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22:27:18

엘베 특별공격대

폭격기에 격돌할 정도로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면, 뭐 하러 사격을 하지 않고 그런 허무한 짓을 하는 거지?
아돌프 갈란트
<colbgcolor=#ddd,#191919> 독일어 Sonderkommando Elbe
영어 Special Command Elbe

1. 개요2. 입안자는 누구인가?3. 시작과 그 전과4. 카미카제와의 비교5. 기타6. 비슷한 다른 사례들

1. 개요

나치 독일 카미카제라고 볼 수 있는 특공대로 제2차 세계 대전 자살공격 임무가 일본군만의 전매특허가 아님을 보여준 사례다. 다만 카미카제처럼 파일럿의 목숨까지 같이 버리는 공격이 아니라 비행기를 몰고 표적을 향해 기수를 고정시킨 뒤 탈출하거나 날개로 적기 동체를 베거나 자르듯이 손상시킨 다음 탈출하는 수법이다. 대원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건지겠다는 의도가 포함된 것이지만 엄청난 충격에서도 파일럿 자신이 살아남거나 최소한 의식이라도 유지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기에 어지간히 숙련된 조종사가 아닌 한 사실상 자살에 가까운 공격방식이었다. 물론 아예 파일럿의 죽음을 전제로 하는 카미카제보단 그나마 낫다만 특공대 생존자들도 허상에 가까웠다고 증언하는 판이다.

그러나 정작 숙련 파일럿이 많았던 1943년 후반에는 이미 비슷한 형식의 공격 방식 자체는 본토방공임무를 받은 전투기부대에서 적지 않게 실행되고 있었으며 실제로 전과도 많았다. 아예 이쪽을 고려해서 방어력을 증강하는 등 설계를 강화한 Fw 190 A-7/8의 변형기[1]가 43~44년에 걸쳐 수천 대 단위로 생산됐을 정도였다. 이 변형된 전투기를 몰게 되는 조종사들에게는 폭격기 가까이 접근하여 사격[2]하겠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충돌할 각오도 하겠다는 서약을 받았다. 이후 Bf 109는 이들을 엄호하는 형태로 작전을 진행하는 게 보통이었다. 다만 이때까진 충돌을 각오할 정도로 근접해서 사격을 하겠다는 과감한 공격방식이었다. 심지어 태평양 전쟁에서도 초기 미 해군 항공대 역시 강한 내구력을 활용해 물장갑 제로센의 날개를 자르는 방식으로 전과를 올린 사례가 있었으니 아직 정상적인 작전 범위 안에 들어갔다.

2. 입안자는 누구인가?

파일:external/imansolas.freeservers.com/HajoHermann.jpg

일본도 할 수 있는 걸 위대한 게르만 민족이 못 하겠느냐며 이를 추진한 주인공은 하요 헤르만(Hajo Hermann, 1913~2010) 대령.[3] 야간 전투기 부대 "빌데짜우"의 대장으로 유명하다. 한국 언론을 통해 소개되기도 하였다.

참고로 이 인물은 폭격기 조종사 출신으로 영국 군함 및 수송선을 12척 격침한 바 있다. 그 외 공중전 경력은 거의 전무했으나 일단 주특기인 폭격에는 능했고, 또한 특이한 아이디어가 많아서 진급을 빨리 했었다. 특히, 단좌 전투기로 야간 폭격을 막는다는 아이디어로 JG300을 창설했던 전적이 있었는데 사고율이 높아서 초장 부분에 몇몇 성공을 거둔 것 빼고는 전과가 없다시피 하다. 이후 JG300은 귄터 랄 등 제대로 된 지휘관으로 교체되어 주간 방공 작전에 투입된다.

전후에도 변호사로 직종 변경하여 각종 나치 인사들과 나치 추종자들을 변호한 경력이 있으며 2010년 사망했다.

3. 시작과 그 전과

아무튼 앞서 소개한 하요 헤르만이 이 계획을 추진하자 아돌프 히틀러 공군사령관 헤르만 괴링조차 고개를 저었으나[4] 1945년 전쟁 종결 직전 연합군이 베를린 가까이 진격하던 시점에도 계속 설득을 했고 특공 전술로 시간을 벌어 최신예기를 양산해 반격하자는 논리가 왠지 먹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결국 히틀러도 패전이 눈 앞이라 전황만 돌릴 수 있으면 될 대로 되라면서 동의해서 시작되었다. 물론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쯤에서 더 이상의 인명손실을 막기 위해서 항복해야겠으나 지구 반대편의 일본군과 동급인 나치가 그렇게 할 리가 없었다

1945년 3월 베를린 서부 마그데부르크 기지에 120~150명 정도의 파일럿을 선발하여 부대를 편성. 부대명은 강 이름 엘베를 따서 명명. 사용 기종은 그 당시 널리고 널렸던 Bf 109, Fw 190이었다.[5]

한 달간의 훈련 과정을 거친 뒤, 4월 7일 처음이자 마지막 임무를 감행한다. 작전명 "베어볼프(Werwolf: 늑대인간)". 동원된 작전기는 총 180여대(184 혹은 189대) 특별 공격대에 호위기 30 ~ 60 여대가 합세한 듯하다. 목표는 북부 독일 상공에 접근하는 1,300여대의 미군 폭격기 B-17 플라잉 포트리스와 B-24 리버레이터.

정확한 전과 및 피해 기록은 일정치 않아 독일군측 전사자가 40명에서 최대 80명이라고도 하고 미군 피해도 폭격기 격추 8대에서 최대 25대까지 들쭉날쭉한다.

독일 측 자료는 패망 과정에서 상실되었거나 상세한 기록을 남기기에 적절한 임무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며 미군 측 자료는 자폭에 의한 직접 피해와 호위 전투기의 기총사격 피해건수가 겹치면서 오차가 발생했을 개연성도 부인하기 어렵다. 일단 독일측에서도 이런 건 떳떳하게 말한 내용은 아니고 미군도 공격 이후 낙하산을 타고 후퇴하는 독일군을 추격해서 사살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기 때문.

4. 카미카제와의 비교

항공기의 자살 공격이란 게 비슷한 전술이었기 때문에 카미카제와 많이 비교되기도 한다. 둘 다 엄청난 반인륜적 삽질이기는 했으나 상황을 봤을 때는 독일이, 결과를 봤을 때는 일본이 더 삽질을 했다고 평가된다.

일본은 미국의 항공모함을 상대로 싸웠다. 전투기에 비해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견고한[6] 군함은 전투기가 쏟아붓는 기관총 따위로는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무유도 로켓이나 소형 폭탄에 조금 다치긴 하지만 그것도 역부족이고, 작정하고 어뢰나 대형 항공폭탄을 던지도록 설계된 급강하폭격기 뇌격기 정도는 되어야 군함에 데미지가 들어간다. 그러나 뇌격기는 무거운 어뢰 때문에 높이 날지 못해 대공포나 적 전투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급강하폭격기는 제작이 어려울 뿐 아니라 명중시키기도 어렵고 파일럿도 매우 능숙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의 수십 척의 항공모함을 신속하게 격파해버리고 일본의 장기인 전함 간 포격전으로 전쟁을 마무리짓고 싶었던 일본은 능숙한 파일럿들을 키워내서 효과적인 공격을 가하는 돈이 많이 드는 방법을 택하는 대신 대충대충 교육해서 급하게 내보낼 수 있는 자살돌격을 선택한 것이다.

엘베 특별공격대는 상대가 폭격기였다. 폭격기는 장갑이 있긴 해도 제대로 사격하면 충분히 뚫으며, 고고도 폭격기는 아무 데나 구멍이 나기만 해도 사망이고 저고도 폭격기도 엔진이나 꼬리날개 같은 취약부위에 맞으면 추락이나 불시착이 기정사실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나치는 그런 폭격기에 대고 전투기를 통째로 처박으려고 했다. 말하자면 폭격기 상대로 자살돌격은 들어가는 비용[7]에 비해 화력이 좀 과하다. 일본은 그래도 이 정도는 되어야 부술 수 있겠다 싶은 상대를 두고 자살돌격을 했다면, 나치는 그럴 필요조차 없는, 그냥 사격하면 떨궈버릴 수 있는 상대로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애초에 문서 상단의 아돌프 갈란트의 평가처럼 층돌할 수 있을 정도로 폭격기에 근접할 수 있다면 그냥 Fw 190의 강력한 화력으로 간단히 격추해 버리는 편이 훨씬 효율적인데다[8] 일회성에 그치는 자폭과 달리 당연히 여러 번 공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과를 놓고 보면 더 삽질을 한 건 일본이었다. 엘베 특별공격대는 기껏해야 40여 기, 50여 명[9]의 파일럿을 소진했을 뿐이다. 그리고 엘베 특별공격대는 확실히 그냥 사격하러 방어기총과 호위기 사이로 뛰어든 수준의 손실만 입고 전과는 냈다. 별로 많은 건 아니었지만, 연합군 폭격기 최소 8대, 최대 25대를 떨어뜨렸다. 일본 본토 공습, 도쿄 대공습,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등의 일본 본토 항공전에서 일본이 떨어뜨린 미국 폭격기의 총합이 200기가 안 된다는 걸 생각하면, 연합군 폭격기 8~25기 격추는 50명의 희생에 비해 상당히 괜찮은 전과인 것이다.[10]

반면 일본은 카미카제로 A6M 2,500기 이상, 파일럿만 3,000여 명을 날렸다. 여기에 Ki-115 츠루기 MXY-7 오카 같은 자살공격 전용기까지 합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11] 한술 더 떠서 이 카미카제를 시도하는 전투기가 무사히 도착하게 하기 위해 동원되는 호위기[12]의 희생까지 생각하면 그야말로 카미카제 전술은 비행기 먹는 하마였다. 그리고 저렇게 많이 꼴아박아서 일본이 얻어낸 전과는 미 해군 정규항모 침몰 0척이라는 절망적인 결과였다. 정말로 카미카제로 일본이 그토록 잡고 싶어했던 미국의 30척에 이르는 정규항모는 단 한 척도 못 잡았다.[13] 미국이 일주일에 한 척씩 도합 120척을 취역시켰던 호위항모도 카미카제에 의한 격침은 세키 유키오 소위의 세인트 로 격침을 빼면 없다. 당연히 자살 공격기보다 훨씬 강력한 항공폭탄이나 어뢰로도 원샷원킬을 절대 낼 수 없는 떡장갑 전함은 제대로 반파시킨 것조차 없었고,[14] 전함보다 한 단계 아래의 순양함도 제대로 피해를 준 게 없었으며, 카미카제로 "확실히" 격침시킨 전과는 함 중에서 가장 낮은 구축함을 30척도 아니고 3척 격침시킨 게 전부다.[15] 참고로 그 병신 같다는 일본의 함대결전사상에 입각해 만들어진, 이름만 유명하고 별 전공도 없다는 구시대적인 전함 야마토급 전함 무사시도 구축함 정도는 간단히 두세 척씩은 잡았다.

5. 기타

오랫동안 잊혀 왔던 독일군의 자살특공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있던[16] 장본인 하요 헤르만이 입을 열면서 언론에 소개되었고 실전최강 전투기 대전[17]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도 다루어진 바 있으므로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본 특공임무를 다룬 관련 사이트가 있다. 거기에 소개된 부대명은 Rammkommando ELBE - 정식 명칭인지 코드명인지는 미상.

6. 비슷한 다른 사례들

독일의 이 엘베 특공대가 아니더라도 항공기의 충돌 공격은 원래부터 있던 전술이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공중충돌 문서
번 문단을
전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한편 태평양 전선의 미군 전투기/공격기 조종사들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그대로 일본군 전함에 때려박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조종사 개인의 우발적인 선택으로, 독일이나 일본처럼 전문 특별공격대를 편성한 것에 비할 수는 없다. 애초에 조종사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목숨을 걸고 행한 일을 이런 방법과 비교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목숨을 건 조종사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우발적인 자살 공격은 격렬한 전투 현장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것을 군 체제에 편입시켜 강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1] Sturm이라는 형식명이 더 붙는다. [2] 참고로 이러면 폭격기 사수들도 쏘기 쉬워지기 때문에 폭격기 가까이서 사격하는 건 엄청난 위험이 따른다. 물론 집탄이 훨씬 잘 되므로 훨씬 효과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다. [3] 아닌게 아니라 진짜로 카미카제 전술에 대해 얻어들은 뒤 주독일본대사에게서 자료를 받고는 이 공격대를 구상해냈다. [4] 이는 조종사 하나하나가 귀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돌프 갈란트가 탈출한 적 조종사들을 쏘는 짓은 하면 안 된다고 말하자 헤르만 괴링은 이에 동의하며 "자네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일세."라고 말한 적도 있다. [5] Bf 109는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전투기(33,984기), Fw 190은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이 생산된 전투기(20,051기)이다. 생산성이 특출난 건 아니고 저 두 기종만 집중한 선택과 집중의 결과다. 그러나 저렇게 전투기를 만들어도 조종사가 없으면 그냥 남아돌 수밖에 없다. 참고로 전투기를 포함해서 군용기 중 최다 생산 기체는 소련의 Il-2(36,183기) [6] 2차 대전기에 제작된 모든 전투 항공기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은 미국의 B-29로 50톤 정도이다. 그리고 전투함 중에서 연안 항해를 고려하고 만들어진 가벼운 함선은 어뢰정, 고속정처럼 정이라고 부르고 대양항해가 원활하게 가능한 대형 함선은 구축함, 항공모함처럼 함이라고 부르는데, 정과 함의 경계는 500톤이다. 즉 가장 가벼운 함선과 가장 무거운 항공기도 최소한 10배의 무게 차이가 난다. 거기서 나오는 장갑의 파워는 상상을 초월한다. [7] 전투기(+때에 따라서는 목숨) [8] 게다가 이 전투기가 쓰는 탄 중 하나가 그 유명한 미넨게쇼스다. 한 발만 제대로 맞춰줘도 치명타가 들어가는데 그걸 두고 냅다 들이받기에는 너무 낭비가 심하다. [9] 40~80명이라고 하므로 중간값을 취했다. [10] 다만 1944년 12월 루프트바페가 완전히 박살나기 이전까지는 연합군 공군에게 독일 본토 항공전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독일 공군이 사용한 지역 항공대별 요격전술과 연합군 폭격기 박스 후미 공격 전술은 대략 5만기에 가까운 항공기를 격추시켰으니 아돌프 갈란트가 충돌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한 조종사가 기총을 안 쓰고 부딪히는 것이 무슨 허무한 짓거리냐고 까는 게 당연하다. [11] 미국 측 통계 중에서는 5,000기 이상이라고 보기도 한다. [12] 호위기를 붙여야 한다는 시점에서 이미 카미카제는 그 몇 되지도 않던 효과를 잃었다. 급강하폭격기, 뇌격기에 비해 카미카제의 유일한 우위는 뇌격기에 비해 빠르게, 급강하폭격기에 비해 쉽게 날아가 공격한다는 것인데, 급강하폭격기나 뇌격기도 호위기를 붙여주면 충분히 안전하게 날아서 공격하고 살아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굳이 호위기를 붙였느냐, 상부에서는 자살공격을 강요하고 그 전과를 가져오라고 닦달하는데, 정작 미국 대공망에 접근하면 자살폭격기 혼자서는 충돌도 못 해 보고 미군 레이더 대공포에게 격추당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대공망 실상도 모르면서 요행히 들이받기만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상부와, 자살을 명령받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병사가 정작 하늘에서는 그 자살조차 제대로 못하고 격추당하는 노답 상황 속에서 중간 관리자들이 내놓은 결과물이었다. [13] 참고로 급강하폭격기와 뇌격기를 굴려서 정상적으로 가한 공격으로는 미국 정규항모도 꽤 잡았다. 당장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이 왜 딱 한 척만 남고 멸종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쉽다. [14] 최소한 정규항모는 활주로에 정통으로 처박으면 잠시 적함이 전투기를 이륙시킬 수 없게 만드는 정도의 방해는 됐다. 그러나 급폭기로도 대여섯 발은 꽂아야 데미지가 들어가는 전함에게는 그 정도 피해조차 줄 수 없어서 카미카제를 보고 미군이 대공포도 쏘지 않은 채 손가락질하며 놀리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15] 참고로 태평양 전쟁 개전 시점에서 일본이 보유한 구축함만 해도 160척이었다. 전쟁 후반으로 접어들면 일본 구축함은 300척, 미국 구축함은 700척까지 늘었다. 3척 정도는 공습 후 오관측으로 함선을 잘못 세기만 해도 나오는 데미지다. [16] 앞서 소개한 뉴스 링크 참조. 취재 당시 95세 [17] 원제 DOGFIGHTS, LUFTWAFFE'S DEADLIEST 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