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JGP 슬로바키아 은메달, 2003 JGP 일본에서 동메달을 따며 파이널에 진출했다.
2003-04 JGP 파이널에서는 8위를 기록했다. 2003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 은메달, 2003 전일본선수권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2004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11위를 기록했다.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2005 전일본선수권에 출전해야 했다. 당시 일본 남자 싱글 올림픽 출전권이 1장 뿐이어서 무조건 우승을 해야 출전이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경기를 끝냈을 때는 오다의 점수가 가장 높아 우승자로 발표되었고
시상식까지 마쳤다. 그런데 시상식 직후 오다가 프리에서 자약룰을 어기고 같은 점프를 3번을 뛰었는데도 세 번째 점프가 무효 처리되지 않은 것이 발견되었다. 이에 따라 점수를 정정한 결과 순위가 뒤바뀌어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1위, 오다가 2위가 되었다. 결국 2005 전일본선수권 우승과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출전권은 다카하시에게 돌아갔고 오다에게는
2006 세계선수권 출전권만이 주어졌다.
2007년
8월 2일, 일본 빙상연맹은 10월까지 오다를 국제대회, 국내대회, 아이스 쇼에 출전을 금지시켰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2007 스케이트 캐나다와
2007 트로피 에릭 봉파르를 기권했다. 또한 징계가 끝난 이후 오다가 2007 전일본선수권에 출전해
2008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따내는 대신,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오다는 연맹에서 내린 징계를 받아들였고 10만 엔(한화 약 113만원)의 벌금을 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시즌을 스킵하였다.
2009 트로피 에릭 봉파르와
2009 컵 오브 차이나에서 모두 우승을 하며 파이널에 진출했다. 자국에서 열린
2009-10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한편 파이널이 끝나고 갈라쇼에서 장내 아나운서가 오다를 이런 식으로 소개했다. "4년 전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고 밤새 울었던 선수가 이제 그랑프리 파이널 은메달을 따서 당당히 출전권을 땄다."[3]
2009 전일본선수권
2009 전일본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따며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 프로그램에서 84.85점으로 4위를 기록했다. 1~3위가 모두 90.xx점이라 프리 스케이팅 성적이 좋으면 메달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19일 프리 스케이팅에서 트리플 룹을 시도하다 넘어졌는데 이때 오른쪽 스케이트 화의 끈이 끊어져 시합 중단을 요청했다. 이렇게 되면 벌칙으로 2점 감점을 받는데, 이 때문에 최종 7위로 밀려났다.
아까운 실패를 만회할 좋은 기회가
2010 세계선수권이였지만 올림픽의 실수로 인해 멘탈이 무너져 버렸는지 쇼트에서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캐삽질을 하며 모든 점프를 싱글로 처리하며 28위로 프리 스케이팅 진출에 실패하였다. 이 결과 그 자리에서 팬들이 드러누웠다. 본인은 연습 때 실패한 점프가 신경이 쓰였다라고 해명하였다. 이와 달리
다카하시 다이스케의 경우 컨디션이
일본 선수들 중 가장 안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1위를 유지해 우승했다. 응?
2023 전일본선수권 출전을 목표로 1차 지역예선인 간사이 지역예선에서 2위를 하며 2차 지역예선에 진출했다. 서일본선수권 쇼트에서는 트리플 러츠에서 중심이 쏠려 컴비네이션 점프를 연결하지 못했고, 마지막 플립 점프를 더블링하며 넘어졌다. 비점프 요소에서도 레벨을 놓치는 실수가 다수 나와 61.30점을 기록했다. 프리에서는 쿼드러플 토룹+트리플 토룹, 단독 쿼드러플 토룹을 모두 성공시키며 프리 155.45점, 총점 216.75점으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정작 경기 출전에 필요한 복귀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 밝혀지며 전일본선수권 출전이 무산되었다. 은퇴 선수가 복귀하기 위해서는 JADA 측에 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6개월 간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도핑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데 오다는 이를 제때 이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상적인 현역 복귀는 2024년 1월 19일부터나 가능하다. 차라리 자약룰을 어겨라…
또한 자약룰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보았다. 멀쩡히 점프를 다 뛰어놓고도 똑같은 점프를 여러 번 뛰는 바람에 뒤쪽에 뛴 점프는 0점으로 처리가 되어 점수를 말아먹는 사태가 빈번하다. 본인 말로는 연기를 하다보면 전에 뛴 점프가 어떤 점프였는지, 앞으로 뛸 점프가 어떤 점프인지 헷갈리는 바람에 일어난 실수라고는 하는데 그게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애아범 잘하자 그래서 위와 같은 짤방까지 나왔다.[5]
동안이다. 2009년에 22세였는데도 불구하고 어리다는 소리를 들었다.[6] 남자 싱글 팬들 대부분이 노부나리가 어려 보인다는 거에 동의한다고 한다. 같은 일본인인
다카하시 다이스케와 비교해보아도 거의 같은 연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다카하시가 딱히 노안인 것도 아니고 그냥 제 나이로 보이는 것인데도 그렇다.
잘 운다. 거의
카이지 수준이다. 저때 운 것으로 길이길이 피겨계의 놀림감이 되었다.
장훈은 오다의 모습을 보고 "떽!" 하고 일갈했다.
2010년
4월,
중학교 시절의
동급생과
결혼을 발표하였다.
신부가 되는 쪽은 이미
임신 4개월이였다. 모로조프 가 인터뷰 도중 오다가 결혼 전 "여자친구가 임신했대요. 어쩌죠?" 라는 말을 했다는 코멘트 를 남긴 적이 있다.[7] 득남 이후 한국 팬들 사이에서 실수를 한 번씩 할 때마다 '애아범 잘해', '분유값 벌어야지' 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일본에선
아이유의 백댄서 중 아이유 상대역을 자주 하는 사람을 노부나리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해당 인물이 등장하는 동영상이 니코니코 동화에 올라오면 "노부나리ww"라는 코멘트가 반드시 달렸다.
본인은 한때
오다 노부나가의 후손이라는 이미지가 피겨 스케이터라는 이미지를 덮기 때문에 기분 나빴다고도 했지만 결국은 이래저래 노부나가의 후손이라는 것을 광고 전략에 이용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 혈통의 신뢰도에 대해서 이런저런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 토크쇼에서는 "우리 집에서는[8] 재수 없다고 생각해 도라지꽃을 절대 (장식 등에) 쓰지 않는다" 라고 했었는데 오다 종가에서는 그런 가문 내 전통이 없다고 말해서 더 한층 수상하게 보는 사람이 늘었다. 그리고 인터넷상으로 자주 의혹제기가 된다고 해서 가계 의혹 자체를 낭설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 노부나리의 가계는 어디까지나 자칭이다.[9] 메이지 유신 이후 성공한 실업가였던 노부나리의 증조부가 갑자기 오다 가문과의 혈연을 주장했는데, 신분 증명에 있어 필수적인 에도 시대의 족보나 주민등록[10] 등의 신빙성 있는 자료가 일체 존재하지 않고 본인만 열심히 주장했기 때문. 노부나리의 집안이 주장하는 가계 자체도 중간에 빠진 대가 존재하는 등 상당히 이상하다. 즉,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11][12] 다만 만약 오다 노부나리가 속한 오다 가문이 오와리 오다 가문의 피가 흐르는 집안과의 사이에서 통혼이 이루어져 자식을 얻는다면 그 자식 세대부터는 정통성 문제와 별개로 어쨌든 오와리 오다 가문의 후손이 맞게 되므로 오다 정권 수장직의 비정통 요구자로 인정받을 수는 있다.
[1]
김연아의 자서전에 따르면 2004년 토론토에서 윌슨이 오다에게 마리오 프로그램을 안무해주었는데 오다가 연기할 때엔 다른 선수들이 모두 벽에 붙어 구경할 정도로 재미있었다고 한다. 이때 김연아는 윌슨을 처음 만났다.
[2]
노부나리가 자기 조상이라고 하는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인
아케치 미츠히데의 손에 죽은 것 때문에 이런 낭설이 생긴 듯 하다.
[3]
이 장내 아나운서는 그 대회에서 1위를 한
김연아를 소개할 때도 보통 해외에서 통용되는 이름인 Yuna Kim이 아니라 나름 한국어에 가까운 발음을 시도했었는데 발음이 꼬여 "전하~ 킴" 으로 들리기도 했다. 무엄하다 감히 여왕 폐하가 아니라 전하라니여왕이 아니라 여제다.
[4]
얼마나 엣지가 잘못되었는지 보여주는 반증으로는 한 대회에서 해설자가 오다가 트리플 러츠를 뛰었는데 해설자가 헷갈렸는지 안쪽 날로 뛰는 점프인 플립으로 착각해버렸다.
[5]
짤방 해설: 강의 중인 코치는 니콜라이 모로조프 코치이다. 칠판 위에 액자 중 왼쪽 액자는
아라카와 시즈카이며, 오다를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는 남자 선수는 코즈카 다카히코, 뒤쪽에 있는 여자 선수는
안도 미키, 안도 미키 옆에 분홍색 옷을 입은 선수는
스구리 후미에, 왼쪽에 있는 여자 선수는
아사다 마오, 문틈으로 몰래 쳐다보는 선수는
다카하시 다이스케(왜 문틈으로 몰래인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자약룰에 따르면 같은 점프를 뛸 수 있는 것은 2종류 2번씩 뿐이므로 이미 앞에서 3A, 3T를 2번씩 뛰었기 때문에 이 점프들은 더 이상 뛰면 안 된다. 또한 자약룰에는 트리플 이상의 점프는 한 개는 무조건 컴비네이션으로 뛰어야 하는 규정이있고 만약 2 개 모두 싱글 점프로 뛸 경우에는 뒷점프를 시퀀스로 처리해 컴비네이션으로 인정하고 80%의 점수만 받게 하는 규정이 있다. 그리고 프리 프로그램에서의 컴비네이션 점프는 최대 3개다. 그런데 이미 4T+3T와 3S+3T, 3A+SEQ를 이미 뛰었으므로 컴비네이션 점프 모두를 뛴 셈이다. 그런데 오다는 천연덕스럽게 3A+3T를 뛴다고 하고 거기에 3Lo까지 붙이겠다고 하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뛰면 점수는 0점으로 처리된다. 거기다가 원래 계획에 따라 나중에 뛸 3Lo조차 뛸 수 없게 되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게 된다. 참고로
아사다 마오의 말풍선에는 3F이 아니라 '...'이 쓰여 있었는데, 수정된 것으로 보인다.
[6]
이 말을 한
예브게니 플루셴코는 당시 27세였고, 그 시절 남자 싱글 선수들 중 어려보이지 않은 선수는 없었다.
[7]
모로조프의 말로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2010 세계선수권 쇼트의 싱글 어게인 사태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한다.
[8]
혼노지의 변을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한
아케치 미츠히데의 문장이 하늘색 도라지꽃이기 때문이다.
[9]
구한말에 한국의 평민들이 특정 양반 가문의 일원을 자칭하여 해당 가문의 성씨를 쓴 사례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10]
일본에서 혈통을 인정받기 위한 자료는 상당히 까다로운 편인데, 주로 에도 시대에 신분제 유동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여러 족보와 마을별 주민등록 등의 자료를 증거로 요구한다.
[11]
자칭이 아닌 진짜 오다 노부나가의 후손으로는 현 오다 가문 당주
오다 노부타카, 노부나가의 7남 노부타카(信高, 3남
노부타카(信孝)와는 다른 인물)의 후손인
쇼와 시대의 석판화가 오다 카즈마(織田一磨) 정도가 알려져 있다.
[12]
사실 한국과 중국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구한말에는 양반 가문을 자칭하거나 아예 정식으로 양반 가문의 족보를 사는 식으로 양반 가문의 성을 쓰는 평민들이 대거 생겨났으며,
청나라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출세를 위해 만주족을 사칭하거나 아예 정식으로는 만주족 가문에 양자로 들어가는 한족들이 늘어나 이들이 현대 만주족의 조상군에 포함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