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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핫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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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FECEC,#010101><colcolor=#000,#ddd> 올리비아 핫세[1]
Olivia Hussey
파일:OIivia Hussey.jpg
본명 Olivia Osuna (올리비아 오수나)
출생 1951년 4월 17일 ([age(1951-04-17)]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아르헨티나|]][[틀:국기|]][[틀:국기|]][2]
신체 160cm
가족 배우자 딘 폴 마틴 (1971 결혼 ~ 1978 이혼)
후세 아키라 (1980 결혼 ~ 1989 이혼)
데이비드 아이슬리 (1991 결혼 ~ 현재)
자녀 장남 알렉산더 마틴(1973년생)
차남 맥스 후세(1983년생)
장녀 인디아 아이슬리(1993년생)
직업 배우
데뷔 1964년 영화 '더 크런치'
서명 파일:올리비아 허시 서명.sv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3. 사생활
3.1. 가족 관계3.2. 폴란스키 가 살인 사건 관련
4. 기타5. 영화

[clearfix]

1. 개요

영국, 아르헨티나 배우. 대표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하여 1969년 골든 글로브 신인상과 다비드 디 도나텔로 황금접시상을 수상했다.

2. 활동

파일:올리비아 핫세 어린시절.jpg
12살 때 모습
1951년 4월 17일 스페인계 아르헨티나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명은 Olivia Osuna. 그러나 2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와 살다가 영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1964년 TV 영화 <더 크런치>로 배우로 데뷔했다.

그리고 1968년 작 <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으로 출연하는 게 결정됐을 때 올리비아 핫세의 나이는 불과 15살이었다.
파일:0800000.gif
파일:4bfd1233-bad1-424f-94d7-4e140e2c0970.gif
<로미오와 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이 대흥행하면서 핫세는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자국 피가 절반이 흐르는 인물이 스타가 됐다는 사실에 고무된 아르헨티나 정부는 핫세를 아르헨티나 옛날 집으로 보내서 핫세가 할머니랑 포옹하는 장면을 찍어 생방송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어려서 헤어졌던 아빠도 이때 처음 재회했다. 할리우드 연예인들이 핫세를 만나려고 일부러 영국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이듬해인 1969년에는 골든 글로브 여자 신인상과 이탈리아의 아카데미상인 다비드 디 도나텔로 황금접시상을 수상했다.
파일:37764724._UY630_SR1200,630_.jpg

훗날 출간된 본인의 자서전 제목조차 "발코니의 그 소녀(The Girl on the Balcony)"일 정도다. 그렇게 핫세는 '영원한 줄리엣'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어린 나이에 심한 정신적 괴로움을 겪었다.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은 현장에서 매일 "왕가슴녀(Boobs O’Mina)"라며 성희롱을 해댔고[3] 제작자는 핫세에게 다이어트 약을 먹이려 했다. 다행히 약을 발견한 엄마가 변기에 다 쏟아부었지만, 핫세는 이때부터 자신이 영화에 나오기엔 너무 살집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또한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하도 말을 걸어대는 통에 20대엔 광장 공포증에 걸리기도 했다.

한편 막 스타덤에 올랐던 10대 시절의 핫세는 짧은 치마를 입고 술에 취해 춤을 추고 어른들을 조롱하는 모습이 매일같이 언론에 오르내리곤 했다. 핫세는 특히 영국 내에서 소위 "Swinging Sixties"라 칭해지던 [4], 반문화적인 쾌락주의를 영위하는 1960년대 비행청소년들을 대변했다. 이때 한 영국 기자가 핫세에게 "난 (당신처럼)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15살 소녀를 본 적이 없다"고 하자 핫세는 "왜요, 있는데."라고 대꾸했다. 그 유명한 담배 인터뷰 영상은 서구권 언론이 비판하던 이런 방종한 모습들의 작은 단편에 불과하다. <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란 "소녀" 캐릭터의 형성에 도움이 됐던 긴 머리카락조차도 " 히피" 선언으로 받아들여졌을 정도다. [5] 요즘에도 영국 언론에서 핫세를 길게 언급할 때면 "모든 영국 부모들이 자식들이 저렇게 될까봐 두려워했었다"는 설명이 따라나온다.

그 뒤 핫세는 들어오는 굵직한 배역들을 다양한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고전 명작의 반열에 오르는 < 트루 그릿>도 " 존 웨인이 뭐라고."라며 넘겼다.[6] 무려 리처드 버튼의 상대역이었으며 남녀 주연 배우 모두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게 되는 < 천일의 앤>(1969)은 별 이유도 없이 거절했다. 결국 할리우드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주려했던 명제작자 핼 B. 월리스[7]는 핫세를 포기하고 갈라서고 말았다.[8]

이렇게 10대의 핫세는 라이징 스타가 된 부담감으로 불안, 반항심을 통제하지 못하고 성인 톱스타로의 발판이 될 수 있었던 좋은 제안들을 다 허비하고 말았다.

그래도 1972년 흥행 1위 영화 < 대부>에서 아폴로니아 비텔리를 맡을 예정이었으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시칠리아에서 만난 소녀로[9] 배우를 교체하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어느 새 배역을 고를 처지가 아니게 됐을 땐 단역에 가까운 위치까지 떨어져있었다. 그나마 비중이 클 땐 소위 폭망작이 됐다. 그 중 하나가 <잃어버린 지평선>(1937)의 1973년 리메이크작으로, 핫세는 여기에서 무용수 역으로 나왔는데, 더 골든 터키 어워즈[10]를 창시한 영화평론가 마이클 메드베드[11]가 꼽은 역대 최악의 영화 50에 선정되기도 했다.

1974년에 공개된 공포 영화 < 블랙 크리스마스>는 대표작으로 꼽을만 하다. 북미권 도시 전설인 "불길한 장난전화가 알고보니 같은 집 윗층에서 걸려온 것이었다"라는 소재를 차용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는 평범한 반응을 얻었지만 세윌이 지나며 재평가가 이루어져 캠퍼스 슬래셔 영화의 원조라 불리며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핫세는 당시 점술가에게 이 영화가 성공할 것이란 얘기를 듣고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영미권 젊은 세대에선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이 영화로 핫세를 알게 된 경우도 많다.
<블랙 크리스마스>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인 프랑코 제피렐리가 감독한 tv 미니시리즈 "나자렛 예수"(1977)에서 성모 마리아 역을 하기도 했다. 요셉과 혼인하는 장면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 둘 다 젊지만, 이후에 요셉이 죽는 장면에서는 요셉은 백발이 성성한데 마리아는 여전히 십대 소녀 같은 동안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는 장면에서는 아들인 예수보다 훨씬 어려보인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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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렛 예수>

< 나일강의 죽음>(1978)도 좋은 필모 중 하나다. 일종의 군상극이며 조연 위치라 분량은 그리 많지는 않다.

1980년 글렌 포드 등 여러 할리우드 배우들이 참여한 일본 영화 < 부활의 날>에도 출연한 바 있다. 1982년 TV 영화로 만들어진 < 아이반호>에 레베카 역으로 나왔다. 1990년엔 < 사이코>의 프리퀄 격인 TV 영화 <사이코 4>에서 모든 일의 발단인 엄마 노마 베이츠 역으로도 등장하였다.

2003년에는 <마더 데레사>에서 테레사 수녀 역으로 출연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모가 여전해서 실제 테레사 수녀의 외모와 너무 동떨어졌다는 비판도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그나마 더 늙어보이게 하려고 장시간 특수분장을 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한편 재미있게도 핫세는 이전에 <마더 테레사의 사랑>이라는 영화를 찍은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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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 <마더 데레사>

2015년에 개봉한 영화 <관종(Social Suicide)>에 실제 딸과 모녀 사이로 함께 출연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를 연기했던 레너드 와이팅과는 부부 사이로 나온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47년만의 재회였다. 일종의 배우개그인 셈. 핫세의 가장 최근 연기와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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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

3. 사생활

20대 초반부터 신도들 성폭행 논란이 있는 종교단체 지도자 스와미 묵타난다(Swami Muktananda)의 오랜 신도였다. 첫 번째 이혼 직후 친구의 권유로 마지 못해 따라갔는데, 만나자마자 영적인 기운을 느꼈고, 묵타난다가 제 3의 눈을 뜨게 해줘서 푸른 빛으로 시야가 가득 차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인도까지 따라갔었고, 두 번째 남편 후세 아키라와 인도식 결혼식을 올렸고, 딸 인디아 아이슬리의 이름이 나라 인도의 영어식 표기인 것도 이 때문이다. 아예 임신 자체를 인도에서 하고 싶었다고 한다. 묵타난다가 죽은 뒤에도 충성을 지키고 있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관련 글을 종종 올리고 있다. 묵타난다 덕분에 정신적 평화를 되찾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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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유방암이 재발해서 딸 인디아 아이슬리가 간호를 위해 연기생활을 전면 중단한 적이 있다. 남편도 물심양면으로 보조해줬다고.

3.1. 가족 관계

세 번의 결혼에서 각각 1명씩 3명의 자녀를 두었다. 신기하게 3명의 자녀가 모두 10살 터울이다.

1971년에 첫 결혼을 했는데, 첫 남편 딘 폴 마틴은 유명한 가수이자 배우인 딘 마틴의 아들로, 본인도 연예인이었다. < 로미오와 줄리엣> 개봉 후 둘 다 십대일 적에 딘 폴 마틴이 한 번만 만나달라며 LA에서 런던까지 날아와 빌었지만 핫세는 처음엔 거절했다. 딘 폴 마틴을 내버려둔 사이에 핫세는 다른 남자들을 몇 사귀었다. 핫세가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나 캘리포니아로 오게 된 후 결국 딘 폴 마틴의 교제 신청을 받아들이게 된 건 그가 "햇살 같은" 외모를 지니고 있었으며 핫세를 "잘 돌봐줬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핫세는 관계에서 적극적이지 않은 편이었지만, 이러다간 마틴이 캔디스 버건과 결혼할 것 같다는 소문을 어디서 듣고 약혼을 한 뒤 결혼까지 하게 된다. 시아버지가 그 딘 마틴이라 시댁에서 밥 한 끼 가볍게 먹자고 해서 가보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작가 트루먼 카포티, 리처드 버튼,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유명인들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고. 잠옷 바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가 비 지스와 맞닥뜨려 놀란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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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아들 알렉산더 마틴이 태어났으나 1978년 이혼했다. 그래도 둘은 친구로 지냈기 때문에 1987년 딘 폴 마틴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을 때 핫세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 뒤 바로 두 번째 남편과도 이혼하고 어머니마저 폐기종으로 돌아가셔서 이 당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두 번째 남편은 일본의 가수 후세 아키라. 이 때문인지 일본 가네보 화장품의 모델로도 장기간 활동하기도 했다. # 1980년에 결혼해 1983년에 태어난 아들 맥스 후세가 있었으나, 1989년에 남편이 미국에 더 이상 체류할 수 없게 되고 핫세 본인이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는 데 반대하면서 결국 합의로 이혼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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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이자 현 남편은 가수 겸 배우인 데이빗 아이슬리[14]로 1991년에 결혼하였다. 가죽옷에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던 아이슬리는 핫세가 처음 만나보는 타입의 남자였지만 의외로 핫세와 잘 맞았고 지극히 사랑해준다고 한다. 슬하에 1993년에 태어난 딸 인디아 아이슬리를 두었는데, 딸도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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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폴란스키 가 살인 사건 관련

10대 시절 에이전트는 루디 알토벨리(Rudi Altobelli)란 사람이었는데, 그에게 남자친구를 소개 받을 정도로 친했다. 1969년 여름 로만 폴란스키와 임신한 아내 샤론 테이트는 바로 이 루디 알토벨리의 LA 집을 빌렸다. 핫세도 얼마 후 이 알토벨리의 집에 딸려있는 손님용 숙소에서 지낼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미리 테이트랑 통화를 하며 서로 친하게 지내자는 얘기까지 했다고 한다. 핫세는 테이트의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를 도와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토벨리는 곧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고, 전화를 끊고 핫세에게 이렇게 말한다. " 다 죽었대."

한편 알토벨리에게서 소개 받은 배우 크리스토퍼 존스[15]는 핫세를 주먹으로 폭행하곤 했는데, 핫세는 이즈음 드디어 존스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문제의 살인 사건으로부터 5주 뒤, 존스와 헤어진 핫세는 살인사건의 현장이었던 알토벨리의 집에 예정대로 들어가 살게 된다. 집에 샤론 테이트의 주황색 스카프가 남아있길래 몇 년 동안 기도용 탁자 위에 올려놨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남친이 됐던 존스는 어느 날 이 집에 나타나 핫세를 무자비하게 때린 뒤 성폭행했다. 얼굴이 풍선처럼 부풀고 입술이 다 찢어졌었다. 핫세는 얼마 뒤 자신이 임신한 걸 알았고, 아이는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도 한참을 그 집에서 살았다.

하루는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맨슨패밀리 중 하나인 린다 카사비안(Linda Kasabian)이 지방검사 빈센트 불리오시(Vincent Bugliosi)에게 현장 검증을 해주러 들어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거실 탁자 밑에 베벌리힐스 경찰에게 직통으로 연결되는 단추가 있어서 늘 안전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한동안은 또 공교롭게도 찰스 맨슨의 원래 살해 목표였던 음악 프로듀서 테리 멜처[16]와 사귀게 됐다. 핫세에 따르면 멜처는 폴란스키 가 살인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아 늘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다녔고 완전히 맛이 가있었다고 한다.

4. 기타

  • 스펠링을 보면 알겠지만, 핫세가 아니라 허시라고 쓰는 게 맞다. '핫세'라는 표기는 일본에서 잘못 쓰인 표기(ハッセー)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가 굳어진 것. 다만 워낙 예전부터 일본식 표기가 국내에 정착되었다 보니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핫세라고 읽고 표기하고 있다. 참고로 국립국어원은 현재까지도 Olivia Hussey의 규범 표기를 정하지 않았지만, 카레, 몽고메리처럼 틀린 표기를 관용으로 인정하여 표준어로 지정한 적이 있다.
  • 2017년 위팅과 함께한 인터뷰 영상에서 본인이 1968년도 인터뷰 영상이 인터넷에 아직도 돌아다녀서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현재는 담배가 싫다고 강력히 어필했으며, 40세부터 금연했다고 한다. 위팅과 당시 인터뷰 때의 흡연에 대해 아옹다옹한다. 10분 30초쯤에 흡연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17]
  • 2018년 위팅과 함께 행사에 참여했다.
  • 첫 번째 남편[18]과 결혼한 이유가 다른 남자들과 달리 자신의 몸에만 관심이 쏠려있지 않아 갑자기 눈을 감고 자신의 눈 색깔을 맞춰보라고 시험했을 때 남편이 통과했기 때문이라고 퍼진 일화는 사실무근이다.
  • 자서전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왕실에서 초연돼 고급 디자이너 드레스를 갖춰입고 여왕을 접견하게 됐을 때 너무 긴장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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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니저들한테 사기를 당해서 재산 수백만 달러를 날린 적이 있다.
  •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걸 감지한 건 <마더 테레사>를 찍을 때였는데, 무시하고 내버려뒀다. 2008년에 유방암 4기로 밝혀져 수술을 받았다. 2018년에 재발했다.
  • 오마이걸 지호 정오의 희망곡에 출연했는데, DJ 김신영이 지호에게 핫세를 닮았다고 칭찬을 했고 지호가 핫세를 연상시키는 포즈를 취하였다. 이 모습이 움짤로 트위터상에서 떠돌았는데 해당 트윗에 핫세가 웃는 모습의 이모티콘을 사용해 직접 답글을 달아 화제가 되었다. 네티즌들이 진짜 핫세가 맞냐고 묻자, "Yes it's real me (진짜 나 맞다)" 라고 답하기도 했다. # 이후 지호가 이 사실을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언급했고, 해당 영상 또한 트위터에 돌았는데 그 영상에도 핫세 본인이 직접 칭찬을 하며 또 답글을 달았다.
  • <로미오와 줄리엣>이 재방영될 땐 일부 장면이 편집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누드신이다. 당시 두 주인공이 미성년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서양에선 10대의 나체 연기가 암묵적으로 허용되고 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핫세와 위팅의 경우엔 당사자들의 허락 없이 이런 일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핫세의 주장에 따르면, 제피렐리 감독은 핫세와 위팅에게 속옷 없이 몸에 간단한 화장만 한 채로 촬영하도록 요구하면서, 맨몸이 드러나지 않는 카메라 위치까지 보여주었고, 나체가 드러나도록 촬영된 화면이 담긴 상태로는 영화를 배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는 배우들의 엉덩이와 가슴이 그대로 노출된 채 상영됐다. #
  • 2022년 12월 핫세와 위팅은 <로미오와 줄리엣> 촬영 당시 10대 자신들 의사와 상관없이 침실 나체 장면을 찍게 한 것은 미성년자 학대에 해당한다며 5억 달러의 소송을 걸었다. # 50년 이상 지난 일을 지금에 와서야 소송 걸게 된 이유는 캘리포니아주가 2020년부터 3년간 성인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성범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성범죄 공소시효를 일시적으로 폐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두 배우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1심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2023년 5월. 근거 부족 이유로 기각되었다.

5. 영화

<rowcolor=#FFFFFF> 개봉 연도 제목 배역 활동
1965년 더 배틀 오브 더 빌라 피오리 도나 주연
킵 피버 지니 주연
1966년 테이크 어 사파이 어린이 주연
1968년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엣 주연
1971년 올 더 라이트 노이지즈 주연
그레이트 프라이데이 주연
1972년 썸머타임 킬러 타니아 스칼로티 주연
1973년 잃어버린 지평선 주연
1974년 블랙 크리스마스 제시카 브래드포드 주연
1977년 나자렛 예수 동정녀 마리아 주연
1978년 고양이와 카나리아 주연
사랑의 해적 주연
더 배스터드 앨리시아 주연
1979년 더 서틴스 데이: 더 스토리 오브 에스더 에스더 주연
1980년 부활의 날 주연
더 맨 위드 보가츠 페이스 엘사 주연
1981년 나일 살인 사건 로잘리 오터본 주연
1982년 아이반호 레베카 주연
필사의 반란 주연
1985년 더 코르시컨 브라더스 안나마리 주연
1987년 미망의 여인 주연
1989년 보석상의 가게 테레즈 주연
1990년 싸이코 4 주연
성전풍운 주연
피의 피에로 주연
1993년 퀘스트 오브 더 델타 나이츠 매너제이 주연
1994년 세이브 미 게일 주연
1995년 매드맨 주연
배드 잉글리시 아이: 테일스 오브 어 선 오브 어 브릿 주연
1996년 데드 맨스 아일랜드 로지, 가정부 주연
더 다크 미스트 고대인의 목소리 주연
1998년 더 가드너 미세스 카터 주연
1999년 셰임, 셰임, 셰임 치료 전문가 주연
2002년 블러디 프루프 주연
2003년 마더 테레사 마더 테레사 주연
2005년 아일랜드 프레이 캐서린 게이츠 주연
헤드스페이스 닥터 카렌 머피 주연
2006년 세븐 데이즈 오브 그레이스 쥬얼 주연
2007년 토르티야 헤븐 페트라 주연
2008년 낫 콰이트 할리우드 크리스 월터스 주연
차이나맨스 챈스: 아메리카스 아더 슬레이브즈 주연
쓰리 프리스츠 레이첼 주연
2013년 1066 카운테스 기티아 주연
2015년 관종 줄리아 엄마 주연


[1] /ouˈliviə ˈhʌsi/ 표기법 문제는 기타 문단 참고. [2] 부모는 아르헨티나에서 만나 올리비아 핫세와 남동생인 앤드루를 낳았지만 이혼했고, 이후 영국인인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와 자랐다. [3] 나중에 감독은 보답 받지 못하는 짝사랑 때문이었다고 고백했고, 이미 당시부터 어떤 심리에서 자신을 괴롭혔는지 핫세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받아주어서 잘 지내게 됐다. 게이였지만 핫세만큼은 특별한 존재였다고. [4] 스윙잉 런던이라고도 불리며 제인 버킨이나 제인 애셔, 테렌스 스탬프, 트위기, 마이클 케인, 비틀스 같은 인물들이 대표주자로 꼽힌다. 욕망(영화), 알피, 딥 엔드에서 그 당시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5] 사실 서구권에서 꾸미지 않은 여성 스트레이트 헤어는 히피 시절 처음으로 유행을 탔다. 이전 여성 머리 대세는 정반대인 비하이브라는 과잉된 펌 헤어였을 정도. [6] 핫세는 나중에 자서전에서 " 존 웨인과 내가 함께 있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아서 그랬다"고 변명했다. [7] Hal B. Wallis. [8] 이 당시에 보인 자신의 태도와 행동거지를 핫세는 나중에 매우 후회했다. [9] 시모네타 스테파넬리. [10] The Golden Turkey Awards. [11] Michael Medved. [12] 가톨릭, 정교회는 요셉이 혼인 당시 고령이었고 성모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었다는 교리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에서처럼 젊고 아름답게 표현된다. 이에 반해 개신교에서는 요셉도 마리아와 동년배의 청년이었고 예수 탄생 이후에는 요셉과 마리아가 다른 부부들처럼 성관계를 하여 예수의 동생들을 낳았다고 본다. 감독은 절충점을 찾아 결혼 장면에서는 개신교의 관점을, 그 후의 장면에서는 가톨릭과 정교회의 관점을 따랐을 수도 있다. [13] 후세 아키라가 재일한국인이라는 소문이 돌아서 그런지, 일부에서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맥스 후세가 한국계 아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후세 아키라는 본인이 한국계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 [14] 그 유명한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Sweet Victory를 불렀다. [15] Christopher Jones. 1941 ~ 2014. 제임스 딘 닮은 외모로 유명했는데, 실제로 딘 흉내를 엄청 내고 다녔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라이언의 딸>이 대표작. [16] 도리스 데이의 아들이다. [17] 80년대 이전까지 남녀 모두 실내를 포함, 공공 장소에서 흡연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현재 보면 이상한 20대 초 여성의 흡연이 60년대 당시엔 특이한 일이 아니다. 50년대 이전에는 남자는 병이 있는 사람 아니면 100% 흡연자, 여성도 절반 이상 흡연하였다. [18] 혹은 두 번째 남편과의 일화라고도 알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