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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사 일대의 항공사진
1735년에 재건된 산문 (山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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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UNESCO World Herit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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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 한국어 | 천지지중(天地之中)의 덩펑 역사 기념물 | |
중국어 | 登封 “天地之中”历史古迹 | ||
영어 | Historic Monuments of Dengfeng in “The Centre of Heaven and Earth” | ||
프랑스어 | Monuments historiques de Dengfeng au « centre du ciel et de la terre » | ||
국가·위치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허난성 정저우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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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유형 | 문화유산 | ||
지정번호 | 1305 | ||
등재연도 | 2010년 | ||
등재기준 | (ⅲ)[1], (ⅵ)[2] |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공포 |
|||
명칭 | 한국어 | 초조암과 소림사 탑림 | |
간체 | 初祖庵及少林寺塔林 | ||
번체 | 初祖庵及少林寺塔林 | ||
영어 | Shaolin Temple | ||
분류 |
고건축 (古建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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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당 ~ 청 | ||
일련번호 | 4-0089-3-011 | ||
주소 |
중화인민공화국
허난성
정저우시 덩펑시 G207 河南省郑州市登封市G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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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 | 1996년 | ||
차수 | 제4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 ||
국가 지정 명승지 등급 | AAAAA급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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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통화 : 少林寺 (Shàolínsì, 샤오린쓰)[3]광동어 : 少林寺 (siu2 lam4 zi6, 씨우람지)
소림사(少林寺)는 중국에서 오악 중 중악이라 불리는 허난 성(하남성)의 덩펑 부근 쑹산( 숭산)에 위치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찰이며, 중국 조동종의 본산이다. 무술로 유명하며, 이 때문에 무협소설에서 자주 등장하고 중요하게 다뤄진다. 중국인으로 무술을 사용하는 대머리 캐릭터는 다 소림사 출신이거나 소림사 스님이라고 할 만큼 무술의 아이콘이다. 중국 100대 명사[4]중 하나이다. 사찰 자체와 무술 외에도 248개의 탑이 모인 탑림도 볼거리 중 하나이다.
2. 역사
숭산 (소실산)과 소림사 일대
소림사 대웅보전
서기 495년 천축( 인도)에서 온 발타선사가 창건하였으며, 이후 서기 527년 천축에서 온 달마대사가 소림사에서 수련하여 돈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마는 이후 중국 선불교의 아버지로 간주되며, 소림사는 선불교의 본거지로 알려지게 된다. 중국 선종의 대표적인 사찰로 유명하다. 실제로 도교의 중심 도관 중 하나인 무당파와 마찬가지의 케이스인데, 스케일 면에서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하다.
574년 북주 무제의 폐불로 훼철되었던 소림사는 7세기 당태종의 후원으로 중창되었고, 엄청난 토지를 보유했다. 북송 대에는 이미 승려가 7천 명이 넘어서 이미 숭산에 수많은 말사나 암자를 두어서 공부와 수련 등을 행했고, 소림사 자체는 중앙 총괄본부 정도의 위치로 모여서 회의하는 기능밖에 없었다고 한다.
전성기에는 1만 4천무의 토지, 5천간의 건물을 지니고 2천이 넘는 승려를 거느렸던 소림사는 민국 시기 군벌들의 박해와 약탈로 쇠락하여 1970년대에는 20명도 안되는 승려만이 먼지 쌓인 고찰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1979년 이연걸의 소림사 영화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중국 당국의 관심을 받았고, 1985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함께 대대적인 보수와 복원이 이루어졌다. 1997년에는 스융신 방장의 주도 하에 하남소림실업발전유한공사가 세워지는 등 법인화되어 인근에 60여개의 도장을 세우고 세계적으로 50여개의 분원을 여는 등 사찰의 브랜드화 및 프랜차이즈화에 나서고 있다.
3. 중국 무술의 성지
관광객들 앞에서 무공을 보이는 무승들
선법을 연마하는 소림 무승
소림사가 무술로 유명해진 계기는 다음과 같다. 승려들이 자체적으로 무술을 익히고 있는 와중에 무술 실력이 뛰어난 걸인, 맨주먹으로 살인을 하고 현상수배당한 범죄자, 낙오된 도적패, 멸망한 나라의 장수 등 온갖 부류의 무술인들이 숨어 살거나 밥을 얻어먹기 위해 이곳에 유입되었고, 그들의 노하우가 소림사에 점점 쌓이게 되어 오늘날의 소림사 무술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쇠퇴하고 다시 재건되었다. 이렇게 흘러들어간 사람들 중 유명한 것이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난징군구 사령관을 지낸 쉬스유가 있다.
흔히 달마대사가 소림사 무술의 시조로 알려진 것과 달리, 2005년 기사에 따르면 소림무술의 시조는 소림사 2대 주지인 (초우선사로 잘못 알려진) 승조선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달마 당시에는 소림사란 절은 없었다는 말도 있다.
설화에 의하면 소림 무술이 처음 창시된 시기는 당나라 때로 전설에 따르면 수나라 말기에 이세민이 왕세충과 싸울 때 13명의 소림사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5] 후일 당태종은 그 공적을 기리며 친필 비석과 많은 전답을 하사했고, 13 무승에게는 관직 및 가사 한 벌씩과 음주 및 불교 교리에 어긋나지 않게 율장에 나온대로 삼정육.오정육.구정육에 해당하지 않는 육식을 허가를 해 주었다.[6]오래된 은행나무에 뚫린 구멍은 선법 수행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 한다. 이후 명나라 초기 사료에 따르면 원나라 말기에 소림사를 홍건적들이 습격해서 불상의 금박을 벗기고, 복장유물[7]을 찾기 위해서 불상을 파괴해서 승려들이 다 도망가고 홍건적의 난이 진압될 때까지 한 명도 못 돌아왔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때 불목하니로 있던 긴나라왕이 불쏘시개 들고 홍건적을 다 때려잡았다고 하는데 전설은 전설일 뿐.[8]
실제로 소림 무술이 처음으로 언급되는 시기는 명나라 가정제 때부터로, 이때 유대유의 '정기당집', 하양신의 '진기' 등 일부 사료에 소림 무술이 등장하며, 정기당집에 따르면 유대유가 소림 곤법이 창시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소림사를 방문하니 이미 소림사의 무술이 크게 쇠퇴해 있었기 때문에 승려 2명을 군대로 불러서 3년간 곤법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즉 소림 무술이 이전에도 존재한 건 사실이나, 이전 사료에는 나오지 않았던 소림 무술에 대한 사료들이 이 시기에 들어와서야 갑작스럽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볼 때, 실제로 소림 무술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바로 가정제 때부터일 가능성이 높으며, 중국 무술의 원류라는 이야기도 명확한 근거는 없고 현대에 들어와서 유명해진 소림사 봉술도 이때 이후 정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소림사의 대표무술이 곤법이 되었고, 소림사는 외부의 무술들을 받아들여서 양적 성장을 하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림사가 총괄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각 말사에서 알아서 수련하기에 적당한 것을 골라잡아서 수련했다. 당연히 소림사 사내에서 수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무협소설에서 소림사만 72종 절예 운운하면서 양으로 때우는 경향이 보여주는 것도 이런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위안스카이 사망 이후 군벌혼전으로 중국이 난세에 돌입하자 소림사도 비적들의 습격 대상이 되었는데 이에 소림사 승려들은 그간 연마한 무술에 더해 총기를 구입하여(!) 치안 유지 활동을 했다. 당시 소림사 승려들이 200명 정도였는데, 고강한 무술을 배운 이들이 총까지 들고 나서자 비적들도 감히 소림사는 공격하지 못했고 소림사 승려들을 무장하여 치안활동을 했던 소림사 방장 항림이 입적했을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도비를 세울 정도였다.
이후 소림사 방장은 묘흥이 이어받았으나, 소림사 출신의 하남군벌 번종수가 장제스를 옹호하며 1928년 1차 장풍전쟁 중에는 펑위샹의 부하 스여우싼과 싸움을 벌일 때 소림사도 사제간의 인연 때문에 번종수를 지지하여 참전하였다. 하지만 번종수의 병력은 고작 1만명이었는데 스여우싼은 펑위샹의 군세 중에서도 정예병 6만명을 거느리고 있었고 번종수는 박살이 나서 패주했다. 이에 소림사 승려들도 협의 끝에 소림사를 비우고 퇴각했는데, 분노한 스여우싼은 빈 소림사를 불태우며 보복했다. 1960년대에도 문화대혁명으로 큰 타격을 입어서 현재 소림사에서 가르치는 무술은 무당파와 비슷하게 대부분 다른 곳에서 끌어온 무술이라는 말도 있다. 물론 후술되어있듯 소림72예와 심의파, 소림곤법천종처럼 소림의 원류 무술도 있긴 하다.
4. 현황
소림사를 둘러보는 관광객들
값비싼 청기와가 올려진 소림사 주요부
현재는 중국 정부의 공인 체육 교습 기관이자 전투승 자격을 가진 스님들에게 중국 인민해방군 군종 승려 지원 자격이 주어지는 주요 사찰들 중 하나이다[9] . 그것도 최고 담당자인 주지 스님이 정부와 바로 닿아있는 탓에 생각보다 파워가 세다.
중국 각지에서 학생을 받아서 3가지로 문파를 나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전통적인 방식의 승려 양성 코스. 다른 하나는 무술 수련 코스, 나머지 하나는 바로 무술 시범단이다.
이중에서 흔히 말하는, 무술을 할 줄 아는 소림사 승려가 2번과 3번 부류다.[10] 이들은 체력유지 차원에서 불교 교리에 어긋나지않게 삼정육.오정육.구정육에 해당하지 않는 고기도 먹을 수 있다. 3번의 경우도 대체로 화려한 동작이나 시범용 기술들을 주로 수련하기에, 실제로 격투기로서 무술을 배우는 쪽은 2번 부류다. 이러한 승려들이 설법 등의 승려생활도 하지만 무술 연마쪽으로 활동이 많은 편으로 무술 연마와 설법 등을 모두 가능한 전투승들이 중국 인민해방군 군종 승려로 많이 진출하는 편이다.
중국 절이라 중국 무술만 배울 것 같지만, 소림사를 취재한 여러 다큐멘터리를 보면, 하룻동안 수업시간에 따라 중국무술도 배우고, 그 다음엔 복싱을 배우고, 그 다음엔 태권도를 배우고, 가라데를 배우는 식으로 돌아가면서 다양한 무술을 배우기 때문에 실은 종합무술 수련반이다. 무에타이나 유도나 삼보 같은 그래플링도 배우긴 배우는데 이것은 2번의 무술수련 코스만 배운다. 무술 시범단은 태권도, 공수도까지는 배우지만 무에타이나 그래플링류 격투기는 배우지 않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태릉선수촌 비슷하게 엘리트 체육인 양성코스라 졸업생들은 대개 스포츠계[11]나 군인, 중화인민공화국 인민경찰, 사설 경호업체, 영화배우 등으로 진출한다. 영화배우가 되면 주로 액션 장르에서 맹활약하게 된다.[12] 그래서인지 무술 이외에도 와이어 액션도 가르친다.
해외여행을 가도 체험할 수 있다. 소림사찰 주변의 수많은 무술도장에서 달러 기준 30달러 정도를 지불하고 2시간 정도의 인스턴트식 교육을 통한 공인 4급 무술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으면 근처 무술도장에서는 2015년 현재 월 60만 원 정도 (숙식 포함) 정도가 들어간다.
봉술과 검술은 보험 작성으로 인해 1시간 더 시간을 끌며 무기대여료가 들어간다. 어지간하면 형의권 계통 코스를 밟길 추천한다. 가격대가 싸고 시간도 비교적 적게 먹으며 증명서라고 오는 패와 카드가 제법 폼난다.
또한 근처에는 각종 무기를 팔고 있다. 없는 게 없다. 단, 세관에서 걸리니 주의. 소림사 근처를 지나가는 외국인을 보면 그럴듯한 옷차림을 한 지역주민이 갑자기 나와서 "비장의 소림 무술을 가르쳐주겠다..."라고 무술 강습 삐끼를 하는 경우가 가끔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영어로 권유하는 경우도 있다고. 따라가지 말자. 사기다.
2009년, 금녀의 공간인 절 내에서 수영복 차림의 여성 모델들이 세계관광대사 선발대회를 위해 모이고, 또 2007년에는 9명의 여성 무림고수가 탄생했다. # #
의외라면 의외로, 2010년에 들어서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됐다고 한다.
2010년 12월 14일 이룽이라는 입식 격투가 겸 소림사 고수가 중국 허난성 방송국의 주최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무림풍 무술대회에 나갔다가 북미 해병대 출신 복서 에이드리언 그로티에게 KO로 뻗은 것 때문에 소림사가(?) 나름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제법 요란하게 열린 행사였으나 떡밥급의 상대에게 관광을 당했고, 급기야 소림사 측에서도 '이룽은 정식 승려가 아니다'라는 식의 뻥으로 수습에 진땀을 뺐다..고 하지만 사실 이룽은 항목을 봐도 알 수 있듯 정식 승려라기보단 이미 입식 격투가라고 봐야 된다. 이룽은 2015년 10월 기준 25승 1무 7패로 제법 괜찮은 전적을 가지고 있다. 결국 입식 격투가가 격투에서 진걸로 소림사가 망신 어쩌고 하는 것도 어찌보면 좀 과장된 것. 애초에 소림사 무술이 현대 격투술보다 실전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려우니..
참고로 이룽이 2013년 8월 10일 쁘아까오와 매치를 벌여 KO 패배를 안겨주었다는 식의 가짜뉴스가 돌기도 했지만, 이때 무에타이 파이터는 쁘아까오도 아니었다. 애초에 경기 분위기도 코믹에 가까운 이벤트성이었다. 쁘아까오가 정말로 산타의 고수와 싸우는 경기에서는, 쁘아까오가 산타 고수를 보기 좋게 작살냈다. 그러다 2015년 6월 6일에 실제 두 선수가 경기했는데, 의외로 꽤 접전을 벌이다 쁘아까오가 판정승을 거뒀다. 이룽은 한국 선수 몇 명도 꺾은 경험이 있고, 본인에게 굴욕을 안겼던 에이드리언 그로티에게 판정승하면서 리벤지에 성공하기도 했으니 사실 이룽도 마냥 무시할 격투가는 결코 아니다.
소림사는 대부분의 다른 권법들을 교습하는 방식과 전통 단련법들을 지도하곤 하는데 무당산처럼 그 전래의 권법이라고 할 만한 것은 많지 않다. 꼽자면 소림 심의파와 소림72예라는 단련법, 그리고 소림곤법천종 정도다. 소림72예는 신체를 단련하는 여러가지 방법을 모은 공법이 72가지라서 붙은 이름인데 요즘 헬스클럽에서 하는 웨이트 같은 방식부터 일지선 같은 초능력 같은 공법, 건강체조에 눈 좋아지는 수련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수영도 있다. 뭐 옛날에는 군사훈련 때 무술 다음으로 많이 한 것이 수영이었다는 카더라도 있으니. 서림 문화사에도 나온 책이 있으며 중국에서도 출판된 적이 있다. 소림 일지선의 경우는 만화 권아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공법이다.
소림 심의파의 경우는 해당 문서로. 소림72예와 심의파, 소림곤법천종 정도가 소림의 원류 무술이라고 볼 수 있다. 뭐 사실 소림 72예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철비박, 쌍쇄공처럼 다른 유파에도 있는 수련법들도 많다. 소림곤법천종의 곤법 같은 경우도 유대유에게 다시 배운 것이 확실하다. 다만 그 후 세월이 오래 흘렀고 새롭게 손도 본 만큼 소림사 무술이 아니라고 보기도 어렵긴 하다.
2014년, 백두산에 소림사 사찰 건립을 검토 중이라는 기사가 떴으나, 이후 잠잠한거 보면 그냥 지나간듯.
후술할 주지 스님의 추문과는 별개로, 허난성의 소림사가 축구선수 양성에도 나섰다고 한다. 중국 정부와 허난성은 소림국제축구학교를 건립하는 등 20억 위안(4710억여 원)을 투자하여 소림사를 무술의 메카이자 축구의 메카로 만들어 중국판 메시를 발굴, 양성하려는 계획이라고 한다. 2015-08-05 "2000명 소림사 메시가 몰려온다", 국민일보.
2019년, 소림사 무술학교들이 중공의 공산주의 노선을 취하도록 강요받는다는 식의 기사가 나왔다. #
현재 소림사라는 이름은 브랜드로 등록되었다.이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소림사가 등장하려면 저작권료를 내거나, 다른 이름으로 개명해서 내야 한다.
만화가 채지충이 2020년 11월 17일 소림사에서 머리를 깎고 석연일(釋延一)이라는 법명으로 출가해 사미가 되었다. 출저.
소림사가 거액을 투자해 상업용지 사용권을 낙찰받았다. #
4.1. 주지
이른바 ' CEO 주지'로 불리는 스융신(釋永信)이 1999년부터 현재까지 소림사의 방장을 맡고 있으며, 소림 무술을 세계에 알리고 사업화하고자 노력을 기하고 있다. 소림사 자체를 브랜드화하여 떼돈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한다.[13] 주지스님의 정책에 따라 인근의 잡상들과 무술 도장들이 많이 사라졌으며, 순수하게 수련생들을 받는 추세라고 한다.2015년 8월 스융신의 성추문 의혹으로 인해 상당한 파장이 일었다.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에 따르면 8월 1일 성추문 의혹을 받고 있는 방장이 관련된 '재산·치정 사건 진술서'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별개로 점차 초심을 잃고 세속화되는 소림사의 모습을 성토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2015-08-02 소림사 방장 성추문 확산…일부언론 "간통진술서 존재" (서울신문).
소림사에서 무려 666개나 되는 상표권이 나오면서 속세를 못버린 소림사란 식의 비판이 제기되었다. 상표권 666개·소시지 광고…속세 못 버린 中 소림사. 사실 관광상품으로 소림사가 원체 쓰임새가 있다보니 이런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5. 기타
소림사의 숨은 볼거리인 탑림 (塔林)
숭산 외에 다른 지역에도 소림사라는 이름이 붙은 절이 있는데, 숭산의 소림사를 따라한 것은 아니고 단지 이름이 같은 것일 뿐이다. 그 중에서도 푸젠성 취안저우의 소림사는 숭산의 절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남소림사라고도 불린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남소림사 관련 내용은 대부분 아예 전설이라고 보면 된다.
6. 대중매체
자세한 내용은 소림사/대중매체 문서 참고하십시오.무협물에서의 소림사 등도 이곳 참고.
7. 관련 문서
- 격투기 무술 관련 정보
- 무협소설/용어
- 중국권법
- 문파
- 주먹쥐고 소림사
- 송위룡
- 군종 승려 - 중국에서는 전투승들 만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불교 군종장교 지원자격이 생겨서, 승군시험을 거쳐 군종 승려로 군법당에서 복무하는데 다른 사찰 전투승도 많이 군종 승려로 배출되나, 주로 이곳 소림사 출신 전투승들이 많이 배출된다.
8. 외부 링크
- 소림사 홈페이지 (중국어)
[1]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2]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다른 기준과 함께 적용 권장)
[3]
성조를 보면 알겠지만 少는 '어리다'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위치한 산 이름이 少室山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된 것이며 해당 산명에 대해서는 자전에서도 같게 이르고 있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 왜곡된 바가 아니다. 같이 묶이는 太室山 역시 '맏이'의 뜻으로 '太'를 썼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위키 백과에 잘못 표기되어 있어 인터넷 블로그들을 보면 小로 적은 것이 종종 있는데 현지에서도 少室山으로 읽으므로 주의하도록 하자.
[4]
중국전역에 있는 사찰들 중에서 명나라때 사액을 내렸던 120개의 사찰 중 100군데의 사찰에만 주었던 칭호이다. 그러나 현재 이 사찰들 중 단 25군데만 잘 남아있으며,나머지 사찰들은
중일전쟁과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모두 소실되었다.
[5]
관련 사료에 의하면 원래는 승려들이 성에서 내응해 공성전을 도운 정도였지만, 후대에 가면서 승려들이 감옥에 갇힌 이세민을 구출했다는식으로 와전되었다.
[6]
중국에서 승려들이 술과 고기를 금지한 것은
양나라 초대 황제인
양무제가 내린 포고령 단주육문에 입각 한 것이였다.
[7]
불상 내부에 공간을 마련하고 넣어두는 예물.
불경이나 조각들이 흔하다. 그리고 이름 있는 고승이 사망하면서 남긴 사리도 포함된다.
[8]
여담으로
량치차오는 이 일화를 당나라 때의 일화랑 슬쩍 짬뽕하였다. 당시 중국은 열강들의 침공으로 열악한 상황이라 이런식으로 무술 전통을 강조하여 국민들이 무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게 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9]
인민해방군 군종 승려는 전원 전투승 출신으로 비전투승 출신은 군종 승려가 될 수 없다. 다른 사찰 전투승들도 군종장교로 복무하는 경우도 많이 있으나 대부분
군종 승려의 스님들은 이곳 전투승들이 많이 배출된다.
[10]
1번인 전통방식 코스는 개방되어있지 않아서 보기 어렵다.
[11]
주로 격투기 종목
[12]
대표적인 배우가 소림사 32대 무승으로 10년을 수련했던
석행우. 용호문을 통해 그 까다롭다는
견자단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도화선, 일개인적무림, 엽문 등에 함께 출연했다.
[13]
스융신 스님은
MBA를 마칠 정도로
경영학에 관심이 깊은 몇 안 되는 스님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선(禪)과 무술의 순수성을 상업화시키려는, 장사치에 불과한 행동"이라고 비판하는 시각 또한 상당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