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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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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목차 | 위경 및 제안된 문서


1. 개요2. 명칭3. 형성4. 구약 정립의 역사
4.1. 구약성경 성립에 관한 근래의 견해
5. 성서 주석학적 연대 정리6. 타낙의 3분 구조와 구약의 4분 구조의 해석학적 체계7. 히브리 성경의 판본

1. 개요

구약성경(舊約聖經)은 그리스도교에서 신약성경과 함께 성경을 이루는 정경 모음집이다. 비슷한 개념으로 타낙(תַּנַ״ךְ)이 있는데, 이는 '히브리어 성경'을 일컫는 말로, 유대교 사마리아교에서 곧 '성경'과 동일시한다.

종교 및 전통마다 정경으로 인정하는 범위가 다르다. 사마리아교와 옛 사두가이파 토라만, 현대 랍비 유대교에서는 타낙 24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개신교의 구약성경은 타낙과 동일 본문이지만, 가톨릭 구약성경은 타낙과 제2경전을 함께 포함하며, 동방교회는 교파에 따라 범위가 각기 상이하다.[1]

이 문서에서는 구약성경과 타낙을 함께 설명한다.

2. 명칭

율법과 예언서와 그 뒤를 이은 다른 글들을 통하여 위대한 가르침들이 우리에게 많이 전해졌습니다.
-집회서 머리글 1절[2]
오늘날의 유다인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가리킬 때 미크라(Miqrq, 독본 곧 회당에서 읽히는 책)라 부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 성경의 각 부분, 곧 토라(Torah, 율법)와 느비임(Nebiim, 예언서)과 크투빔(Ketubim, 성문서)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든 타낙(Tanak)이라는[3] 용어를 사용한다.
-드 쀠리Albert de Pury, "구약성경의 경전",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1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18쪽

신구약 전체를 성경으로 인정하는 그리스도교와 달리 오늘날 유대교에서는 히브리어 성경만을[4] 성경으로 인정한다. 이를 유대교에서는 타낙(תנ"ך)이라 하는데, 어원은 아래와 같다.
  • 율법서(律法書)를 뜻하는 토라(Tōrāh, תורה)
  • 예언서(豫言書)를 뜻하는 느비임(Nebi’îm, נביאים)[※주의]
  • 성문서(聖文書)를 뜻하는 케투빔(Ketūbîm, כתובים)
의 앞자만을 따서 타낙(TaNaK, תנ"ך)이라 불러왔다.[6] 토라, 느비임, 케투빔의 삼분 구조는 유대교에서 인식하는 위계적 순서 및 회당 전례에서의 상이한 사용에도 상응한다. 토라가 가장 중심이고, 여기에 대해 주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느비임이고, 케투빔은 시편과 다섯 메길롯을[7]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그 중요도가 떨어진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타낙과 동일한 텍스트 및 번역(개신교), 혹은 여기에 제2경전을 추가한 모음집(가톨릭)을 '구약성경'(Vetus Testamentum라틴어, Old Testament영어)이라 부른다.

한편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학자 일부에서는 유대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구약'이라는 표현이 구약성경에 대한 부당한 평가절하를 부른다는 반성에서 '타낙' 혹은 '히브리 성경'을 중립적 표현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타낙과 구약은 (상당 부분 겹침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동일한 개념인 것은 아니다. 개신교에서 인식하는 구약의 정경 목록은 타낙 정경 목록과 완전하게 동일하지만 가톨릭과 정교의 정경 목록이 타낙 정경 목록과 차이가 있다. 가령 지혜서의 경우, 유대교에서는 지혜서를 타낙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굳이 그리스도인이 지혜서를 타낙이라고 표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유대교 입장에서는 "지혜서는 구약이다"라는 말보다 "지혜서는 타낙이다"라는 말이 훨씬 더 기분 나쁘고 자극적일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 성경'이라는 표현도 중립 용어로 쓰기엔 유사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구약이라는 표현이 구약 성경에 대한 부당한 평가절하를 부른다고 하기에는, 舊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뿌리깊음을 의미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는 초창기부터 구약 성경을 '낡았으며 폐기되어야 할' 문서가 아닌 '뿌리'로 인식해왔다. 초창기 그리스도교는 예수가 메시아임을 '구약을 통해서' 보이려 했지, 이를 오래된 문서라며 치워버릴 의도가 없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두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루카 복음서 24장 25-27절, 44-46절(가톨릭)
맏물로 바치는 빵 반죽 덩이가 거룩하면 나머지 반죽도 거룩합니다.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들도 거룩합니다. 그런데 올리브 나무에서 몇몇 가지가 잘려 나가고,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인 그대가 그 가지들 자리에 접붙여져 그 올리브 나무 뿌리의 기름진 수액을 같이 받게 되었다면, 그대는 잘려 나간 그 가지들을 얕보며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하는 것입니다.
- 로마서 11장 16-18절(가톨릭)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구약'이라는 표현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며, 오늘날 독어권 신학자들 일부는 구약성경(Alte Testament)이라는 용어 대신 의식적으로 첫째 성경(Erstes Testament)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아이히슈테트 교구사제로 서품되어 뮌스터 대학교에서 구약성서학과 구약주석학 교수로 봉직한 가톨릭 성직자 에리히 쳉어(Erich Zenger)는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에서 구약성경이라는 명칭은 "아예 따옴표 속에 집어넣거나 다른 명칭으로 대체하거나 최소한 보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쳉어는 구약성경이라는 용어의 대안으로 '첫째 성경'(Erstes Testament)을 지지했는데 그 논거는 다음과 같다:[8]
  • 비록 '오래된/옛날의(舊)'라는 낱말이 반드시 부정적 함의를 지닌 것은 아니며 舊를 新과의 대립이 아니라 상관성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명칭은 구약성경의 자기 이해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유대교의 이해에도 상응하지 않는다. 유대교로부터 교회의 의도적 분리가 비로소 이 명칭을 만들어 냈거니와, 실질적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을 '시효 지난' 부분으로 오독하게 했으며 '신약에 의해 능가되고' '낡아 버린' 문서들을 여전히 고수한다는 의미에서 유대교에 대한 평가절하와도 결부되어 있다.
  • '첫째 성경'이라는 명칭은,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타당한 다음 명제를 옳게 반영한다: ⓐ첫째 성경은 하느님이 당신의 '첫째/맏 아들(참조: 탈출 4,22; 호세 11,1)인 이스라엘과 맺은 저 '영원한' 계약을 증언한다 ⓑ이 계약은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민족들도 그 안에 이끌어 들이고자 하시는 거대한 '계약 운동'의 '시작'이다.
  • '첫째 성경'은 '둘째 성경'을 가리킨다. 후자가 전자 없이 존재할 수 없듯이, '첫째 성경'이라는 그리스도교적 명칭 또한 첫째 성경 자체만으로는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볼 때) 온전한 그리스도교 성경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런식의 언어 순화 주장이 늘 그러하듯이, '첫째 성경'이라는 대안 용어가 그리스도교 신학 내부의 자명하고 합의된 용어인 것은 아니다.[9] 위에서 지적했듯, '오래된/옛날의(舊)'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결코 '낡은/폐기된/효력을 잃은'이라는 의미가 아니며, 단지 오래된 계약이라는 가치중립적인(그리고 관점에 따라선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읽을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새 계약'(신약)이라는 표현이 '옛 계약'을 폄하한다는 이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구약성경 자체의 관점에서도 부합하지 않는다. 가령 예레미야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예레미야서 31,31-33,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새번역 성경』
이 구절에서는 '옛 계약'(시나이 계약)과 대비되는 '새 계약'의 긍정적 새로움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구절은 언뜻 보면 시나이 계약을 폄하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새 계약'이 '옛 계약'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은 이미 야훼와의 독점적이고 특별한 관계로 돌입했고, 바로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새 계약'이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새 계약'은 '옛 계약'의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옛 계약'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 및 신약성경의 화법도 이러한 예언자적 전통을 이은 것이다. 유다교/그리스도교라는 '분리된 두 종교'라는 후대의 관점을[10] 성경에 투사하니까 마치 '신약'이 '구약'을 반박하는 듯한 오해를 하고[11] 심지어는 ' 반유다주의'적으로 읽어버리는 것이지, 유다이즘 내부의 '이스라엘 불러모으기 운동'이었던 초대 그리스도교 입장에선 '옛 계약'과 '새 계약'의 대비라는 '예레미야식 화법'은 전혀 이상할 게 없었고, 당연히 반유다주의도 아니었다.[12]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 성경'이라는 도발적인 제안은 '구약'이라는 말에서 나오는 (유대교 입장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그리스도교 입장에서도 그릇된) 부적절한 오해에 대한 경계심을 키웠다는 데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3. 형성

구약성경은 근대적인 저자 문학이 아니라 고대적인 전승 문학이기에, 수많은 전승들이 인용되어 있다. 따라서 히브리 민족이 단일혈통이 그대로 쭈욱 이어져 온 것은 아니라는 것도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여러 부분에서 당대 주변 민족들의 문화와 관습의 자취가 많이 섞여 있다. 기본적으로 천지창조와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기원과 역사, 율법의 성립을 다룬 토라(모세오경), 역사서( 히브리인과 왕국 시대의 역사), 찬미가, 여러 시와 문학들,( 시편 잠언, 욥기, 아가 등), 성전 건축과 각종 종교행사 관련 기록, 종교에 근거한 법률(율법)적인 문제에 대해 논하는 내용, 그리고 예언자들의 당대 유대 사회에 대한 경고와 미래에 대한 예언을 기록한 예언서( 호세아, 요나, 이사야, 느헤미야, 다니엘 등)와 제2경전(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 상,하권, 바룩서, 지혜서, 집회서)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약성경은 무척이나 긴 시간에 걸쳐서 여러 필자가 참여하여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모세는 기원전 15세기, 즉 기원전 1500~1400년대 가량에 모세오경을 작성하였다고 하고[13], 다윗 시편의 대부분을 지었다고 하며, 솔로몬 잠언의 대부분과 코헬렛 아가를 작성하였다고 한다. 솔로몬 이후 바빌론 포로 귀환 이후까지 여러 예언자들이 예언서를 작성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저자와 연대에 대한 전통적 견해는 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수정이 가해지고 있다. 먼저 기원전 10세기 전의 문헌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그전에는 팔레스티나에 독서 문화가 없었기 때문. 따라서 경전연구자들은 대부분 언어학적 지식이 있는 경우라면 기원전 10세기 이후의 기록된 것이라는 점을 정설로 볼 수밖에 없으며, 문법이나 문체상의 문제가 있고 그 기록 방식의 엄격성을 고려하면 특히 오경의 경우 전통적인 연대의 개연성이 낮아진다. 참고로 현재까지 학자들이 발견한 성서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7세기경[14]에 기록된 민수기 6장. 연대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의 '성서 주석학적 연대 정리' 참조.

정리해 보면, 구약 본문의 형성은 왕정시대 후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바빌론 유배, 페르시아 치하 및 헬레니즘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수집 및 '정경화'가 이뤄졌다고 봐야 하며, 최후의 정경목록 고정은 유다교에서든 그리스도교에서든 기원후에 완결되었다.

성경은 종교적 관점을 중시하며 삼국유사와 비슷하게 신화적이나 설화적인 내용이 많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뿐만 아니라, 페니키아, 아나톨리아 등 주변국과 고대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등 이스라엘을 지배한 국가들의 역사도 같이 기록해두었기 때문에 당대에 존재했던 중동과 지중해 강국들의 흥망성쇠도 알수있다. 또한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당대의 문헌가운데서는 가장 상세하고 분량도 많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많은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이 성경을 주요 참고자료로 쓰면서 이집트, 이라크, 이란,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주변국들의 문헌자료들을 교차검증하여 고대 중동사를 연구한다. 그래서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개역본이 아닌 현대어 본으로 된 성경을 읽을때 "아니 이 사람이 왜 성경에 나오냐" 싶은 사람들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바빌론 네부카드네자르( 느부갓네살)와 페르시아 제국의 왕들. 특히 키루스 대제(고레스)는 유대인을 해방시켜준 기름 부음 받은 이며,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가 에스더의 남편이란 것 등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 페르시아에 호의적인 이야기가 많다. 또한 제2경전에 속하는 마카베오기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등 헬레니즘 시대의 인물들이 (부정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15] 또한 에스델서에는 클레오파트라와 그의 남편 프톨레마이오스가 언급되며, 마카베오 상권 8장에서는 고대 로마의 공화정, 원로원, 집정관 등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있다. 예언서의 경우에는, 주변 국가인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등의 흥망성쇠가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기년법이 당시 그 지역에 영향을 끼치던 패권 국가를 따르는 경우도 흔하다. 이를테면 학개에서는 이 책의 배경이 다리우스 제2년이라고 1장 1절부터 밝히고 있고, 신약의 경우도 루카 복음서 3장 1절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활동 시기가 티베리우스 15년이라 밝히고 있다. 그렇기에 역덕들이 보면 의외로 소소한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 다만 성경을 가지고 중동 역사를 공부할 때 히브리인들의 역사를 주로 서술하기 때문에 중동 전역의 역사를 아우르기에 부족하다는 점을 명심해야되고, 비록 성경이 당시 중동의 역사를 반영은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히브리인들의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기에 이점에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16] 물론 두 권의 마카베오기처럼 정말 본격적으로 역사를 서술할 목적으로 쓰인 책들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모두 감안해도 성경만으로 중동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역사라는 관점에 한정해서 보자면) 불경만으로 고대 인도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 비슷하게 한계점이 많다. 성경의 저자들이 실제 역사를 말하려는 의도가 없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화법이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역사책과는 차이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또 워낙 오랜 전승을 담고,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문헌이다 보니, 서로 다른 신학적 초점들을 보여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령 하느님에 관한 묘사에서 창세기 1장의 우주론적 하느님 묘사는 사무엘기-열왕기의 민담적인 묘사와도 다르고, 심지어 창세기 내부에서도 성조(아브라함-이사악-야곱)의 가족신적인 묘사와도 다르다. 이런 상이점들은 굳이 모순이랄 것은 없지만,[17] 동일한 실상을 전달하려는 초점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구약은 때로는 하느님을 과감하게 '어머니'라는 여성적인 표상으로 묘사하기도 하고[18], 아가에서는[19] 성적 매력이 넘치는 남성 연인, 다시 말해 '섹시한 남자친구'라는 파격적 표상으로 하느님을 묘사한다.[20] 이러한 다양한 초점들은 성경에서 일종의 다성음악 같은 효과를 낸다.

히브리인들은 전통적으로 구약을 율법서와 예언서와 성문서로 나누었는데, 성문서에는 지혜 문학과[21] 역사서, 시서 등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경(율법서)도 예언서도 아니라면 성문서로 취급되며, 약간 의외이게도 다니엘은 예언서가 아니라 성문서로 분류되어 있다. 유대교에선 율법서>예언서>성문서 순으로 그 권위를 해석한다.

4. 구약 정립의 역사

그라츠(H. Graetz, 1871) 이후의 지배적인 이론에 따르면, 구약 경전의 세 부분은 - 이 부분을 이루는 책들이 오래된 것이라는 속단을 배제한 채 -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토라는 페르시아 시대 말기 이전, 늦어도 400년 330년 사이에 집대성되었으며,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가 잇따라 배열된) 지금 형태대로의 느비임은 기원전 200년경(Steck, 1991 참조),[22] 다시 말해서 팔레스티나에서의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말기에 출간되었다. 한편 크투빔은 훨씬 불규칙적이며 보다 개방적인 하나의 총서를 이루고 있었다. 이 총서는 기원후 1세기 말 '야브네(Yabne)[23] 종교회의'에 라삐 유다교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비로소 마무리되었을 것으로 본다. 기원후 70년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난 다음 크투빔 수집이 마감되었으며, 그 결과 성경 전체가 완성을 보게 된다. 이로써 유다교의 위경적인 종교문학 양산에 종지부가 찍히고, 이단적이라 평가된 작품들, 특히 묵시적 또는 그리스도교적인 작품들이 유다교 경전에 삽입되는 일이 차단된다. 야브네의 라삐들은 팔레스티나와 디아스포라의 유다교 공동체에 확고하면서도 공인된 '기록들'을 제공함으로써 유다교가 새로운 국가적 재앙 속에서도 살아남을 가능성을 부여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의 히브리어 성경이 탄생한 배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드 쀠리Albert de Pury, "구약성경의 경전",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1권 (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24-25쪽

유대교는 타낙(히브리 성경)을 율법서( 토라, 기독교에서는 모세오경이라 부름), 예언서, 성문서(시편 등)로 분류한다. 이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율법서이며, 유대교의 구약관은 율법서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율법서에 적혀있는 내용들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아니었으며, 부분적인 기록이나 구전 등으로 흩어져 내려오던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597-587년의 바빌론 유배는 유대인의 정체성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이스라엘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떠받치고 있는 모든 기둥들이 뿌리째 흔들린 것인데, 왕은 유배 당했고 하느님 현존의 상징인 성전은 파괴되었고, 하느님의 선물인 '약속의 땅'은 이방인에게 점령 당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도대체 누구이시고 그분은 어떤 방법으로 백성에게 개입하시는지를 말할 수 있는 다른 길을 모색해야 했다. 따라서 히브리인들은 기존 문헌들을 총합하여 '움직이는 조국'이라 할 수 있는 율법서를 써내게 된다. 특히 바빌론을 무너뜨리고 뒤를 이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는 피지배 민족에게 종교적 자치권을 부여하였고, 히브리인들이 종교적인 전승들을 법전의 형태로 엮는 데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이 율법서는 고전적인 가설에 따르면 크게 네 가지 계통의 문헌이 합쳐져 작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주의: 20세기 중반 이후 반론들이 상당히 많이 쌓인 상태이므로, 고전적인 견해는 이렇다는 정도로만 알아 두자. 이 4출전 모델은 1970년경까지는 천하를 통일할 기세로 학계를 호령했고 따라서 알아 둘 필요는 충분하지만, "1970년대부터 확고부동한 것처럼 보이던 이 가설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며[24] "그 고전적 형태는 이제 동조자가 거의 없"다.[25] 비록 고전적 모델이 전적으로 완전히 거부된 것은 아니고 D와 P의 존재는 그 후로도 연구자들의 폭넓은(그러나 개별적 강조점들은 상이한) 동의를 얻고 있지만, J와 E는 "극히 의문시되거나 단호히 부인되고 있다."[26]

첫 번째는 J문헌(야훼계 문헌)이다. 이는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지칭하기 위해 기원 설화로부터 시작해서 오로지 야훼라는 고유 명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J문헌은 인간 창조로부터(창세 2, 4ㄴ-25) 모세의 죽음(신명 34), 더 나아가 땅의 정복에(여호 19)[27]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백성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J문헌은 왕정 초기, 좀 더 자세히는 솔로몬 시대(기원전 940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J문헌의 핵심 본문은 창세기 12,1-3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소명 이야기로 보이며, J문헌 계통의 저자는 이스라엘에게, 이 본문에서 이루어진 약속들이 다윗과 그의 후계자가 주도한 왕정 제도의 설정과 함께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상기시키려 노력한다. 또한 J문헌은 유다 지파를 다소 편애하는 감이 있는데, 여기서 저자가 유다 지파 출신임을 알 수 있다.[28]

2번째 문헌은 E문헌(엘로힘계 문헌)으로, 이 문헌은 하느님을 엘로힘이라 부르기에 이렇게 불린다. 독일어로는 '야비스트'(Jahwist), 영어로는 '야위스트(Yahwist)'나 '저호비스트(Jehovist)'라 불리는 편집자를 통해 야훼계 문헌과 일찌감치 결합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그 결과 창세기 20-22장의 아브라함 이야기의 경우 엘로힘계 문헌은 단편으로만 남게 되었다. 탈출기부터는 E문헌을 찾아내는 데 어려움이 많으며 야훼계 문헌에서 엘로힘계 문헌을 떼어 내는 작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E문헌은 경외심과 도덕적 자세를 강조한다. 또한 E문헌은 북왕국 이스라엘 예언자들과 가깝다는 점에서, 북왕국에서 나온 문헌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후 북왕국이 아시리아에 멸망하면서 남왕국 유다에 유입되어 받아들여진 것을 보인다.

3번째 문헌은 D문헌(신명기계 문헌)이다. 이 문헌은 신명기의 최초 본문을 가리키며, 기원전 622년 요시야 임금의 개혁을, 특히 예루살렘 성전을 합법적인 유일한 성소로 격상시킨 중앙 집권 정책을 정당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D문헌은 계약과 선택을 주제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강조한다. 또한 D문헌이 율법을 말하는 부분은, 또한 반복적이면서도 열정적인 독특한 문체로 율법을 설명한다.[29] 물론 D문헌은 신명기에만 쓰인 것은 아니고, 신명기 이외의 율법서에서도 문체의 연속성이 나타난다. 이를테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조상들의 하느님' 등의 표현은 D문헌의 문체다.

4번째 문헌은 P문헌(사제계 문헌)으로, 창세기 1장의 천지 창조의 첫 번째 이야기로 시작해서 모세의 죽음 또는 약속의 땅 진입으로 마감된다. 이 문헌의 의도는 사제 제도, 할례, 파스카 축제 등 제의 제도의 정당화에 있다. P문헌은 가장 늦은 시기에 작성된 최후의 문헌이자 율법서의 기초 문헌으로, 다른 문헌들은 P문헌의 보충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는 바빌론 유배 시대나 그 이후 히브리인들의 정치적 자립이 결여되어 있던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P본문들은 표현이 간결하며, 수적 정확성과 족보에 관심을 가지며, 경신례와 전례에 관계 된 모든 것을 선호한다. 이러한 P문헌의 특징은, 바빌론 유배로 인한 공간적 분산을 전제로 하면서도, 페르시아 시대에 사제단과 재건된 성전을 중심으로 유대인 공동체를 조직하려는 시도를 드러낸다. 그렇기에 유대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제시되는 제의와 축일들을 자주 언급한다.

이와 같이 여러 본문이 합쳐져서, 페르시아 시기 때 우리가 아는 율법서의 최종형태(혹은 최종형태에 매우 근접한 모습)가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율법서는 에즈라가 이를 확정하고 기원전 398년 공포한 이래 공적인 결정의 척도가 되었다. 페르시아 정부는 이때부터 다섯 권으로 된 '모세의 책들'을 제국의 모든 유대인들을 다스리는 헌장으로 인정하였으며, 제국의 유대인들 또한 이 책들에 신앙과 실천 생활에 관한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규범적 가치를 부여했다.

율법서에 이어서 집대성 된 모음집은 '예언서'이다. 예언서는 전기 예언서와(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 후기 예언서로(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12개의 소예언서) 나뉜다. 예언서는 토라에 버금가는 규범적 권위를 가지지는 못하지만, 율법을 실천적으로 주해하는 기초가 되었고 율법의 효력을 넓혀 나갔다.

마지막으로 확정된 것은 '성문서'이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의 경신례와 회당 집회 때 사용되었고, '시편'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성문서의 책들은 권위나 수용 면에서 그 사정이 각기 달랐다. 각 권의 권위는 그 용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이렇게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가 합쳐진 것이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구약의 기초 형태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는 정경목록이 확정되지는 않았다.

이후 헬레니즘 시대가 도래하면서 유대교와 구약은 변화를 맞이한다. 한 히브리 공동체가 기원전 4세기 말엽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졌으며, 이때에 팔레스타인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강역에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페르시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종교적 특권을 히브리 공동체에 허용했으며, 이 특권으로 히브리인들은 국가의 보호 아래 고유한 율법으로 관리되는 '민족'을 이루면서 자신들의 경신례와 문화적 특수성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집트의 유대인들은 점차 일상에서 그리스어를 쓰게 되면서, 율법 역시 그리스어로 곧 번역되었다. '아리스테아의 편지'라 불리는 문서에 의하면 이 번역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 시대에 왕명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루어졌으며, 예루살렘의 대사제가 선정한 팔레스티나의 72명의 유대인 학자들이 일을 맡았다고 한다. 여기서 번역된 책을 '칠십인역'이라 불리게 된다. 또한 아리스테아의 편지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이 그리스어로 번역된 율법이 히브리어 율법과 동일한 가치를 지녔다고 인정한 것이 드러난다.

처음에 칠십인역은 율법만을 번역하였으나, 후에 율법에 이어 유대교의 신앙과 삶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도 번역하게 되었다. 예언서와 시편이 먼저 번역되었고 기타 문서들이 작품의 영향력과 권위에 따라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마저도, 유대교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경전의 범위를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단편적인 사실들은 그나마 남아있는데, 로마인들에게 맞섰던 유대인들의 최후 저항 요새였던 마싸다(기원전 73년 함락)에서 집회서 두루마리 하나가 발견되었기에 회당에서는 집회서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분파별로는 여전히 복잡하다. 사두가이는 오직 율법서만을 인정했으며, 오늘날의 용어를 쓰자면 '가장 좁은 정경 목록'을 사용했다. 한편 쿰란의 에세네 공동체는 토빗기와 집회서는 물론 바룩서도 사용했으며, 에녹서나 희년서와 같은 몇몇 외경들과, 공동체 생활을 규제했던 공적인 문서(공동체 규칙서, 성전(聖戰) 규칙서, 성가책, 새 예루살렘서 등)에도 똑같은 권위를 인정하였다.

그리고 그래츠에 따르면 기원후 80년에서 100년 사이쯤에, 바리사이 유대인 학자들은 얌니아에 모여 경전 목록을 작성한다. 우선 이들은 논란이 되던 몇몇 책들의 권위를 확인했으며(코헬렛, 아가, 에스테르기), 그들이 보기에 최후의 예언서라 할 수 있는 하까이서와 즈카르야서와 말라키서 이후의 책들은 경전 목록에서 제외했다. 이와는 달리,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디아스포라의 유대인 사회는 70인 역을 보았기에 제2경전에 속하는 책들은 물론 주요 외경들까지 경전으로 받아들여 사용하였고, 이는 그곳에서 주로 활동하던 기독교 세력에게 계승되었다.

기독교는 앞서 설명하였듯이 1세기에는 유대교 회당에서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활동하였기에 당연히 유대교에서 쓰던 경전들을 계승했다. 다만 1세기 유대교는 하나의 통일되고 일관된 공동체가 아니었고 '정경 목록' 역시도 유대교 내부에서는 통일되지 않았었다.[30] 다만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른바 얌니아 회의에서 제외된 상당수의 책들을, 이미 작업이 끝난 그리스어 역본을 바탕으로 계속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2세기 초 랍비 아키바의 할라카와, 3세기 초반 오리게네스의 증언은 이를 잘 보여준다. 랍비 아키바는 집회서 등의 외경을 보는 무리(당시 나자렛파로 불리던 유대계 기독교인)들을 멸망당해 마땅한 이단으로 저주하며 유대교 안에서 축출을 시도하였다.[31] 오리게네스는 얌니아에서 확정된 유대교 성경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기울어 있던 자들을 반박하며, 구약 성경의 그리스말 역본을 기초로 한 '기독교 성경'의 권위를 옹호하였다. 이렇게 기독교 경전은 서방 교회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확정되어 나갔다. 그러나 동방 교회는 경전을 확정할 규범 마련을 위해 어떠한 법적인 결정도 내려 본 적이 없으므로, 오늘날까지도 정경목록에 대해 통일되지 않은 입장을 보여 왔고, 정교회권 신학자들의 견해도 약간씩 다르다. 반면 서방 및 북아프리카 교회는 카르타고 공의회와 인노체시오 1세 교황의 편지가 입증하고 있듯이 4세기 말경부터는 제2경전을 포함한 공통 목록을 소유하게 되었다.

4.1. 구약성경 성립에 관한 근래의 견해

위의 주의문에서도 미리 경고했듯이, JEPD라는 4출전 가설은 오늘날 좋은 의미로는 나쁜 의미로든 '고전적 학설'이며, 1980년대 이후로는 4출전 학설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D와 P에 대해서는 지금도 다양한 형태의 지지가 있으나, J와 E를 나누지는 않는다.

4출전 가설이 오늘날의 성서학 개론서에 실리는 것은 저자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고전적 학설을 교육상의 이유로 반드시 언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일단 1970년대까지의 정설이던 4출전 가설을 교육한 다음, 이를 크든 작든 수정하여 백가쟁명이 되어버린 현재의 다양한 가설로 나아가는 것이다. 가령 4출전 모델을 교정한 가설인 뮌스터 오경 모델에서는 벨하우젠의 JE와 동일 범위인 Das Jerusalemer Geschichtswerk(예루살렘 역사서)를 상정하는데, 일단 J가 뭐고 E가 뭔지는 알아야 가르치든 말든 하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을 야훼라 부르느냐 엘로힘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문헌을 분류한 것 자체가 무리한 발상이었기 때문이며, 당대의 한 시기에 야훼를 부르는 명칭이 일관되었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근현대 문학에나 적용할 수 있는 가정이라 당대 문헌을 분석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 또 그러한 호칭들은 칼로 자르듯 딱딱 나뉘는 것이 아니다. p문헌을 창세기 일부부터 민수기까지로 배정하는 것 또한 현재는 논파되었다. 또 다시 원 논지로 돌아가서 엘로힘계 문헌 설명에 야휘스트 이론을 언급했는데, 신명기계 이론과 야휘스트 이론은 서로 상충하는 이론이다. 애초에 신명기를 독립된 자료로 파악하는것 자체가 야휘스트 이론을 반박하면서 나온 이론이다. 신명기계 이론은 오경 형성 이론 중 전통적인 이스라엘 역사서사 별도로 존재했고 이것이 시간이 지나며 유배 역사서와 신명기계 사서, 예언서와 합쳐지며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현대의 오경/역사서/예언서 체제가 정립되었다는 소위 ‘육경이론’을 반박하며 나온 ‘사경이론’에서 도출된 것인데, 이 사경이론에 따르면 ‘야휘스트’라고 일관되게 특정할 수 있을 만한 문체의 존재는 부정된다. 그리고 하나 더, J문헌의 경우 예외적으로 현대에도 그 존재가 인정된다. 윗 문단에 나온 문헌 분류이론들 중 신명기계 이론을 제외하고 현대에도 유일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다만, 현대적 견해에서 J문헌의 존재는 오직 창세기에 한해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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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견해라고 해서 오경 형성에 관한 아주 확고한 정설이 있는 것은 아니나[32] 라인하르트 크라츠의 이론을 인용해보면, J계 문헌은 창세기 2장부터 나오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부분부터 창세기 뒷부분의 야곱에 대한 전승까지 광범위하게 합쳐져 형성된 것으로, 초기 이스라엘 족장사와 이스라엘 이외의 여러 민족들의 기원에 대한 전승들이 포함된다. 이 문헌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후대의 역사서들과 다르게 선민사상, 즉 ‘하느님에게 유일하게 선택받은 우월한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아예 드러나지 않으며, 이스라엘 이외의 다른 민족들 또한 하느님의 자손으로 인식하는 것이 드러난다. 반면 유대교 특유의 선민사상과 ‘선택받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은 출애굽 2장부터 시작하는 출애굽 전승~여호수아에 관해 언급하는 민수기 8장까지를 묶은 E(exodus)계 문헌에서 매우 강력히 드러난다. 여기의 E계 문헌은 전통적인 엘로힘계 문헌을 뜻하는 것이 아닌 엑소두스, 즉 탈출과 그 이후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후 E계 문헌은 출애굽기의 언약과 율법에 관한 언약법전 전승, 신명기계 문헌들, 사울과 다윗, 솔로몬, 그리고 열왕기의 기원이 된 역사서와 매우 복잡하기 짝이 없는 과정을 거쳐 융합되어 소위 ‘구경’이라 불리는 문헌을 만들어낸다. 이 문헌의 특징은 위에서도 이야기한 대로 타 민족에 대한 매우 강경한 배타성과 선민의식이다.

이후 구약성경에는 창세기 45-50장, 출애굽기 1장이 삽입되고 후신명기계 문헌이라고 불리는 성결법전(Holiness code)에 해당하는 레위기 11장 및 17-26장 및 창세기와 민수기의 일부 텍스트가 추가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사제계 문헌인 ‘하느님에 의한 창조’를 암시하는 창세기 1장[33] 및 출애굽기 40장 일부, 레위기 1-17장이 더해지고 후사제계 문헌인 신명기 34장이 첨가되는 한편 여호수아서가 분리되어 최종적으로 현재의 창세기-열왕기의 형태가 정립되었다.

5. 성서 주석학적 연대 정리

구약 성경의 시기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34]
기원전 981년~722년 북왕국 이스라엘
기원전 981년~586년 남왕국 유다
탈출기 34장 일부의 특전법과 계약법(기원전 900년경)
엘리야 이야기(기원전 9세기)
아모스서와 호세아서(기원전 8세기 중엽)
원이사야서와 미카서(기원전 8세기 말)
예루살렘 역사서Das Jerusalemer Geschichtswerk[35](7세기)
(요시야) 신명기(기원전 622)
스바니야서, 나훔서, 하바쿡서(기원전 7세기 말)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기원전 6세기 초)
기원전 586년~538년 신바빌로니아의 지배
기원전 538년~332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지배
기원전 332년~129년 헬레니즘 국가의 지배
기원전 129년~63년 하스몬 왕조
기원전 63년~기원후 324년 로마의 지배
신명기계 역사서(기원전 6세기 중엽)
제2이사야서(기원전 6세기 중엽)
애가(기원전 6세기)[36]
사제계 문서, 하까이서와 즈카르야서(기원전 520~518)
룻기(기원전 5세기)
토라(모세오경)의 완결(기원전 400년경)
욥기(기원전 5세기~2세기)[37]
역대기, 에즈라기, 느헤미야기, 토빗기, 에스테르기, 잠언, 코헬렛, 아가(기원전 3세기~2세기)
열두 소예언서(기원전 240년경)
시편(기원전 6세기~2세기)[38]
집회서(기원전 2세기)[39]
다니엘서(기원전 150년경), 유딧기(기원전 150~100), 1/2마카베오기(기원전 100년경)[40]
지혜서(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41]
유다교 정경의 완결(기원후 100년경)

6. 타낙의 3분 구조와 구약의 4분 구조의 해석학적 체계

타낙의 3분 구조(토라, 느비임, 케투빔)는 바탕에서 서로 연결된다.

토라의 끝과 느비임의 시작: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여호수아는 지혜의 영으로 가득 찼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의 말을 들으며,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실천하였다.(신명 34,9)
(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오직 너는 더욱더 힘과 용기를 내어,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율법을 명심하여 실천하고,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이 율법서의 말씀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그것을 밤낮으로 되뇌어, 거기에 쓰인 것을 모두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네 길이 번창하고 네가 성공할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주님의 종 모세께서 ··· 너희에게 이르신 말씀을 기억하여라.(여호 1,7-8.13)

느비임의 끝과 케투빔의 시작:
너희는 나의 종 모세의 율법,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에게 내린
규정과 법규들을 기억하여라.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말라 3,22-24)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토라)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의인들의 은 주님께서 알고 계시고
악인들의 길은 멸망에 이르기 때문일세.(시편 1,1-3.6)

토라와 느비임의 연결에 의해서, 여호수아가 '율법서'로서의 모세의 토라를 글자그대로 준수하는 첫 사람이라는 점이, 바로 그렇기에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그의 길이 성공한다는 언명이 강조된다. 그리고 느비임과 케투빔의 연결에 의해서 ㄱ. 악인과 의인의 대비 ㄴ. 야훼의 심판과 연결된 종말론적 관점 ㄷ. 야훼의 가르침(토라)을 통한 구원이 강조된다.
느비임에 관하여 스텍(O.H. Steck, 1991)은 이 거대한 경전 일체가 정리되어 나간 단계를 추적했다. Corpus propheticum 곧 네 권의 예언 신탁집(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열두 소예언서)은 기원전 220년 이전에 문학적 구성이 완료되었을 것이며, 기원전 200년경에 신명기계 '역사'의 둘째 부분, 곧 미래의 '전기 예언서'(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가 삽입됨으로써 지금의 느비임으로 그 폭을 넓혀갔을 것이다. 이 예언집은 매우 인상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역사 이야기, 모세오경에 직접 연결되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 역사와 관련된 예언 신탁 모음을 열거한다. 따라서 이 예언집은 '이야기'와 '받침 본문'을 병치시키고 있다. 느비임은, 서언과 결어가 증명하고 있듯이, 정리 단계부터 토라에 분명하게 연결되고 토라와의 종속적인 관계 속에 자리하게 된 작품이다.
서언(여호 1,1-2.7-8)
《1절) 야훼의 종 모세가 죽은 뒤, 야훼께서 모세의 시종인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2)“나의 종 모세가 죽었다. 그러니 이제 너와 이 모든 백성은 일어나 저 요르단을 건너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땅으로 가거라. 7) 오직 너는 더욱더 힘과 용기를 내어,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율법을 명심하여 실천하고,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이 율법서의 말씀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그것을 밤낮으로 되뇌어, 거기에 쓰인 것을 모두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네 길이 번창하고 네가 성공할 것이다(..)”》.

결어(말라 3,22)
《22절) 너희는 나의 종 모세의 율법,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에게 내린 규정과 법규들을 기억하여라. 23) 보라, 야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아울러 느비임의 결어는, 비록 엘리야의 역할이 아직은 여전히 토라의 설교자의 역할로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종말론적인 나아가 메시아적인 관점을 향해 열려 있는 것 같다. 이 결어는 예언자들의 시대가 마감될 것임을 예고하는 즈카 13,2-5에서도 강조된다.
2절) 만군의 야훼의 말씀이다. 그날에 나는 이 땅에서 우상들의 이름을 없애 버려, 그들이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겠다. 또한 나는 예언자들과 더러운 영을 이 땅에서 치워 버리겠다. 3절) 그런데도 어떤 사람이 계속 예언하면, 그를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에게, ‘너는 주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제 더 이상 살지 못한다.’ 할 것이다. (···) 4절) 그날에 예언자들은 예언을 하면서도 저희가 본 환시를 부끄럽게 여기며, 속이려고 입던 털옷을 걸치지 않을 것이다. 5절) 그러면서 '나는 예언자가 아니라 땅을 일구는 사람이오. 사실 젊어서부터 땅이 나의 전 재산이었소.' 하고 말할 것이다.(즈카 13,2-5)
-드 쀠리Albert de Pury, "구약성경의 경전",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1권 (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42-44쪽

그리고 마지막으로 케투빔의 마지막인 역대기에 의해서 타낙은 종결되는데, 이를 통해 기원후 1세기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극복하고자 하는 종결 의도가 드러난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역대 36,22-23)

한편 그리스도교의 구약 성경이 취하는 4분 구조(오경, 역사서, 지혜문학, 예언서)는 시나이에서의 '원계시'인 토라가 처음에 자리잡고, 다음의 3가지 블록에 의해 일종의 '역사신학적' 도식을 의도한다:
I 창세기~신명기 이스라엘의 원역사 권고와 요구로서의 토라
II 여호수아기~2마카베오기 이스라엘 땅에서의 이스라엘 역사 과거
III 욥기~집회서 삶의 지혜 현재
IV 이사야서~말라키서 예언 미래
[42]
그리고 바로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교의 구약과 신약이 병렬적으로 연계된다:
바탕 토라(오경) 복음서
과거
현재
미래
역사서
지혜문학서
예언서
사도행전
사도 서간
요한 묵시록
[43]

7. 히브리 성경의 판본

본래 히브리말 성경들은 모음을 기록하지 않았다. 이는 히브리어의 특성에 기인하는데, 이를테면 '축복'이라는 개념을 나타내는 어근을 로마자로 나타내면 BRK이다. 그리고 barek은 '축복하다', berak은 '그가 축복했다', bereku는 '그들이 축복했다', yebarek은 '그가 축복할 것이다', baruk은 '축복된 자'(남성형), beruka는 '축복된 자'(여성형), beraka는 '축복'을 의미한다. 때문에 문맥에 따라 낱말을 다르게 읽었고, 이는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히브리어가 사어가 되면서, 모음을 표기할 필요성이 생겼다. 때문에 기원후 7세기경 유대교 학자들은 자음으로 된 본문에서 각종 점과 줄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모음을 기록하였고, 기원후 10세기경 유대교는 공식적으로 확정된 히브리말 성경 본문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마소라 본문'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마소라 수사본은 기원후 820-850년경 필사된 것으로 모세 오경만을 전한다. 마소라 본문 전체를 담고 있는 가장 오래된 수사본은 기원후 10세기 초기에 필사된 것으로, 코덱스 알레프(Codex Alep)라 불리나 오늘날에는 불행히도 훼손되어 전해진다. 현재 가장 널리 인용되는 마소라 수사본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박물관에 보관된 수사본으로, 1008년경 필사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마소라 본문 역시도 완벽한 것은 아니며, 쿰란 본문(이른바 사해문서)과 비교할 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또한 칠십인역이 참고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가상의 히브리 성경과도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마소라의 원본인 자음 본문(원 마소라 본문)은 이미 기원후 1세기 말 유대교에서 다른 본문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인정 받은 상태이다. 그러나 역시 그렇다 하더라도 마소라 본문을 100% 완전히 신뢰하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번역자들은 마소라 본문이 변질되었다고 판단되는 경우 다른 본문들을 참조하여 이를 보충하곤 한다.

[1] 또한 동일한 히브리어 성경 텍스트라도, 오늘날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목차가 다르다. 단, 이는 교리적 차이는 아니고 단순 관습이다. [2] 집회서 자체는 유대교의 정경이 아니지만, 이는 토라, 느비임, 케투빔의 삼분 구조를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구절이다. [3] '타나크'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래어 표기 차이. [4] '히브리어 성경'은 개신교의 구약 목록과 범위가 일치하며, 가톨릭의 구약 목록보다는 범위가 좁다. [※주의] 느비임의 범위는 그리스도교가 인식하는 예언서의 범위와 다르다. 가령 그리스도인이 생각하기에 여호수아기는 (율법서도 예언서도 아니니) 타낙의 케투빔 카테고리에 해당할 것 같지만, 유대교에서는 느비임으로 본다. [6] 칠십인역 및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약을 문서의 성격에 따라 오경,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 이렇게 4 부분으로 나누는 게 일반적이다. 이 중 역사서 부분은 느비임과 케투빔에 나누어 들어가 있다. [7] Megillōt(두루마리들): 룻기, 아가, 코헬렛, 애가, 에스테르기를 의미한다. [8]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순수 중립 명칭으로서 Erstes Testament(첫째 성경)를 민 것은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교의 용어로서는 '구약 성경'보다 '첫째 성경'이 낫다는 것이다. [9] 무엇보다도 위에서 소개한 에리히 쳉어의 책 제목부터가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이다. [10] 그리스도인이 유다인의 회당에서 추방된 건 이미 기원후 1세기에 일어난 일이지만, '유다이즘 내부의 한 지류'가 아니라 별개의 사상으로 인식된 건 후대이다. [11] 이는 신약 본문 자체의 관점에도, 당연히 그리스도교 교리의 관점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12] 물론 신약성경 내부에서는 유다인을 아예 민족 차원에서 비판하는 구절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구절들은 구약성경에도, 그것도 훨씬 강경하고 가혹한 표현들로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신구약이 동일한 화법을 쓰고 있는데, 후대의 관점(분리된 두 중교)을 본문에 투사하니 오해를 부르는 것이다. [13] 이것이 전승이나 실제로는 몇 백 년 후의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4] 요시야왕 재위 시기로, 한국사에서는 고조선 시대이다. [15] 알렉산드로스의 경우는 마음이 오만해졌다고 디스 당하기는 하는데, 그 구절 외에는 의외로 역사적 행적과 잘 들어맞게 설명되어 있다. [16] 역사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당시의 패권국가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어떻게 인식되었을까?'라는 식의 의문에 대해서는 의외로 성경이 나쁘지 않은 참고 서적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똑같은 패권 국가인데 아시리아와 페르시아는 성경에서 대우가 전혀 다르다. [17] 가령 오늘날의 그리스도교 신론에서도, "1. 백성(교회)과 역사를 함께 걸어나가는, 그렇기에 배반에 상처입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는, 격정적이고 감정적인 하느님상 2. 무감정하고 초연하며 세상과 멀리 떨어진 부동의 원동자로서의 철학적 하느님상"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가지 하느님상을 모순 없이 받아들인다. [18] "여인이 자기의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찌 가엾게 여기지 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이사 49,15, 공동번역성서) [19] 물론 주석학적으로 말해서, 아가의 본래 텍스트는 신학적 의도 없이 남녀간 사랑을 말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신학적 독서가 정경화를 부른 것이든, 혹은 정경화가 신학적 독서를 부른 것이든) 아가는 '구약성경의 정경에 들어있다는 맥락'에서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오랫동안 '하느님'과 '백성'의 사랑 노래로 읽혔고, 지금도 읽히고 있다. 다시 말해서, '텍스트 자체의 의미'와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와 함께 놓였을때의 맥락적 의미'는 개념상으로 구별되는 것이며, 전자의 의미가 주석학적으로 논란될지언정 후자의 의미에서는 '아가의 신학적 독서'가 분명하게 지지된다. [20] "2 아, 제발 그이가 내게 입 맞춰 주었으면!
당신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달콤하답니다.
3 정녕 당신의 향유 내음은 싱그럽고
당신의 이름은 부어 놓은 향유랍니다.
그러기에 젊은 여자들이 당신을 사랑하지요.
4 나를 당신에게 끌어 주셔요, 우리 달려가요."
(아가 1,2-4,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새번역 성경』)
[21] 지혜서라 쓸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지혜문학에 속한 제2경전인 지혜서와 혼동의 여지가 있어서 이렇게 적었다. [22] 발췌자 주석: Odil Hannes Steck, 《Der Abschluss der Prophetie im Alten Testament: Ein Versuch zur Frage der Vorgeschichte des Kanons》 (BthSt 17), Neukirchen-Vluyn, 1991. [23] 발췌자 주석: 얌니아 [24] 정태현, 《성서 입문 하권》, 109쪽 [25] Erick Zenger u.a, 이종한 옮김, 《구약성경 개론》 163쪽 [26] Erick Zenger u.a, 이종한 옮김, 《구약성경 개론》 163쪽 [27] 여호수아기는 율법서는 아니지만, 율법서의 후속편 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28]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저자'라는 개념은 전승 수집자 겸 엮은이라 할 수 있다. [29] 쉽게 알 수 있는 예로, 지금 당장 신명기와 레위기에서 아무 율법이나 골라서 문체를 대조해보자. 전자는 열정적이며, 후자는 건조하며 간결하다. [30] 물론 복음서들을 보면 바리사이가 사두가이보다 상대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차이는 있지만, 바리사이가 정통이고 나머지는 짝퉁이라는 식의 관점을 가질 필요는 없다. [31] 다만 얌니아 회의는 현재 부정하는 추세이고 저주기도문이 유대사회에 보편적으로 수용됐는지, 아님 후대의것인지는 좀더 발굴과 연구가 필요하다. [32] J, E, P, D의 고전적 4출전 모델이 붕괴한 후, 아직까지 구약학에서 이렇다할 합의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오늘날에도 1970년대 4출전 학설을 아직까지 울며 겨자먹기로 교육하는 이유는 그게 학계 최후의 합의된 가설이었기 때문. [33] 전통적으로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에는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생각을 거부하며,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생각은 바빌론 포로 시기에 생겨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창세기문서 참조. [34] 루트거 슈빈호르스트쇤베르거(Ludger Schwienhorst-Schönberger), 실비아 슈뢰어(Silvia Schroer),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요한네스 마르뵈크(Johannes Marböck)의 연대 언급은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등의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을 근거로 한다. 만약 연대 언급에 별도의 주석이 없다면 같은 책 1013쪽을 출처로 한다. 에른스트 알렉스 크나우프(Ernst Alex Knauf), 티에리 르그랑(Thierry Legrnad), 필리프 기욤(Philippe Guillaume), 필리프 아바디(Philippe Abadie)의 연대 언급은 Th. 뢰머Thomas Römer 등의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을 근거로 한다. [35] 고전적인 4출전 모델의 문제점을 교정한 학설인 '뮌스터 오경 모델'에서 사용하는 용어. 문학적 경계 설정에서는 벨하우젠의 JE(=예호비스트 역사서)와 범위가 비슷한 개념이지만, 문학적 전사前史를 벨하우젠과는 다르게 본다. [36] "애가의 익명성과 다양성은 저작 시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애가가 일정한 순서에 따라 구성된 작품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애가에 담긴 모든 시가 기원전 538년 유배 시대가 끝나기 이전에 지어졌다는 사실과, (특히 둘째 시와 넷째 시가 제공하는) 상당한 자료들이 기원전 587년의 사건들과 가깝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석 성경》 [37] 에른스트 알렉스 크나우프Ernst Alex Knauf와 필리프 기욤Philippe Guillaume에 의하면 기원전 5세기, 루트거 슈빈호르스트쇤베르거Ludger Schwienhorst-Schönberger에 의하면 기원전 5~2세기 [38] 에리히 쳉어(Erich Zenger)는 3-14편(9/10편 없는), 15-24편(16·19·23편 없는), 26-32.35-41편(37·39·40편 없는)을 기원전 6세기로 잡고, 기원전 200년에서 기원전 150년 사이에 1-150편으로 이루어진 최종 형태를 갖추었다고 본다. [39] Johannes Marböck은 기원전 2세기의 첫 4분기로 본다. 집회서 머리글에 의하면 저자의 손자가 에우에르게테스 임금 치세 제38년, 즉 기원전 132년에 이집트에서 집회서를 번역했다고 보고한다. Thierry Legrnad는 기원전 190년경 집필되었다고 본다. [40] 필리프 아바디Philippe Abadie에 의하면, 로마인에 관한 찬사가 마카베오기 상권이 기원전 63년 이전의 것임을 밝힌다. Helmut Engel은 상권의 집필을 기원전 100년경으로, 하권의 집필을 기원전 124년 직후로 본다. [41] 티에리 르그랑Thierry Legrand에 의하면 기원전 1세기 하반기, 실비아 슈뢰어Silvia Schroer에 의하면 하한선 기원전 30년 상한선 기원후 41년. [42] 표 출처: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유다인과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책", 에리히 쳉어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52쪽 [43] 표 출처: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유다인과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책", 에리히 쳉어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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