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5 11:18:33

세르지 사르키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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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erj1.jpg
아르메니아어 성명 Սերժ Ազատի Սարգսյան
영문 성명 Serzh Azati Sargsyan
한글 성명 세르지 아자티 사르키샨
출생 1954년 6월 30일 ([age(1954-06-30)]세)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스테파나케르트
파일:아제르바이잔 국기.svg 아제르바이잔 한캔디
국적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1954년 8월 31일- 1991년 12월 26일)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아르메니아(1991년 12월26일- 현재)
학력 예레반 주립대학교
가족 아내:리타 다다얀(1983년 - 2020년)
자녀:아누쉬, 사테닉
종교 오리엔트 정교회 (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정당 [[소련 공산당|
소련 공산당
]]
[[아르메니아 공화당|
아르메니아 공화당
]]
서명 파일:세르지 사르키샨 서명.svg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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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제3대 아르메니아 국방장관(1993년 8월 21일 - 1995년 5월 17일)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제2대 아르메니아 내무장관(1996년 11월 4일 - 1999년 6월 11일)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제3대 아르메니아 국방장관(2000년 5월 20일 - 2007년 3월 26일)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제11대 아르메니아 총리(2007년 4월 4일 - 2008년 4월 9일)
파일:아르메니아 대통령 문장.png 제3대 아르메니아 대통령(2008년 4월 9일 - 2018년 4월 9일)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제15대 아르메니아 총리(2018년 4월 17일 - 2018년 4월 23일)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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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의 제3대 대통령이자 독재자. 제11, 15대 총리이다.

2. 생애

1954년 소련 아제르바이잔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1]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한 뒤, 소련 공산당의 지부인 아르메니아 공산당에 입당했다. 이후 소련 말기에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둘러싸고 아르메니아 SSR 아제르바이잔 SSR의 분쟁이 일어나자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인 자경단을 지휘하기도 했다.

소련 해체 후에는 독립한 아르메니아 공화국의 국방장관을 1993년과 2000년에 걸쳐 2번역임을 하고 내무장관을 지내다가 2007년에는 총리가 되었고, 바로 이듬해인 2008년 대선에 출마하여 3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2013년 재선되어 2018년까지 연임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독재 논란도 있었다.

아르메니아 헌법에 의해 3선이 불가능하자 꼼수를 써서 퇴임 전에 이원집정부제에서 내각제로 개헌하고 퇴임 직후 총리로 취임한다. 아마 중간에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실권을 휘둘렀던 이웃나라 차르의 선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속보이는 행태에 대해 아르메니아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항의시위를 하자 2018년 4월 23일, 총리에 취임한지 고작 일주일도 안되어 총리직에서 사퇴하고, 후임으로 야당의 니콜 파시냔이 총리가 된다.

그러나, 2020년 아제르바이잔과 전쟁에서 패배하여 파시냔의 입지가 박살나면서 친러시아 정책을 취한 사르키샨이 돌아올 가능성도 있긴 했다. 거기에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조차도 사르키샨을 더 지지했고, 그를 쿠데타로 내쫓은 파시냔이 물러나고 사르키샨이 돌아와야 한다라고 외쳐오던 걸 보면 독재자끼리 통하는 게 있긴 한 듯. 오히려 터키랑 아제르바이잔이 사르키샨을 밀다 보니 아르메니아에서는 파시냔이 안 되더라도 사르키샨은 더 안 된다는 주장이 거세졌다는 게 문제지만...이걸 떠나서 아르메니아인 입장에서 사르키샨은 18년동안 해먹었던 독재자일 뿐이며, 사실상 사르키샨의 무능이 아르메니아를 말아먹은 원흉이라서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이 대놓고 X맨 취급한 것.

2016년경에 2016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충돌 겪었고 이후 나고르노카라바흐의 7개주를 50억 달러에 넘기라는 일함 알리예프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재 역할을 맡은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의 녹음이 공개되어[2] 아르메니아에 논란을 일으켰다. 관련 영상

2020년 11월 20일 아내 리타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5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하지만 2021년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정당연합은 고작 7석, 득표율 5.2%에 그치며[3] 대망신을 당했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이후 반사이익도 거두지 못한 것이다. 아르메니아 국민들은 니콜 파시냔이 못 미더울지언정 독재자를 다시 뽑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면서 그를 응징했다.


[1] 소련 해체 후 아르메니아인들이 아제르바이잔과 전쟁을 벌여 사실상 독립했다. [2] 사실상 아제르바이잔 편을 들었다. [3] 0.2%p만 더 낮았어도 아예 원외로 축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