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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rfix]
1. 개요
쉐보레 콜벳의 1세대 모델이다.2. 상세
1세대 콜뱃은 당시 GM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할리 얼의 작품이다. 할리 얼은 네모난 상자를 붙여 놓은 것 같은 투박한 디자인에서 벗어나 차체를 더 길고, 낮고, 넓게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콜벳에도 그의 디자인 철학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1952년 EX-122 컨셉카로 처음 등장하고 1953년 처음 나온 1세대를 의미하는 'C1'으로 불리는 차에 장착된 2단 자동변속기가 있었고, 1955년 3단 수동변속기가 옵션으로 추가되었다. 당시 코너링 성능은 악몽급이라 불만이 꽤 제기되었다.[1] 출력도 1953년식 초기 6기통 모델은 150마력에 불과했으나, 1955년식 모델에는 쉐보레의 첫 195마력 V8 엔진이 추가되었다.[2] 이후 1957년에는 200마력 이상의 고출력 V8 엔진도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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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형 |
콜뱃은 첫해만 수작업으로 제작되고 1954년부터 공장에서 생산되었다[3]. 이 때부터 차체 색상을 선택할 수 있었다. 1953년에는 폴로 화이트 색상만 생산되었지만, 1954년에 페넌트 블루, 스포츠맨 레드, 블랙, 이렇게 4가지 색상이 추가되었다. 그중 폴로 화이트가 가장 많았고 블랙은 겨우 4대뿐이였다.
돌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헤드램프 앞에 철망이 달려 있다. 하지만 잘 닦인 도로에서는 그저 장식에 불과했다.
그리고 같은 1세대 콜벳이라고 해도 매해 부분 변경이 잦았고, 1958년에는 대대적인 리스타일링을 거치면서 1958년 이전 모델과 이후 모델의 외형이 판이하게 다르다.
C1 콜벳은 현역 당시 70,000대 이상 판매되었으나, 시간이 많이 지난 현재는 고작 250대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특히, 1953년식 초창기 콜벳은 출시 당시에도 고작 300대밖에 생산이 안 되었으며 이는 현 세대의 하이퍼카라고도 불릴 수 있는 맥라렌 P1 등의 생산량보다도 적은 숫자이다. 연식마저도 이제 60년이 넘어가서 굉장히 오래되었으니 중고가는 말할 것도 없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또한, 1955년식 역시 총 700대밖에 생산이 되지 않았다.
톱 모델 켄달 제너가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구입한 차량이다. 차량 가격은 2017년 기준 약 10만 달러.(1956~57년식)
드라마 루시퍼의 주인공인 루시퍼 모닝스타(루시퍼)퍼루시퍼 모닝스타가 작중에서 1962년식을 타고 다닌다.
1950년대 베스트셀러 차종이기 때문에 당시의 고전 일본 애니메이션에는 꽤 자주 나온다. 에이트맨처럼 주인공이 타고 다니기도 하고, 철인 28호(글리코 극장 시절) 오프닝에는 갱단들이 타고 다니는 차량이다.
3. 파생 모델
3.1. 스칼리예티(Scaglietti) 콜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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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텍사스의 유정 시추업자 게리 러플린(Gary Laughlin)이 콜벳 같은 미국 차의 섀시와 엔진 부품을 사용하여 이탈리아의 디자인 특성을 가진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서 자동차 제작자 짐 홀(Jim Hall)과, 그와 친한 친구였던 레이스 카 드라이버 캐롤 셸비가 협업하여 제작한 차량. 셸비는 프로젝트의 엔지니어링을 도왔고, 각각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콜벳을 받게 되었다. 3명은 콜벳 섀시 3대를 생산 라인에서 받아낸 후, 이탈리아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주로 모여있는 모데나로 운송하기 위해 준비했다. 그러는 와중에 로드 & 트랙의 기자였던 피트 콜트린(Pete Coltrin)의 도움을 받아 당시 페라리 양산 차 디자인을 작업하는 곳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코치 빌더인 카로체리아 스칼리예티의 설립자, 세르지오 스칼리예티(Sergio Scaglietti)와 가까스로 연락을 취해 콜벳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당시 보도에 따르면 엔초 페라리가 스칼리예티의 콜벳 프로젝트를 알게 된 후, 스칼리예티와의 페라리 파트너십을 취소하겠다고 위협하자 스칼리예티는 비밀리에 새로운 경량 알루미늄 차체를 만들어 각 차에 장착하기로 동의했다고 한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스칼리예티 콜벳의 무게는 그 당시 생산된 다른 콜벳보다 약 181 kg 더 적었다.
조립된 세 대의 차량은 각 소유자마다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러플린을 위한 1호차는 빨간색으로 마무리되었으며 기존의 전면 콜벳 그릴을 사용하기 위해 약간 다른 차체를 사용했다. 초기 구성은 315 hp의 283 큐빅 인치(약 4.6L) V8 엔진에 배럴 4개의 카뷰레터가 장착되어 있었으며, 2단 자동 변속기와 결합되었다. 홀이 주문했던 2호차는 파란색으로 마감되었으며 이 모델은 페라리 250 GT 베를리네타 LWB와 비슷한 차체에 러플린의 1호차와 동일한 카뷰레터 V8 엔진과 자동변속기가 탑재되었다. 셸비의 3호차는 러플린의 1호차처럼 빨간색이었으며 2호차와 비슷한 방식으로 차체가 다소 독특했다. 연료 분사 시스템과 보그-워너 4단 수동 변속기가 장착된 유일한 모델이다. 콜벳 프로젝트의 다른 두 명과는 다르게, 셸비는 그가 주문한 콜벳이 목적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끝내 차를 인도받지 않았다.
스칼리예티 콜벳에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1959년에 구상되었지만 최종적으로 1961년까지 완성되지 못했고, 그 무렵 비교적 훨씬 가벼웠던 알루미늄 차체는 콜벳의 섀시에 극적인 영향을 미쳐 고속에서 차체 전면이 들려지는 현상이 일어났고 제너럴 모터스와 엔초 페라리의 생산 중단에 대한 법적인 압력으로 인해 스칼리예티 콜벳 프로젝트는 단지 컨셉트로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짐 홀과 캐롤 셸비는 프로젝트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더 나아갔는데, 홀은 쉐보레 엔진을 공급받아 1963년에 채퍼럴 레이싱 팀을 설립하였고, 셸비는 AC 에이스에 V8 엔진과 오버 휀더를 붙여 유럽계 미국산 스포츠카인 AC 코브라를 탄생시키는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4. 제원[4]
제조국가 및 제조사 |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시, 쉐보레 |
트림 | |
최초생산년도 | 1953년 |
차량가격 | |
엔진 | |
엔진형식 | 직렬 6기통, V8[5] |
배기량 | 3,851cc |
압축비 | |
연료 | |
최고출력 | 150마력 |
최고토크 | |
미션형식 | 2단 자동변속기, 3단 수동변속기[6] |
구동방식 | |
전륜타이어 | |
후륜타이어 | |
전륜 서스펜션 | |
후륜 서스펜션 | |
전륜 브레이크 | |
후륜 브레이크 | |
0→100km/h | 11초 |
0→200km/h | |
0→300km/h | |
최고속도 | 172km/h |
연료탱크 용량 | L |
연비 | |
탄소 배출량 | |
승차인원 | 2인승 |
전장 | mm |
전폭 | |
전고 | |
축거 | |
건조중량 (Dry Weight) | 1,293kg |
트렁크 용량 | |
생산모델 |
5. 둘러보기
[1]
콜벳이 특이한 것은 아니고, 당시에는 다른 스포츠카들도 코너링 성능이 나빴던 경우가 꽤 많았다.
[2]
240km/h를 찍은 최초의 미국 자동차가 되었다.
[3]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최초의
유리섬유 자동차이다.
[4]
1954년식 기준
[5]
1955년
[6]
195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