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4:20:51

오석산


1. 개요2. 역사3. 특징4. 미디어5. 기타

1. 개요

五石散

한약의 일종이라고는 하지만 현대에는 위험하기 때문에 안 쓰는 마약. 한석산(寒石散)이라고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법률에서 마약으로 분류하지 않으나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흥분 효과를 일으키는 등 인체에 작용하는 효과로 봐서는 마약 취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성분상으로는 비소, 수은 등의 무기물이 주성분이라 현대적 의미의 마약보다는 약효를 억제한 독약에 가까워보인다.

재료가 다섯 가지() 광물()이라 오석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산()을 빼고 오석(五石)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산(散)은 가루약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식산(散)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중국에서는 한석산(寒石散)으로 불린다.

오석산의 재료는 아래 표에 나오는 다섯 가지 광물인데 기록마다 서로 달라서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
재료 상세
석유황(石硫黃) 웅황이라고도 하며 삼황화 비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광물이다. 산의 양지에서 캔 것이 웅황이고 음지에서 캔 것은 자황이라 한다. 황화물은 용해도가 매우 낮아 독성은 적지만 산소나 체내 다른 화학물질과 반응하여 수용성의 화합물을 생성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독성이 낮다고 해서 먹어도 괜찮은 것은 절대 아니다.
석종유(石鍾乳) 종유석[1]이라고도 하며 탄산칼슘을 함유하고 있는 암석. 콩팥에 매우 해롭다.
자석영(紫石英) 자석영은 자수정이나 형석(螢石)이다. 자수정이라면 이산화규소와 산화철이 주성분이고 형석이라면 불화칼슘이 주성분이다.
적석지(赤石脂) 규산 알루미늄이 주성분인 황토.
석영(白石英) 백수정. 이산화규소 광물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석유황(웅황) 빼고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 웅황이 비소를 함유하고 있고 황화 수은이 주성분인 주사나 단사(丹沙)가 들어가는 경우도 기록되어 있다.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저 위의 구성은 청대 루쉰의 기록으로, 해당 언급에서도 저 조성으로 시작해 추가로 하안(何晏)이 개량한 방문(方文)을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되어있다.

고대의 처방을 보면 주사, 자철광, 명반, 웅황, 공작석, 자석영( 자수정) 등도 기록되어 있다. 주사는 적석지와 비슷한 색상을 가지면서 더 빨간 데다 일부 처방에서는 적석지 대신 들어가며 웅황은 대개 빠지지 않고 나온다. 사실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주사가 핵심재료일 가능성이 크다. 웅황으로도 모자라 계관석을 언급하는 레시피도 있는데 계관석은 웅황과 같이 발견되는 비슷한 광물로 마찬가지로 비소황화물이다.[2]

2. 역사

처방 자체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있었던 모양으로, 상한론을 저술한 후한대의 장중경[3]이 오석산으로 병을 치료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위진남북조시대였다.

당시 유행했던 청담사상이 도가적인 신선사상으로 변모하면서 오석산의 인기도 같이 올라가 오석산을 뜨거운 에 타 마시고 알콜 기운 + 마약 기운을 받아 헤롱헤롱한 상태로 놀면서 다니는 것이 당시 귀족층의 놀이였으며 오석산을 최음제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위진남북조시대의 지배층은 특히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경우가 많았다.

지식인층에 속하는 유학자들이나 현인들조차 머리를 맑게 해 준다는 이유로 오석산을 흔하게 사용했으며 죽림칠현들조차 오석산을 빨고 담론했다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다. 이는 삼국시대의 인물 하안이 오석산을 칭찬한 탓이다. 특히 오석산을 복용해 나이 먹고도 마치 어린 소녀 같은 피부를 가지게 되었다고 발언한 것이 결정적인데 이 피부는 수은의 부작용으로 추정된다.

물론 당대 사람들이라고 하여 이 약품의 위험성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주로 의학자들을 중심으로 오석산의 부작용을 지적하긴 했다. 황보밀, 소원방 등 유명한 의학자들이 오석산의 폐단을 지적하였으며 당나라 손사막의 천금요방에서도 부작용을 언급하였고 송대에 이르러서는 사회적으로 마약 취급을 받는다.

남북조시대에는 대부분 남조에서 유행했으며 북조에서는 상대적으로 파급력이 적었다. 그렇다고 아주 영향력이 없었던 건 아니라 북위의 개국황제 도무제는 원래 명군이었는데 말년의 의심병에 더해 결정적으로 오석산을 먹고 나서부터는 공신이나 대신을 함부로 죽이게 되었는데 결국 아들 탁발소에게 피살당하고 말았다.

2010년 4월, 충남 부여에서 백제 귀족과 관료들이 오석산을 사용했다는 정황이 적힌 목간이 발굴되었다. # 오석산이라는 문구는 추정이지만 그래도 정황상 유력한 해석이다. 발굴 성과를 토대로 사극 ' 계백'에서도 오석산 파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놀랍게도 오석산에 대한 비극은 훗날 북송 시대에까지 이어지는데 소동파가 이 약을 언급하며 "어떻게 처음 퍼뜨린 하안만 장수 및 성욕증진이라는 약효를 보고, 그것을 따라한 사람들은 죄다 비참하게 죽었느냐"며 엄중히 경계했다. 일부 인터넷 게시물이 잘못 해석해 퍼뜨린 것과 달리 약이 좋다고 말한 게 아니다![4]
世有食鍾乳鳥喙而縱酒色, 所以求長年者, 蓋始於何晏. 晏少而富貴, 故服寒食散以濟其欲, 無足怪者. 彼之所為, 足以殺身滅族者日相繼也. 得死於寒食散, 豈不幸哉! 而吾獨何為效之? 世之服寒食散, 疽背嘔血者相踵也.
종유석, 까마귀 부리[5]를 먹고 방탕하게 주색을 즐김으로써 장수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모두 하안으로부터 비롯했다. 하안은 어려서부터 부귀하여 한식산을 미약으로 복용했을 법하지만, 그 짓은 자신의 몸을 망치고 가족을 몰살시킨 자들을 연일 양산하기에 충분했다. 한식산을 먹고 죽다니 운이 없기도 하구나! 어떻게 나만 혼자 약효를 보았을까? 남들은 한식산을 먹고 등에 종기가 나고 피를 토한다는 자들이 널렸는데.[6]
상군론(商君論) #

3. 특징

요약하자면 복합적인 중금속 중독을 유발한다. 전근대 사회에서 제대로 된 법제[7]가 이루어졌을 리도 없고 뭔가 했다고 하더라도 광물성 독물이 법제랍시고 볶거나 굽는다고 어디 갈 리가 없다. 그냥 온갖 유독성 화합물이 섞인 광물 종합선물세트를 몸에 들이붓는 격이다.

복용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피로가 싹 가신다고 하지만 대단히 독성이 강해 반드시 행산이라고 하여 계속 걸어다니면서 독기를 빼내야 한다. 당시에는 마약이 몸에 해롭다는 인식이 없었고 오히려 오래 복용할수록 건강에 좋다고 생각했다. 마약 복용 후에 극도로 흥분한 상태라 행산을 하면서도 얌전히 산책만 한 게 아니라 온갖 기행을 벌이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반드시 물이나 음식을 차갑게 해 섭취해야 하며 뜨거운 것을 섭취하면 죽는다고 한다. 한식산(寒食散)이라는 명칭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이 행산을 하지 않아 죽은 사람 이야기가 나오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다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뜨거운 물을 계속 뿌려대자 그만 죽어 버렸다고 한다.

오석산을 복용하고 바깥을 돌아다니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것 같은 걱정이 생기며 장기간 오석산을 복용하면 피부가 민감해져 닳아 해지기 쉬웠다. 약해진 피부 때문에 까끌까끌한 새 의복을 입거나 신발을 신기 힘들었으며 세탁한 옷을 입는 것도 피부를 해할 위험이 커서 세탁하지 않은 길고 헐렁한 헌옷을 입고 다녀야만 했다고 하는데 이런 모습이 얼핏 보기에는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8][9]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석산을 복용하는 이들은 지저분하고 칠칠치 못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들었으며 이들의 피부에는 가 들끓었다고 한다.[10] 명필로 유명한 왕희지도 말년에는 오석산에 중독되어 재료를 캐기 위해 분주하게 다녔으며 그의 일곱째 아들인 왕헌지는 결국 등이 썩어 끔찍하게 죽었다고 한다.

성분이 성분인 만큼 오석산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각종 중금속에 복합적으로 중독되어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4. 미디어

본래 한방에서는 치병보다는 양생과 관련된 약재가 가치가 높은 편이고 그 중에서도 광물 계통 약재는 특히 귀하게 여겼다. 그래서 고대부터 대중문화 속에서 오석산은 말 그대로 부의 상징으로 통했다.

삼국지 10부터는 아이템으로 등장해서 수명을 10년 늘려주는 효과가 존재한다. 삼국지 12에서는 가치가 가장 높지는 않지만 수명을 7년 늘려준다. 삼국지 13에서도 7을 늘려주는 것으로 같은 효과를 낸다.

판관 포청천에는 오석산에 중독된 지방 수령의 조카가 오석산 살 돈을 마련하려고 양가의 규수를 암살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당연히 이 조카는 조카를 감싸던 삼촌과 함께 작두로 처형되었다. 1995 판관 포청천 part2의 에피소드 철구분 편에서는 호연수용의 아들인 호연경이 오석산에 중독돼 비참하게 살아가다 호연 가문 전체가 누명으로 인해 참수당하자 그제서야 각성하고 오석산을 끊으며 칠협오의 계열 스핀오프에서 오석산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에피소드가 가끔씩 나온다.

대군사 사마의를 비롯해 조조 사후 위나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도 조상과 하안등, 1세대 위나라 공신들의 2세들이 이걸 흡입하고 노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사극 ' 천추태후'에서는 성종 목종이 오석산을 사용했다.

삼국지 여포전에선 조조가 농도가 짙은 오석산을 몰락한 하씨 가문의 혈족에게 시켜 제조하여 소제에게 먹인다. 문무백관들을 비롯해 정적들을 포함한 이들에게 오석산을 써서 중독되게 만들어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한다. 마약을 이용한 책략을 썼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여포가 회귀하여 군웅으로 군림하는 이야기니 삼국지 정사의 사실과는 다르다.

와룡: 폴른 다이너스티에서는 다음 사망 시 사기 랭크 저하를 막아주는 소모품으로 등장한다. "수십 년에 걸쳐 계속 마시면 불로불사가 될 수 있다고 여겨졌지만, 대부분은 그 효과를 얻을 만큼 오래 살지 못했다."는 설명문이 압권.나가

5. 기타

북한에는 오석산 화강석 광산이 존재한다. 물론 멀쩡한 광산이고 애초에 이 오석산(烏石山)은 용강군에 있는 산의 이름일 뿐 위의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의외로 독일에도 알려진 마약이다. 독일인 알렉산더 쿠퍼의 저서 '신의 독약' 죽림칠현이 즐긴 마약이라고 언급되는데, 번역자가 한시 파우더라고 번역했다. 아마도 오석산의 다른 이름인 한식산(寒食散)에서 '산(散)' 부분만 독일어에서 영어로 중역된 듯하다.

문서에 안 나온 내용들이 궁금하다면 이 글을 참고하면 좋다.
[1] 석회동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지형지물이기도 하다. [2] 이 계관석은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두루미의 벼슬을 뜻하는 학정홍(鶴頂紅)이라는 별칭이 있다. 무협물에서 지겹도록 공작담과 함께 나타나는 그것이다. [3] 그러나 한대라고는 해도 삼국시대 초~중기까지 활약했던 인물이다. [4] 그러나 당나라 때부터 마약이라는 인식이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암암리에는 이름을 바꾸어 여전히 처방되었다는 의견이 있으며 # 비공식적으로 명나라까지도 이어졌다고 한다. 명 4대 암군으로도 꼽히는 가정제가 먹었다던 단약들 중에 오석산이 있다는 설이 있다. # [5] 까마귀 부리가 아니라 그러한 이름의 식물을 뜻한다는 해석도 있다. [6] 이후 상앙, 상홍양이 나라를 망친 고사와 비교하여 그러지 말기를 당부함. [7] 볶거나 찌는 등의 가공을 통해 독성을 최대한 제거하고 약성을 높이는 작업 [8] 당시에는 오석산이 비싸서 아무나 입수할 수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오석산을 복용할 경제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멀쩡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이들을 따라해 헐렁한 옷을 입고 산을 다니며 마치 오석산을 복용한 척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렇게 독약을 먹지 않고 운동까지 병행한 이들이 진짜 오석산을 복용한 부유층에 비해서 훨씬 건강하고 바람직한 생활을 했다는 사실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9] 반대로 어쩌면 이러한 '가짜 복용자'들이 오석산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에도 국회의원이나 재벌 총수 같은 정재계의 최고위직 인물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감안하면 옛날에도 문벌귀족들이 오석산 먹고 탈이 나든 말든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도 한정되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나 오석산 먹고 탈이 났소' 라고 말하기엔 그게 원인인 줄 모르니 말할 수도 없고 체면상 말할 리도 없으니 그 위험성이 쉬이 전해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10] 오석산을 즐기는 당시의 귀족들은 몸의 이를 잡으며 담론하는 것을 풍류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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