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후궁
[[틀:조선의 후궁(중종 ~ 고종)|{{{#!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ackground: #ffd400; border-radius: 3px; font-size: .8em"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E1D55, #89236A 20%, #89236A 80%, #6E1D55); color: #ffd4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사도세자|{{{#!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d400; font-size: .7em"]] |
|||
}}}}}}}}} |
숙의 김씨 관련 틀
|
|||||||||||
|
대한제국 철종의 후궁
숙의 김씨 | 淑儀 金氏 |
|||
<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철종의 후궁
숙의 김씨 | 淑儀 金氏 |
|||
|
|||
서삼릉 후궁 묘역 전경 | |||
출생 | 1833년 | ||
사망 | 1900년대(향년 66~76세 사이)[1] | ||
능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 후궁묘역 | ||
재위기간 | 조선 궁인 | ||
1856년 이전 ~ 1895년 1월 12일 | |||
대조선국 궁인 | |||
1895년 1월 12일 ~ 1897년 10월 12일 | |||
대한제국 궁인 | |||
1897년 10월 12일 ~ 1899년 5월 7일 | |||
대한제국 숙의 | |||
1899년 5월 7일 ~ 1910년 이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본관 | 김해 김씨 | |
부모 | 부친 김치욱[金致郁] | ||
배우자 | 철종 장황제 | ||
자녀 |
슬하 1녀 장녀 - 옹주(1856) |
||
봉작 | 궁인(宮人) → 숙의(淑儀) |
[clearfix]
1. 개요
조선 철종의 후궁. 본래 궁녀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치욱(金致郁)이며, 어머니는 알 수 없다. 슬하에 딸 하나를 두었으나 일찍 죽어서 옹주의 봉작은 받지 못하였다.2. 생애
1856년(철종 7) 7월 5일, 딸을 낳은 기록이 있다.[3] 이때 김씨를 '궁인 김씨(宮人金氏)' 라고 썼기 때문에 본래 궁녀 출신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이때는 정식으로 후궁 봉작을 받지 못하고 철종 사후에 비로소 종2품 숙의(淑儀)가 되었다.[4]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철종(哲宗) 때 승은(承恩)을 입은 궁인(宮人) 김씨(金氏)의 옛일을 추모하여 마땅히 특별한 은전(恩典)을 베풀어야 할 것이니 숙의(淑儀)로 봉작(封爵)하라." 하였다.
《 고종실록》 고종 36년 5월 7일
《 고종실록》 고종 36년 5월 7일
철종의 후궁 중, 귀인 박씨, 귀인 조씨, 숙의 방씨가 자식을 낳고 바로 후궁으로 봉작된 것과 비교되는 경우이다.[5]
3. 창작물에서
- 드라마 철인왕후에서는 철종의 실존했던 3명의 숙의가 등장하고, 숙의 방씨를 포함한 철종의 3명의 숙의 봉작을 받은 이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숙의 김씨 외에도 숙의 방씨, 숙의 범씨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 보인다. 다만 드라마에서의 이들의 집안이 안동 김씨를 견제할 만한 명문가라는 극중 설정과 달리, 실제 이들은 세도 명문가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셋 다 궁인이었던데다 방씨는 그나마 둘째 딸을 낳고 철종 생전에 숙의 작위를 받았지만, 나머지 둘은 고종 때가 되어서야 숙의 작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