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2 00:55:45

아이신기오로 기영

파일:아이신기오로_기영.jpg
1844년 8월, 쥘 이티에가 촬영한 사진[1]
중국어: 愛新覺羅耆英(Aisin Gioro Qiying)
만주어: 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ᡣᡞ ᠶᡝᠩ(Aisin Gioro Keying)
한국어: 애신각라 기영/아이신기오로 치잉

1787년 3월 21일 ~ 1858년 6월 29일

1. 개요2. 생애3. 기타4. 대중매체에서

1. 개요

청나라 말기의 인물이다. 가문은 아이신기오로 가문.

2. 생애

제1차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열세에 빠지면서, 도광제의 명으로 평화 협상에 임했다. 1842년 청나라 전권대사로 난징조약을 체결했다. 이후에도 굴욕적이고, 불평등한 오항통상장정(五港通商章程), 후먼 조약(虎門条約)을 체결하고, 미국과도 왕샤 조약을, 프랑스와는 황푸 조약을 각각 체결했다.

제2차 아편전쟁 때는 대영 교섭이 꼬이는 가운데 책임을 물어 1858년 베이징에서 자살했다.

3. 기타

  • 중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최초로 인물 사진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2] 정확히는 1844년 8월 프랑스 세관 총검찰관이자 전문 사진사였던 쥘 이티에(Jules Itier)가 마카오에서 기영을 촬영했다. 그리고 1844년 10월 24일 황푸 조약 체결 직후 프랑스, 중국의 대표들과 사진을 찍었다. #

4. 대중매체에서

파일:탄생 기영.png


[1] 이 사진은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으로 원본은 유실 되었으며 이 복사본은 화질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2] 일본 최초로 사진을 남긴 인물은 시마즈 나리아키라(1857)이고, 한국 최초로 사진을 남긴 인물은 이의익을 위시한 연행사 일행들(186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