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Sinfjǫtli신표틀리는 북유럽 신화의 에다와 볼숭 일족의 사가에 등장하는 영웅이다. 볼숭 일족의 시그뉘가 아버지와 형제들의 복수를 할 전사를 낳기 위해, 자신의 쌍둥이 형제 시그문드와 근친상간을 저지른 끝에 태어났다는 충격적인 탄생배경을 가지고 있다. 즉 시그문드의 첫번째 아들이자 조카이며, 배다른 동생으로 헬기, 하문드, 그리고 시구르드를 뒀다. 부부간의 사랑이나 대를 잇기 위해서가 아니라, 완전히 복수만을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며, 전근대적 시대상을 감안해도 아동 학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가혹하게 훈련받았다.[1] 정작 신표틀리 본인은 그게 천직이었던건지 복수를 갈구하며 전부 받아들였다는게 그나마 다행인지도.
시그문드가 만독불침의 몸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아들이었던 신표틀리 역시 강철같은 피부를 물려받아서 몸에 묻은 독에는 해를 입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튼튼한 위장은 물려받지 못했는지 입으로 섭취한 독에는 내성이 없었다고 한다.
베오울프에서는 영웅 시게문드(Sigemund)의 조카이자 그의 사이드킥이었던 피텔라(Fitela)로 언급된다. 이를 통해 본래 이름은 표틀리(Fjǫtli)이고, 앞의 Sin-은 시그문드의 이름과 두운을 맞추기 위해 덧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또한 에릭 블러드액스의 추모시 에이리크의 노래(Eiríksmál)에서도, 오딘이 에인헤랴르 중에서 시그문드와 신표틀리 둘을 골라서 이제 막 전사해서 발할라에 도착한 에이리크를 마중나가라는 명을 내리는 걸 보면, 당시 사람들 사이에선 시그문드와 신표틀리 부자를 일종의 듀오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2. 일생
2.1. 탄생 배경
볼숭족의 공주 시그뉘는 남편 시게이르에게 아버지와 형제들을 잃고 남편을 상대로 복수를 다짐한다. 불행중 다행으로 그녀의 쌍둥이 형제였던 시그문드는 늑대인간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시그뉘가 손을 써서 살려낼 수 있었다.[2]시그뉘는 일단 숲 속 오두막 집에 시그문드를 숨겨둔 뒤, 복수심을 숨기고 시게이르의 아내로서 조용히 살아가며 아들을 둘 낳는다. 그녀는 맏아들이 열 살이 되자, 시그문드에게 보내서 볼숭의 후예로서 자신들의 복수를 도울 전사로 키우려고 했지만, 아들은 볼숭 일족 답지않게 기개가 부족했던 탓에 독사가 들어있는 밀가루 푸대로 빵을 반죽해서 구우라는 시그문드의 테스트를 "푸대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는게 무서워서 못하겠다." 고 포기한다. 시그문드로부터 아들의 실패를 전해들은 시그뉘는 그런 나약한 아이는 계속 살아봤자 의미없으니 그냥 죽여버리라고 했고, 시그문드는 그렇게 조카를 살해한다. 몇 년 뒤 둘째를 보내지만 이번에도 같은 과정을 거쳐서 이하생략.
두 번의 실패를 겪은 시그니는 아이들의 모자람이 시게이르 탓이라고 여긴건지, 마지막으로 어떤 계획을 하나 세운다. 그녀는 먼저 지나가던 볼바를 불러들여서 마법으로 서로의 겉모습을 교환하고, 그렇게 볼바의 얼굴을 한 채로 시그문드를 찾아가서 나그네인 척 사흘만 묵게 해달라는 요청을 한다. 시그뉘와 모습을 바꾼 볼바 역시 매우 아름다웠는지 시그문드는 어느새 방문객과 사랑에 빠져버렸고, 그녀가 자신의 자매인지는 꿈에도 모른 채로 사흘간 열심히 사랑을 나눈다.
2.2. 어린 시절
그렇게 신표틀리는 좋게 말하면 완벽한 볼숭족으로, 직설적으로 말하면 근친상간의 결과물로 태어났으며, 어린 나이에도 외모가 매우 수려하고 성장이 아주 빨라서 이부형들과는 달리 열 살도 되기 전에 시그문드에게 보내지게 된다. 시그뉘는 신표틀리를 보내기 전에 기개를 테스트한답시고 천[3]을 가져다가 아들의 맨팔에 대고 그대로 꿰매버렸고, 다 꿰맨 뒤에는 실밥 채로 뜯어내버렸다. 하지만 신표틀리는 바늘이 생살을 뚫고, 피부가 뜯기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비명은커녕 눈 한번 깜빡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볼숭족에게 이까짓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라는 비범한 말을 했고, 이 말을 들은 시그니는 매우 기뻐하며 아들을 시그문드에게 보냈다.신표틀리는 외삼촌에게 이부형들과 똑같은 테스트를 받았지만, 그들과는 달리 푸대 속 미지의 생물을 아랑곳 않고 밀가루와 함께 맨손으로 으깨서 반죽해버렸고, 그걸로 빵을 구워내서 문자 그대로 독요리를 만들어냈다. 돌아와서 이 모습을 본 시그문드는 장장 세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용감한 아이가 태어난 것을 기뻐하며 신표틀리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시그문드는 신표틀리가 이전의 두 조카와는 달리 확실히 볼숭족 사람들을 닮은 것 같다고 느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매가 근친상간을 저지르면서까지 볼숭다운 아이를 낳았을 거란 생각은 못했는지 그저 "시게이르의 아이인데 우릴 이렇게나 닮은건 신기하네?" 정도로만 여겼다. 그랬기에 볼숭족을 닮은 용감한 모습 뒤에 자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사악한 성품 역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신표틀리가 종종 "아~ 빨리 시게이르를 죽이고 볼숭의 원수를 갚고 싶어요!" 하며 안달내는 모습을 보고 "아무리 외가의 원수라도 그렇지 자기 친아버지를 저렇게 죽이고 싶어 하는게 맞나? 가정에 불화라도 있던건가?" 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그문드는 아직 어린 신표틀리의 마음이 모질지 못할 것을 염려해서, 둘이 함께 숲을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습격해서 죽이는 짓을 해가면서까지 냉혹한 심성을 갖추도록 조카를 훈련시킨다.
2.3. 늑대가 된 시그문드와 신표틀리
그렇게 노상강도로서 수행하던 신표틀리와 시그문드는 어느 날 숲속에서 집 한 채를 발견하고 들어간다. 집 안에는 두꺼운 황금 반지(혹은 팔찌)를 낀 남자 두 명이 잠들어 있었고, 벽에는 늑대 가죽 두 개가 걸려있었다. 이들은 어느 왕의 아들들로, 늑대로 변하는 하는 저주에 걸려서 열흘에 한 번씩만 가죽을 벗고 사람의 모습으로 지낼 수 있었으며, 시그문드와 신표틀리가 찾아간 날이 바로 그날이었던 것이다.[4]이 사실을 알았던 건지 몰랐던 건지, 신표틀리와 시그문드는 집주인들 몰래 가죽을 훔쳐서 뒤집어 썼다가 그 저주가 옮겨가서 사이좋게 늑대로 변하고 만다. 둘은 늑대로 변한 터라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컹컹대고 울부짖었을 뿐이지만, 그래도 같은 늑대라고 뜻은 통했던 건지, 시그문드는 신표틀리에게 "이왕 이렇게 된거 일단 훈련이나 계속하되, 이번에는 떨어져서 따로 다녀보자꾸나. 너나 나나 혼자서 최대 인간 일곱 명 정도는 죽일 수 있으니, 돌아다니다가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면 울음소리로 신호를 보내서 서로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삼촌이 말한 걸 꼭 기억하고 지키렴. 너의 젊음과 대담함이 인간들로 하여금 널 더 가치있는 사냥감으로 여기게 만들거라 조심해야 한단다." 라고 말했고, 두 늑대는 개별행동을 시작했다.
먼저 여덟 명의 인간과 마주친 시그문드가 신호를 보냈고, 이에 신표틀리가 달려와서 함께 적들을 해치운 뒤 둘은 다시 헤어졌다. 그러나 신표틀리는 무려 열한 명의 인간을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시그문드를 부르지 않았고, 혼자서 전부 죽여버린 뒤에 지쳐서 참나무 아래에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이 모습을 본 시그문드는 왜 약속을 어겼냐고 조카를 혼냈고, 이에 신표틀리는 "고작 열한 명 죽이는 것 가지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고 답했다. 약속을 어긴 것도 모자라 만용을 부린 신표틀리에게 화가 난 시그문드는, 조카에게 달려들어 모가지를 물어뜯어서 빈사상태로 만든다.[5] 시그문드는 쓰러진 신표틀리를 늑대의 몸으로 어떻게든 재주껏 들쳐 업고선 집으로 돌아왔고,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늑대 가죽을 원망하며 이딴건 트롤이나 가져가버리라고 저주했다.
며칠 뒤 시그문드는 족제비 두 마리가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됐는데, 한 쪽이 다른 쪽을 쓰러트린 뒤에 어떤 덤불로 달려가더니 이파리 한 장을 따와서 쓰러진 쪽의 상처에 댔다. 그러자 쓰러진 쪽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히 나아서 다시 팔팔해지는게 아닌가. 이 모습을 본 시그문드는 같은 이파리를 따와서 신표틀리의 상처 위에 가져다 댔는데, 다행히 치료가 잘 들은 건지 아까의 족제비처럼 신표틀리의 상처도 깨끗하게 아물었다. 둘은 이 헤프닝을 통해 일종의 교훈을 얻은 건지, 수련이고 뭐고 집어치운 뒤 열흘을 채울 동안 집에 틀어박혀서 얌전히 지냈다. 저주에 걸린지 열흘 째 되던 날,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둘은 저주받은 늑대 가죽을 불에 태우며 다시는 누구도 이런 고약한 마법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빌었다.
2.4. 복수
얼마 지나지 않아 신표틀리와 시그문드가 저지른 일들이 시게이르의 왕국을 들썩이게 만들었으니[6]신표틀리가 떠나있던 사이 시그뉘는 시게이르의 아이를 두 명 더 낳았는데, 이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가 바닥에 떨어트린 금반지가 하필 신표틀리와 시그문드가 숨어있던 술통 쪽으로 굴러가버렸다. 반지를 주으러 간 아이들은 웬 낮선 사람들이 숨어있는 걸 보고 놀라서 이를 시게이르에게 일러바쳐버렸고, 성 안에 침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게이르는 경계를 강화한다. 이에 시그뉘는 자신들의 계획에 차질을 가져온 아이들을 데리고, 숨어있던 형제와 아들에게 가서 "이 아이들이 우릴 배신했으니 죽여야 해!" 하며 처분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시그문드는 계속되는 조카 살해에 지친건지, 아니면 의미없는 살인이라 여긴건지 고작 그런 이유로 조카들을 죽일 순 없다고 거부한다. 그런데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신표틀리가 외삼촌 대신 칼을 뽑아들어서 동생들을 죽여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시체를 끌고 알현실로 들어가서 시게이르의 발치에 집어 던져버렸다.
분노한 시게이르는 병사들을 불러서 침입자들을 생포하라 명했고, 신표틀리와 시그문드는 용맹하게 싸웠지만 물량공세에 밀려서 결국 붙잡힌 뒤 돌무덤 안에 생매장 당한다.[7] 그러나 시그뉘가 하인을 시켜서 몰래 넣어준 베이컨 뭉치 안에, 오래 전 시그뉘와 시게이르의 결혼식에서 오딘이 바른스토크에 꽂아넣고 간 그 명검이 동봉돼있었고, 이 검으로 신표틀리와 시그문드는 돌무덤을 부수고 탈출한다.
탈출한 둘은 다시 돌아가서 시게이르를 포함한 모두가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성에 불을 질렀고, 자다가 봉변을 당한 시게이르 일가는 꼼짝없이 타죽게 됐다. 시그문드는 시게이르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정체를 드러내서 볼숭족이 아직 살아있고, 시게이르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는) 신표틀리조차 아버지를 등지고 외가를 도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시그뉘를 데리고 셋이서 함께 고향인 후날란드 왕국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시그뉘는 그 자리에서 마침내 신표틀리는 사실 시그문드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고백했고, 친자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서 근친상간까지 저지르는 등 복수 하나만을 보고 너무 많은 일들을 저질러왔는데, 이제 그 목표를 완수했으니 자신도 죽음으로 속죄해야 한다고 말한 뒤, 마지막으로 형제와 아들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남기고 불타는 성에 남아서 생을 마감한다.
2.5. 신표틀리와 동생 헬기
길고 긴[8] 복수를 마치고 후날란드로 돌아온 부자는, 볼숭족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대신 왕노릇을 하고 있던 남자를 쫓아내고 다시 왕국을 차지했다. 이후 시그문드는 보르그힐드라는 여인을 왕비로 맞았고, 이로인해 신표틀리는 헬기와 하문드라는 배다른 동생들을 얻었다. 이전에 자신이 죽인 동생들과는 달리 원수의 자식들이 아니라 그런지, 신표틀리는 특히 헬기와 많이 친해져서 동생이 열다섯 살이 돼서 본격적으로 모험길에 오르자 그를 따라가서 같이 군대를 지휘하며 우애를 드러냈다.어느날 헬기는 시그룬이라는 발키리를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시그룬은 아버지의 강요로 그란마르 왕의 아들 호드브로드(Hǫðbroddr)와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했고, 헬기는 그런 시그룬을 도와줄 겸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호드브로드를 토벌하러 가기로 했고 신표틀리도 동행한다. 거기서 신표틀리는 호드브로드의 형제[9]를 만나서 모욕 주고받기 게임[10]을 한판 뜬다.
신표틀리 "가서 돼지와 개에게 먹이를 주고 아내에게 달려가서 볼숭족이 여기 왔다고 알려라. 호드브로드가 원한다면 이 군세 속에서 헬기 왕과 마주할지니. 네가 불가에 앉아서 하녀들을 희롱하는 동안, 내 동생은 용감하게 싸우며 명예를 얻고 있을테지."
호드브로드의 형제 "말재주가 떨어져서 뭐든 천박하게만 표현하고, 사실이 아닌 거짓말로 귀하신 몸을 음해하는구나. 야생에서 늑대나 먹을 법한 고기들을 주워먹고, 자신의 형제들을 죽였으며, 싸늘하게 식은 시체에서 피를 빨아먹으면서 연명하던 놈이 이제는 선하고 정의로운 이들과 어울리려 하다니 참 뻔뻔하기 짝이 없구나."
신표틀리 "너. 바린의 섬(Varinsey)[11]에서 여자로 변신해서 나한테 남편이 돼달라고 애원한 그놈이지? 그리고 다음 번에 만났을 땐 발키리가 돼있던데, 아스가르드에 있는 전사들은 다 네놈이 수집한거렸다?
제수 될 사람이 발키리인데 내가 네 요청을 듣고 낮은 곶(Láganes)에서 널 임신시켜서 새끼 늑대 아홉 마리를 낳게 했었지."
호드브로드의 형제 "거짓말은 참 잘 하는구나. 토르의 곶(Þrasnes)[12]에서 어느 요툰의 딸들에게 거세당한 주제에 누굴 임신시켰다고? 그리고 너, 시게이르 왕의 양아들아, 숲에서 늑대들과 살면서 세상에 만연한 온갖 불행을 몰고 다녔지. 자기 동생들을 죽여서 네 스스로 악명을 쌓지 않았더냐?"
신표틀리 "너, 네가 종마 그라니[13]의 암말 노릇을 하던 시절을 기억하느냐? 내가 널 타고 브러벨리르(Brávellir)[14]를 질주한 일을 기억하느냐? 그 이후에는 요툰 골니르(Golnir) 밑에서 염소나 치면서 살지 않았더냐?"
호드브로드의 형제 "너랑 계속 말을 섞느니 차라리 큰까마귀들에게 네 시체를 먹이는게 낫겠구나!"
호드브로드의 형제 "말재주가 떨어져서 뭐든 천박하게만 표현하고, 사실이 아닌 거짓말로 귀하신 몸을 음해하는구나. 야생에서 늑대나 먹을 법한 고기들을 주워먹고, 자신의 형제들을 죽였으며, 싸늘하게 식은 시체에서 피를 빨아먹으면서 연명하던 놈이 이제는 선하고 정의로운 이들과 어울리려 하다니 참 뻔뻔하기 짝이 없구나."
신표틀리 "너. 바린의 섬(Varinsey)[11]에서 여자로 변신해서 나한테 남편이 돼달라고 애원한 그놈이지? 그리고 다음 번에 만났을 땐 발키리가 돼있던데, 아스가르드에 있는 전사들은 다 네놈이 수집한거렸다?
호드브로드의 형제 "거짓말은 참 잘 하는구나. 토르의 곶(Þrasnes)[12]에서 어느 요툰의 딸들에게 거세당한 주제에 누굴 임신시켰다고? 그리고 너, 시게이르 왕의 양아들아, 숲에서 늑대들과 살면서 세상에 만연한 온갖 불행을 몰고 다녔지. 자기 동생들을 죽여서 네 스스로 악명을 쌓지 않았더냐?"
신표틀리 "너, 네가 종마 그라니[13]의 암말 노릇을 하던 시절을 기억하느냐? 내가 널 타고 브러벨리르(Brávellir)[14]를 질주한 일을 기억하느냐? 그 이후에는 요툰 골니르(Golnir) 밑에서 염소나 치면서 살지 않았더냐?"
호드브로드의 형제 "너랑 계속 말을 섞느니 차라리 큰까마귀들에게 네 시체를 먹이는게 낫겠구나!"
신표틀리가 근거 없는 모함에 기반한 조롱을 하는 반면, 호드브로드의 형제는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 비난을 하고 있다. 하지만 플라이팅에서는 누가 더 현학적으로 조롱하는지를 제일 중요하게 여겼으며, 따라서 말재주만 된다면 허구적인 조롱을 하는 것도 용납됐다. 게다가 호드브로드의 형제 쪽이 먼저 관둔지라 따지자면 신표틀리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표틀리의 비난이 좀 뇌절이었는지, 동생 헬기조차 "듣는 사람도 부끄러워질 말들을 주고받는 것 보다는 전사답게 싸우는게 더 훌륭하고 더 현명하지 않겠습니까? 그란마르의 아들들이 내 친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은 강인한 전사란 말입니다." 하며 슬쩍 면박을 준다. 어쨌거나 그들은 호드브로드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했고 헬기는 시그룬과 맺어진다. 신표틀리는 이후에도 모험을 하며 전사로서 명성을 떨친다.
2.6. 최후
전사로서 승승장구하던 신표틀리는 모험을 떠났다가 어떤 아름다운 여인과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새어머니 보르그힐드의 형제[15] 역시 그 여인을 사랑하고 있었고, 양보할 생각이 없었던 둘은 결투로 승부를 보기로 한다. 그러나 결투 도중 신표틀리는 보르그힐드의 형제를 죽여버리고 말았고, 이를 알게된 보르그힐드는 분노하여 시그문드에게 달려가서 가족을 죽인 신표틀리를 무법자로 낙인찍어서 추방하라고 요구한다. 이에 시그문드는 형제의 목숨값을 자신이 배상하겠으니 노여움을 풀라고 아내를 달랬고, 신표틀리의 몰락을 원했던 보르그힐드는 실망했지만 일단은 가만히 배상금을 받아들인다.시그문드는 보르그힐드를 위해 처남의 장례식을 호화롭게 치렀으나, 보르그힐드는 장례식이 끝난 후에 열린 연회에서 신표틀리를 독살하기로 마음 먹는다. 보르그힐드는 신표틀리를 향한 앙금을 전부 털어버린 척 뿔잔에 독주를 담아서 그에게 건낸다. 잔을 받아든 신표틀리는 술이 맑지 않고 탁한 것을 보고 시그문드에게 이를 알렸고, 해로운 물질을 마셔도 끄떡 없었던 시그문드는 그 탁한 술을 대신 마셔준다. 이 모습을 본 보르그힐드는 "왜 내가 준 술을 아버지가 대신 마시게 하는 거니?" 라고 신표틀리를 타박하며 다시 한번 그에게 술잔을 건냈다. 술잔을 받아든 신표틀리는 또다시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닫고 시그문드에게 "아버지, 제 술잔에 부정한 무언가가 섞인 것 같습니다!" 하고 알렸고, 이번에도 시그문드는 술을 대신 마셔준다.
이에 보르그힐드는 세 번째로 신표틀리에게 술잔을 건내면서 "네게 볼숭족 다운 배짱이 있다면 이 술을 다 마셔보거라!" 하고 압박했고, 신표틀리는 이번에야말로 술에 확실히 맹독이 섞였다는 것을 눈치챘으나, 시그문드는 너무 취한 탓에 이번에는 대신 마셔줄 수 없었다. 시그문드는 "아들아, 마시는 척 하고 수염을 따라 흘려보내렴!"[16] 하고 조언했으나, 신표틀리는 이를 따르다가 실수한 건지 결국 술을 마시고 독살당한다.
신표틀리가 죽자 시그문드는 슬퍼하며 아들의 시체를 들쳐안고 숲을 떠돌며 방황하다가 피오르에 다다른다. 피오르의 강가에는 나룻배 한 척과 늙은 뱃사공이 있었고, 시그문드는 뱃사공에게 건너편에 가려고 하니 배를 태워달라고 부탁했지만, 뱃사공은 배가 작아서 시그문드와 신표틀리의 시신을 전부 태울수 없으니 한 번에 한 명만 타라고 요구한다. 시그문드는 먼저 신표틀리의 시신을 나룻배에 눕혀놓고 뒤로 물러났고, 뱃사공은 천천히 배를 몰고 강을 건너는 듯 싶더니 갑자기 시그문드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뱃사공은 바로 변장한 오딘이었으며, 손수 신표틀리를 발할라로 승천시켜주려고 시그문드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17]
다시 왕국으로 돌아간 시그문드는 신표틀리를 독살한 보르그힐드를 내쫓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르그힐드는 죽었다고 한다.
3. 대중문화에서
-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의 주인공 지크프리트는 시구르드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지만, 지크문트(시그문드)와 지클린데(시그니)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났다는 설정은 신표틀리에게서 따온 듯 하다.
[1]
축복 받으며 태어나서 고귀하게 교육받은 헬기는 물론이고, 시구르드도 대부
레긴에게서 귀족이 갖춰야 할 교양을 배웠다. 열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무정한 마음을 갖추기 위해 노상강도질 부터 배워야했던 신표틀리와는 천지차이다.
[2]
자세한 배경은
볼숭,
그람,
시그문드를 참고하자.
[3]
혹은 입고 있던 옷, 장갑, 가죽조각 등 번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나지만 어쨌든 바느질감인 것은 동일하다.
[4]
번역자에 따라 저주의 희생자가 아니라 자유롭게 마법을 써서 짐승의 모습으로 다니다가, 열흘에 한 번씩만 사람으로 돌아와서 지내는 것이라고도 한다.
[5]
몸만 늑대로 변한게 아니라 정신까지 야성에 물든 바람에 인간일 때와는 달리 폭력성을 억누르지 못해서 과하게 체벌한 듯 하다.
[6]
특히 늑대로 변해서 인간들을 사냥하고 다녔던게 컸다고 한다.
[7]
시게이르가 둘을 최대한 느리고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어해서 즉결처형은 면했다.
[8]
시그니의 장남과 차남의 터울이 크지 않았다면 약 30년 가량, 장남이 죽은 뒤 차남이 태어났다면 거의 40년에 가까운 세월이다.
[9]
고 에다에서는 구드문드르(Guðmundr), 볼숭 사가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딴 그란마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10]
플라이팅(Flyting)으로 잘 알려져있으며
노르드어로는
로카센나로 익숙한 Senna가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11]
게르만족의 일파였던 바리니족(Warini, Varini)이 살던 곳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2]
혹은 다툼의 곶.
[13]
훗날 또다른 배다른 동생 시구르드의 애마가 된다.
[14]
이후에
시구르드 링과 전쟁이빨 하랄의 대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15]
볼숭 일족의 사가에서는 이름 없이 보르그힐드의 형제라고만 부른다. 고 에다의 산문 "신표틀리의 죽음에 대하여"(Frá dauða Sinfjötla)에서는 이 형제의 이름이 전부 공백으로 처리돼있으며("보르그힐드에게는 XXXX라는 이름의 형제가 있었다."), 후대의 번역자들은 그의 이름을 임의로 흐로아르(Hroar), 군나르(Gunnar), 보르가르(Borgar)로 칭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번역한 고 에다에는 이 형제의 이름이 보르가르로 기록돼있다.
[16]
혹은 수염으로 술에 담긴 독을 여과해서 마시라는 쪽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17]
싸우다 죽은게 아니라 독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발할라로 간 희귀한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