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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뮬러 1 월드 챔피언십 역대 드라이버 챔피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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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前 F1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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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에메르송 피치파우지[1][2] Emerson Fittipald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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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6년
12월 12일 ([age(1946-12-12)]세) 브라질 상파울루 주 상파울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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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브라질 | |||
가족 |
형제 윌슨 피티팔디, 조카
크리스티안 피티팔디, 손자 피에트로 피티팔디, 엔조 피티팔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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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선수 (F1) |
팀 로터스 (1970~1973) 말보로 맥라렌 인터내셔널 (1974~1975) 피티팔디 오토모티브 (1976~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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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CART) |
WIT 레이싱 (1984) H&R 레이싱 (1984) 패트릭 레이싱 (1984~1989) 팀 펜스키 (1990~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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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피티팔디 오토모티브 (1981~1982) | |||
정보 더 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colbgcolor=#eeeeee,#191919> 출전 횟수 | 149경기 | ||
월드 챔피언 | 2회 ( 1972, 1974) | |||
그랑프리 우승 | 14회 | |||
포디움 | 35회 | |||
폴 포지션 | 6회 | |||
첫 경기 | 1970년 영국 그랑프리 | |||
첫 그랑프리 우승 | 1970년 미국 그랑프리 | |||
패스티스트 랩 | 6회 | |||
마지막 경기 | 1980년 미국 그랑프리 | |||
마지막 그랑프리 우승 | 1975년 영국 그랑프리 | }}} |
선수 시절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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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 국적의 전 포뮬러 1 드라이버이자 1972 시즌, 1974 시즌 월드 챔피언.2. 생애
상파울루에서 이탈리아계 브라질인 모터스포츠 저널리스트이자 라디오 중계석을 했던 윌손 피티팔디 시니어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폴란드계 러시아인 요제파 보이치에호프스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조부인 이반 보이치에호프스키는 제정 러시아 육군 장교였다고 한다. 'Emerson'이라는 이름은 미국의 문학가이자 철학자인 랄프 월도 에머슨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양쪽 부모 모두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양산차 레이싱계에서 활동하였으며 그 영향을 받아 에메르손도 어렸을 때부터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3. 연도별 성적
3.1. 포뮬러 1
시즌 | 팀 | 경기 | 우승 | 폴 포지션 | 패스티스트 랩 | 포디움 | 포인트 | 순위 |
1970 | 팀 로터스 | 5 | 1 | 0 | 0 | 1 | 12 | 10위 |
1971 | 10 | 0 | 0 | 0 | 3 | 16 | 6위 | |
1972 | 12 | 5 | 3 | 0 | 8 | 61 | 1위 | |
1973 | 15 | 3 | 1 | 5 | 8 | 55 | 2위 | |
1974 | 맥라렌 F1 팀 | 15 | 3 | 2 | 0 | 7 | 55 | 1위 |
1975 | 13 | 2 | 0 | 1 | 6 | 45 | 2위 | |
1976 | 코페르슈카 | 15 | 0 | 0 | 0 | 0 | 3 | 17위 |
1977 | 14 | 0 | 0 | 0 | 0 | 11 | 12위 | |
1978 | 피티팔디 | 16 | 0 | 0 | 0 | 1 | 17 | 10위 |
1979 | 15 | 0 | 0 | 0 | 0 | 1 | 21위 | |
1980 | 14 | 0 | 0 | 0 | 1 | 5 | 15위 |
4. 여담
- 유년기에 '쥐'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리웠는데, '호랑이'라는 별명을 받은 그의 친형 윌손과 엄청나게 대조적이었다. 커리어 말기에는 미국과 영국에서 '에모'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리웠다.
- 1997년에는 전년도에 미시간 인터내셔널 스피드웨이에서 얻은 부상을 회복하던 중이었는데, 상파울루에 있던 그의 오렌지 농장 위로 자가용 경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다 동력이 끊겨 91미터 아래로 추락하여 심각한 등 부상을 입었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