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커에 대한 내용은 정두현(틱톡커) 문서 참고하십시오.
출처
1. 개요
정두현(鄭斗鉉, 1888 ~ ?)은 일제강점기 조선과 광복 후 북한에서 활동한 교수, 의사, 정치인이다. 제국대학을 3군데 나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1]2. 생애, 활동
1888년 10월 27일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평양의 유지였던 정재명(鄭在命, 1861~1947)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삼남)은 친족상속법의 비조라 불리는 정광현 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다.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를 거쳐 1914년 도쿄제국대학 농과대학 실과를 졸업[2]하고 동 대학 농학부 동물학연구실에서 2년간 연구생 생활을 하다가 평양으로 돌아와 광성고등보통학교 교사와 숭덕학교 교감을 지냈다.
1919년 숭덕학교에서 3.1 운동에 참여하여 평양형무소에서 4개월간 구금됐다가 풀려났다. 이후 '평양청년회'를 조직하고 회장을 맡아 애국 사상을 고취하는 청년 운동을 펼쳤으며 숭인학교 교장을 지냈다.
1927년 40세의 나이로 생물계의 현상과 이치에 대해 공부하고자 도호쿠제국대학 이학부 생물학과에 들어가 1930년 졸업했다. 동 대학원 이학부에서 연구생으로 1년 더 공부한 뒤 돌아와 숭실전문학교의 교수로 부임했다.
1938년 신사참배에 따른 종교적 신념 문제로 숭실전문학교가 자진 폐교하자, 51세의 나이로 대북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했다. 1942년 졸업해 8.15 광복 직전까지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내과학 및 생리학교실 연구실에서 연구생으로 근무했다.
1945년 10월 평양의학전문학교장으로 초빙되었고, 1946년 김일성종합대학이 설립되면서 초대 의학부장이 되었다. 이외에도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 북조선 임시헌법제정위원 등으로 활약했다.
1949년 12월 평양에서 개최된 제1회 전국외과학대회 준비위원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행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