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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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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중학교
崇實中學校
SOONGSIL MIDDLE SCHOOL
파일:숭실중학교 로고.png
<colbgcolor=#122A4A> 교훈 참과 사랑에 사는 사명인
개교 1897년 10월 10일 숭실학당
유형 일반계 중학교
성별 남자중학교
형태 사립학교
학교법인 학교법인 숭실학원
교목 은행나무
교화 개나리
교장 한태영
교감 이규현
학생 수 350명[기준]
교직원 수 34명[기준]
관할 교육청 서울특별시서부교육지원청
주소 서울특별시 은평구 은평터널로7길 6 ( 신사동)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학교 연혁3. 교훈 및 상징
3.1. 교가
3.1.1. 제 1교가3.1.2. 제 2교가
4. 학교 생활
4.1. 주요 행사
4.1.1. 인성함양축제4.1.2. 구기대회4.1.3. 찬송가찬양페스티벌4.1.4. 개교기념예배4.1.5. 어울마당4.1.6. 성경경시대회
5. 학교 시설
5.1. 신관5.2. 구관
6. 출신 인물7. 기타

[clearfix]
파일:숭실고 전경.jpg
숭실중학교 전경

1. 개요

서울특별시 은평구 신사2동에 위치한 사립 남자중학교로, 개신교 미션스쿨이다. 1897년에 개교하여 대한민국의 중학교 중에서는 역사가 매우 긴 편이다.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위치한 숭실대학교와는 이름이 같고 본래 학교가 세워질 때는 같은 재단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나 모종의 사건들로 재단이 분리되었다.[3]

2. 학교 연혁

은평구가 대체로 청소년 인구 수가 많은 편이기 때문에, 학급 수와 학생 수가 타 지역에 비해서 많다. 하지만 남자중학교라는 특성으로 인해 주변 초등학교의 여자 학생들이 인근 학교인 상신중학교에 오는 일이 발생한다. 각 학년당 6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들 대부분은 은평구에 거주하고 있으며, 일부 마포구 강서구, 경기도 고양시[4] 서대문구, 종로구에 거주하는 학생들도 통학한다.
  • 1897.10.10. : 미국 장로회 선교사 배위량박사가 평양 신양리 26번지 사택에서 13명의 학생으로 개교.
  • 1901.10.25. : 평양학교 신양리 39번지에 2층 한옥 교사를 완공하고 학교를 이전함. 기숙사 2개동(24개실) 신축. 진실을 숭상하는 학당이라는 뜻에서 교명을 숭실학당(崇實學堂, The Venerate Truth School)으로 정함.
  • 1902.10.01. : 근로장학사업을 위한 기계창인 안나공업소를 완공하고 목공실, 인쇄실, 철공실, 주물실을 설치함.
  • 1904.05.15. : 제1회 졸업생 차이석(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최광옥,(애국지사·국어학자), 노경오(교육자) 3명을 배출함.
  • 1910.: 제1교가를 만듦.
  • 1911.04.04. : 숭실 축구부를 창단함.
  • 1915.03.01. : 조선총독부가 「사립학교교칙」을 제정하여 성경과목을 교수하지 못하게 하였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 고등보통학교’ 인가를 거부하고 숭실학교로 존속함.
  • 1915.04.01. : 제2대 교장에 라이너(R. O. Reine 라도래) 박사 취임
  • 1918.04.01. : 제3대 교장에 마펫(S. A. Moffett 마포삼열) 박사[5] 취임
  • 1919.02.28. : 서울에서 밀송한 기미독립선언서를 본교 기계창에서 3,000매 인쇄하여 평양 시위 군중에게 배포
  • 1922.10.10. : 문예지 「숭실활천」 창간
  • 1928.05.23. : '지정학교'로 학력을 인정받음.
  • 1929.05.09. : 제4대 교장 맥큔(G. S. McCune 윤산온) 박사 취임[6]
  • 1930.10.10. : 6천 명 수용 대강당 신축
  • 1936.03.05. : 신사참배 거부로 맥큔 교장이 해임 추방되고 제 5대 교장에 한국인 정두현 선생 취임
  • 1938.03.19. : 신사참배 거부로 강제 폐교[7]
  • 1948.09.15. : 공산 치하에서 남하, 서울시 성동구 신당동 340-24(동양척식회사 건물)에서 재건
  • 1954.04.01. :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2가 일대 약 2천평을 대지에 가교사를 지어 이전
  • 1956.10.10. : 본관(석조2층, 530평) 준공
  • 1965.04.01. : 숭실합창단 창단
  • 1968.10.10. : 숭실 건학 이념에 입각하여 교훈을 '참과 사랑에 사는 사명인'으로 정함.
  • 1972.09.20. : 서울특별시 은평구 신사동 산93의 11호의 대지 11,222평과 건물(60평, 12개 교실) 매입
  • 1975.02.10. : 서울특별시 은평구 신사동으로 고등학교 교사(지하1층, 지상5층, 총 1,944평)를 신축 이전해 입교
  • 1979.02.28. : 중학교 교사(지하1층, 지상5층, 총 1,380평) 완공
  • 1982.05.03. : 도서관(3층, 건평 558평, 860석) 개관
  • 1983.10.10. : 제2교가 제정
  • 1986.09.17. : 「숭실학원헌장」 제정·공포
  • 1997.09.19. : 「숭실 100주년 기념관」(건평 1,730평, 2700석) 봉헌
  • 1997.10.10. : 개교 100주년 기념식 거행
  • 1997.11.15. : 「숭실 100년사」 편찬
  • 2002.12.20. : 종합교육관 준공
  • 2004.02.14. : 정보도서관 개관 (장서 32,000권)
  • 2005.02.17. : 숭실사이버스쿨 개강
  • 2006.02.14. : 숭실중학교 신축교사 입실 예배
  • 2007.10.10. : 개교 110주년 기념식 거행
  • 2007.02.17. : 개교 110주년 기념 연구 논문 발표
  • 2009.03.12. : 인조잔디 운동장 완공 예배
  • 2019.12.11. : 급식실 및 체육관동 준공

3. 교훈 및 상징

교훈: 참과 사랑에 사는 사명인
숭실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소명자로서, 진리와 성실과 사랑을 실천하는 사명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명인이다.

교화는 개나리이며, 교목은 은행나무이다.
파일:숭실중고등학교.jpg
학교 교표

3.1. 교가

숭실중학교 교가는 2개이다.

3.1.1. 제 1교가

원곡은 미국 남북 전쟁 때 북군의 군가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찬송가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가 된 Battle Hymn of the Republic이다. 3년간 이 교가를 부를 일은 입학식, 졸업식, 방학식 5번이다. 나머지 행사에서는 제 2교가를 사용한다.

다만, 제1교가를 부를 때에도, 1절부터가 아닌 4절만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절 가사 앞부분이, " 모란봉이 달아오다 돌아앉으며, 대동강수 흘러내려 감도는 곳에, 백운간에 솟아있는 층층한 집은 합성숭실학교"로 시작한다. 숭실고등학교가 처음 세워진 곳이 평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할게 없지만...

4절은 지역색이 없다. 다만, 종교색이 약간 느껴진다. "신기하다 우리학교 생긴 연원은 만세반석 열린 곳에 터가 되었고, 그 속에서 솟아나는 생명샘물이 사해에 퍼지네."

3.1.2. 제 2교가

1교가과 비교하여 최근에 만들어진 교가이다. '가고파'의 작곡가로 잘 알려진 김동진이 작곡했다.

4. 학교 생활

4.1. 주요 행사

4.1.1. 인성함양축제

미션스쿨인 만큼 4월 중순에 이틀간 5,6교시에 예배 비슷이 한다. 찬송가를 7~8곡 정도 부르고 목사가 설교를 한다.

4.1.2. 구기대회

5월 중순 즈음에 반별 대항으로 토너먼트 방식을 사용해서 축구, 농구를 진행한다. 우승, 준우승이 상금을 받고 학년별로 진행한다. 하는 애들만 해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대충 이때 반티를 운동 유니폼으로 맞춘다. 다른 반들이 먼저 맞출 경우에는 똑같은 유니폼이 돼서 맞추지 못할 경우가 생기므로 최대한 빨리 맞추는 것이 좋다.

4.1.3. 찬송가찬양페스티벌

이 역시 미션스쿨이라서 진행하는 행사다. 7월 즈음 한다. 반별로 원하는 찬송가를 연습해 합창으로 부른다. 보통 3등까지 상을 줬으나 2023년 기준으로 등수 상관 없이 모두에게 상을 준다.

4.1.4. 개교기념예배

10월 10일이 개교기념일인데 5년마다가 아닌 경우는 8일 아니면 그 전주 금요일에 한다. 오전에 아침 예배 이후 간식을 먹는다. 5년마다인 경우는 100주년 기념관에 가서 예배를 한다.

4.1.5. 어울마당

10월 중순에 진행한다. 사제동행 축구, 학생회 부모들이 준비한 먹거리 장터, 학생회 주최 이벤트 등을 진행한다. 수업은 안 하고 점심도 맛있는 편이다.

4.1.6. 성경경시대회

11월 즈음에 진행한다. 이 행사 역시 미션스쿨다운 행사다. 성경 일부를 범위로 해서 시험 친다. 딱히 어디 성적이 들어가진 않지만 반별로 시상한다.

5. 학교 시설

상대적으로 타 중학교에 비해 매우 넓고 크다. 축구장의 크기가 FIFA규격에 맞는다. 운동장에는 인조 잔디가 깔려있으며 FIFA규격의 축구장을 제외하고도 농구장이 좌우로 몇개씩 있다. 심지어는 고등학교라 놀림받는 서강대학교보다 부지가 클 것이라는 농담도 돌 정도이다.

5.1. 신관

고등학교 건물 옆에 나란히 붙어있는 비교적 새 건물. 1층부터 7층까지 있으며, 고등학교와 나란한 입구로 들어가면 4층으로 가게 된다. 1층에는 급식실, 2층에는 도서실, 3층에는 보건실과 상담실, 4층에는 3학년 교실과 교장실, 행정실, 5층에는 교목실과 진로상담실 2, 3학년 교실, 6층에는 2학년 교실과 교무실, 방송실, 7층에는 교직원식당과 1학년 교실이 위치해 있다.[8] 7층 위로는 옥상이 있는데, 주로 교과서들을 모아놓는 창고이다. 1, 2, 3층은 나머지 층과 다르게 교실이 있어야 할 공간이 다 막혀있다. 그리고 1, 2층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있는데 엘리베이터에는 M층이라는 버튼이 사이에 있는 데 이는 처음 공사할 때 급식실(주방)을 지을 때 천장을 높게 지어야 돼서 천장 건축을 위해 만든 층이라고 한다.[9]새로 도색을 하여 생각보다 시설이 좋아졌다. 그 이후, 2층, 3층에 새로운 운동시설을 만들었다.[10] 농구장쪽으로 가면 주차장이 보이는데 그쪽으로 쭉 돌아가면 중학교 급식실이 나온다.[11]

5.2. 구관

학교의 지하에 있다. 하지만, 엄연히 말하면 이곳도 지상이다. 학교 자체가 복층구조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통 지상의 높이가 1층으로 시작하여 중, 고등학교 운동장이 구관의 옥상에 있는 구조이다. 2006년 중학교 신관이 완공되기 이전에 숭실중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체육시간이면, 건물 위에 있는 운동장으로 가는 추억(?)을 가지고 있다.[12]

1층의 숭실교회 예배당으로 시작하여 음악실과 관현악실, 축구부 관련 시설이 있기 때문에 관현악단과 축구부들이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베아오페라예술대학이 있다.[13]

6. 출신 인물

7. 기타

  • 특이하게도 교복이 없다. 덕분에 모든 학생들이 사복을 입고 학교 생활을 한다. 심지어 체육복도 규격이 아니다. 교복이 없는 이유는 교복은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폐지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교복을 없앤것은 1980년대 타 중고등학교도 대부분 해당되는 사항이었지만,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교복 재도입이 유행을 타면서, 교복을 다시 착용하게 되었고, 2010년대에 생활복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음에도 여전히 정장형 교복이 형식적으로 남아있는데 반해, 숭실고와 숭실중에서는 흐름에 동참하지 않아서 특색있는 학교가 된것이다.
  • 학교 언덕이 심각하게 높다. 그것도 높은 언덕이 하나도 아니고 2개나 있어서, 접근성이 정말 좋지 않은 편이다. 우선 7715번이나 7212번 버스 정류장이 있는 GS25 편의점 앞에서 가파른 경사를 진 긴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단, 마을버스는 언덕 위, 교문 바로 앞까지 올라간다. 또 교문에서 다시 좀 더 작은 규모의 언덕을 올라야 고등학교 건물에 도착할 수 있고, 중학교 건물은 옆으로 걸어야 한다. 심지어 예배를 보는 날에는 언덕을 하나 더 올라야 한다. 올라갈수록 경사가 급하고 워낙 힘들어서 기억에 강하게 남다 보니 학생들은 '숭실언덕' 혹은 '골고다언덕'[19]이라고 부르며[20] 자전거 통학의 경우, 자전거 거치대가 교문으로부터 50~70m씩이나 떨어져 있다. 겨울철에는 폭설이 내려 언덕길이 얼면 어떤 차량도 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2011년 1월 경에는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언덕길 전체가 얼어 급식차가 올라오지 못해 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할 수 없게 되자, 결국 학교 측에서는 단축수업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경우가 있다.[21] 은평10번 마을버스의 종점이 숭실고 정문 앞인데, 폭설이 올 경우 숭실고 입구 정류장에서 회차할 것으로 보인다.
  • 학교괴담이 존재한다. 일단 학교부지가 과거 공동묘지였고[22],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 미스테리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학교 뒷산(비단산)이 조선시대 기생 무덤터여서 자는 학생들을 괴롭힌다는 전설이 있다.[23][24] 전산을 뒤에 끼고 있고 언덕 위에 있는 학교라 늦은 밤 풍경이 을씨년스러워서 그 괴담의 공포는 배가된다.[25] 운동부 학생들 중 한 명이 현재 백주년 기념관이 위치한 공사부지에서 숨졌다는 괴담이 있는데, 사실 뒷산 꼭대기에 올라 오른쪽으로 가면 산동네, 왼쪽으로 가서 산을 조금만 걸으면 상신초등학교 후문 바로 옆에 있는 등산길로 내려올 수 있지만, 그 등산길로 통학할 수는 없다. 정문으로 등교해야 하기 때문에, 산길이 아닌 포장도로를 1km 이상 돌아서 가야 한다. [26]
  • 은평터널로 9길에서 학교건물까지는 직선거리로 100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학교측에서는 정문으로 등교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거주하고 있는 은평터널로 9길, 11길, 13길, 가좌로 11길(신사동 200번지, 237번지) 등에서는 등교를 할 때 최소 1km 정도를 돌아간다. 그것도, 그 악명 높은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
  • 대부분의 학생들은 구산역에서 7715 혹은 응암역에서 7212번 버스를 타고 학교 앞에서 내려 걸어올라오거나, 새절역에서 7017로 환승해 상신중에서 걸어간다. 2016년 3월 7일부터 마을버스 은평10번이 3대로 운행을 시작하면서 새절역에서 숭실중•고교 바로 가게 되어 학생들의 고생이 조금 나아졌다만 새절역에서 걸어가는 인원+기존에 7017을 타던 인원이 합쳐지면 임시차라도 끌어와야 될 판. 10~15분 간격으로는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출•퇴근시간+하교시간용 예비차를 한 대 더 추가했다.
  • 생각보다 시설관리가 잘되어있다.
  • 2019년 8월 28일에 숭실중고등학교에서 과거 평양숭실의 3.1만세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행진을 재현해 '숭실평화 대행진'을 진행하였다.
  • 2019년 11월 15일에 '은평구 청소년 생명 존중 콘서트'의 일환으로 걸그룹 마마무의 소속사인 RBW에서 남성 5인조 밴드 원위와 아직 데뷔하지 않은 프랙티스 365가 공연을 진행했다.


[기준] 2023.03.01 [기준] [3] 비슷한 사례로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도 같은 재단이었으나, 대학교는 학교법인 이화학당으로, 고등학교는 학교법인 이화학원으로 분리되었다. 이름만 같지 애당초 설립 주체부터 다르지만 본문의 학교는 일단 설립연원은 같다. [4] 보통 서울 지역 중학교를 다니다가 본교로 배정된 후 고양시로 이주한 학생들이다. [5] 숭의여학교 평양장로회신학교의 설립자 [6] 2020년 2월 국가보훈처에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그가 교장으로 있던 무렵 일제의 신사참배압박이 거세졌고, 1938년 신사참배거부로 학교가 폐교되었다. [7] 숭실중고등학교에서는 이 날을 "폐교기념일"로 지정하고, 기념예배와 축제를 열기도 한다. [8] 지금은 1학년, 2학년, 3학년 반들이 다 섞여있다.(4층에는 3개의 학년이 모두 몰려있다.) [9] 교사들의 말에 의하면 어떻게든 M층에 도착하면 좁은 공간 밖에 없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 바깥쪽에는 엘리베이터를 부르는 버튼이 없어서 갇힌다 카더라... [10] 하지만 현재 교육청의 검토를 받고있는 중, 만약 그 시설쪽으로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불이 나도록 혼난다고 한다. [11]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이 통로의 학생 출입을 막고있다. [12] 운동장에 있는 화단 바닥이 무너지면 중학교 구관 천장이 무너졌다는 것과 같다. [13] 덕분에 관현악은 합주하려고 나오면 매번 숭실언덕을 올라와서 다시 운동장을 가로질러야 한다. [14] 단, 공산주의자라는 뜻은 아니다. 김일성도 회고록에서 "자신과 사상은 다르지만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밝혔고, 심지어 저 분의 아들이자 역시 독립운동가인 손원일이 대한민국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제5대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저 시기는 가족중 한 명이라도 공산주의와 연관이 있다면 참모총장은 고사하고, 군장교도 될 수 없었던 시기이다. [15]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로 전학갔다. [16] 싸이 강남스타일을 작곡한 사람. [17] 자퇴했으며, 2년 후 일제에 의해 폐교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본교 출신은 아니다. [18] 2011년 우리 결혼했어요 촬영을 위해 강소라와 함께 모교를 방문하였다. [19] 성경에 나오는, 예수가 사형장으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간 길이다. [20]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안쪽에 따로 경사로가 마련되어 있다. [21] 이전까지 10년도 더 넘게 수업을 일찍 끝낸 날이 없다고 한다. 방학식 말고. [22] 현재도 남은 묘지가 있다. [23] 다만 이 전설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듯 하다. 2000년 이전에 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그런 전설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아니라 2000년대 이후 누군가의 창작이라는 [24] 다른 썰에 의하면 내시, 궁녀들을 묻은 곳이라고도 한다. 일명 고택골이라 불리는 곳인데, '골로 간다'라는 말의 '골'이 바로 이 곳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네이버에 고택골을 검색하면 이 동네에 있었다고 나온다. [25] 물론 미신이니 믿거나 말거나다. 2010년 이후 이 산이 재정비되면서 등산로와 공원이 많이 생겨서 산속에서 길을 잃을 일은 거의 없다. 주민들의 산책로로 많이 이용된다. [26] 길이 막혀있지는 않다. 낮은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숭실고등학교 건물 뒤쪽 자율학습관 및 축구부 숙소로 연결된다. 정말로 가까운 길은 중학교 건물 바로 뒤쪽의 마을에서 가는 길이다. 직선 거리로 50미터도 안 된다. 이렇게 간다면 훨씬 가깝고 쉽게 등교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담이 막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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