기를 몰아가는 바람에 프라이드 사상 역대급 야유를 얻어먹고 경기를 시작해야 하기도 했으며 퇴장하면서도 야유를 얻어먹었다. 파이터는 물론 경기장 자체가 자신의 적인데 멀쩡하게 경기를 치룰 멘탈의 소유자가 있을까... 지금은 폐간된 스포츠 2.0에 인터뷰에 따르면 이 당시 사쿠라바와 함께 이미 다카다 도장에 소속된 윤동식이 프리로 선전이 되었고, 도장에서의 훈련도 그라운드만 시키는 등 Pride 특유의 협작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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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일본 선수한테 지거나, 일본 선수를 꼭 이겨야 되거나,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진 않은데.."

MMA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28전 경력의 사쿠라바를 상대했었고 타키모토 전에서는 반칙성 플레이의 피해를 봤다. 퀸튼 잭슨과 부스타만테는 각각 프라이드 미들급 그랑프리 준우승자와 UFC 챔피언으로 3전, 4전의 경력으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거듭되는 강자들과의 대결 가운데서 윤동식의 기량은 꾸준히 진화하였다.

2.2.3. K-1

그 포텐셜이 폭발한 것이 바로 2007년 6월 2일 LA에서 열린 K-1 다이너마이트 USA. 이 무대에서 그는 '노 머시' 멜빈 만호프와 만났다. 무시무시한 타격 능력을 자랑하는 멜빈은 1라운드 내내 거칠게 윤동식을 압박했다. 거의 죽어가던 윤동식은 마침내 2라운드에서 그는 1라운드 내내 타격을 휘두르느라 다소 지친 만호프를 넘어뜨리는 데 성공하고, 곧바로 암바를 작렬시켜 종합격투기 첫 승을 거두게 된다. 이 때 그의 오른쪽 눈은 멜빈에게 맞아 완전히 부풀어 올라 있었다. 2라운드 1분 17초. 멋진 역전승으로 관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고 이중에는 영화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도 있었다. 한국의 격투 커뮤니티에서도 근성의 승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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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의 출범 이후 그 역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무대를 옮겨 활약했다. 2007년 9월 젤그 갈레시치을 상대로 1라운드 암바 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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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0월에는 파비오 실바를 역시 암바로 1라운드에 보내버렸다. 암바로 3연승을 거둔 그는 이제 '암바 대마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2008년 4월 29일 DREAM.2에서는 오야마 슌고마저 판정으로 꺾으면서 4연승을 기록했다.

2008년 6월 15일 DREAM.4에서 웰터급의 강자 게가드 무사시에게 판정패하면서 그 기세가 다소 꺾였다. 이 경기에서 패배한 후 가진 인터뷰에서 게가드 무사시는 윤동식이 힘든 상대였다고 밝혔으며, 윤동식도 무사시는 강한 상대였고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2라운드 막판 암바 그립을 잡아내는 등 어느 정도 선전했다.

2008년 9월 Dream.6에서 앤드류스 나카하라에게 TKO패했다. 2009년 7월 Dream.10에서는 제시 테일러를 만났으나 시합 중 발목부상으로 기권했다. 2009년 10월 Dream.13에서 타렉 사피딘을 만나 이겼다. 2라운드를 그라운드에서 가져가고 3라운드를 타격에 내줬지만 2라운드에서 캐치사인을 받고 RNC로 끝내기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등 워낙 앞섰기 때문이다. 다만 사피딘이 1라운드에서도 우세했고 후반으로 갈수록 윤동식의 페이스가 점점 떨어졌기에 판정에 이의를 제의하는 의견도 많았다.

2.2.4. 국내 격투기 활동

2010년 이후로는 이 분이 그렇듯이 교수직으로 활동하고, 스포츠 센터 사업을 하면서 거의 경기를 뛰지 않았다. 이는 일본 격투기계가 몰락하면서 윤동식 선수가 뛸 만한 단체가 거의 사라진 것도 한 몫했다.

2013년 2월 2일 K-1 Koreamax 2013 대회에서 일본의 킥복서 타키가와 료를 상대로 3년 4개월만에 복귀전을 가졌다. 경기는 1라운드 초반에 윤동식의 테익다운 이후 풀마운트를 뺏고, 파운딩을 날리자 타키가와 료가 탭아웃을 하며 매우 싱겁게 승리를 거두었다. 경기 이후 마이크웍에서 아직 선수 생활은 접지 않았으며, 추성훈과 대결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미스매치긴 했지만 파이터로서의 감각은 아직 살아있다는 평.

2013년 3월 23일 레볼루션 1회 대회에 참전하여 국가대표 출신의 복서 정용환을 1라운드 46초만에 암바로 잡아내며 복귀 후 2연승을 거뒀다.

이후 한동안 경기를 갖지 않다가 Road FC와 계약을 맺고 2014년 6월 26일 후쿠다 리키를 상대로 복귀전을 가졌다. 그러나 1라운드 약 3분만에 급격하게 체력이 저하되는 모습을 보이며 무기력하게 백을 내준 채 파운딩을 맞다 TKO패를 당했다.

2014년 11월 9일 ROAD FC 019에서 UFC 출신의 아밀카 알베스[8]를 상대로 복귀전을 가져 판정승을 거뒀다.

2015년 ROAD FC 024 일본 대회에서 타카세 다이쥬에게 2:1 판정승을 거두었다. 원래 두 선수는 전에 붙을 예정이었지만 타카세 다이쥬가 계체에 실패해서 이번에 경기를 가졌는데 솔직히 경기의 재미는 없었다. 판정결과도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모를 정도였다.

2016년 ROAD FC 031 서울 대회에서 재일동포 최영에게 2라운드 KO패를 당하였다.

2017년 9월 ROAD FC 042 충주 대회에서 미노와 이쿠히사(미노와맨)과 경기를 하였다. 윤동식이 질 것이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예상 외로 미노와맨의 그라운드가 크게 약해져서인지, 윤동식이 마운트 포지션에서 유효타를 넣어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갔다. 2라운드가 되어서도 그런 양상이 계속되어, 윤동식에 승기가 기우나 싶었으나, 미노와맨과 그라운드 대결 도중에 부상으로 항복하고 말았다. ROAD FC 관계자들이 이것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미노와맨의 서브미션 승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아쉬운 패배로, 윤동식은 9승 10패가 되었다.

2.3. 파이팅 스타일

파이팅 스타일은 그라운드에 극단적으로 치중된 형태이다. 한 시대 전의 유도가로서는 엘리트이다보니 어느정도 적응 후에는 암바대마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맞아가면서도 어떻게든 상대의 팔을 뽑아가며 승리를 쌓을 수 있었으나 결국 하루가 멀다하고 발전하는 격투 메타와 더불어 근본적으로 차이나는 해외 파이터들의 피지컬 등 따라갈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온갖 부상을 달고 3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 MMA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상태에서 데뷔했기 때문에 데뷔 초 프라이드에서 남긴 결과는 아쉬울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퀸튼 잭슨이나 맨호프 같은 강자들을 상대로 보여준 경기 내용은 그래도 엘리트 선수의 근본은 어딜 가지 않는 다는 것이었으며 조금만 더 데뷔가 빠르고 계획적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3. 수상 기록

세계선수권
동메달 2001 뮌헨 -90kg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4 히로시마 -78kg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1997 마닐라 -78kg
금메달 2003 오사카 -90kg
동메달 1993 마카오 -71kg
동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1 오사카 -90kg

4. 예능 활동

4.1. 뭉쳐야 쏜다

농구예능 "뭉쳐야 쏜다"에 고정으로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격투기 선수라 하면 통상적으로 생각나는 강한 이미지와는 달리 주목 받는데 부끄럼을 타는지라 수줍음이 많은걸로 붙은 별명 볼 빨간 동식씨와 룰을 잘 몰라서 헤메는 등의 엉뚱한 모습으로 갭모에를 선사하며 인지도와 인기가 상승했다. 예를 들어 베이스라인에서 경기를 재개할때 심판에게 다시 공을 줬다가 받아서 다른 선수에게 패스를 줘서 경기를 재개하는데 심판에게 공을 주고 그냥 가버린적도 있으며, 또 상대팀의 자유투 상황에서 자신이 수비할 대상을 안아 들어올리는 기행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방영초반에는 허재 감독이 병식이라고 잘못 부른적도 꽤 있었다.

개인 종목 출신이어서 그런지 팀 플레이나 전술을 잘 익히지 못해 크게 고전했다. 전공을 살려 전문 수비수로 활약하거나, 생각보다 의외로 괜찮은 슛 능력을 가끔 보여주는 정도. 농구적인 활약보다는 앞서 언급한 룰이나 전술 숙지 미숙으로 인한 실수가 부각되며 웃음을 주는 역할이 더 컸다. 그래도 그 덕에 뭉쳐야 쏜다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으니 전화위복일지도.

방송에서 출연진중 자신이 유일한 미혼임을 밝혔다. 이 때 다른 고정 출연진들이 자기 아들 딸 이야기를 하면서[9] 더더욱 비교되는 효과가 나왔다. 참고로 뭉쏜의 모든 출연진들 가운데 나이로는 선배라인[10]이다.

2021년 4월 11일 방송분에서는 의외의 연예계 인맥을 과시했다. 이병헌, 신하균, 김래원[11]과 친분이 있으며 녹화 당시 이병헌과 전화 통화 연결에 성공했다.[12] 이병헌의 결혼 이후에는 연락을 끊은 것[13]으로 보이나, 절친하던 시절에는 같이 술먹고 이병헌의 집에서 많이 잤다고 한다.[14] 농구선수 추승균은 한양대학교 후배임을 밝혔다.

15화에 벌어진 어쩌다 FC 와의 축구 경기에서는 상당한 축구 실력을 보이며 농구할때와 달리 에이스로 맹활약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래서 향후 뭉쳐야 찬다 시즌2가 벌어지면 멤버로 합류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 있었고 이는 그가 뭉쏜에서 새로 영입된 스포츠 레전드중 유일하게 뭉찬 시즌 2 멤버에 포함되면서 현실화되었다.

4.2. 뭉쳐야 찬다 2

2021년 7월 16일, 코로나 확진 판정 받았다. 뭉쳐야 찬다 2 녹화중에 걸린것으로 알려지며 출연진의 스포일러가 되었고 예상대로 잔류멤버가 되었다.

시즌2 신규 멤버 오디션중 벌어진 트라이아웃 연습경기에서 원톱으로 출장했다가 명백한 오프사이드 위치 안쪽에서 대놓고 골만 노리며 어슬렁 거린다든지, 후반전에 골키퍼로 나섰다가 뻔한 백패스를 손으로 잡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축구실력에 대한 의구심을 더했다. 룰 숙지도를 보면 정식 경기는 전혀 뛴 적이 없고 오프사이드룰도 없는 동네 축구에서나 볼을 찬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모습. 비인기 종목 출신 위주로 구성된 트라이아웃 멤버들이 정식 멤버가 되기 위해 하나같이 최선을 다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과 크게 대비되어 우려를 샀다. 물론 어디까지나 예능이니만큼 대본 등에 의해 어느정도 의도된 사항이란 가능성도 있지만, 뭉쏜 때에서 통하던 어리버리한 캐릭터를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진 뭉찬 2에서도 선보이는 점에서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뭉쳐야 찬다 2/선수단의 윤동식의 평가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듯 오디션 후 선수단이 꾸려지고 평가전을 통해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 시점에선 실망스러운 경기력과 집중력 부재만 선보이며 선수단 내에서 가장 강한 비판을 듣고 있다.

예능적인 재미는 아무래도 진지해진 분위기이다보니 기존처럼 경기나 훈련중에 선보이지는 못하고 있고, 주로 사전게임에서 선보인다. 대표적으로 강철부대편 참호격투나 단합대회편 기마전등에서 눈빛이 강렬하게 바뀌며 단박에 상대를 제압했다가 해당판이 끝나면 다시 볼 빨간 동식씨 모드로 돌아가는 상황이 웃음포인트다. 물론 훈련중에도 헤메는 모습을 보이면 웃음벨 신세가 되는건 여전하지만 분위기가 분위기라서 시청자들에게는 비판적인 시각도 많다. 결론적으로 축구빼고 다 잘한다는 칭찬 반, 비아냥 반의 소리가 나올 정도로 열심이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축구 안 하면 멋진 형이다.

하지만 꾸준한 감코진의 지도하에 결국 17화에서 득점을 기록하고, 18화에서는 결승골의 발판을 마련하는 패스를 주는 등 눈에 띄게 발전하여 비판과 비난도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31화를 기점으로 현재 부상으로 인한 잠정하차 상태다. 하지만, 그 이후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어서 영구하차가 아니냐라는 의문이 돌고 있다.

그 이후 언급이 되지 않다가 88화 티저에서 그의 등번호 7번이 오디션을 통해 새롭게 합류한 막내 이준이에게 넘어가면서 하차한 걸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때도 윤동식이 달았던 번호라는 언급은 없었으니 이제는 존재의 부정 취급을 당하는 중이다.

5. 기타

  • 사쿠라바 카즈시는 데뷔전에서 뼈아픈 첫 패배를 헌납한 상대였으나 이후에는 합동훈련도 하고 사쿠라바가 윤동식의 세컨드를 봐주기도 하는 등 좋은 관계를 이어갔다. 무엇보다 사쿠라바를 따라 DREAM으로 간 것이 이후 윤동식의 커리어에 엄청 도움이 되었다.
  • 링에서 글러브터치를 할때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특징이 있다. 이에대해 상대선수와 아무런 감정이 없기에 눈싸움을 할 이유도 없고 빨리 경기를 끝내고 내려오고 싶다.라고 답했다.
  • 그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팀 윤은 FEG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한국에서 손꼽히는 명문 MMA 체육관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최홍만 등 한국 선수들의 세컨으로도 자주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FEG가 어려움을 겪으며 활동이 크게 줄어 2010년에 이르러서 팀 윤도 활동이 크게 줄었다.
  • 뭉쳐야 쏜다에서 한 번도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배우 농구단편에 출연한 이정진의 증언에 의하면 주량은 허재 못지 않다고 하다(...).
  • 뭉쳐야 쏜다 뭉쳐야 찬다 2에서는 말수가 적고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유튜브를 촬영할 때에는 욕설을 하거나 말을 굉장히 많이 하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다른 유튜버의 채널에 출연했을때 모 후배 유도선수들을 저격한바 있다. 정황상 해당인물로부터 방송에 필요한 공동 작업 및 소재 선정에 관한 도움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리의 뜻도 모른채 유도인이란 연결고리만으로 남의 도움을 당연시하는 태도와 뒷담화까지 하는 옹졸함만 보이며 정작 본인이 비판을 듣고 있다. 캡쳐본 링크[15]
  • 디시인사이드 뭉쳐야 찬다 2 마이너 갤러리에서 이른바 '갤주' 취급을 받고 있다.
  • 듀스 멤버 김성재와 한양대 시절 1년 선후배였다고 한다.

[1] 체육교육 전공 [2] 석사 학위 논문 : 유도선수들의 심판판정 결과에 따른 심리적 고찰(1998. 2) [3]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이렇게 윤동식을 이긴 용인대 조인철은 올림픽 준결승에서 일본 선수에게 기술 한 번 제대로 걸지 못하고 동메달로 만족했다. 그런데 이 일본 선수는 결승전에서 프랑스 선수를 만났지만 소극적 행위로 실격당했고, 1988 서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재엽에 따르면 그 프랑스 선수는 윤동식에게 상대도 안되던 선수였다고 한다. 그 후 조인철은 2000 시드니 올림픽 때도 결승에서 일본 선수를 만나 기술 한번 제대로 걸어보지 못하고 은메달로 만족해야 했을 정도로 큰 대회에서 일본 선수에게 유독 약했다. [4] 재미있는 사실은 라이벌 관계였던 전기영 역시 용인대가 아니라 경기대학교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전기영은 은퇴 후 용인대학교 교수가 되었다.기득권의 텃세에 밀린 용인대 파벌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5] 인터뷰를 보면 담담한 어조 사이에서 당시의 파벌 문제에 대해 윤동식이 느꼈던 감정을 엿볼 수 있다. [6] 아래의 자막 조작 건만 봐도 알 수 있듯 윤동식은 PRIDE 입장에서 순전히 떡밥 용도에 불과했다. [7] 윤동식에 따르면, 1라운드에서 만호프의 그래플링 실력을 가늠하고 승산을 보았으며, 대회사 대표의 잘 했으니 그만해도 된다는 말을 전하러 온 매니저에게 무조건 이긴다며 지속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8] 원래 상대는 호안 카네이로였으나 부상으로 루이스 라모스로 교체됐고, 라모스마저 부상을 입으며 알베스가 대체 선수로 들어왔다. [9] 정확히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운동을 하는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3월 7일 방송에서 허웅, 허훈 두 형제가 출연했는데 아버지 허재는 아들들이 아버지의 명성으로 생기는 오해와 주변의 안좋은 시선으로 받은 상처때문에 힘들어할까봐 농구를 반대했다고 한다. 홍성흔의 경우 아들이 자신을 뛰어넘으라는 조건으로 야구를 허락했다고 했다. 방신봉의 아들 방준석도 배구를 하고 있으며 한양대학교(2021학번)에 입학했다. 이동국의 막내아들도 축구선수가 꿈이다. 다만 이동국의 아들은 아직 어린지라 매번 꿈이 바뀐다고 한다. [10] 선수 중에서는 김기훈과 여홍철만 제외하면 모두 후배들. 근데 선배 김기훈도 결혼을 40대 초반에 한거라 늦게 한 편이다. 윤동식은 50살... [11] 이 날 게스트로 출연했던 이정진을 통해서 이런 인맥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심지어 래원이, 하균이, 병헌이 형이라 불렀을 정도여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12] 정확히는 연결은 되지 않았는데 후에 이병헌이 게스트로 나온 손지창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아마 전화를 안 받자 손지창(윤동식의 전화에 있는 이병헌의 번호를 보고 "어 전화번호 자체는 맞는 거 같은데?"라고 말했다.)이 제작진의 요구로 설명하는 문자를 보낸 듯. 그런데 뭉쏜 녹화중이라고 하더니 이병헌이 윤동식을 찾았으며 오랜만의 연락이었는지라 자주 연락하라는 말도 하고 전화를 끊은 후에는 힘내라는 메시지를 받은것을 공개했다. [13] 결혼식에도 갔었고, 영화 지아이조때도 사적으로 통화를 했다고 한다. [14] 방송에서 묵음처리가 되었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마지막에 이병헌이 윤동식에게 "그래 평상시에 전화를 해야지 이 ...(묵음)끼야"라고 말한 뒤 통화를 마쳤다. 누가봐도 "이 새끼야"나 "이 시키야" 라고 말한 걸 알 수 있다. 즉 연락이 끊기기전 과거에 절친했던 건 사실이었다. [15] 더블 조라고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조씨이자 쌍둥이 유도선수인 조준호와 그의 동생 조준현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