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01:32:40

오귀스트 피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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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업적
3. 기타

1. 개요

오귀스트 앙투안 피카르(Auguste Antoine Piccard, 1884년 1월 28일 ~ 1962년 3월 24일)는 스위스 태생의 물리학자이자 발명가, 탐험가이다.

2. 생애

피카르는 스위스 바젤에서 장 피카르와 쌍둥이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피카르는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에서 공부하여 1922년 벨기에 브뤼셀 브뤼셀 자유대학교 물리학과 교수가 되었다. 같은 해 아들 자크 피카르가 태어났다. 피카르는 1922년, 1924년, 1927년, 1930년, 1933년 솔베이 회의에 참석했다.

2.1. 업적

1920년에 피카르는 기구에 관심을 가지고, 상층 대기를 기구를 이용해 탐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피카르는 여압복을 입지 않고 대기 상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가볍고 튼튼한 알루미늄을 재료로 삼아 밀폐된 구형 곤돌라를 설계했다. 피카르는 솔베이 회의에서 만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상층 대기에서 우주선을 측정하려고 했다. 피카르는 자신이 설계한 기구를 FNRS 1호라고 명명했다.

1931년 5월 27일, 오귀스트 피카르와 파울 카이퍼(Paul Kipfer)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이륙하여 성층원 고도인 15,785m까지 상승했다. 이때 피카르는 우주선을 측정할 뿐만 아니라 초고층 대기에 대한 여러 가지 새로운 정보를 수집했다. 1932년 8월 18일에 피카르는 스위스 뒤벤도르프에서 조수 맥스 코신스(Max Cosyns)와 함께 두 번째로 이륙하여 16,200m 고도까지 상승함으로써 자신들이 세운 기록을 경신했다.

1930년대 중반, 오귀스트 피카르는 자신이 고고도 기구용으로 설계한 기밀 기술이 심해 환경에서도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1937년에 피카르는 엄청난 외부 압력에 견딜 수 있는 초심해 잠수정 바티스카프를 설계했으나, 얼마 후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실물을 제작하지는 못했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48년 피카르는 바티스카프 FNRS 2호를 제작하여 여러 번 무인 잠수 실험을 했다. 이 잠수정은 프랑스 해군에 넘어갔다. 프랑스 해군으로 넘어간 FNRS 2호는 1954년에 개수되어 4,176m 깊이까지 안전하게 잠수했다가 바다 위로 떠올랐다.

1953년, 피카르는 아들 자크 피카르와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깊은 심해저로 잠수한 바티스카프 트리에스테를 설계했다. 트리에스테는 1959년 10월에 자크 피카르를 태우고 마리아나 해구 챌린저 해연 10,911m 깊이까지 잠수했다. 이 기록은 2019년까지 깨지지 않았다.

생애의 대부분을 파란만장한 모험과 실험에 바친 오귀스트 피카르는 1962년, 벨기에에서 향년 73세로 사망했다.

3. 기타

에르제의 만화 땡땡의 모험에 등장하는 해바라기 박사가 오귀스트 피카르를 모델로 삼아 만들어진 캐릭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