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23:44:13

오푸스 데이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
Praelatura Operis Dei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Opus_Dei_cross.svg.png [1]
,,,Praelatura Sanctae Crucis et Operis Dei ,,,
형태 가톨릭 성직자치단
소속 교황청 성직자부
단장 페르난도 오카리즈 몬시뇰
단장좌 로마 평화의 성모 마리아 성당
현황 신자 93,203명
사제 2,115명
(2018년 기준)
설립자 파일: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사진-1.png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대학교 파일:교황청립 성 십자가 대학교 문장.png
교황청립 성십자가 대학교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단체 소개3. 단체 영성4. 조직 구조5. 신자의 종류6. 신자들의 삶7. 협력자, 협력 단체8. 활동 장소9. 오푸스데이 성소10. 오푸스데이의 사제성소11. 논란과 비판, 반론
11.1. 육체적 고행 논란11.2. 교황의 친위부대, 비밀결사단이라는 오해11.3. 일부 수도회와의 갈등11.4. 교황청의 편애, 특혜 여부11.5. 성차별 여부11.6. 일부 신자들의 스페인 독재정권 지지논란11.7. 설립자 성인의 빠른 시복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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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몬시뇰이 설립한 가톨릭교회의 성직자치단. 교황청 성직자부 소속 단체이며, 정식 명칭은 "성 십자가와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2].

일반적인 가톨릭 교구·단체는 지역 공동체나 사회 각 분야에 복음 정신을 구현한다는 목적이 강한 반면,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은 평신도의 보편적 성화 소명 증진 및 전파를 목표로 삼고 있어서 소속 평신도와 재속사제는 있지만, 수도자는 없는 독특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2. 단체 소개

단체 이름은 라틴어 Opus Dei, 즉 " 하느님의 사업"을 말하며, '성직자치단'으로서 군종교구와 비슷하게 일반 교구처럼 속지주의가 아니라 속인주의 단체에 해당한다.

1982년 전 오푸스데이가 교황청 직속 재속회 때에는 오푸스데이 회원이라고 지칭하였으나, 오푸스데이가 1982년 성직자치단으로 승격된 이후에는 교구급 단체이기에 소속 '신자'라는 표현을 쓴다. 마치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신자라고 이야기하지 회원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페인 출신 몬시뇰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축일 6월 26일)[3]가 1928년 10월 2일 수호천사 기념일에 마드리드에서 영적 체험을 통해 창설하였고 이후 마드리드대교구 교구장의 인가를 받았다. 그 후 1946년 교황청 직속 재속회가 되었고 1982년 교황청 직속 성직자치단으로 승격되었다.

성직자치단을 일본에서는 속인구, 중화권에서는 개인감독단으로 번역했다. 한국 오푸스데이에서는 "성직자치단"이라는 용어 자체가 평신도들이 제외된 성직자들만이 무엇인가를 하는 단체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하여 용어 변경을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성직자치단의 본래의 의미는 고위 성직자가 자신과의 일시적 혹은 종신적인 계약을 통해 '속인적'으로 묶인 평신도와 성직자들을 관할하여 영도하는 단체를 의미한다. 옛 한국천주교회에서 사용되었던 "감목(監牧)"[4]이 현재 교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고위 성직자'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단체를 지칭하는 용어를 변경한다면, "감목속인단", "감목속인구"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은 준(準)개별교회로서 개별교회(교구, 준교구)에 준하는 위치를 가지고, 유사한 제도를 가지기에 교계 제도의 일부이다. 준개별교회에는 군종교구, 가톨릭으로 개종한 성공회 출신 신자들을 위해 설립된 성직자치단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평신도 운동 단체, 평신도 사도직 단체, 평신도 협회, 봉헌 생활회, 수도회, 제3회, 재속회, 사도생활단이 아니다.

참고로,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은 로마에 위치한 바티칸 시국의 교황청립 대학교[5] 중 하나인 교황청립 성십자가 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3. 단체 영성


오푸스데이의 영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도 있는 '보편적 성화 소명'과 '일과 일상 생활에서의 성화(聖化)'이다.

자신이 행하고 있는 직장 생활, 가정 생활, 교우 관계 같은 일상 생활에서 가톨릭 신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하자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고, 실천하며,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의 일치를 추구한다. 쉽게 말하면 겉과 속, 생각과 행동이 똑같은 진정한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업인 목수로 성가정의 아들로서 거룩하게 사셨던 30년 사생활을 닮는 영성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오푸스데이 한국 신자, 협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상은 오푸스데이가 나의 삶에 준 영향, 한국에서의 10년에서 볼 수 있다.

4. 조직 구조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의 재치권자는 라틴어로 프렐라투스(Praelatus)라고 하는 성직자치단장이다. 현재 단장은 페르난도 오카리즈 몬시뇰이다. 성직자치단장은 고위 성직자인 몬시뇰로서 아빠스처럼 주교의 표지인 자주색 수단과 허리띠(파시아), 필레올루스( 주케토), 가슴 십자가, 주교관(미트라), 목장(주교 지팡이), 주교 반지를 사용했었으며, 설립자인 몬시뇰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를 빼고는 전임 2명의 단장의 경우는 주교로 서품받아 활동했었다.

그러나, 2022년 7월 22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반포된 자의교서 "은사의 보호(Ad charisma tuendum)"에 따르면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장은 더 이상 주교품을 받지 않는다. 그에 따라 주교의 표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성직자치단의 재치권자로서, 몬시뇰 중 1등급인 교황 명예 최고 서기관(Protonotarius Apostolicus)로 임명된다.

성직자치단장은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 총 자문회(여자부)가 추천하고 총 평의회(남자부)가 선출한 사제 교황이 최종적으로 임명한다.
파일: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좌 성당 외부.jpg 파일:성직자치단좌 성당 내부.jpg 파일:평화의 모후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좌 성당 (성직자치단좌).jpg
평화의 성모 마리아 성당 (Santa Maria della Pace)

성직자치단은 속인적 성격을 가지는 준개별교회에 해당하기 때문에 각 교구에 주교좌성당이 있는 것처럼, 로마 본부에 평화의 성모 마리아 성직자치단좌 성당이 있으며 성당 안에 단장좌가 있다.

교회법적으로 성직자치단장은 교구장과 동등한 관계로 본다. 오푸스데이에는 교구의 보좌주교에 해당하는 보좌대리 몬시뇰, 교구의 총대리 신부에 해당하는 성직자치단 총대리 몬시뇰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성직자치단은 각 나라별 또는 문화권 별로 단장 대리 몬시뇰(또는 사제)을 임명하여, 그 지역의 성직자치단의 사제와 신자들을 사목하고 관리한다.

각 일반 교구에서 대리구 또는 지역구가 존재하며, 교구장 대리 주교 또는 사제들이 임명되어 교구장을 대리하여 사제들을 관리하고 신자들을 관리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한 비교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도시에 있는 오푸스데이 센터는 각 교구의 본당 정도 수준이라고 비교할 수 있다. 오푸스데이 센터의 최고 책임 지도자들은 누메라리 독신 신자들이 맡는다.

오푸스데이 사제들은 일반적으로 센터 책임 지도자를 맡지 않고, 센터의 활동을 돕는 성사 집전, 영적 지도, 교리 강의를 한다. 센터장이 독신 평신도들이라는 점에서는 교구 본당 총 책임자가 주임신부라는 점과는 크게 다르다 할 수 있다.

성직자치단장의 영도로 성직자치단 구조는 크게 남자부와 여자부로 나뉜다.
  • 남자부 : 로마 총 평의회 - 각 지역 평의회 - 각 센터 평의회
  • 여자부 : 로마 총 자문회 - 각 지역 자문회 - 각 센터 자문회

위와 같이 위계질서가 있으며,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 사제단과 오푸스데이 정신을 따르는 교구사제들로 이루어진 성십자가 사제회, 성직자치단 소속 남녀 평신도로 조직되어 있다.

5. 신자의 종류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은 약 28%의 독신 신자(누메라리, 아그레가티)와 70% 독신의 의무가 없는 대부분의 기혼 신자(수페르누메라리)로 구성되어 있다.

라틴어인 누메라리, 아그레가티, 수페르누메라리는 영어로는 뉴머러리, 어소시에이터, 슈퍼뉴머러리라고 한다. 신자들의 종류를 지칭하는 용어는 설립자인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성인이 대학교 교수 직급에서 따온 것이다.

누메라리(뉴머러리)는 '정(正)교수', 아그레가티(어소시에이터)는 '부(副)교수', 수페르누메라리(슈퍼뉴머러리)는 '조(助)교수'에서 온 것이다.

나머지 2% 가량을 차지하는 남성 독신 신자 중 서품 사제들로 구성된 성 십자가 사제회가 있다. 성 십자가 사제회에는 일반 교구사제도 입회할 수 있으나, 교구 소속이기에 성직자치단 사제로 편입되지 않는다.

오푸스데이는 설립자인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성직자는 성직자로서의 활동[6]에만 충실할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오푸스데이의 대부분의 활동은 교육 받은 독신 신자, 누메라리들에 의해 꾸려지고 집행된다. 다른 단체( 교구 수도회) 사제들과 많이 다른 점이다.

오푸스데이 센터에서 거주하며 일반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 독신 신자인 "누메라리"[7]들이 지도자로서 오푸스데이 전반 행정을 관리한다. 누메라리들은 "아그레가티"[8]와 독신의 의무가 없는 신자, "수페르누메라리"[9]들을 이끌며, 교육과 영적 지도를 담당한다.

누메라리와 아그레가티들은 자신들의 직업으로 번 수입의 전부를 센터에 주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용돈을 받아서 쓴다.

누메라리의 경우는 센터에서 숙식을 제공하며, 거주하는 센터에서 빨래와 청소 등을 서비스를 제공 받는다.

수페르누메라리의 경우는 자신들의 일정 부분의 수입을 각자의 사정에 따라 자유롭게 얼마씩 기부할 지를 정하며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의 재정에 도움을 줄 의무가 있다.

신자들 대다수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 또는 전문 직업인, 주부로 일반 가톨릭 신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전문직의 비율이 조금 높으며, 접할 기회가 적은 한국에선 더욱 그렇다. 오푸스데이는 교구급 단체이기 때문에, 신자들은 봉헌 생활자( 수사, 수녀)로 분류되지 않고 교회법적으로 순수한 평신도이다. 그러기에 오푸스데이에는 수사, 수녀는 없다.

현재는 20~30명 내외 정도의 인원이 신자로 한국에서 활동 중이고, 협력자는 약 100여명 정도이다. 대다수는 외국에서 유학 등으로 접한 경우가 많지만, 현재 여러 활동으로 일반 본당에 다니는 국내 평신도 한국인 협력자가 늘어났다.

오푸스데이 사제들과 소속 신자들은 "생활 규범"[10]이라는 것을 지킨다. 매일 미사와 매일 기도를 열심히 올리고 고해성사를 매주 1번씩 보는 독실한 가톨릭 평신도라는 점은 기타 가톨릭 단체와 다를 것은 없다. 다만 일상 생활의 성화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인 평신도의 보편적 성화 소명을 강조한다.

오푸스데이 신자들은 올바르고 정직한 일반적인 가톨릭 신자 답게 도덕 윤리를 철저히 지키면서 건전하게 신앙인답게 삶을 즐긴다. 적당한 술과 담배와 여행과 건전한 취미를 즐기되, 절제해서 대죄나 남용이 되지 않게 해야한다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여러 오해로는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 신자들이 마치 가톨릭 평신도 엘리트 단체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실상은 그냥 평범한 신앙인들이 대부분이다. 원래 어떤 단체에서 사회적으로 잘 나가거나 지도층이 있으면, 그 사람들만 부각돼서 보이는 법이다.

모든 성직자치단의 신자들은 각자 교구와 본당에 속해있으며, 자유롭게 본당 활동에 참여한다. 영신적인 부분(영성 지도와 교육)에 있어서 성직자치단에 귀속될 뿐, 행정적인 부분은 여전히 교구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교구민들처럼 본당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다른 여타 가톨릭 신자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도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은 특정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페인에서는 같은 오푸스데이 내에 친프랑코 정부 인사와 민주화 인사가 같이 있었다.

물론 가톨릭 교회가 명확히 판단을 내린 사안에 대해서 (가령, 생명 및 성윤리 - 낙태, 안락사, 피임, 동성애, 가족) 철저히 교회의 가르침에 순명한다.

6. 신자들의 삶

독신회원 (누메라리, 아그레가티)들의 삶은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다.

05:30 기상, 단장 몬시뇰을 위한 봉헌으로 찬물 샤워
06:00 아침 묵상
06:30 라틴어 미사 참례
07:15 아침 식사 후 일과 시작, 회사 출근 / 출퇴근을 하면서 묵주기도
12:00 삼종기도, 기도 후 짧은 양심 성찰 / 점심 식사
18:00 퇴근 후 저녁 묵상, 영성 독서
19:00 저녁 식사
19:45 단체 모임 / 1주일 마다 1번씩 서클 (교육)
21:00 성체조배, 프레체스( 라틴어 기도), 양심 성찰 후 다음날 아침 미사 후까지 대침묵

주일/(대)축일이 아닌 평일의 경우, 누메라리들은 하루에 2시간 씩 마미단(Cilice)을 착용한다. 1주일에 1번은 긴 기도문 가령 시편 51(50)편을 바치며 편태(채찍, 회초리)로 허벅지를 매질한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을 묵상하며 봉헌하는 의미이다. 1주일에 1번은 또한 방바닥에서 취침을 하고, 축일이 아닌 경우, 간식 등을 먹지 않는다.

매달 1번씩, 반나절 정도 월례 피정을 참가하여야 하고, 매년 5박 6일의 연례 피정을 참여하며, 자신의 휴가를 내서 여름이나 겨울에 신앙증진 및 철학/신학 교육을 위한 연수에 참석한다.

기혼 회원 (수페르누메라리)들의 경우, 위의 독신 회원들이 하는 고행을 실천하지 않지만, 그들이 하는 기도는 크게 다르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적은 정도의 피정과 교육, 세미나에 참석한다.

7. 협력자, 협력 단체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의 신자 또는 소속 사제는 아니지만 오푸스데이를 도와주는 협력자가 있다. 교황청의 허락에 따라 협력자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무방하다.

비가톨릭 그리스도인 (정교회, 개신교 신자), 비그리스도인 (이슬람, 불교 신자, 기타 종교인), 무신론자, 불가지론자라 해도 협력자가 되어 오푸스데이가 전파하는 가톨릭 신앙과 보편 성화 소명 영성을 지지하고 지원할 수 있다.

가톨릭 신자이면서 협력자인 경우에는 오푸스데이가 지정한 특정 축일 및 대축일에 일반 조건 하의 전대사를 수여받을 수 있는 특전이 있다.

본인의 의지와 성직자치단의 동의가 있으면 협력자가 될 수 있으며,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을 위한 개인적인 기도와 희생으로 영적 협력하거나 금전이나 현물을 지원함으로써 물적으로 협력하게 된다.

단체 차원으로 협력을 하는 경우가 있다. 수도회 차원에서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에 협력하는 경우를 말한다. 봉쇄 수도회, 봉쇄 수녀회가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 협력 단체인 경우가 많다.

오푸스데이 설립자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성인이 개인적으로 봉쇄 수도회 수녀회의 기도를 매우 신뢰하고 봉쇄 수도 성소를 존경했다.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의 협력단체 수도회에서는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의 사도직 활동의 발전과 신자들의 영육 간의 건강과 성소 증진을 위해서 자신들의 기도와 희생을 바치게 된다.

8. 활동 장소

우리나라에서는 70년도에 청주교구에서 처음 승인을 받았다. 그 후 2009년 대전교구에서 승인을 받아 활동을 시작했으며, 2011년 서울대교구에서 승인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서울 사무실은 명동성당 앞 가톨릭회관(舊 명동성모병원) 113호이고, 임시 남성 센터는 상도동 부근 아파트에 위치해 있으며, 여성 센터는 효창동 부근에 단독 주택 형태로 있다.

주로 활동은 오푸스데이 센터와 대전에 위치한 교육관, 명동 협력자 사무실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1년에 1번 일반 본당에서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설립자의 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오푸스데이 소속 사제들이 주로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센터 근처 본당에서 주임 신부의 초대를 받아서 미사와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오푸스데이는 기본적으로 남녀가 따로 활동하므로, 관심이 있는 가톨릭 신자들은 홈페이지 또는 명동 가톨릭회관 사무실로 연락하는 것이 좋다. 사무실은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 평상시에는 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으니, 관심 있는 신자들은 쪽지를 남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9. 오푸스데이 성소

오푸스데이 성소는 가톨릭 교회 내에서도 쉽지 않은 성소로 손 꼽힌다. 가톨릭 교회의 평신도 특수부대로 불릴 정도로 강도 높은 영성 생활과 교육 프로그램(교리, 영성, 인성, 직업, 사도직 교육)을 평생 동안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푸스데이 신자들에게는 직업 생활은 필수다.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성인이 오푸스데이 신자들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직업생활을 통해 거룩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푸스데이 신자들은 각자의 강도 높은 직업생활, 독신이라면 센터 형제 자매들과의 가족 생활, 기혼자라면 배우자와 자녀들과의 가족생활을 하면서 매우 바쁘게 살아간다.

추가적으로 자신의 영혼 성화 뿐만 아니라 자신 주변 가족, 친척, 친구, 지인들에게 가톨릭 선교와 냉담교우 회두, 삶의 의미의 재발견, 가족 간 유대감 강화, 직장 내 정의와 상호 협조 강화, 더 좋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성소 발굴 등의 여러 사도직을 열심히 이행해야 한다.

옆에서 오푸스데이 신자들을 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정말 사제성소나 수도성소와 같이 평신도 오푸스데이 성소가 즉, "부르심"이 없으면 시작하기 어렵고 끝까지 유지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레지오 마리애, 빈첸시오회나 제3회, 재속회에 가입하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가 생각보다 깊은 영성 생활에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일반적으로 성소자들은 먼저, 가톨릭 교리 교육을 받고 그 후 가톨릭 평신도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영적 강의인 주간 혹은 월간 서클을 듣는다. 동시에 오푸스데이 사제와 평신도 독신 지도자들의 영적 지도를 받으며, 자신에게 오푸스데이 성소가 있는지, 성소가 있다면 독신성소인지, 혼인성소인지 사제 및 평신도 독신 지도자와 함께 식별하게 된다.

그 특유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정신으로 신자들이 자신들이 오푸스데이라는 것에 지나친 자신감이나 자만심을 가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집단적 겸손"을 추구한다. 사실 이런 태도가 비밀결사나 뭔가 음흉한 속셈을 가진 단체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거나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 가톨릭 신자나 성소자에게는 그리 맞지 않는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오푸스데이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아 보인다.

10. 오푸스데이의 사제성소

성직자치단장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교황청립 로마 성 십자가 대학교나 교황청립 스페인 나바라 대학교에서 철학 또는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남성 독신 신자들 중에 사제성소가 있는 사람들이 사제로 서품을 받으며, 그들의 사제 직무(성사 집전, 영적 지도, 교리 강의, 여러 사목 활동, 신학/철학 강의)가 그들이 성화할 직업 생활이 된다.

대부분의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의 사제들은 사제 서품 전 전문 직업인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성직자치단에서는 '평신도적 정신'을 가진 '사제'들을 양성한다고 가르치고 있다.[11]

다만, 사제가 되기 위해 남성 독신 신자로 입회하는 경우는 없으며, 남성 독신 신자들의 대부분은 평신도 전문 직업인 (의사, 변호사, 회계사, 교수, 교사, 회사원, 사업가, 내부 지도자)로 살아간다. 독신 성소 안에서 사제 성소를 발견하는 구조이다. 일반 교구 신학교나 성직 수도회하고는 매우 다른 점이다. 그러기에 사제가 되기 위해서 독신 신자로 입회하는 경우는 없다.

11. 논란과 비판, 반론

11.1. 육체적 고행 논란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의 사제들과 독신 신자(누메라리, 아그레가티)들은 일부 가톨릭 단체와 성인 성녀들이 행하던 육체적 고행을 영적 진보를 위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철저히 영적 지도자들에 의한 지도에 따라 사용되며,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칠 정도로 사용되지 않는다. 현행 가톨릭 교회교리서에서도 고행과 극기에 대해 아래와 같이 가르치고 있다.

"완덕의 길은 십자가를 거쳐 가는 길이다. 자아 포기와 영적 싸움 없이는 성덕도 있을 수 없다. 영적 진보는 참행복의 평화와 기쁨 안에서 살도록 점차적으로 인도하는 '고행'과 '극기'를 내포한다." (가톨릭 교회교리서 2015항)

가톨릭 용어 사전에 따르면, 고행이란 육체의 욕망을 누르고 최고의 정신 활동을 얻고자 몸을 괴롭혀 성덕을 닦는 행위을 의미한다. 육신의 기도라고도 표현되기도 하며, 금식, 극기, 편태, 절제, 은둔 생활 등을 포함한다. 이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샘솟게 하고, 육체적인 유혹에 떨어짐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은 육체적 고행과 관련해서 교황청으로부터 가톨릭 교리와 어긋나는 부분이 없다는 인증인 Nihil Obstat (오류 없음)을 받았다.

카푸친 작은형제회 오상의 성 비오 신부, 성 바오로 6세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캘커타의 성녀 테레사 수녀 등 현대 21세기에 시성된 성인들도 즐겨 사용했던 것이 육체적 고행이다.

오푸스데이 사제들과 독신 신자들은 가톨릭 교회의 축일, 대축일, 그리고 성직자치단에서 정한 가족 축일을 제외하고는 고복(苦服)[12]과 편태(鞭笞)[13]을 사용한다. 관련해서 궁금한 경우, 오푸스데이 누메라리 지도자나 사제에게 문의를 하는 경우 실제로 사용하는 도구까지 보여주면서 사용 목적과 방법에 대해서 가감 없이 설명해준다.

그들이 수행하는 다른 고행으로는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지키는 가톨릭 교회법으로 규정한 단식재과 금육재가 있다. 거기에 매일 찬물 샤워, 일주일에 한번 딱딱한 바닥에서 취침하기 등이 있다. 감기나 여러가지 질병 등, 건강상의 이유로 적합하지 않는 경우는 시행하지 않는다. 오푸스데이의 사제들과 독신 신자들은 자신들의 건강 상태와 자유의지에 따라 시행할지 안할지를 정한다.

독신 신자 뿐만 아니라 독신의 의무가 없는 수페르누메라리 신자들도 작은 고행을 실천한다. 가령, 좋아하는 음식 적게 먹기 등의 식사 절제, 소파에 퍼질러 누워있지 않기 등을 실천한다.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것과 달리, 오푸스데이에서 사제들과 독신 신자들이 하는 육체적 고행은 현재 가톨릭 교회의 엄격한 봉쇄 수도회/수녀회에서 행하는 육체적 고행과 비교해서는 애교[14] 수준이다.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에서는 육체적 고행을 무시해서는 안되나 어디까지나 가톨릭 신앙을 키워주는 도구일 뿐, 그 자체 목적은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꾸준한 성사생활[15] 기도[16]와 육체적 고행, 사도직(즉, 사랑의 실천) 순으로 신앙 생활을 키워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오푸스데이에서는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에 나올 법한 마조히즘적이고 변태적이며 가톨릭 신앙에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고행과 극기는 금하고 있다.

11.2. 교황의 친위부대, 비밀결사단이라는 오해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은 가톨릭 교회 내의 교황에 대한 충성심으로 유명한 조직이다. 설립자인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의 몬시뇰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신학은 없고 교도권만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교황의 영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한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의 통상적인 가르침에 항상 순명하며, 일부 진보 성향 가톨릭 신자들의 오해처럼 특정 교황만 따른다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기에 예수회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도 적지 않은 수의 오푸스데이 사제들을 교구장 주교로 임명하거나 오푸스데이 소속 신자들을 교황청 관료로 등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오푸스데이 센터를 다녀보면 교황을 위해서 기도와 희생을 많이 해야한다고 강조하는 평신도 뉴머러리 지도자와 사제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교황의 친위부대라는 별명 아닌 별명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일부 매체, 특히 다빈치 코드에서 오푸스데이를 마치 현대의 십자군처럼 목적을 위해서는 살인도 불사하며 막강한 자금력으로 콘클라베 가톨릭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조직으로 그리고 있으나 실제로 오푸스데이 사람들을 만나보면 생각보다 평범한 사람들인 것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할리우드 자체가 가톨릭하고는 사이가 좋지 않다. LGBT 낙태, 여성 해방 등의 여러 주제에 전통적인 보수적 관점을 가진 곳과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오푸스데이와 관련해서도 그리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아 보인다.

반가톨릭 세력인 무신론자들, 프리메이슨, 반가톨릭 성향이 매우 강한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주된 공격 타겟이 되고 있다. 그들이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싫어하다 보니 콜럼버스 기사단이나 예수회처럼 가톨릭 교회의 떠오르는 신예 단체인 오푸스데이를 깔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오푸스데이 특유의 그 조용히 하는 영성 스타일이 비밀결사라는 오해를 더 삼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 들어서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그런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11.3. 일부 수도회와의 갈등

오푸스데이 영성은 활동 수도회들이 추구하는 성소와 약간 다른 점이 많다보니, 기도와 활동을 중시하는 활동 수도회에서는 오푸스데이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은 경우가 존재한다. 오푸스데이의 경우는 평신도 영성, 재속 사제 영성이라고 한다면, 다른 활동 수도회의 경우는 수도 영성, 세상과 분리된 차원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회는 오푸스데이를 견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신부들의 엘리트 집단으로서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일종의 경쟁대상 격이기도 하다나. 근데 오푸스데이 회원 중에 사제의 비율은 2% 남짓이다. 비교대상이 되기에 부적절하다. 애시당초 사제가 회원 대부분인 예수회와 회원 98%가 평신도인 오푸스데이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헌데 둘이 좀 맞지 않은 건 사실이다. 천주교 신자들 중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천주교가 이런저런 형태로 관여하는 온갖 사회 이슈에 꼭 한두 명씩 예수회 신부들이 끼어있다. 심지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미사와 제주도 해군기지 반대 시위 미사, 탈원전 운동 등 천주교 신부가 합당한 판단을 할 전문적 지식이 없는 현안에도. 실제로 서강대학교 이냐시오 성당 사제로서 사목하다가 해외 교포사목 파견을 나간 모 예수회 신부는 서강대학교 이냐시오관에서 집전되었던 어떤 미사에서는 그 미사의 지향으로 "강정 구럼비 바위 수호 현장과 탈핵 현장에 나가있는 동지들을 위힌 지향으로 이 미사를 봉헌합니다."라고 하였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예수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예언자적 소명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오푸스데이는 사제는 전례 거행( 성체성사(미사), 고해성사, 병자성사와 같은 성사와 시간 전례 등)처럼 사제의 본분에만 충실하고 평신도들을 성화하여 평신도들이 제각각 자기들의 정치적 입장과 사회적 위치, 직업 등에 따라 활동을 하되 그 활동이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룬 상태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영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에 한정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루카 12,14)의 말씀을 따른다. 그리스도의 사제적 소명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위키백과 영문판에 따르면 1940년대에서부터 유럽에서 예수회가 오푸스데이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과 소문을 퍼뜨리고, 오푸스데이 설립자의 저서를 불태우는 등 분란이 생기자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몬시뇰이 진지하게 당시 예수회 총장 페드로 아루페 신부를 만난 적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오푸스데이에서는 다른 단체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그리 비판적이지도 않다. 각 단체에 따라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영성이 다른데, 오푸스데이가 뭐라고 다른 단체보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냐는 식의 반응이다.

한국에서는 오푸스데이가 진출하고 난 후에 특정한 수도회와 오푸스데이가 대립하거나 그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애시당초 활동 범위도 다르고 영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충돌할 부분도 없어보인다.

오푸스데이가 성직주의를 반대하고 능동적인 평신도 영성을 강조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성직주의가 매우 강한 한국 가톨릭 내에서 무조건적으로 환영받지 않는 분위기이다.

11.4. 교황청의 편애, 특혜 여부

가톨릭 내에서도 오푸스데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존재한다. 오푸스데이가 지나치게 바티칸, 특히 성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특혜를 받았다는 점으로, 호세마리아 시성 과정에서도 비판이 있었고[17] 불과 50여 년 밖에 되지 않은 조직이 교구급의 자치권을 인정받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기도 했다.

사실 가톨릭 교회 내의 평신도와 교구 사제를 포함한 재속 사제들을 위한 영성 교육 단체가 별로 없다는 것도 바티칸에서 오푸스데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밀어준 이유이기도 하다.

교황청에서 많이 밀어주는 평신도 영성 단체로는 포콜라레, 네오까데구메나도길 등이 잘되고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경우는 오푸스데이를 콕 집어 "이 사람들처럼 해야한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가톨릭 교회사를 보면 전세계적인 단체로 성장한 모든 가톨릭 단체(특히, 수도회 재속회, 기타 단체)들은 특정 교황의 전폭적인 지지나 추기경, 주교들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푸스데이만 관련해서 특별히 비판받는 것은 그리 객관적으로 보이지는 않아보인다.

11.5. 성차별 여부

여성을 차별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실제로 여성이 지켜야 할 규정이 좀더 강하긴 하지만 애초에 별도의 조직으로 나뉜 것이라는 옹호도 있다. 사실 가톨릭 여성 신자라면 비단 오푸스데이 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 분위기가 아무래도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성역할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 페미니즘적 관점에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니라고 하긴 뭐하지만 '오푸스 데이라서' 그렇다기 보다 가톨릭 자체가 그렇단 얘기.

오히려, 평신도 독신 여성 신자들이 철학과 신학을 박사 과정까지 배울 수 있고, 교황청립 대학교 교수로 임용하는 가톨릭 교회의 몇 안 되는 단체이기도 하다. 독신 여성 신자 교수들이 오푸스데이 사제들이 될 남성 독신 신자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성직은 남성만 맡을 수 있지만 평신도는 남성도 여성도 있다는 점 때문에라도 성직주의를 반대하고 능동적인 평신도 영성을 강조하는 점이 조직 내 여성의 역할을 촉진시켰으면 시켰지 차별을 강화시키기는 어렵다.

오푸스데이의 3번째 시복자인 복자 과달루페 오르티즈 여사의 경우, 오푸스데이 평신도들 중에서는 첫 시복자이며, 화학 교수며 오푸스데이 여성 지도자로 일했었다.

11.6. 일부 신자들의 스페인 독재정권 지지논란

훨씬 더 쟁점이 되는 문제로 바로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와의 과거사 문제로 늘 잡음이 많이 나온다.

실제로, 프랑코 철권 통치 중에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로 뉴머러리 남성 독신 신자 중 몇 명이 장관으로 입각해 정치를 했었고, 이들이 프랑코 통치에 직접적으로 협력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 지금도 스페인 오푸스데이 신자들 사이에서도 프랑코의 대한 인식은 매우 극단적으로 갈린다. 본인의 스페인 출신 지역, 정치 성향에 따라서 매우 부정적이거나 중립적이다. 일부 노년층 신자를 제외하고는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가톨릭 교회의 경우 스페인 내전 당시 좌파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학살, 방화, 범죄의 대상이 된 바 있다. 정확히는 라르고 카바예로, 후안 네그린, 돌로레스 이바루리, 인달레시오 프리에토같은 특정 공화국 최고 수뇌 요인들은 개인적으로는 이런 학살행위를 말리려고는 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공화정부나 CNT같은 공화진영 핵심 실세 조직이나 기관지 등을 통해, 혹은 그와 별개로 공화 진영내 언론들 역시 반교회 테러를 정당화한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스페인 내전 초기의 실세집단인 PSOE의 좌파나 아나키스트를 중심으로 교회에 대한 집중적인 테러가 일어난 것도 사실이고, 앞서 말한 말렸다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스페인 수뇌 요인 개개인의 행위일 뿐 원래부터 반교회적이었던 스페인 공화국 정부나 국가 차원에서 이런 학살행위를 법으로 엄금하거나 군경을 풀어 학살자를 처벌하거나 손해배상하는 식의 국가나 정부 차원의 조치는 이루어지지는 않은 이상 이는 일단은 국가책임이 맞기는 하다. 스페인 내전 당시 좌파정부였던 공화국 쪽에서 약 4,000명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지도자들이 살해된 것으로 스페인 진실과 화해를 위한 위원회에 밝혔을 정도다. 적어도 가톨릭 교회에 한해서는 프랑코를 미는 게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가톨릭 교회의 재산이 많았던 건 사실이나, 사제와 수도자들은 대다수가 가난했다. 그런 와중에 공산주의자들이 가톨릭을 공격하니, 그에 대항해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한 프랑코를 밀었다.

그리고 초기에야 프랑코가 교회의 권위를 등에 업고 신나게 샤바샤바했고, 교회 또한 프랑코의 유혈낭자한 손을 통해 스페인에서의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지배권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이 양반의 독재 말년에는 되려 가톨릭계 출신의 반정부 인사도 많이 배출되었고,[18] 프랑코가 팔팔할 때도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그 중에 적지 않은 수가 오푸스데이 출신 인사들이었다.

이는 당시 가톨릭 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세속 세계와의 관계 자체를 개선하려고 했던 교회 자체의 노선 변화와 직접적인 상관이 있으며, 프랑코는 사석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 주교의 탈을 쓴 빨갱이 놀음'이란 식으로 음해하는 등 굉장히 불쾌하게 여겼다. 대놓고 정권에 반대하는 공화파 잔당들과 지하로 숨어든 좌파 세력이야 그냥 잡아 쳐죽이면 되니 상관 없었지만, 가톨릭 교회를 자극하는 건 자신의 정치적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셈이니 오히려 가톨릭계의 반정부 움직임에 되려 더 골치 아파했다. 일단 적어도 확인된 바로는 오푸스데이 소속에는 프랑코 정권의 적극적인 지지자들이나 반대파나 골고루 섞여 있었다.

설립자 성인이 신자들의 정치적 자유를 무조건적으로 보장했기 때문에, 스페인 내의 같은 단체 내에서도 친프랑코와 반프랑코 세력들이 있었다.

11.7. 설립자 성인의 빠른 시복시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성인의 시복시성이 다른 성인들에 비해서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호세마리아 성인은 선종 후 27년만에 시성이 되었다. 특이하게도 전세계 주교의 1/3이 넘는 1,300명 주교의 시복시성 청원을 받은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시복시성 절차가 느렸지만, 다만, 교황과 시성성 장관 추기경의 판단과 결정으로 빠른 시복시성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도 숱하게 있어왔다. 선종 후 10년 이내 성인성녀로 시복시성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왔다.

최근에는 정보통신 발달과 시복시성 심사의 자료가 되는 의학자료, 시복시성 대상자의 저서나 자료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생애 심사와 기적 심사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이다.

다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나 켈커타의 성녀 테레사 수녀는 시복시성이 이보다 더 빨리 되었다.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에 시복시성 절차 및 교회법 전문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것이 시성을 빨리 진행하는 데에 도움을 준 것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시복시성 교회법 전문가가 없는 다른 가톨릭 단체에서는 오푸스데이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제2대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장이었던 알바로 델 포르티요 주교를 상당히 빠른 22년 만에 시복했고, 오푸스데이 여성 독신 뉴머러리 신자였던 과달루페 오르티즈 교수는 44년 만에 시복했다.
[1]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가 환시 중에 본 것으로 '이 땅 위의 십자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라틴어: Praelatura Sanctae Crucis et Operis Dei / 스페인어: Prelatura de la Santa Cruz y Opus Dei / 영어: Prelature of the Holy Cross and Opus Dei [3]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시복하고, 2002년 시성했다. [4] 감목이란 원래 을 치는 목자의 뜻으로 주교급의 고위 성직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감목은 정식 교구장과 똑같은 권리와 권한을 가지며, 주교가 아니면 사제다. 사제일 경우, 몬시뇰로 임명되었으며 몬시뇰 아무개로 불렸다. 본래' 감목'은 1962년 교계 설정 이전에 사용되었던 용어로, 한국천주교회에서는 대목구장은 주교였지만 지목구장은 일반적으로 몬시뇰이었다. 그러나 주교가 아닌 몬시뇰 감목의 경우에도 주교의 복장을 착용할 수 있는 등 여러 점에서 주교의 예우를 받았다. 주교가 아닌 감목은 성품성사를 제외한 모든 성사와 준성사를 집전할 수 있었다. [5]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 교황청립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 교황청립 성십자가 대학교 [6] 성사 집전 및 영적 지도, 교회법 상으로의 단장 대리 [7] 부득이하게 부모님이 편찮으신데, 돌볼 가족이 본인밖에 없는 경우, 또는 여러가지 이유로 일시적으로 센터 밖에서 거주하는 경우도 있음. [8] 독신이지만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고 부모 또는 자신의 가족과 거주하거나 혼자 사는 신자, 지도자의 역할을 맡지 않음. [9] 대다수 기혼이며, 기본적으로 4명 이상의 자녀들을 낳고 생활한다. 오푸스데이 수페르누메라리들은 하느님의 선물인 자녀들이 생기면 거부하지 않고 많이 낳는다. 자연 피임(배란주기법)을 제외한 인공 피임(피임 도구를 사용한 것이 아닌 다른 모든 종류의 임신을 피하기 위한 행위를 포함)을 지옥으로 갈 대죄로 금하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르기 때문이다. 인공 피임을 하는 가톨릭 부부들은 대죄를 지은 것으로 꼭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 받아야 한다. [10] 생활 규범에는 매일 규범, 매주 규범, 매년 규범 등이 있으며, 주로 가톨릭 교회의 성체신심/성모신심 관련 기도 실천, 성체성사/고해성사 생활, 월례/연례 피정, 육체적 고행, 교육 참여 등이 있다. [11] 동시에 오푸스데이에서는 '사제적 영혼'을 가진 '평신도'를 양성한다. [12] 고복은 다른 말로 고의(苦衣), 마미단, 영어로는 "cilice" 라고 한다. 고복의 원형은 신약성경의 복음서에서 성 요한 세례자가 입었던 옷이다.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마르 1,6) 참고.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산양이나 낙타의 털로 짠 옷으로 맨살갗 위에 그대로 입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장례복장인 거친 삼베옷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을 생각하며 입기 시작하였으며, 수많은 가톨릭 사제, 수도자, 평신도 할 것 없이 자신의 겉옷 속에 입었다. 중세 말에는 사순시기와 대림시기에 고복을 입는 것은 일상 습관이었으며, 현대 초까지도 가톨릭 교회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현재는 약간의 고통과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쇠사슬 형태로 되어있다. 일종의 지압벨트 같이 생겼다. 주로 봉쇄수도원/수녀원에서 제작을 하며, 영미권 수도자들이 만든 고복을 인터넷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엄격한 수도회/수녀회에서는 자신의 허리를 감쌀 정도의 큰 고복을 착용하고,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 사제들과 소속 독신 신자들은 허벅지에 착용하는 작은 고복을 착용한다. 대축일, 축일, 주일을 제외하고 매일 2시간 정도 착용한다. [13] 편태는 회초리다. 영어로 "discipline"이라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기 전 로마 병사들에 의해서 채찍을 맞은 것을 기억하는 도구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받은 형벌 중에 하나였던 편형과 한국 천주교 순교자들이 당한 곤장형을 기억한다고 볼 수 있다. 편태의 목적은 영혼의 세가지 적 (삼구)[19]중 하나인 '육신'의 욕망, 즉, 정욕, 나태를 줄이고, 절제와 고행을 실천하며, 그리스도의 수난에 더욱 깊이 참여하고, 자신의 죄, 다른 사람의 죄, 세상의 죄를 보속하는 것이다. 가톨릭 성인전을 읽어보면 매일 같이 편태를 사용한 성인 성녀들이 수두룩한 만큼 그리스도교(가톨릭) 문화권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 사제들과 독신 신자들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기도, 시편 기도나 다른 신심기도를 바치며 이 고행을 실천한다. [14] 유명한 봉쇄수도회인 카르투시오회 가르멜 수도회, 트라피스트 봉쇄수녀회에서는 연중시기 동안 육고기를 먹지 않는 금육을 수행하고, 다른 반찬 없이 맨밥만 먹기, 빵 한조각만 먹기 등 극히 절제하는 단식을 지킨다. 다른 여러가지 가톨릭 전통적인 고행을 잘 보존하며 실행한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평신도와 재속 사제들이 세상과 떨어져 수도생활을 하는 수사, 수녀 수준으로는 고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5] 매일 미사 참례와 영성체, 매주 고해성사 [16] 매일 성체 앞에서의 묵상기도와 매일 묵주기도 [17] 비판하는 측에서는 호세마리아의 인간적 결점을 증언하려던 사람들의 증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 인간적 결점이란 화를 잘 내고 아랫사람들을 막 대한다 정도. 약간 불같은 성격이었다는 것이지만, 시성 과정에서 성격이지 결점은 아니라고 판단되었다. 그렇게 치면 수많은 성인들도 성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성격 가지고 트집을 잡는 시성 과정은 없었다. 하지만 성격이 문제가 아니라 하단 부분에 나오는 것처럼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지지했다는 결점이 지적되었으나, 실제로는 프랑코에게 직언(진정한 가족이 없는 사람은 바로 당신!)을 서슴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정치에 대해서 일절 견해를 드러낸 적이 없었기에 시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18] 결국 이때쯤 되면 스페인 가톨릭 주요 성직자들까지도 프랑코의 독재에 불만을 드러냈다. # 반공 정책을 펴고 가톨릭을 수호했다고 하지만 자유와 인권을 억압한 프랑코의 강압적이고 비상식적인 독재 통치에 스페인 가톨릭 교회 주류조차도 결국 엄청난 염증과 답답함을 느꼈다는 얘기. 이는 곧 얼마나 프랑코 독재가 막장이었는지 입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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