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5 10:01:48

알바로 헤스티도

알바로 헤스티도의 역임 직책
{{{#!folding ▼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호세 나사치
(1923~1935)
알바로 헤스티도
(1935~1940)
?
(1940~1941)

}}} ||
알바로 헤스티도의 수상 이력
{{{#!folding ▼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
우루과이의 前 축구선수
파일:alvaro gestido.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알바로 헤스티도
Álvaro Gestido
본명 호세 알바로 펠레그린 헤스티도 포세
José Álvaro Pelegrín Gestido Pose
출생 1907년 5월 17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사망 1957년 1월 18일 (향년 49세)
국적
[[우루과이|]][[틀:국기|]][[틀:국기|]]
신체 176cm | 체중 73kg
포지션 하프백
소속팀 CA 페냐롤 (1926~1941)
CA 페냐롤 (1944)
국가대표 26경기 ( 우루과이 / 1927~1940)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2.2. 이후
3. 플레이 스타일&평가4. 여담5. 수상
5.1. 클럽5.2. 국가대표5.3.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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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루과이의 前 축구선수. 별명은 El Teniente.[1]

2. 생애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헤스티도는 팬들에게 바리오 또는 위관급 장교[2]라 불렸는데 이전에 밀리터리 스쿨에서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클럽 커리어를 페냐롤에서 보냈고 7차례 우루과이 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1941년, 소속팀 페냐롤의 50주년 기념 경기[3]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마치고 은퇴를 선언하였다.

그러다 1944년 9월 22일, 갑자기 페냐롤에 복귀하여 2경기를 더 뛰고 완전히 은퇴를 선언하였다.

2.1.2. 국가대표

헤스티도는 1927년 7월 14일부터 1940년 8월 15일까지 총 26경기에 출전하였다. 올림픽 월드컵에서 각각 한 차례씩 우승했으며 월드컵에서도 베스트 11에 선발되는 활약을 펼쳐보였다. 하지만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2.2. 이후

헤스티도는 1957년, 49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3. 플레이 스타일&평가

센스와 페어플레이로 이름 높은 하프백이었다. 특히 초대 월드컵에서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로렌소 페르난데스와 이루었던 하프백 라인은 철의 장막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호흡을 보여주었다. 또한 페냐롤의 주장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였다.

4. 여담

  • 초대 월드컵 결승전의 베스트 11 중 가장 젊은 나이에 그리고 빨리 사망한 선수이다.
  • 그의 6살 위의 오스카르는 1967년 3월 우루과이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같은 해 12월 임기 중 사망하였다.

5. 수상[4]

5.1. 클럽

5.2. 국가대표

5.3. 개인



[1] 스페인어로 한국말로 풀이하면 군대 계급의 중위 정도다. [2] 별명이 El Teniente. 영어로 Lieutenant였다. [3] 상대는 아르헨티나 CA 리버 플레이트였다. [4] 헤스티도는 CA 페냐롤 원 클럽 맨이므로 팀 이름의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