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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리 허프

오브리 허프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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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0샌프우승로고.png 파일:2012샌프우승로고.png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2010 2012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지명타자 부문 실버 슬러거
데이비드 오티즈
( 보스턴 레드삭스)
오브리 허프
( 볼티모어 오리올스)
애덤 린드
( 토론토 블루제이스)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등번호 21번
버바 트레멀
(1998~2000)
오브리 허프
(2000)
조시 펠프스
(2005)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등번호 19번
케빈 스토커
(1998~2000)
오브리 허프
(2001~2006)
스캇 카즈미어
(2006~2009)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번호 9번
움베르토 퀸테로
(2005)
오브리 허프
(2006)
헌터 펜스
(2007~2011)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번호 19번
제프 코나인
(2006)
오브리 허프
(2007~2008)
알렉스 신트론
(2008)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번호 17번
코리 패터슨
(2006~2007)
오브리 허프
(2008~2009)
브라이언 매터즈
(2010~2016)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번호 19번
제프 라리시
(2008~2009)
오브리 허프
(2009)
제프 라리시
(2010)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17번
론 워터스
(2007~2009)
오브리 허프
(2010~2012)
론 워터스
(2013)
}}} ||
파일:Aubrey Huff.jpg
오브리 허프
Aubrey Huff
본명 오브리 루이스 허프 3세
Aubrey Lewis Huff III
출생 1976년 12월 20일 ([age(1976-12-20)]세)
오하이오 주 매리언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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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학력 브루어 고등학교 - 버논 칼리지 - 마이애미 대학교
신체 193cm / 102kg
포지션 1루수, 3루수, 좌익수, 우익수, 지명타자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8년 드래프트 5라운드 (전체 162번, TBD)
소속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2000~2006)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6)
볼티모어 오리올스 (2007~2009)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09)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10~2012)
기록 사이클링 히트 (2007.6.29)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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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야구 선수.

2. 선수 경력

2.1. 메이저 데뷔 이전

오하이오주 매리언 출신이나 텍사스 주 미네랄 웰스에서 성장했고, 브루어 고교를 졸업하고 버논 칼리지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만 해도 농구에서 더 두각을 나타냈지만, 대학 진학 이후 야구 재능을 만개하기 시작하며 2년 뒤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 대학교로 전학갔고, 3학년때 4할대 타율과 7할대 장타율로 NCAA를 폭격하며 베이스볼 아메리카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선정하는 올 아메리칸 팀에 이름을 올리는 등 주목받는 유망주로 발돋움했다. 이어 졸업시즌에도 4할 타율을 기록했고, 이러한 활약으로 2009년 마이애미 대학교 스포츠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1998년 드래프트에 나와 예상보다는 낮은 5라운드 전체 162순위에 신생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에 지명되었고, 계약을 완료하며 마이너리그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첫 해 싱글A, 이듬해 더블A에서 연속으로 9할대 OPS를 기록하더니, 2000년에는 트리플A에서도 OPS .960으로 자신에게 마이너는 좁다는 것을 실력으로 입증했다.

2.2.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결국 2000년 8월, 빅 리그로 콜업되어 본격적인 메이저리거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콜업 직후부터 팀에서 차기 주전 3루수감으로 허프를 푸시해준 덕에 남은 두 달간 거의 주전으로 뛸 수 있었고, 39경기에서 .287/.318/.443 4홈런으로 루키 치고 나쁘지 않은 스탯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1년에는 3루와 1루, 나중에는 지명타자를 겸임하는 가운데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으며 111경기 .248/.288/.372 8홈런의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했다. 아직 메이저리그 수준의 공에 적응이 덜 된건지 23볼넷 72삼진이라는 극악의 볼삼비를 보여줬고, 이게 허프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3년차를 맞이한 2002년, 드디어 포텐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시즌 초반 광대뼈 부상에다가 지난 시즌 부진의 여파로 마이너 생활을 하다가 5월 28일이 되어서야 빅리그로 콜업되었는데, 지난해처럼 1루, 3루, 지명타자를 오가는 와중에도 훨씬 발전한 컨택 능력에 가지고 있던 장타 포텐까지 보여주며 맹타를 휘둘렀다. 7월 들어 페이스 저하와 4번타자 자리에 대한 부담감으로 다소 페이스가 떨어지기도 했으나, 7월 말부터 3번타자로 자리를 옮긴 뒤 다시 살아나더니 9월에는 4번타자로도 꾸준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 해 113경기에서 .313/.364/.520 23홈런 bWAR 2.7 fWAR 2.0으로 만 25세의 나이에 데블레이스 타선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지만 홈런, 타율, 출루율, 장타율 모두 팀 내 1위였으며, 당연히 OPS도 팀 내 1위.

그리고 2003년에는 이런 좋은 기세를 이어가며 한층 더 발전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1루와 3루를 트래비스 리, 데이미언 롤스, 제러드 샌드버그 등에게 내주고 5월부터는 빅 리그에서 처음 뛰는 우익수 자리로 옮겼지만, 4월에 어느정도 예열을 하더니 5월부터 본격적으로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 체력이 다소 처진 7월 말~8월 초를 제외하면 꾸준한 활약으로 명실상부 팀의 핵심 타자이자 주전 우익수로 맹활약했다. 이 해 성적은 162경기 전경기를 출전하며 .311/.367/.552 34홈런 107타점 bWAR 4.0 fWAR 3.1 OPS+ 145로, 아메리칸 리그 타율 9위, 홈런 9위, 타점 8위, OPS+ 7위에 랭크되는 등 타격면에서 첫 번째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2루타도 47개로 리그 전체 3위에 올랐다. 이러한 활약으로 MVP 투표에서도 아주 조금이나마 표를 받았을 정도. 다만 우익수 수비는 영 좋지 않아 외야수임에도 6실책을 기록해 아메리칸 리그 우익수 가운데 실책이 가장 많았고 이 때문에 우수한 타격성적에 비해 WAR은 생각보다 낮다.

이어진 2004년에도 여전히 좋은 성적이었지만, 2003년의 파괴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나마도 4월 한달간은 OPS가 5할대일 정도로 열심히 삽질하다가, 5월 말부터 점차 페이스를 끌어올려 8월이 되어서야 OPS가 8할대에 진입했다. 그래도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로는 70경기에서 OPS .965를 기록할 정도로 후반기 성적은 좋았다. 시즌 최종 성적은 157경기 .297/.360/.493 29홈런 104타점 bWAR 4.3 fWAR 4.5로 타격에서 포텐셜을 터뜨린 2003년보다 WAR은 올라갔는데, 이는 2004년 다시 3루수 위주로 출전하면서 수비에서 꽤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 이 시절 허프를 묘사한 최훈의 MLB 카툰

하지만 계속된 포지션 이동의 영향인지, 상대 팀들에게 분석당한건지, 타격에서의 하락세는 조금씩 보였고, 결국 2005년에는 .261/.321/.428 22홈런 92타점으로 2001년 이후 커리어 로우를 찍고 말았다. bWAR은 0.9, fWAR은 0.2에 그쳤다. 다시 우익수 위주로 출전하면서 수비 지표까지 하락한 탓에 WAR도 그대로 수직 낙하했다. 더구나 2005년 데블레이스는 칼 크로포드, 호르헤 칸투, 자니 곰스 등 재능있는 영건들이 타격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던 시기라 허프의 부진은 더욱 뼈아팠고, 허프 본인의 입지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

그나마 2006년에는 중간에 DL에 한번 다녀왔지만 3루수 복귀 이후 타격에서 그래도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나 크로포드를 제외한 유망주들이 한꺼번에 몰락해버려 허프의 중요도는 더욱 높았다. 하지만 이 해를 끝으로 FA 자격을 얻는 허프를 스몰마켓 데블레이스가 잡을리가 만무했고, 시즌 중반부터 트레이드 물망에 오르게 되었다.

2.3. 휴스턴 애스트로스

결국 2006년 7월 12일,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되며 정들었던 데블레이스를 떠나게 되었다. 이 때 반대급부로 데블레이스로 투수와 타자가 각각 한 명씩 이적했는데 투수는 미치 탈보트, 그리고 타자가 다름아닌 벤 조브리스트였다는 점에서 심히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트레이드. 트레이드 이후 3루수로 나오다가 주전 3루수 모건 엔스버그가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우익수로 이동했다. 트레이드 이후로도 탬파베이 시절과 비슷한 페이스를 보여주며 시즌을 잘 마감했지만, 애스트로스는 82승에 그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트레이드의 승자는 데블레이스가 되었다.[1] 이 시즌 최종 성적은 131경기 .267/.344/.469 21홈런 66타점. 그리고 시즌 종료 후 FA 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2.4. 볼티모어 오리올스

2007년 1월 3일, 3년 20M의 계약조건으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했다. 이미 닉 마케이키스라는 포텐셜 짱짱한 유망주가 있어 우익수를 볼 가능성은 낮았고, 케빈 밀라가 다소 나이가 들어가기 시작한 1루나 멜빈 모라가 노쇠한 3루가 가장 유력했다. 그리고 실제로 밀라를 DH로 보내고 주전 1루수로 출발하긴 했는데, 정작 밀라보다 수비도 타격도 안되면서 5월 말에 지명타자 자리로 쫓겨났다. 이후 중간에 3루 알바도 보는 등 열심히 삽질만 하다가 8월부터 갑자기 맹타를 휘두르며 두 달간 OPS가 1을 넘기는 대활약을 했다. 물론 볼티의 포스트시즌은 저 멀리 날아간지 오래였지만. 시즌 최종 성적은 151경기 .280/.337/.442 15홈런 72타점 bWAR 0.3 fWAR 0.8로 아쉬움을 짙게 남겼다. 더구나 남은 2년간 16M을 몰아받을 예정이라 돈값을 하려면 반등이 절실한 상황.

오프시즌 절치부심하여 2008년에는 시작부터 거의 고정 지명타자로 나섰고, 4월 한달간 8할대 OPS로 무난하게 출발했다. 그러다 5월 들어 나시 페이스가 처지는 듯 했으나, 6월 10일 보스턴전 4안타를 기점으로 폭발하기 시작, 6월 남은 17경기에서 OPS 1.186에 5홈런을 기록하더니, 7월에는 첫 주에 3홈런을 몰아치며 이 주의 선수로 선정되는 등, 한달간 7홈런에 OPS 1.130을 기록하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8월까지 포스는 말 그대로 무적. 9월들어 페이스가 다시 떨어지긴 했지만 거의 커리어하이에 준하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최종 성적은 154경기 .304/.360/.552 32홈런 108타점 bWAR 4.1 fWAR 4.0으로 아메리칸 리그 타율 10위, 홈런 8위, 타점 6위 등 순위권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활약으로 닉 마카키스를 제치고 볼티모어 현지 필진이 뽑은 오리올스 올해의 선수로 뽑히고, 지명타자 부문 실버 슬러거를 수상하고 최고의 지명타자에게 주어지는 에드가 마르티네즈 상을 수상하는 등, 수상의 측면에서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2009년, 밀라의 이적으로 1루로 돌아가서 다시 부진한 성적을 내며 2008년의 활약을 무색케 했다. 특히나 장타력이 심히 떨어졌는데, 오히려 장타력을 향상시킨 브라이언 로버츠보다도 홈런을 못 때려냈을 정도. 여기에 계약 만료가 코앞으로 다가온지라 볼티모어는 허프의 트레이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2.5.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09년 8월 17일, 웨이버 트레이드를 통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 이적했다. 반대급부는 마이너리그 투수 브렛 제이콥슨. 트레이드 이후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으나, 부진한 모습을 보여준 탓에 9월부터는 마커스 테임즈와 플래툰으로 나섰다. 그리고 2006년과 마찬가지로 디트로이트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FA 자격을 획득했다. 2009년 최종 성적은 150경기 .241/.310/.384 15홈런 85타점으로 2001년 다음가는 수준의 커리어 로우였다.

2.6.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렇게 하락세를 겪던 허프를 영입한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였다. 2010년 1월 13일, 1년 3M의 저렴한 단기계약으로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계약 기간이나 규모에서 보듯이 자이언츠 입장에서도 복권 긁는 느낌의 계약이었지만, 허프가 볼 수 있는 1루와 코너 외야 자리가 비교적 헐거웠던 자이언츠 입장에서는 터져준다면 그야말로 대박이긴 했다. 그런데, 진짜로 대박이 터졌다.

4월 한달간 주전 1루수로 나서며 그냥저냥 하다가 5월 한달간 9할대 OPS로 페이스를 크게 끌어올렸고, 5월 말부터는 잠시 버스터 포지에게 1루 자리를 주며 좌익수 알바를 뛰면서도 좋은 타격감을 유지했다. 이에 브루스 보치 감독은 허프를 그대로 코너 외야에서 기용하며 트래비스 이시카와를 1루에 기용했고, 그렇게 7월 한달간 OPS 1.155에 8홈런을 기록하며 그 기대에 부응했다. 8월부터 다시 1루로 돌아간 뒤에는 페이스가 다소 처지긴 했지만, 2010년 자이언츠 최고의 타자임을 부정할 수 없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157경기 .290/.385/.506 26홈런 86타점 bWAR 5.7 fWAR 5.7로, 선구안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며 생산성이 크게 늘었고 수비도 꽤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커리어 하이 WAR을 기록했다.

그리고 자이언츠가 서부지구 1위에 오르며 데뷔 11년차에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생애 첫 포스트시즌에서 페이스가 그렇게 좋은건 아니었지만, NLDS 3차전에서 1:2로 뒤진 9회초 2사 1, 2루의 중요한 상황에 마이크 던을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때려내며 팀의 승리와 NLCS 진출에 기여했다. 그리고 월드 시리즈에서는 드디어 몸이 풀리며 4차전에서 토미 헌터를 상대로 결승 투런포를 때려내는 등 OPS .957의 좋은 활약을 보여줬고, 자이언츠가 월드 시리즈를 우승하며 생애 첫 포스트시즌에서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2년 22M에 1년 10M 클럽 옵션까지 포함된 연장 계약을 맺었지만, 냉정히 말해 이 2년간의 활약은 먹튀나 다름없었다. 주전 1루수로 낙점되어 풀타임을 뛰었지만 157경기에서 .246/.306/.370 12홈런이라는 실망스러운 성적만 남겼고, 결국 2012년에는 브랜든 벨트 브렛 필에게 완전히 밀려 왼손 대타요원으로만 나서게 되었다. 2012년에는 52경기에서 .192/.326/.282 1홈런을 기록했고,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포함되어 다시 한 번 우승반지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자이언츠는 허프의 옵션을 실행하지 않았고, 현역 연장을 위해 새 팀을 구하고자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결국 2014년 1월 4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평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의 암흑기 시절을 묵묵히 지탱한 4번타자로, 팀의 4번타자임에도 필요에 따라 포지션을 변경하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해 벤 조브리스트의 선배격으로 평가되는 선수다. 이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는 실버 슬러거를 수상하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는 늦은 나이에 첫 포스트시즌과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는 등 굴곡진 커리어를 보낸 선수.

4. 논란

그의 SNS 하이라이트

선수 은퇴 후 SNS를 하는데 발언수위가 워낙 높은편이다보니 커트 실링처럼 논란이 크게 붙는 편이다.

일단 허프는 기본적으로 골수 공화당 지지자에 도널드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로 알려졌는데, 버니 샌더스가 집권하면 아이에게 총기 훈련을 가르치겠다며 총기 사진을 올린 일을 비롯해서, 2020년 1월에는 트럼프의 이란 공습과 관련해서 "이란을 침공하고, 여자들을 데려와야 한다. 우리는 각각 10명의 이란 여성들을 납치해 성노예화해야 한다"라는 발언으로 미 전역에 충격을 줬다. 논란이 커지자 농담이었다며 꼬리를 내렸지만 이때 언론에서 前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으로 보도한지라 구단측이 곤혹스러워 했다고 한다.

2020 시즌을 앞두고 선임된 팀 역사상 최초의 여성 코치인 앨리사 나켄과 관련해서도 차별적인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허프는 "여자 소프트볼 선수 출신의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소프트볼 출신 여자가 무슨 도움이 되나, 라커룸에 여자가 있으면 T팬티를 못 입는다"며 구단을 비난하고, 팀 동료였던 버스터 포지, 브랜든 벨트, 브랜든 크로포드를 언급하며 "잘들 놀아라"라며 함께 했던 동료들마저 조롱했다. 그렇다고 나켄 코치가 무슨 낙하산 인사도 아닌게, 나켄 코치는 2014년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현장직으로 근무하며 선수단 관리, 선수 트레이드, 유망주 드래프트, 국제 유망주 스카우트 등 다방면에서 경험을 쌓은 인물로, 파르한 자이디 사장과 게이브 캐플러 감독이 한 달 이상 면접을 진행하고 여러 차례 논의를 거치는 등 신중을 기해 채용한 인재다. 그런 인물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근거없이 비하하고 구단과 동료들까지 조롱한 것. 결국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은 2020년 8월에 예정된 2010 월드 시리즈 우승 행사에 그를 초청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을 들은 허프는 충격적이고 실망스럽다는 발언과 함께 "5초짜리 햇 팁(모자 끝을 만지며 인사하는 행위)을 위해 내 의견을 바꿀 생각은 없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지금의 축하연은 열지도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정치적 올바름과 진보적인 성향을 유지하고 싶은 거라면 그렇게 하라"는 말로 대응했다.

도널드 트럼프 지지라는 점에서 알수있듯이 코로나 당시 마스크를 쓰지말고, 백신도 맞지 말아야 주장했던 안티백서였는데 본인은 안티백서가 아니라 백신을 맞아야한다고 주장하는걸 반대하는 입장이라곤 하지만 그리고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에 대해서도 좋게 이야기했다가. 당연히 그 영향으로 트위터 계정 영구정지를 먹었다. 이후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사면서 정지는 해제되었다.

2023 시즌 후에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게이브 캐플러 감독 경질 후 새 감독을 찾는 가운데 앨리사 나켄이 감독 면접을 봤다는 소식이 나오자 역시나 이를 비꼬는 트윗을 올렸다.

물론 2023시즌 연말에 Rachel Wilson과 Isabella DeLuca 두 여성 인플루언서의 SNS 싸움중 Deluca를 디스했다가[2] Isabella DeLuca가 허프가 DM으로 찝적거렸던걸 그대로 올리면서 두아들의 아빠가 이래도 되냐?이라고 역저격을 맞은뒤 바로 트위터 계정을 지운적이 있었다. 물론 다시 복귀하면서 아이들과 휴가 갔다왔음 이러면서 면피를 했다.

5. 여담

  • 2010년 결혼을 했다가 2012년에 이혼소송을 시작으로 결국 2017년에 이혼을 했다. 부인과 가진 두 아들의 양육권은 허프가 가지고있다. 다만 SNS에서 보여지는 가정법원 디스[3]나 여자들을 디스하는걸로 봐선 이 이혼이 위의 SNS 행적의 트리거가 된거 아니냐라는 추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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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고 허프가 떠난 3루 자리는 2007년 이와무라 아키노리를 비롯한 여러 선수들이 메우다가, 2008년부터는 에반 롱고리아가 부동의 주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 원문은 this cat fight between the two women is proof that "sexuality" is all women like DeLuca bring to the table, complete with a desperate need for attention, crippling debt, drama, delusional self-worth, and a complete lack of accountability. [3] 대표적으로 남자 스포츠 선수들의 이혼율은 사법제도가 바뀌기 전까지 계속 높아질것이라 디스한점 원문은 Divorce rates amongst athletes will continue to rise until the justice system is rightfully fix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