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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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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실재, 실체, 실제
2. 다양한 사례들
2.1. 과학적 실재론
2.1.1. 과학적 반실재론2.1.2. 구조적 실재론2.1.3. 비판적 실재론
2.2. 보편자 실재론
3. 관련 외부링크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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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實在論 / Realism

철학에서 "실재론" 혹은 " 형이상학적 실재론"이란 "주관의 인식 작용과는 독립하여 외부에 세계 자연 따위가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는 외부의 세계에 관해 말할 수 있고 또한 탐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리킨다.

유물론은 실재론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견해 가운데 하나다. 유물론은 세계가 내 의식 외부에 진짜로(Real) 존재하며, 그 세계는 전부 '물질'로 이루어져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실재론은 유아론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며, 관념론과는 반대되면서도 일부 교집합을 갖고 있다. 중세 보편 논쟁에서의 보편실재론 같은 개념은 어떤 면에서 보면 보편자를 관념론으로 볼 여지가 있기 때문에, 모든 실재론이 관념론이랑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헤겔의 경우엔 객관적 관념론 또는 관념론적 실재론을 주장한다. 이들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유신론으로 귀결된다.

1.1. 실재, 실체, 실제

서양 철학사의 맥락에서 영어 단어 "Reality", "Substance", "Actuality"는 각각 "실재(實在)", " 실체(實體)", "실제(實際)"로 번역되고는 한다. 일상적 용법과는 독립적으로 철학적 맥락에서 이들 용어는 각각 다른 의미로 쓰이고는 하므로 주의를 요한다.
  • 실재(real): '정말로 있다'는 것. 그 반의어로는 '허상', '가짜'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 실체(substance): 고전 그리스어 'οὐσία (ousia)'에서 유래한 어휘로, '만물을 이루는 근본적인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오직 원자만이 실체다.
  • 실제(actual): 맥락에 따라서 '실제'는 ' 현실'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양상논리에서 '실제 세계', '현실 세계'는 ' 가능세계'와 반의적으로 쓰이고는 한다.

2. 다양한 사례들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세계 전체'의 실재 여부에 대한 주장인 반면, 보다 국소적인 주제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실재론이 제기될 수 있다. 예시:

2.1. 과학적 실재론

파일:과학적_실재론_논쟁.jpg
과학적 실재론 논쟁의 개략적인 지형도[2]

과학철학에서 또한 과학 활동의 목적 그리고 그 의의를 두고 벌어지는 " 과학적 실재론"과 "과학적 반실재론(anti-realism)"과의 대립이 있다. 과학적 실재론자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논제들은 다음과 같다:
  • 과학의 목표는 세계의 객관적인 을 밝혀내는 것이다.
  • 과학적 대상들은 전적으로 마음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 최신 과학은 최소한 근사적으로는 세계 실제 모습을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 과학적 지식은 지속적으로 축적되며, 점점 진리에 근접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적 실재론은 대개 일반인 과학자들의 상식에 부합하는 견해라고 여겨진다. 20세기 초에는 반실재론자 에른스트 마흐에 맞서 막스 플랑크가 실재론을 강력하게 옹호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 철학자 중에는 힐러리 퍼트넘이 실재론에 대한 강력한 논증을 제공한 인물 중 하나다[3].

이런 과학적 실재론의 옹호 논증으로 유명한 것은 기적 불가 논증(No-miracle argument)이 있다. 성숙한 과학은 예측이나 설명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경험적으로 적합한 것이다. 과학이 근사적 진리가 아니라면, 과학이 경험적으로 적합하다는 것이 기적이 될 것이다. 즉, 과학이 경험적으로 적합한 것에 대한 최선의 설명은 과학이 근사적 진리라고 보는 것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솔 크립키가 ⟪ 이름과 필연⟫에서 제시한 자연종 명사의 인과적 지칭 이론 역시 언어철학적으로 토머스 쿤 등이 제시한 반실재론 논증을 반박하는 의의를 갖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2.1.1. 과학적 반실재론
과학적 반실재론이란 위와 같은 과학적 실재론의 논제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다. 다만 위 논제들 중 어느 것을 거부하느냐에 따라 그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반실재론의 뿌리를 거슬러가면 영국 경험주의의 영향을 받은 유명론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서양 철학사에서 반실재론을 처음으로 세련된 형태로 제시한 것은 임마누엘 칸트라고 간주되며, 이렇듯 물자체를 거부하는 칸트의 과학철학은 앙리 푸앵카레의 과학철학적 입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에른스트 마흐가 제시한 철저한 실증주의 과학철학은 20세기 과학적 반실재론의 직접적인 모태가 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형태의 과학적 반실재론은 도구주의(instrumentalism)다. 도구주의에 따르면 과학의 목적은 "세계의 객관적인 참" 같은 것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다. 과학 활동은 관찰이나 실험 같은 절차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갖고서 이론이나 모형을 만들고, 그런 이론이나 모형을 갖고 적절한 예측을 해서 성공을 하는 등 문제만 잘 풀면 그만이다. 그 이상의 " 세계 자체"를 운운하는 것은 도리어 불필요한 형이상학적인 미신에 젖어있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해석에 관한 지난한 철학적 논쟁을 두고 물리학자 데이빗 머민(David Mermin)이 말했다고 알려진 다음과 같은 어록은 도구주의의 대표적인 신조 중 하나다.
닥치고 계산이나 해라! (Shut up and calculate!)[4]
20세기 중반 토머스 쿤은 다른 방향에서 과학적 반실재론을 촉발시킨 대표적 인물 중 하나다. 쿤이 부정하는 대표적 논제 중 하나는 과학이 일방향적으로 꾸준히 축적된다는 논제다.
자주 듣는 말로서, 연속되어 이어지는 이론들은 갈수록 진리에 더욱 근접하거나 또는 진리에 점점 더 가깝게 근사적으로 된다고 한다. [...] 과학사학자로서 나는 그 견해의 비개연성에 감명을 받고 있다. 이를테면 나는 뉴턴의 역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보완하고,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수수께끼-풀이의 도구로서 뉴턴의 이론을 향상시킨 것에 대해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의 승계에서 존재론적 진전의 시종일관된 방향성을 볼 수가 없다.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2판 후기(1969)
쿤은 과학의 발전 과정을 생물의 진화 과정에 비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간 유인원에서 진화한 것처럼 과학 또한 새로운 데이터등의 발견에 "적응"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치고 변모해나간다. 그런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진화가 어떤 방향성 내지는 목표를 갖고 이루어진다는 것은 진화론에 대한 대표적인 착각 중 하나다. 쿤은 과학이 유일한 에 가까워진다는 믿음 역시 마찬가지 착각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적 반실재론을 옹호하는 논증으로, 과학적 이론의 과소결정(underdetermination of scientific theories)라는 것이 있다. 경험적으로 똑같은 예측을 하는 이론은 여러 개를 만들 수 있다. 이럴 경우, 어떤 것이 근사적 진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를 들면, 양자역학의 해석에서 다세계 해석 봄 해석보다 근사적 진리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또 다른 논증으로, 비관적 메타귀납 (pessimistic meta-induction)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과학사를 잘 살펴보면, 예측이나 설명에서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근사적 진리로 여겨지지 않는 과학적 이론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왜 현재의 성숙한 과학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비관적 메타귀납이다.

바스 반 프라센(Bas van Fraassen)이 제안한 구성적 경험론은 21세기 초 과학철학계에서 다뤄지는 과학적 반실재론의 가장 유력한 형태 중 하나다. 구성적 경험론자 또한 과학의 목표를 (그게 무슨 말이 됐든간에) "세계의 참"을 밝혀내는 것이라고 상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모든 관찰가능한 현상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해내는 것이며, 과학 활동은 이처럼 경험적으로 적합한 이론을 만드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반 프라센은 과학의 성공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과학 이론 간의 경쟁에서 경험적으로 적합한 과학 이론은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이론은 도태된다. 따라서, 성숙한 과학이 경험적으로 적합한 것은 기적적인 일이 아니다.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기적 불가 논증은 그 설득력을 잃는다.
2.1.2. 구조적 실재론
위의 비관적 메타귀납에 맞대응한 실재론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조적 실재론자들은 현재 근사적 진리로도 여겨지지 않은 역사적인 과학적 이론들은, 그 구조(structure)에서는 근사적 진리에 접근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구조적 실재론을 실제 과학사에 적용해 본 예시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아이작 뉴턴의 중력 이론은 비록 틀렸지만, 그 수학적 구조는 근사적 진리에 접근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맥스웰 방정식을 유도하기 위하여, 에테르의 존재에 의존하였지만, 그 수학적 구조는 근사적 진리에 접근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구조적 실재론자들은 "중력"이나 "에테르" 같은 존재자의 실재성보다 그 수학적 구조의 실재성이 더 근본적이라고 생각한다.

실재론자들을 괴롭히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양자역학에 대한 것이다. 양자 얽힘의 발견은 일반적인 과학적 실재론을 주장하기 굉장히 어렵게 만들었다. 양자역학의 해석이 여러 개 있는 것은 과소결정성 논제의 생생한 실례가 되었으며, 빛보다 빠른 원격 작용을 적용하지 않으면서, 특정 입자의 개체성(individuality)를 주장하는 것은 벨의 부등식의 어긋남을 설명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구조적 실재론은 과학적 실재론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 주었다. Amanda Gefter의 말을 빌리자면, "전자는 실재하지 않지만, 양자장론의 수학적 구조는 실재한다."(Electrons aren't real, but the mathematical structure of quantum field theory is.)는 식으로 과학적 실재론을 반실재론의 현대물리학적 도전에서 구원하고자 하였다.
2.1.3. 비판적 실재론
영국의 과학철학자 로이 바스카를 중심으로 주창 및 연구되고 있는 비판적 실재론에서는 '실재'가 세 개의 층위로 구조지어져 있다고 본다. 첫째는 경험의 영역, 둘째는 사건의 영역, 셋째는 기제의 영역이다. 사건의 영역은 우리가 경험하든 말든 간에 실제로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의 집합이다. 이 중 우리가 관찰하고 경험해서 파악되는 사건들만 모은 부분집합이 경험의 영역이다. 그리고 기제의 영역은 사건들이 발생하는 근본 원리들의 영역이다.

이렇게 실재의 영역을 층위지어서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은 기존의 경험주의적 전통을 비판하기 위한 것으로서, 과학이란 단순히 경험되는 것을 수동적으로 기록하는 활동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과학의 역할은 단지 이들 경험의 영역이나 사건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수동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에 작용하는 요소들을 선별하고 통제해 특정한 조건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관찰함으로서 사건의 영역 너머에 있는 기제들을 파악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같은 관점에서, 과학 연구란 실재에 대한 능동적 개입이며 실재와 주관 사이의 대화이다.

로이 바스카가 이 같은 새로운 실재론의 영역을 주창한 것은 칼 포퍼 등이 주장한 검증 가능성 개념을 극복하고자 하는 맥락이 있어, 부분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사회과학의 정당성을 옹호하고자 하는 성격이 있다.

2.2. 보편자 실재론

서양 철학사
중세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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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 논쟁의 맥락에서는 실재론이란 '보편자 실재론'을 가리킨다. 즉 '빨강' 같은 술어에 대응하는 속성이 추상적 존재자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보편자 실재론의 시초라고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보편자 실재론에 반대되는 입장은 ' 유명론(nominalism)'이라고 불리고 있다.

3. 관련 외부링크

4. 관련 문서


[1] 고등학교 사회문화에서는 일단 이를 존재법칙의 지배와 당위법칙의 지배로 양분해서 설명한다. 지구의 공전은 자연현상이지만, 살인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사회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보편타당한 도덕법칙의 존재에 대한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의 논쟁까지도 거론될 수가 있다. 물론 아무리 소피스트라고 해도, 살인을 정당화해도 된다고까지 과격한주장을 하지는않았는데, 이를 주장하는 소피스트 학파 역시, 도덕질서가 무너질 경우 아노미의 상태에서 타살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 이었기 때문이다. [2] 해당 도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이들 입장들이 이처럼 1차원적으로 분류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3] 다만 이른바 '후기 퍼트넘'은 이런 철학적 입장을 철회했다는 해석이 있다. [4] 단 머민 본인은 오히려 이런 도구주의적 태도를 비판하기 위하여 해당 표현을 제안한 것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If I were forced to sum up in one sentence what the Copenhagen interpretation says to me, it would be "Shut up and calculate!" But I won't shut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