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131230><colcolor=#ffffff> 오성옥 吳成玉|Oh Seong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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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2년 10월 10일 ([age(1972-10-10)]세) | ||
대전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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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대전삼성초등학교 (졸업) 동방여자중학교 (졸업) 동방여자고등학교[1] (졸업) 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 (체육학 / 학사) 단국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석사)[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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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핸드볼 선수 (
센터백 / 은퇴), 핸드볼 감독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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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 한국체육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2024. 9~)[3] | ||
소속 | <colbgcolor=#131230><colcolor=#ffffff> 선수 |
종근당[4] (1995~1999) 히로시마 메이플레이즈 (1999~2004) 히포 니더외스터라이히[5] (2004~2010) 히로시마 메이플레이즈 (2010~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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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
히포 니더외스터라이히 (2008~2010 / 플레잉 코치) 히로시마 메이플레이즈 (2011~2015) 대한민국 청소년 여자대표팀 (2016~2022?) SK 슈가글라이더즈 (2021~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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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위원 |
KBS (2016) MBC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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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71cm, 65kg | ||
가족 | 배우자, 슬하 1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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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핸드볼 선수 출신 감독.올림픽에 5번 연속 출전했으며 대한민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이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라는 위업을 달성하는데 공헌했다.[6] 현역시절 포지션은 센터백으로, 한 해 선배인 임오경과 함께 경기를 조율하고 직접 골을 성공시키는 등의 역할을 맡았다. 빠른 슈팅력, 돌파력, 실수가 거의 없는 볼에 대한 센스, 센터 백으로써의 경기 운영 능력은 물론, 지거나 이기고 있을 때에도 침착하게 풀어나가는 멘탈을 가지고 있어서 스타 플레이어가 많았던 같은 세대 여자핸드볼 선수중에서도 단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천재형 핸드볼 선수로 불렸다. 대중들에게는 7미터 페널티 드로를 담당했던 카리스마 넘치던 1년 선배 임오경보다 덜 알려졌지만 결코 뒤지지 않는 핸드볼 선수였다.
2. 선수 경력
2.1. 1990년~ 1994년
2.2. 1995년~ 2000년
1995년 한국체육대학교를 졸업한 후 여자핸드볼 실업팀인 종근당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국가대표팀 훈련이 너무 힘들었고 이미 올림픽 우승을 달성해서 다시 올림픽 출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으나, 코치진의 설득 끝에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해서 은메달을 획득했다.1999년 일본 히로시마 메이플레이즈에 진출해 있던 임오경의 권유로 일본리그에 진출했다. 이때 임오경과의 맹활약으로 꼴찌였던 팀의 7회 연속 리그 우승에 기여하고 5회 연속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었다.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4년 전 올림픽에서 만났던 덴마크를 준결승에서 다시 만났으나 31대 29로 패배하면서 여자 핸드볼의 올림픽 덴마크와의 악연이 이어졌다. 이후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노르웨이를 만나서 21대 22로 패하면서 대한민국 여자핸드볼이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 이후부터 이어오던 메달 획득에 실패했으나 국내의 열악한 지원과 선수 층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16년 연속 4강이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올림픽에서의 활약 덕분에 오성옥은 대회 BEST 7에 선정되었다.
2.3. 2004 아테네 올림픽
오성옥은 이 당시에는 노장 취급을 받던 32세였으나, 올림픽 맹활약을 눈여겨 본 오스트리아 여자핸드볼 명문 히포 니더외스터라이히와 2004년부터 계약하면서 여자 핸드볼 필드 플레이어로써 최초로 유럽 리그 진출을 달성했다.[11]
2.4. 2008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에서 만난 노르웨이에게 28대 29로 패배했다. 경기 종료 5초 전까지 28대 28 동점 상황이었으나 노르웨이가 종료 버저비터 직전에 던진 공이 종료 이후 골라인으로 통과되는 것을 비디오로도 확인[12] 되었으나 심판은 노르웨이의 승리를 선언했다. 한국은 국제핸드볼연맹에 경기종료 2시간 이내에 제소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헝가리와 동메달 결정전을 치렀다.
그러나 오성옥은 노르웨이와의 준결승전 이후 탈진해 버리면서 링거를 맞았고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경기 중반까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오성옥의 포지션에 교체되어 들어온 김온아의 맹활약으로 33대 28로 대승하며 동메달을 따냈다. 오성옥은 함께 뛰어준 어린 선수들에게 너무 고마워 큰 절을 하고 싶고, 4년전 은메달을 땄을 때보다 이 동메달이 더 기쁘고 소중하다고 인터뷰 하기도 했다. 국제핸드볼연맹이 선정한 올림픽 여자핸드볼 베스트 7 플레이어에 선정되었다.
3. 지도자 경력
2016년부터 한동안 대한민국 청소년 여자 핸드볼 대표팀 감독직을 맡았다. 청소년 대표팀 최초의 전임 감독으로 취임 첫해에 청소년 세계선수권에서 대표팀을 동메달을 획득하도록 이끌었고, 2017년 청소년 아시아선수권 우승, 2018 청소년 세계선수권 동메달이라는 성공적인 지도자 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13] 2021년 3월 SK 슈가글라이더즈 여자 핸드볼 감독직을 수락했다.
2022년 일신상의 이유로 SK 슈가글라이더즈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한국체육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수행하기로 예정되었으나 해당 학교에서 임용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돌연 임용을 취소하며 법적 대응까지 이루어졌으나, 최종적으로 2024년 9월 임용되었다.
4. 해설 위원 경력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KBS 해설 위원을 맡았었다.2024 파리 올림픽에서 MBC 해설위원을 맡는다.
5. 수상 기록
올림픽 | ||
금메달 | 1992 바르셀로나 | 단체전 |
은메달 | 1996 애틀랜타 | 단체전 |
은메달 | 2004 아테네 | 단체전 |
동메달 | 2008 베이징 | 단체전 |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1995 부다페스트 | 단체전 |
동메달 | 2003 자그레브 | 단체전 |
아시안 게임 | ||
금메달 | 1990 베이징 | 단체전 |
금메달 | 1994 히로시마 | 단체전 |
아시아선수권 | ||
금메달 | 1991 히로시마 | 단체전 |
금메달 | 1993 산터우 | 단체전 |
금메달 | 1995 서울 | 단체전 |
금메달 | 1997 암만 | 단체전 |
6. 기타
-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에서 문소리가 맡았던 ´미숙´역의 실제 주인공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미숙´은 남편이 사업 실패로 인해 자살하고 본인은 마트에서 일하며 생활고를 겪는데다가 시댁과의 불화 등을 가진 배경이어서 실제 개인사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오성옥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지만 자기의 개인사를 너무 이상하게 그려서 영화를 안 봤다고 하며, 시댁에서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니냐며 항의 했지만 핸드볼의 영화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핸드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질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참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오성옥은 매우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했으며 이 때문에 오히려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다고 선생님들이 혼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연구원 출신인 남편과도 일찍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했으며 시댁도 매우 유복해서 오성옥의 선수 생활을 적극 지원하고 지지 해 주었으며 남편도 오성옥이 해외 리그에 진출하자 함께 이주해서 적극적으로 외조했다. 오성옥의 외동 아들은 수년 간 함께 외국 생활을 하다가 뉴질랜드에서 학창 시절을 마치고 카투사를 거쳐 국내 유수 대학에 진학했다.
[1]
現 동방고등학교
[2]
석사 학위 논문: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기법을 활용한 여자 핸드볼 경기 분석 기록에 따른 팀 예측(2021. 8)
[3]
#
[4]
종근당 여자 핸드볼단
[5]
오스트리아 소재
[6]
오성옥 이전 여자 핸드볼은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획득한 적이 있었다.
[7]
2012 런던 올림픽 조별 리그에서 덴마크에 승리하면서 한국 선수들은 우승이라도 한 듯이 기뻐했다.
[8]
당시 결승에서 만난 덴마크와의 경기는 올림픽 명승부이자 여자핸드볼 역대급
PTSD를 가져오는 경기 중 하나로 꼽힌다.
[9]
이후 올림픽에서 이어진다.
[10]
실제로 여자핸드볼 결승전은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선정한 올림픽 명승부로 꼽히고 있다.
[11]
히포 니더외스터라이히는 1989년부터 2000년 까지 8회의 유럽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력이 있는 강팀이다.
[12]
핸드볼 규칙상 경기 종료 후 골라인 통과된 공은 무효이다.
[13]
이때 동갑내기 오영란이 국가대표로 8년만에 복귀했다.
분류
- 대한민국의 여자 핸드볼 선수
- 대전광역시 출신 인물
- 1972년 출생
- 대한민국의 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
- 2000 시드니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
- 2004 아테네 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
- 2008 베이징 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
-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동방고등학교 출신
- 한국체육대학교 출신
- 단국대학교 대학원 출신
- SK 슈가글라이더즈/역대 감독
- 대한민국의 여자 핸드볼 감독
- 핸드볼 해설자
- 대한민국의 예체능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