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12:09:28

영원(THE SAN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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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0> 영원
Endless
파일:영원 일족.jpg
공식 일러스트

1. 개요2. 특징
2.1. 신이나 화신과의 차이점2.2. 권능과 위상
3.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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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작가 닐 게이먼이 연재했던 DC 코믹스의 명작 만화 THE SANDMAN에 등장한 우주적 존재들. 위쪽 가운데(12시 방향)부터 시계방향으로 꿈, 파괴, 욕망, 분열, 절망, 죽음, 운명.

신들보다 강력한 존재로 묘사되는 일곱 개념 그 자체이자 인간의 관점에서 의인화로 보이는 우주적 존재다.[1] 이 일곱은 남매이며 모두 D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졌다. 그중 주인공은 꿈(Dream)이다.

2. 특징

샌드맨 : 서곡의 내용에 따르면 영원 일족은 아버지 시간[2]과 어머니 [3]으로부터 태어났다.

시원(始原)의 순간부터 존재했으며 다른 측면으로 변할 수는 있으나 본질적으로 이 우주의 종말이 올 때까지 존속할 우주적 존재로 본인들이 담당하는 개념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해당 개념이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존속한다. 즉, 생명체가 일생을 살고 죽는 것의 '죽는 것'과 무언가를 '꿈꾸는 것'은 영원 남매 중 죽음이나 꿈과 별개가 아니라는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운명이 가장 먼저 태어났고 최후에는 죽음이 모든 것의 막을 내릴 것이다. 영원 일족의 일곱은 상황에 따라 변질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들이다. 불가피한 이유로 죽는다 해도, 이들은 곧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세상에 나타난다. [4] 어떻게 보면 그 지위는 불멸이지만 전혀 다른 존재로 완전히 교체되기도 하는 프레젠스보다 생명력이 질기다.[5] 하지만 파괴는 영원이라 불리는 자신들조차도 한시적이고 예속된 존재라며, 이 우주의 종말이 온다면 (죽음을 제외한) 영원 일족조차 사라진다고 했다. 그러므로 아주 제한적인 상황이 오지 않는 한은 영원 일족이 프레젠스보다도 장수할 일은 없다.

파괴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영원은 "그저 패턴이자 사상이며 파동함수요 되풀이되는 영감이다. 그리고 어둠의 메아리" 같은 존재다. 영원의 불멸성과 실체를 설명하는 말인데, 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장례전야에서 카인과 아벨, 에블리스 오쇼네시(Eblis O'Shaughnessy)[6], 루시안의 대화를 통해 잘 드러난다.
에블리스 오쇼네시: 도서관지기님... 흰 옷을 입은 젊은 전하는... 그분은 누굽니까?
루시안: 영원의 꿈이시지요.
에블리스 오쇼네시 : 그분이...? 하지만 밤샘은? 장례식은요? 영원의 꿈은 더 이상 계시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루시안 : 그래요.
에블리스 오쇼네시 : 그러면... 누가 죽은 겁니까?
카인 : 아무도 죽지 않았지. 개념을 어찌 죽일까? 어떻게 작용의 구체화를 죽이겠나?(Nobody died. How can you kill and idea? How can you kill the personification of action?)[7][8]
에블리스 오쇼네시 : 그렇다면 무엇이 죽었습니까? 당신이 애도하는 상대는 누굽니까?
아벨 : 과, 관점의 문제야.
카인 : 비밀이야! 너 또 비밀을 말했어!
쉽게 말해서 이들은 어떤 개념을 대표하는 신이나 어떤 개념의 화신같은 게 아니라 개념 그 자체다. 그래서 이들이 어떤 원인으로 죽더라도 개념을 비추는 측면이 달라질 뿐이고 본질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대중매체 속 대부분의 불멸자들과는 다르게 영원 일족은 긴 세월을 살며 변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샌드맨: 서곡에서 보이는 수십억 년 전의 영원 일족은 지금의 모습과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운명은 아무런 가시적 변화가 없다. 워낙 드러나는 게 없는 캐릭터인지라, 독자들 시점에서 찾을 수 없는 걸지도 모른다. 단, DC 세계관이 재창조되거나 프레젠스의 말씀이 변경되면 운명의 책은 자동적으로 변한다. 서곡과 본편에서 보여주는 성격의 변화 말고도 조금 더 전격적인 변화도 맞곤 하는데, 절망은 비교적 최근에 한 번 바뀌었다고 하고, 환희 또는 기쁨(Delight)은 아예 광희 또는 분열(Delirium)로 그 존재 자체가 변해버렸다.

어쨌거나 영원 일족은 우주의 시작부터 존재했던 대단한 존재들이지만, 의외로 신화와 전설 속의 신들이 그러하듯 여러 가지 금제에 묶여 있다. 그러나 죽음은 본인이 담당하는 개념 때문에 친족살해 금지 등의 일부 금제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샌드맨 9권 <친절한 그들>에서 묘사되는 내용을 따르면, 다른 구성원들도 죽음처럼 규칙을 마음먹고 어기고자 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특히 친족살해 금지의 규칙을 어겨서 찾아오는 페널티는 상당히 집요하고 성가셔서 무겁지만, 영역내에서 나오지 않고 버틴다면 정신적으로야 어찌됐든 목숨에 치명적이지는 않다. 또한 일족에 속하기를 포기함으로써 이런 금제와 자신의 의무를 벗어던지는 것도 가능한 듯하다.

2.1. 신이나 화신과의 차이점

"그분은 죽음이에요."
"아, 그러니까... 죽음의 여신(Goddess of the death)이라거나, 화신(the Incarnation)이라거나 그런..."
"아니, 그분 자체 죽음이에요. 저분 욕망이고 당신의 연인인 것처럼요."
샌드맨 <영원의 밤>의 챕터 3에서 꿈의 필멸자 연인과 어느 별을 비춰주는 항성이 나누는 대화
영원은 결코 이나 화신이 아니라 개념 그 자체의 구체화이자 해당 개념의 작용이 인간의 관점에서 의인화로 보이는 우주적 존재다.[9][10] 이게 어떤 차이냐면, 신은 기본적으로 신앙에 의해 유지되는 존재다. 그래서 사람들이 믿기를 그만둔다면 신들은 힘을 잃고 사라지게 된다.[11] 하지만 영원은 다르다. 을 꾸거나 무언가를 파괴하고 욕망하고 절망하며 기뻐하거나 미치고, 을 살다가 죽는 인격체들이 존재하는 한, 영원도 그런 모든 만물의 삶과 존재방식 속에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신앙하든 부정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들과 달리 누군가 믿지 않아도 힘을 잃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건 인간에 국한된 게 아니라 해당 개념들이 작용하는 지성체가 존재하는 한 이들은 정상적으로 기능을 수행한다. 이 지성체에는 생물뿐 아니라 사물이나 신적 존재도 포함된다. 영원 일족의 꿈으로 예를 들자면 기계, 도시, 항성, 초지성을 지닌 우주 구름 등도 꿈을 꾼다고 한다. 애니미즘 또는 물건에 자아가 깃들어 요괴 혹은 신령 취급을 받는 도깨비와 비슷한 관점으로 생각하면 기계나 도시, 항성 등이 꿈을 꾼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또한 작중 영원 일족의 욕망은 이렇게 설명했다. 별들은 물리적으로는 지속적인 핵융합으로 타오르며 돌아가는 가스 공일 뿐이지만 엄연히 살아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마음도 활동하며, 때로는 그런 마음이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설령 지구인이 전부 죽고 지구가 소멸하더라도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외계인이나 의지를 지닌 사물, 자아가 깃든 행성이나 신적 존재 등의 다른 지성체가 존재하는 한 꿈은 여전히 기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영원 일족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이며 특히 죽음은 마지막까지 남아서 장남인 운명을 데려가며 세계관의 막을 내리는 역할이다.

참고로 세계관이 끝난다고 영원 일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은 사라지더라도 언젠가는 새로운 버전의 세계관이 다시 태어나거나 창조되면 장남인 운명부터 순서대로 구성원들이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다만 죽음만은 다른 영원들과는 다르게 기존 세계관이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 존재한다.[12]이와 같은 사실들은 샌드맨 7권 <짧은 생애>에 나온 파괴와 분열의 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파괴: "그리고 우리의 존재도 짧고 제한되어 있어. 우리 중 누구도 이 버전의 우주보다 오래 지속되진 않을 거야."

꿈: "그렇겠지."

분열: " 큰언니만 빼고."
샌드맨 7권 <짧은 생애> 中, 파괴와 꿈, 분열이 나눈 대화의 일부
파괴는 영원조차 진짜 영원하지는 않다고 말했으며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도 세계관의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되는 순간 이들도 다시 태어나며 새로운 버전의 세계관이 유지되는 동안 이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개념의 화신과 영원의 차이점은 프랜차이즈 매장과 본점 매장의 차이 같은 것이다. 영원은 자신들이 다스리는 영역 그 자체이자 개념의 작용이 인간의 관점에서 의인화로 비춰지는 존재인 반면, 화신은 신적 존재나 개념의 분신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들은 신앙과 상상이라는 이야기의 영역에서 만들어지기에 영원 일족 구성원 중에 하나인 꿈이 다스리는 영역이 신들의 근원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신들은 잠시 현실을 걷다가 때가 되어 추종자들이 신앙을 잃거나 잊히면 꿈의 영역으로 돌아와 죽는다. 따라서 꿈의 신이나 죽음의 신 또는 화신은 영원 일족의 꿈이나 죽음을 다스리거나 지배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신이나 화신들이 프랜차이즈 매장이고 꿈이나 죽음이라는 개념 그 자체인 영원 일족이 매장 본점인 것이다.

샌드맨 6권 <우화들>의 어느 에피소드에서도 꿈이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에게 계시를 전하는 장면에서 본인 입으로 직접 가이우스에게 이와 관련된 설명을 들려준다. 가이우스가 자신을 태양신 아폴로라고 착각하자 꿈이 자신은 태양신이 아니라고 착각을 부정하며 덧붙이길, "나는 하찮은 로마의 꿈의 신이 아니며, 광기의 신도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이다."(I am no little Roman dream god, no god of rhyme and madness. I am myself.)

마지막으로, 신이나 화신이 영원 일족과 다른 점 중에는 형태의 차이도 있다. 신들은 권능에 의한 변신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인간형이거나 인간의 형상이 아니더라도 명확하게 고정된 본래의 모습이 있다. 그러나 영원은 보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보는 이의 관점에 맞게 모습도 다르게 보인다. 이는 영원의 실체가 추상적인 개념 그 자체이며, 그런 개념이 육체 비슷한 외피를 입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영원은 본래 모습이라는 고정된 인식이나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다.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순전히 이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며, 굳이 특정한 모습을 선택하지 않아도 관측자가 이해할 수 있는 형상으로 보인다. 가령 사람과 고양이가 영원 일족의 꿈을 동시에 마주하면 같은 곳에서 같은 영원을 보았음에도 다르게 보인다. 먼저 사람의 관점으로는 꿈의 인간형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고양이의 관점에서는 꿈이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크고 비범한 고양이로 보인다. 즉, 영원 일족의 의인화는 엄밀히 따지자면 그들이 의인화한 것이 아니다. 의인화된 인간형 모습조차도 어디까지나 인간이 보는 측면에 불과한 것이다. 비슷한 설정인 디스크월드 의인화된 화신체들과 비교해서 설명하자면 이렇다. 먼저 화신체들에게 형태란 것은 정신을 좌우하는 요소다. 반면에 영원에게 형태란 것은 정신이나 본질을 좌우하는 요소가 아니고 보는 이의 관점에 따른 피상적인 일면일 뿐이다.

2.2. 권능과 위상

파일:제압당한 코론존.jpg
"여기는 내 집이다, 아자젤. 내 권좌. 꿈결(The Dreaming)의 심장부. 이곳의 현실은 내 소망에 따른다. 내가 원하는 그대로."
샌드맨 4권 <안개의 계절>에서 꿈이 아자젤을 응징하면서 내뱉은 대사
이렇듯 영원 일족이 지닌 권능과 위상은 멀티버스에 산재한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god)조차 아득히 능가한다.[13] 다만, 영원끼리의 권능과 위상 비교는 슈퍼맨이 배트맨보다 힘이 세다거나 하는 단순한 파워 비교의 차원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그들의 힘은 조금 더 고차원적이고 추상적이다. 각자가 담당하는 영역 내에서의 전능에 가까운 권능과 절대성이 주는 권리, 그리고 위상과 상징성에서 기인하는 권위에 따른 우열이 그들의 힘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법이나 권능을 응용해서 슈퍼 히어로들처럼 알기 쉬운 물리적인 파괴를 저지르는 것도 가능하지만, '알기 쉽게' 보여주는 용도가 아니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영원 일족끼리도 힘의 우열 비슷한 게 있기는 하다. 강함의 순서와 나이의 순서가 일치한다. 즉 운명, 죽음, 꿈, 파괴, 욕망, 절망, 분열(광희) 순. 단, 운명은 항상 "운명대로" 행동할 뿐이기에 다른 일족들과는 달리 힘을 행사하는 묘사가 일절 없다. 그래서 강력한 권능을 가장 많이 보여준 것은 둘째인 죽음이다. 단지 장녀 죽음과 차남 꿈이 영원 일족 중에서도 특히 강력한 것처럼 묘사되기 때문에(실제로 꿈 또한 욕망에게 욕망 스스로가 꿈 본인은 물론, 죽음과 운명에게 대항할 만큼 믿는 거냐'라고 협박을 하자, 이를 들은 욕망은 순순히 아니라고 인정한 바가 있다.) 나머지도 나이 순서대로 강력할 것이라고 유추하는 것이다.

가장 약해야 될 분열이 영원 일족 중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지혜롭다는 운명조차 모르는 것을 알고, 때론 운명보다 지혜롭다는 묘사가 나오는 등 서로가 정의하는 것과 담당하는 영역도 달라서 상황에 따라서는 영원 사이의 우열도 절대적이지 않다. 이래서 영원 일족 사이의 힘과 위상이 드래곤볼의 전투력 같은 단순한 파워 비교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드래곤볼처럼 전투력만 놓고 비교할 경우 프레젠스를 제외하고 DC 세계관 최강자에 해당하는 존재는 창조주(God)의 무한한 의지라는 루시퍼 모닝스타다. 꿈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루시퍼는 이길 수 없다. 그런데, 꿈은 이런 루시퍼를 엿먹이고 그의 본진인 지옥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 유유히 걸어나온 적이 있다.

루시퍼는 그 당시에 승리를 확신하고 이 지옥에서 꿈 따위에 무슨 힘이 있냐고 조롱섞인 위협까지 했었다. 그러나 꿈은 힘이 아닌 자신이 개념으로서 지닌 상징성을 이용하여 재치있게 탈출했다.
"내게 아무 힘이 없다고?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곳에서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다고?"

"말해 보라, 루시퍼 모닝스타. 너희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모두들... 이곳에 갇힌 이들[14]이 천국을 꿈꿀 수 없다면 지옥에 무슨 힘이 있을까?"
루시퍼를 포함한 지옥의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반문한 것이다. 당시의 꿈은 사정상 멸망에 처한 세계관을 구하기 위해 힘을 쓰느라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15][16] 그래서 굳이 루시퍼같은 거물을 제외하더라도 악마들이 물량 공세로 밀면 꿈보다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 말을 듣고서 지옥의 모든 악마들은 꿈을 건드리지 못하고 피했다.

이는 루시퍼와 악마들이 지옥에서 꿈을 죽이거나 위협하는 행동은 스스로 천국의 천사들과 싸울 원동력이자 희망인 자신들의 꿈을 부정하고 짓밟는 짓이기 때문이다. 꿈은 단순한 꿈의 화신이나 꿈의 신이 아니라 꿈이라는 개념이기에 지옥의 악마들이 품은 천국에 대한 꿈도 영원 일족의 꿈과 동일하다. 즉, 꿈은 그들이 품은 희망이다. 그래서 힘이 약해지지 않은 온전한 상태의 꿈을 상대하더라도 지옥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장담할 힘을 지닌 루시퍼조차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지옥을 떠나려는 꿈을 놓아주었다.

또한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꿈이 다스리는 꿈결(The Dreaming)이나 욕망이 다스리는 문지방(Threshold)같은 각자의 영역도 사실상 해당 공간이 그들과 동일한 존재이다.[17] 이게 앞서 언급한 영원이 영역 내에서 전능에 가까운 권능과 절대성이라는 권리를 가진 이유다. 그리고 영원이 신화속의 신이나 화신들과는 다른 점들 중에 하나기도 하다.

예를 들어 북구신화의 오딘이나 천둥의 신 토르의 영역은 아스가르드다. 그러나 이들이 곧 아스가르드는 아니라서 꿈이 아스가르드에 찾아가도 이들이 아스가르드내에서 전능에 가까워지거나 꿈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반면에 꿈은 자신의 영역인 꿈결이 본인의 한 측면이자 동일한 존재이기에 영역내에서 전능에 가깝다. 그래서 아무리 오딘이나 토르가 강한 신이라도 꿈의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들은 왜소한 존재가 된다. 샌드맨 4권 <안개의 계절>에도 암시되는 장면이지만 토르가 권능으로 엄청난 뇌우를 불러도 꿈의 영역내에서는 꿈의 생각과 상상만으로도 간단히 지우거나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18]

영역내에서의 전투가 아니더라도 힘과 위상에서부터 꿈이 이런 신들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패배할 일이 없기는 하다. 그래도 영역 밖이라면 토르가 통하지도 않는 자기 권능을 꿈에게 사용하는 무의미한 발버둥 정도는 가능하다.

반면에 영원의 영역내에 있으면, 힘과 위상이고 뭐고 이전에 해당 영원이 전능에 가까워서 저항의 시도조차 성립될 수 없다. 영원의 영역에서의 현실은 해당 영역을 다스리는 영원의 소망과 생각을 따르기 때문이다. 토르가 꿈의 영역에서 권능을 써봤자 꿈은 토르가 발생시킨 뇌우를 작은 비구름이 되어 토르 머리 위에서만 날뛰게 만들 수도 있다. 사실상 영원에게 저항하려는 무의미한 발버둥의 시도조차 영역내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샌드맨 4권 <안개의 계절>에서는 지옥의 세 군주 중 하나였으며 살아있는 차원같은 존재로 묘사되는 아자젤이라는 최고위 악마조차도 꿈의 영역내에서 꿈을 삼키고 본인의 차원으로 가둬서 흡수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오히려 감금당했다. 아자젤이 꿈을 삼켰으나, 꿈의 생각과 의지만으로 한 순간에 유리병 속에 갇힌 기념품 신세가 된 것이다. 따라서 루시퍼나 프레젠스처럼 힘과 위상이 영원을 압도하거나, 영원이 친족살해 금지라는 규칙을 어겼을 때 권한을 얻고 덤비는 친절한 그들 등의 특수한 예외 사례들을 제외하면 영원은 자기가 담당하는 영역내에서는 어느 누구를 상대로도 전능에 근접한 존재다.[19][20]

그러나 영원의 권능으로도 커버할 수 없는 재앙이 하나 있다. 바로 모든 시대에 한 번씩 일어나는 꿈의 소용돌이 현상이다. 꿈의 소용돌이는 산 자가 잠시 꿈결의 중심이 되어 꿈결에 고칠 수 없는 손상을 입히고 자멸하는데다 이 여파로 우주적 혼란을 일으킨다. 원인불명의 재앙이라서 꿈이 나서도 권능으로 소용돌이만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오직 소용돌이의 중심이 된 생명체를 꿈이 나서서 죽여야만 이 현상을 수습할 수 있다.

그리고 영원끼리도 담당하는 영역내에서는 기존의 우열이 변동될 수 있다. 꿈이 분열의 영역에 들어가면 꿈도 자신의 권능을 쓸 수는 있지만, 분열의 영역이기에 분열의 권능이 우위에 선다. 그 증거로 샌드맨 7권 <짧은 생애>에서는 꿈이 화가 난 분열을 달래고자 그녀의 영역에 들어섰다가 분열에게 위협당하기도 했다. 이때 투구도 안 썼으니 오빠를 미치게 할 수 있다는 분열의 협박을 보면, 분열의 영역내에서는 꿈이라도 자신의 투구를 쓰지 않으면 권능이 통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샌드맨: <서곡 디럭스 에디션>에서 꿈은 별들의 도시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별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첫 번째 이유는 별들의 도시가 광기에 사로잡힌 별들이 만든 특수한 영역이라서 폐쇄적이고 현실 안에 속하면서도 현실로부터 먼 바깥에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도시는 별들이 관계를 맺거나 서로 소통하거나 싸우기 위한 별들만의 낙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그 광기의 바탕에 꿈이 얽혀있거나 끼어들 여지가 있다면 모를까, 별들에게 퍼진 순수하고 완벽한 광기는 분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래라면 태양의 불조차 꺼트리고 간단히 태양을 죽일 수도 있는 꿈이지만, 미친 별들에 의해 추상적인 개념이나 정보마저 빠져나올 수 없는 특수한 블랙홀에 갇히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다만 죽음의 경우에는 이런 우열에 있어서 예외적인 케이스다. 꿈결의 문지기를 말 한마디로 죽여버리고 다른 신들마저 두려워하는 친절한 그들조차 죽음은 두려워하며, 다른 영원에 비해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도가 높다. 작중에서 친절한 그들이 꿈을 계속 추궁하고 괴롭히다가도 죽음이 자신과 동생 사이의 일이니 빠지라고 언성을 높이자 바로 도망갔다.

3. 구성원

영원
운명 죽음 파괴 욕망 절망 분열



[1] 샌드맨 영원의 밤의 꿈 관련 에피소드에서 이들은 일반적인 화신이 아니라 개념 그 자체라고 작중 인물들의 언급으로 명시되었다. 애초에 진짜 의인화라기보다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일면으로 보는 게 맞다. 즉, 작중 묘사되는 영원 일족의 의인화된 평상시 모습은 사실 인식이 의인화로 고정된 형태가 아니다. 의인화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에서 비춰지는 영원 일족의 피상적인 일면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2] 샌드맨 위키에 따르면, 태초의 시간과 존재라는 개념 그 자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마블 코믹스 코스믹 컴퍼스 중 한명인 이터니티와 같다. 이터니티 또한 시간이 의인화한 존재이기 때문. 다만 포지션이 같다는 거지, 코스믹 컴퍼스가 영원 일족과 같은 수준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가진 위상이나 작중의 영향력을 비교하면 마블 세계관에서의 코스믹 컴퍼스 취급보다 DC 세계관의 영원 일족 대우가 좋기 때문이다. 이젠 리빙 트리뷰널도 이터니티의 내부 작용으로 존재한다는 미친 설정이 추가되긴 했지만. 애초에 다른 작품을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샌드맨이 치고박는 그런 내용도 아니고. [3] 샌드맨 위키에 따르면, 창조 이전의 절대적 공허, 즉 무(無)의 구현에 해당되는 존재(이 때문에 영원 일족의 맏이인 운명이 수시로 자주 밤의 영역에 방문하는 이유기도 하다.)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토게노이 중 한명이자 밤의 여신 닉스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4] 실제로 꿈 모르페우스가 영원 일족의 규율을 어겨서 죽자, 곧 다니엘 모습으로 관점이 바뀐다. [5] 하지만 멀티버스가 프레젠스의 두 아들인 미카엘 데미우르고스 루시퍼 모닝스타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프레젠스는 DC 세계관의 모든 우주에조차 선행하여 존재한다. [6] 영원의 사절로써 만들어졌으며 꿈과 파괴를 제외한 다른 영원들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정발본은 에블리스가 엘비스로 오역되었다. [7] 정발본은 "아무도 죽지 않았지. 개념을 어찌 죽일까? 어떤 활동을 구체화하는 화신을 어떻게 죽이겠나?"라고 번역됐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화신이라는 표현을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잘못 전달되기 쉽다. 화신이라는 단어는 특정 개념의 신이나 신의 분신 또는 성육신의 의미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8] 이 대사의 원문에 쓰인 Personification도 화신으로 번역할 수는 있으나, 신의 분신이나 성육신(Incarnation)같은 의미의 화신보다는 어떤 추상적인 특질이 구체화되거나 유형화되었다는 의미의 화신이 정확하다. 그러니 화신이라는 단어로 인한 혼동을 막으려면 이 부분은 구체화로 번역하는 편이 낫다. [9] 작중에서 embodiment라는 표현이 사용된 적도 있지만, Incarnation은 부정한 것을 보면 화신이 아니라 구체화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옳다. [10] 죽음이 꿈에게 의인화된 화신체(Anthropomorphic Personification)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은 있지만, 여기서 쓰인 화신(Personification)도 개념의 분신이나 신의 분신 또는 성육신(Incarnation)같은 의미보다는 의인화된 개념의 구체화같은 뜻이다. 애초에 의인화된 화신체라는 표현도 편의상 쓰인 표현일 뿐이고, 디스크월드 의인화된 화신체들과는 다르다. 영원 일족의 인간형 모습은 영원이 인간의 모습을 선택하거나 의인화한 게 아니라 인간의 관점에서 영원 일족을 바라보았을 때 비춰지는 일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1] 샌드맨 시리즈에서 신들은 꿈결에서 탄생하여 잊혀질 때가 되면 꿈결로 돌아가 죽는다. 즉, 넓은 의미에서 신이란 하나의 꿈에 불과하다. [12] 죽음의 역할중 하나가 우주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운명을 데리고 우주의 문을 닫기때문. 비유하기를 의자를 집어넣고, 불을 끄고 문을 닫는 것 [13] 신이나 화신과의 차이점 문단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신들은 영원 일족의 이 다스리는 영역인 꿈결을 통해 탄생하고, 죽는 순간조차 꿈결로 돌아오며 죽는다. [14] 악마들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죄를 짓고 죽어서 들어온 죄인들의 영혼도 포함. [15] 정확히는 이런 이유로 약해진 탓에 사악한 마법사들의 소환식에 불려나가 감금 당하고 몇 십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탈출한 상태였다. [16] 꿈이 지옥을 찾은 목적은 3가지 보물들 중에 신의 뼈로 만든 투구가 지옥의 어느 악마 손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는 약해진 꿈을 소환하여 감금시켰던 사악한 마법사들 탓인데, 그들이 누군가에게 3가지 보물들을 팔아넘기거나 악마에게 거래의 대가로 넘겨버렸다. [17] 영원이 다스리며 살고 있는 영역=영원의 일부 [18] 토르가 날뛰는 장면은 신하의 보고를 통해 언급만 되고, 꿈은 보고를 듣자마자 생각만으로 수습했다. 그리고 이후 장면을 보면 토르 머리 위에만 작은 비구름이 따라다닌다. [19] 샌드맨 세계관에는 삼여신의 원형에 해당되는 태고의 무언가가 존재하기에, 신화속 모든 삼여신은 일반적인 여신들이 아니라 그보다 크고 오래된 무언가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친절한 그들은 이들이 복수자로서의 권한을 얻고 수행할 때 불리는 이름 중 하나다. 워낙 집요하고 악명높은 태고의 힘인지라 신들조차 친절한 그들을 두려워한다. [20] 다만 이런 친절한 그들조차 영원을 직접 죽이지는 못하고 표적인 영원의 영역에 속한 것들을 해치며 집요하게 괴롭히는 게 최선이다. 아무리 친절한 그들이 규칙으로부터 권한을 얻더라도 영원은 우주의 시작부터 존재한 일곱 개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표적이 된 영원이 자기 영역을 떠나지 않는 한, 얼마든지 피해를 고치고 영역을 수호할 수 있어서 진정한 의미로 피해를 줄 수는 없다. 꿈의 죽음은 "복잡한 형태의 자살"로 평가되며, 집행자는 친절한 그들 따위가 아니라 죽기를 마음먹은 꿈의 손을 잡은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